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문을 틀리는 요리점
오구니 시로 지음, 김윤희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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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지금껏 본 적 없는 만족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다.

역할을 가진다는 것이 사람을 이토록 빛나게 한다는 것을, 우리는 바로 눈앞에서 한없이 행복한 표정을 짓고 있는 분들을 보며 새삼 깨달을 수 있었다. p.85~86

초여름의 도쿄, 좌석 열두 개짜리 작은 공간에 한 레스토랑이 오픈했다. 주문을 틀릴 수도 있다는 이상한 레스토랑. 햄버그스테이크를 주문했는데 정작 나온 것은 만두, 손님 테이블로 주문을 받으러 갔다가, 주문을 받으러 온 사실을 까맣게 잊어버리기도 하고, 손님에게 물을 두 잔씩 가져다 드리는 일은 다반사에, 샐러드에 스푼이 나가고 뜨거운 커피에 빨대를 내는 일도 종종 있다. 한마디로 너무나 정신이 없고 산만한 레스토랑이다. 이유는 바로 '이 레스토랑에서 주문을 받는 스태프들이 모두 치매나 인지 장애를 앓고 있는 상태'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주문한 음식이 제대로 나오지 않아도 화를 내는 손님은 아무도 없다. 오히려 실수를 이해하며, 즐기는 분위기라고 할까.

NHK 방송국 PD인 저자는, 어쩌다 취재를 가게 된 간병 시설에서 예정된 메뉴가 아닌 엉뚱한 음식을 대접받는 경험을 한 후, 치매 어르신들로 스태프를 꾸려 레스토랑을 운영하는 본 프로젝트를 기획하게 되었다. 조금 불편하고 당황스럽더라도 상대방의 상황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새로운 가치관이 퍼져 나간다면 우리 사회가 조금은 바뀌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서였다. 이 프로젝트는 성공적으로 치뤄졌고, 전 세계 150여 개 매체에서 인터뷰 요청이 쇄도하고, 개인과 기업, 단체로부터 참여와 기부 문의가 쏟아지는 등 뜨거운 관심을 불러일으키게 된다. 고령화 시대, 노인 문제가 더 이상 남의 나라 이야기가 아니기 때문에, 더욱 감동적인 이야기이기도 했다.

물론 많은 것을 잃었다.

하지만 우리는 여전히 할 수 있는 것들이 많다.

많은 것을 잃었다지만 여전히 주변 사람들과 사회와 이어져 있다. 이어져 있어서 좋다.

그 사실을 구체적인 형태로 명확하게 해 준 것이 바로 '주문을 틀리는 요리점'이 아닐까 생각하면서, 나는 오늘 이곳에 있는 것이다.   p.126

2025, 우리나라는 전체 인구의 20% 이상이 65세가 되는 초고령화 사회에 접어든다. 우리보다 진작에 앞서 초고령화 사회에 진입한 이웃나라 일본의 경우, 현재 약 460만 명이 치매로 고통 받고 있다고 한다. 본 정부는 치매 노인의 간병 책임을 국가가 떠안는 정책을 실시했지만, 사회문제는 계속해서 발생하고 있다고 한다. 저자는 치매 노인들을 멀리 떼어놓고 행동을 제한하기보다는 편안하게, 눈치 보지 말고 일하라고 한다면 어떨까 생각했고, 그렇게주문을 틀리는 요리점의 기획이 시작되었다. 이곳은 세상에서 가장 이상한 레스토랑이지만, 세상에서 가장 따뜻하고 뭉클한 식당이기도 했다.

특히나 뭉클했던 것은 직접 '주문을 틀리는 요리점'에서 일을 하거나, 손님으로 왔던 이들의 경험담을 들려준 부분이었다. 치매에 걸렸지만 다시 한번 일하고 싶어 했던 할머니들의 얼굴에서 가장 행복한 표정이 떠오르는 순간들과 일을 즐기고, 사람들과의 관계를 즐기는 그 행복한 순간들이 고스란히 남겨져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그 경험을 그들의 머릿속에 기억해 둘 수는 없다고 하더라도, 그 순간만큼은 틀림없이 행복한 시간이었을 테니 말이다. 나는 이 이야기를 읽으면서 '실수를 받아들인다는 것'에 대해서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되었다. 바로 그 너그러운 마음과 따뜻한 관용과 소통의 손길이야말로, 고령화나 치매로 인한 다양한 사회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시작점이 아닐까 싶기도 했고 말이다. 조금 틀리면 어떤가. 조금 다르면 또 어떤가. 이 프로젝트는 이들이 '치매 환자이기 이전에, 사람'이라는 점을 우리에게 분명히 각인시킨다. 실수가 잦고, 정상 범위가 아니고, 위험한 사람들이라고 여겨졌던 치매 환자들을 보통 사람들이랑 별 다를 게 없다고 받아들이게 되는 그 지점이 너무 아름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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