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수의 레퀴엠 미코시바 레이지 변호사 시리즈 3
나카야마 시치리 지음, 이연승 옮김 / 블루홀식스(블루홀6) / 2018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세상에는 사람을 죽여도 죄를 물을 수 없는 경우가 있다. 전쟁, 사형, 소년 범죄, 형법 제39, 그리고 긴급 피난이다. 미코시바 자신도 소년법의 보호를 받아 형을 면했으니 그 점에서는 도치노와 같은 부류에 속한다. 그러나 비단 법률에 의한 처벌만이 있는 것은 아니다. 법률에 의해 처벌받지 않은 자도 결국 다른 무언가로 판가름을 받아 골고다 언덕을 오른다. 미코시바는 범죄자의 변호를 맡는 형편이 되었고, 도치노는 전직 소년원 교관에게 살해되는 처지가 됐다. 둘 다 벌을 받은 거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한쪽은 앞으로도 영원히 이어지는 속죄, 다른 한쪽은 한 순간에 끝나 버린 속죄.  p.155

<속죄의 소나타>,<추억의 야상곡>에 이어지는 '미코시바 레이지 변호사 시리즈' 그 세 번째 작품이다. 미코시바 레이지 변호사는 시리즈 첫 번째 작품에서 등장할 때부터 그야말로 파격적인 캐릭터였다. 시리즈 주인공이 26년 전 엽기적인 살인으로 시체 배달부라고 불리던 열네 살 소년 살인범이었으니 말이다. 미코시바 레이지는 의료 소년원에 수감되고 겨우 5년 만에 가퇴소했고, 3년 뒤 스물두 살 때 사법고시를 한 번에 합격해 변호사가 되었다. 변호사 자격에 인격이란 항목도 없거니와, 소년원 수감 당시 개명을 했으니 그 동안 그의 과거가 알려지지 않은 채로 잘 나가는 변호사로서 명성을 쌓고 있었다. 물론 그 명성이라는 것이 돈 많고 질 낮은 범법자들을 주요 고객으로 삼아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변호해 주는 대가로 거액의 보상을 요구하는 악질 변호사로 유명한 거였지만 말이다.

하지만 미코시바 레이지는 전작에서 과거가 밝혀져시체 배달부라는 별명을 갖게 된다. 그의 과거를 알게 된 모범적인 기업들이 연이어 고문 계약을 해지하는 바람에, 임대료를 내기 어려워 조금 저렴한 곳으로 사무소도 이전을 해야 했다. 이제 그의 과거 범죄 이력이 만천하에 드러난 덕분에 멀쩡한 의뢰인은 하나 둘 떨어져 나갔고, 지금은 큰손 고객이라고 하면 광역 폭력단 고류회 정도만 남아 있는 상태이다. 그러던 어느 날 미코시바는 신문에서 의료소년원 시절 교관이었던 이나미가 살인 혐의로 체포됐다는 소식을 접하게 된다. 이나미는 미코시바에게 속죄의 의미를 가르쳐주고, 범죄자에서 변호사로 살아갈 수 있었던 결정적인 역할을 해주었던 은인이었다. 이나미의 평소 인품이나 성격으로 봐서 기사의 내용대로 그가 단지 화가 나서 사람을 죽였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한 미코시바는 자처해서 이나미의 변호를 맡겠다고 나선다.

 

 

“근데 말이지. 내가 생각하기에 범죄에 동기 같은 건 그렇게 중요하지 않아. ‘이 자식을 죽여 버릴까같은 생각은 누구든 한 번쯤은 떠올리지. 하지만 그걸 실행에 옮기는가 아닌가에 따라 그 사람의 영혼의 형태가 정해지네. 아무리 미사여구를 늘어놓아도 실제 자신의 손을 피로 물들인 인간은 악인이야. 재판관 앞에서 변명할 수는 있어도 스스로에게는 할 수 없지. 그래서 도치노를 죽인 난 벌을 받아야 해. 그러지 않으면 나는 앞으로도 계속 짐승으로 남을 거야."  p.399

이나미는 자신을 위해 그 어떤 노력도 할 필요가 없다고 말하며, 자신이 저지른 죄에 합당한 처벌을 받겠다고 한다. 그럼에도 미코시바는 이나미가 저지른 사건의 실상을 파악하기 위해 조사를 시작하고, 살해된 피해자가 10년 전 선박 사고 당시 여성에게서 구명조끼를 빼앗아 살아남은 남자라는 것을 알게 된다. 당시 그는 형법 37조의 '긴급 피난'이라는 항목 덕분에 무죄 판결을 받았었다. 이 작품은 바로 그 긴급 피난에 의해심판 받지 않는 죄인인 인간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이나미는 오래 전 법무 교관으로 근무하던 당시 원생들에게 너희가 범한 죄는 반드시 속죄해야 한다고 가르쳤다며, 자신 또한 벌을 회피하지 않겠다고, 반드시 처벌받겠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변호사는 의뢰인의 이익을 지키는 것이 일이다. 그야말로 악덕 변호사가 최악의 의뢰인을 만나게 된 것이다.

 

나카야마 시치리는 시리즈가 이어지는 내내 최강이지만 최악의 변호사인, 선과 악의 경계에 서 있는 인물을 통해서 독자들에게 끊임없이 질문을 던진다.  한 번 악인은 영원히 악인인가, 진정한 속죄란 무엇인가. 이나미는 정말로 살인을 저질렀을까? 미코시바에게속죄의 의미를 알려준 이나미는 살인혐의로 기소되는 걸까? 법으로 심판 받지 않은 죄는 법 이외의 것으로 심판을 받는 것이 당연한 것인가. 정의와 악, 죄와 벌, 그리고 속죄라는 것의 의미에 생각해 보도록 만들어 주는 작품이었다. 나카야마 시치리는 전쟁, 형법 제39, 소년 범죄, 긴급 피난, 사형 등.. 살인을 저지르고도 처벌을 받지 않는 경우에 주목했다고 말한 적이 있다.  '미코시바 레이지 변호사 시리즈' 1편과 2편에서 소년 범죄를, 3편에서 긴급 피난에 대해 다루었으니, 이어지는 다음 시리즈도 벌써부터 기대가 된다. 나카야마 시치리는 탄탄한 구성과 독특한 캐릭터, 그리고 군더더기 없는 문장과 빠른 전개로 눈을 뗄 수 없게 만들어 주는 작가이다. 48세의 나이에 늦깎이로 등단해서, 그 후 7년간 이야기를 28편이나 써내는 왕성한 집필 속도를 보자면 다작으로 유명한 히가시노 게이고가 떠오르기도 한다. 히가시노 게이고 만큼이나 믿고 보는 작가가 된 나카야마 시치리의 모든 작품들이 국내에 출간되기를 고대 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