블루 머더 레이코 형사 시리즈 6
혼다 데쓰야 지음, 이로미 옮김 / 자음과모음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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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자신은 달랐다. 산산조각이 난 시체도, 깔려 죽은 시체도, 독살된 시체도, 썩어 문드러진 시체도 보았다. 죽음이 공존하는 현장에서 소중한 동료까지 잃었다. 그런 의미에서는 자신도 '스트로베리 나이트'의 경험자인지 모른다. 누군가의 죽음을 기준으로 하여 현재 자신의 삶을 살아간다. 오쓰카의 죽음을 머리와 가슴에 새김으로써 자기 눈에 비친 사회를, 도쿄라는 도시를 다시 정의한다.   p.166

가석방으로 출소한 지 엿새 만에 조직폭력단의 두목이 살해된 채 발견된다. 시신의 상태는 참혹했다. 총상도 없고 자상도 보이지 않고, 큰 출혈이나 심한 상처도 없었다. 대신 얻어맞았다는 상흔만 50군데가 넘고, 골절은 20군데도 더 되는 등 온몸의 뼈가 부스러진 상태였다. 대체 누가 이런 무자비한 폭력을 휘둘러 범행을 저지른 것일까. 게다가 피해자는 현역 조폭 두목이었다. 범인이 폭력단 관계자인지 아닌지도 확실하지 않은 상황이었다. 그리고 이어 이케부쿠로 일대를 중심으로 폭력을 일삼아온 사람들이 잇달아 처참하게 살해된다. 온몸의 뼈라는 뼈는 전부 부러뜨리는 방식으로. 세 건의 범행은 동일범의 짓이 분명해 보였는데, 대체 범인의 목적이 뭐였을까. 레이코는 탐문 중 만난 외국인 여성으로부터 결정적인 제보를 받게 된다. 동네에 소문이 파다한 그 괴물을 사람들이 '블루 머더'라고 부른다는 것이었다. 블루 머더는 오로지 조직폭력배, 폭주족 출신 한구레, 중국계 마피아 등 각종 악인들만 살인의 타깃으로 삼으며, 이미 수많은 악인들이 그에게 당해 행방불명되었다는 것이다. 악당들을 닥치는 대로 죽여 없애는 살인자라니, 지나치게 잔인한 살해 방식 때문에 마치 괴물처럼 느껴지는 블루 머더의 정체는 누구이며, 대체 범행 동기는 뭘까.

이 시리즈의 주인공인 히메카와 레이코는 열일곱 살 때 성폭력 피해를 입었고, 그 일로 인해 경찰이 되기로 결심했다. 대부분의 경찰들이 현장, 물증, 자백을 중시하는 데 비해 그녀는 직감에 의존하는 수사를 하는 경우가 많다. 아무런 근거 없이 범인을 짐작해서 맞히고 행동을 읽는 게 가능한 이유가 범인들과 지극히 비슷한 사고회로를 가졌고, 그래서 무의식적으로 범인의 의식에 동조하기 때문이라는 동료의 평가도 있었다. 직급이 같은 동료에게는 나이를 불문하고 아무렇지 않게 반말을 하는 등 자신감 넘치는 모습 때문에 그녀를 아니꼽게 보는 이들도 있지만, 그럼에도 그녀가 가지고 있는 형사로서의 감 혹은 그것과 비슷한 영감을 가진 점만은 누구든 인정한다. 시리즈 첫 번째 작품인 <스트로베리 나이트> 사건 당시 스물 아홉이었던 히메카와 레이코는 이번 신작 <블루 머더>에서 서른 셋이 되었다. <인비저블 레인> 이후 히메카와 반은 뿔뿔이 흩어지고, 레이코는 경시청에서 이케부쿠로 서로 자리를 옮기게 되었다.

 

"그래서 수도 없이 죽였어. 수백, 수천, 수만 번이나 머릿속에서 그 놈을 죽이며 살아왔지. 찔러 죽이고, 총으로 쏘아 죽이고, 목을 졸라 죽이고, 때려서 죽였어. 텔레비전에서 살인 사건 뉴스를 볼 때마다 실제로는 어떻게 해서 죽였을까, 하고 혼자서 상상을 해. 그런 상상은 언제부터인가 점점 더 소름 끼치는 아이디어로 변해가더군. 저 범인이 나였다면 이렇게 했을 텐데, 저놈을 이렇게 죽이는 거라고 보여주었을 텐데, 하고 말이야.... 맞아, 난 그런 생각만 미친 듯이 하면서 살아왔어. 그 사건 이후의 인생을."   p.417

히메카와 레이코는 전작인 <인비저블 레인>에서 폭력단 조직원 살인 사건을 수사하다 조직폭력배와 금지된 사랑에 빠진 적이 있다. 당시 그녀는 경찰관으로서 처벌을 받는다 해도 그를 향한 마음에는 거짓이 없었으므로 자신의 행동은 불가피한 것이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는 레이코의 눈앞에서 칼에 찔려 죽었고, 당시의 그 사건으로 인해 부하들이 모두 뿔뿔이 해체되어야 했고, 그녀 역시 본부에서 밀려나고 말았다. 게다가 레이코에게 호감을 느끼고 있다는 점을 서로 알고 있었지만, 그가 좋아한다고 딱 부러지게 고백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 이상의 관계로 발전하지 못했던 부하 기쿠타는 그 사건 이후 동료 경찰과 결혼을 했다. 레이코는 열일곱의 여름에 겪었던 사건 이후, 누군가를 제대로 좋아하고, 연애를 하는 일에 아직도 어려움을 겪고 있다. 레이코 형사 시리즈는 경찰 조직에 대한 묘사도 탁월하고, 잔혹한 범행 수법이 고스란히 보여지고 있지만, 주인공이 미모의 여형사라 그런지 그녀와 남자들의 관계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비중을 두고 이야기가 진행되어 왔다. 물론 약한 모습을 내보이고 싶지 않다는 레이코의 의지 덕분에 겉으로는 강한 척하는 모습에 다들 속고 있지만 말이다. 그녀는 사실 근본적으로 강한 사람이 아니다. 항상 나이와 성별을 의식했고, 그런 중압감을 전혀 못 느끼는 척, 아닌 척하는 버릇이 있었지만, 내면은 지극히 평범한 여자였다. 그리고 이번 신작에서 그녀는 범인과 대치하는 극한 상황에서 부하였던 기쿠타를 구하기 위해 처음으로 자신의 진짜 모습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이번에 혼다 데쓰야의 '히메카와 레이코' 시리즈 신작을 만날 수 있게 되어 너무 설레었다. <스트로베리 나이트>, <소울 케이지>, <시머트리>, <인비저블 레인>, <감염유희> 이후 6년 만에 여섯 번째 작품인 <블루 머더>와 일곱 번째 <인덱스>를 만날 수 있게 되었으니 말이다. 일본의 경찰 소설 대가하면 사사키 조, 곤노 빈, 다카무라 가오루 그리고 혼다 데쓰야를 꼽을 수 있다. 그 중 혼다 데쓰야는 독특하게 성장기 트라우마를 가지고 있는 미모의 여형사가 주인공인 시리즈로 유명하다. 게다가 이 시리즈는 범죄 묘사에 있어 그로테스크할 만큼 잔인하다는 점이 특징이기도 하다. 혼다 데쓰야의 작품은 레이코 형사 시리즈 외에도 지우 시리즈, 무사도 시리즈 등 시리즈 소설이 많으며, 그 외 단행본도 작품 수가 꽤 많다. 가장 최근 작품이었던 <짐승의 성>도 꽤나 잔혹하고 끔찍한 묘사가 많아 읽기 조금 힘들었던 기억이 난다. 사실 혼다 데쓰야는 시리즈 물에 더 강한 면모를 보이고 있고, 그 중에서도 단편보다는 장편이 더 훌륭한 작가이다. 레이코 형사 시리즈는 <블루 머더> 2012년 작이었고, <인덱스> 2014년 작이었다. 그리고 작년 11월에 나온 <노 맨스 랜드>라는 작품이 아직 남아 있는데, 곧 국내에서 만날 수 있으리라 기대해 본다. 새로운 표지로 옷을 갈아입고 개정판과 신간이 함께 나왔으니, 더 많은 독자들에게 이 시리즈가 사랑 받기를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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