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독한 늑대의 피
유즈키 유코 지음, 이윤정 옮김 / 작가정신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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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과의 규칙은 야쿠자 세계의 규칙과 같아. 쉽게 말해서 운동선수들처럼 선후배 관계가 확실하다고 보면 돼. 선배의 터무니없는 설교나 기합도 묵묵히 견뎌야 하는데 거기엔 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어. 야쿠자는 평소에도 불합리한 세계에서 살아. 두목이 희다고 하면 까마귀도 흰 거야. 그런 녀석들을 상대로 싸우는 거라고. 야쿠자를 이해하려면 그들처럼 불합리한 세계에 살아야 하는 거야.”   p.22~23

이야기의 배경은 1988년 폭력단 대책법 시행 전의 암흑천지 히로시마, 현재 구레하라 동부서의 회의실은 70명 가까운 수사관들이 집결해 폭력단 항쟁 사건에 대한 대책을 논의 중이다. 권총 불법 소지, 대마와 각성제 사용 및 매매, 불법 도박 등이 일상적으로 행해지고, 폭력단 간의 항쟁 사건이 빈발하는 등 관내 조직 폭력 범죄가 자주 발생하고 있었다. 때문에 치안이 불안해지고 선량한 시민의 안전이 위협받고 있었는데, 실제로 얼마 전 일반 시민이 발포 사건에 휘말려 죽는 일도 있었다. 그리하여 구레하라 동부서는 폭력단 관련 사무소의 일제 수색을 계획하고 있었고, 지금 막 최종 협의를 마친 참이었다. 수사관들이 분주하게 움직이는 가운데, 회의실 뒤쪽에 한 남자가 느긋하게 앉아 있다. 바로 오가미 쇼고, 구레하라 동부서의 수사 2과 폭력단계 반장이다. 실력은 뛰어 나지만 그 누구도 막을 수 없는 악명 높은 독종 형사로, 수사를 위해서라면 불법, 탈법, 위법도 서슴지 않았고, 야쿠자와 유착한다는 검은 소문이 끊이지 않는 인물이다.

그리고 또 한 명의 주인공은 이번에 동부서로 발령을 받은 히오카 슈이치로 대졸에 파출소에서 1, 기동대에서 2년 근무했고, 이번에 형사로 처음 일을 하게 된 신참이다. 이 작품은 두 사람이 파트너가 되어 폭력단 간의 이권 다툼에서 비롯된 총격전, 폭행, 살인 미수 사건 등을 수사하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폭력단 계열 금융회사 직원의 실종 사건을 시작으로, 폭력단 간의 피비린내 나는 항쟁이 언제 번질지 모를 시한폭탄 같은 상황이다. 일본의 야쿠자는 이탈리아의 마피아, 중국의 삼합회와 더불어 세계 3대 조직 폭력단으로 불린다. 그들은 광범위한 해외 조직망과 수만 명의 조직원을 거느리며 다층화, 기업화하고 있는 국제적 범죄 조직이기도 하다. 유즈키 유코는사회 뒷면에 자리 한 음지의 정의에 대해 써보고 싶었다.”고 말하며, 야쿠자들의 이야기를 담은 <의리 없는 전쟁>이라는 영화에서 이 작품에 많은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 여성 작가임에도 불구하고, 선 굵은 남자들의 이야기를 하드보일드 누아르로 제대로 그려내고 있어 놀라웠다.

 

"당신, 미쳤어......" 입술이 덜덜 떨렸다.

오가미가 웅크리고 앉으며 요시다의 얼굴을 보았다.

"맞아, 난 미쳤어. 수사를 위해서라면 악마에게 영혼이라도 팔거야. 네가 불지 않더라도 나중에 가코무라에게 네가 밀고했다고 일러바칠 수도 있어."    p.206

수많은 폭력단 관련 사건을 해결했으며, 표창도 숱하게 받았고, 100회에 달하는 수상 경력 또한 현경에서는 현역 최고라는 오가미 형사. 파트너인 히오카의 눈에는 그가 마치 먹이를 찾아 헤매는 굶주린 늑대처럼 느껴질 정도로 오가미의 수사에 대한 열정은 굉장하다. 당시 공안이나 폭력단 형사라면 폭력 조직 내에 끄나풀이라고 불리는 내통자를 두고 있는 게 대부분이었다. 그들은 끄나풀을 잘 이용해 범죄 조직과 맞서 싸우고 사건을 해결한다. 하지만 범죄 조직과 경찰 조직의 균형이 깨지면, 언론이나 세상 사람들은 폭력단과 경찰의 유착 문제를 들먹이며 비난을 퍼붓는다. 오가미를 둘러싼 야쿠자와의 유착 관계에 대한 의혹 또한 여기서 비롯된 것이다. 하지만, 시종일관 이야기가 히오카의 시선에 의해 보여지는 오가미의 행동으로 진행되기 때문에, 독자들이 오가미의 속을 완벽하게 파악하기란 쉽지 않다. 보여지는 것은 그가 야쿠자 세계의 상도를 지키는 온건한 폭력 조직 오다니구미 편에 서서 암흑세계의 위계질서 확립을 하려는 모습인데, 이 또한 현실은 경찰과 야쿠자의 유착으로 느껴질 수밖에 없으니 말이다.

탄탄한 구성과 정교한 리얼리티를 가지고 있는 이 작품의 설정 자체는 사실 특별하지 않다. 베테랑 형사와 신입 형사의 파트너 구도, 경찰과 야쿠자와의 관계, 그리고 스포일러가 될 수 있어 언급하진 않겠지만 후반부에 밝혀지는 그것까지... 느와르 장르의 작품에서 자주 등장하는 설정이긴 하다. 하지만 이 작품의 결말은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진행되었고, 하드보일드라는 장르의 깊이감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정교한 이야기는 한 번 읽기 시작하면 빠져들 수밖에 없는 힘을 가지고 있다. 이 작품은 영화로 제작되어 2018년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서 상영되었으며 "21세기 야쿠자 영화의 신경지를 보여주는 걸작"이라는 호평을 받았다고 한다. 소설 자체도 장면 장면이 영화처럼 생생하게 그려져 있었는데, 스크린에서는 또 어떤 모습으로 보였을 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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