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리콥터 하이스트
요나스 본니에르 지음, 이지혜 옮김 / 생각의날개 / 2018년 7월
평점 :
절판


계획을 제대로 수행하려면 헬리콥터가 필요했다. 지붕에 올라갈 방법은 수만 가지가 있겠지만, 내려올 방법은 현실적으로 단 한 가지뿐이었다. 소란과 이야기한 이후, 미셸은 크레인이 얼마나 빨리 달릴 수 있을지 알아봤다. 그러나 그 계획은 곧 포기해야 했다. 못이나 밧줄, 회반죽을 써서 등산하듯 올라가는 방법도 고민해봤지만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렸다. 우아하게 열기구나 행글라이더를 타고 가는 방법은 영화에서나 가능한 이야기일 뿐 현실적으로는 어림도 없었다.

작가와 저널리스트로 활동해온 스웨덴 작가 요나스 본니에르의 첫 장편소설이다. 타임즈 선정 세계 10대 강도 사건으로 꼽히는 스웨덴에서 실제 발생했던 사건을 토대로 쓰인 이 작품은 출간 직후 넷플릭스와 전격적으로 영화 판권을 계약했고, '제이크 질렌할' 주연의 할리우드 영화로도 제작되고 있다. 작가는 실존 인물과의 수많은 인터뷰와 면밀한 조사를 통해 6개월간의 사건 공모에서 탈주까지 흥미진진하게 재구성했다. 이 전대미문의 '헬리콥터 강도 사건'은 추후 도망친 범인들이 잡히긴 했지만 돈의 행방은 결국 미궁에 빠지고 만다. 실제로 일어났던 사건에 작가적 상상력을 입혀 새롭게 탄생한 이 범죄 스릴러는 그야말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빠져 들게 만드는 매력이 있다.

미셸은 세계적인 보안 회사인 G4S와의 미팅을 앞두고 있다. 소란과 함께 자신들이 개발한 세상에서 가장 안전한 보안 가방을 판매하기 위해서이다. 그들의 반응은 성공적이었고, 곧 거래할 하기 직전까지 상황이 진행되지만, G4S에서는 현재 사용 중인 보안 가방의 계약이 무려 15년이나 남았기 때문에 그 이후에나 계약이 가능하다고 말한다. 수백만 달러에 달하는 돈을 벌 수 있을 거라 믿었던 미셸은 낙담한 심정이 되고 만다. 열다섯에 첫사랑과 결혼해 두 아이의 아빠가 된 사미는 이제 그만 범죄 생활에서 벗어나고 싶다. 새로운 삶을 위해 가족들과 지인들에게 빌린 돈을 모두 모아 냉동 새우 사업에 투자를 하지만, 그만 사기를 당해 돈을 모두 잃고 만다. 어쩔 수 없이 미셸과 사미는 마지막으로 크게 한 방을 위해 함께 일을 꾸미게 된다. 바로 세계 최대 보안업체인 G4S에 근무하는 알렉산드라 스벤손에게 접근해 정보를 얻은 뒤, 그곳에 있는 어마어마한 현금을 털기로 한다.

 

“이 계획이 말도 안 된다는 건 나도 동의해. 헬기를 훔쳐서 코앞에 경찰서가 있는 보안 업체까지 날아가겠다니. 더구나 지붕 아래로 사다리를 타고 내려가서 문을 폭파하고 스웨덴 역사상 가장 어마어마한 강도짓을 벌이겠다는 거잖아. 우리가 세세한 계획을 세우는 동안 경찰이 소란을 면밀하게 감시했다는 걸 아는 상황에서 말이야.”

사미가 두 사람을 설득시키려는 듯 말했다.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드는 일이 될 거야. 혹시 알아? 전 세계가 이 이야길 하게 될지.”

그들이 돈을 훔치기로 한 곳은 스웨덴에서 가장 규모가 큰 금고로, 그야말로 북유럽에서 가장 안전한 금고였다. 전설적인 보안으로 유명해서, 군대 하나를 끌고 간다면 몰라도 차라리 시도를 안 하는 편이 낫다고 다들 생각했을 만큼이었다. 그런데 그들이 노리는 것은 문이며 자물쇠에 카메라 수백 수천 대가 지키고 있는 금고가 아니라, 알렉산드라 스벤손이 근무하고 있는 회계부였다. 이곳에는 현금만 수억 크로나가 있는데다 근처에는 보안 요원도 없었다. 그러니까 굳이 금고를 털려고 애쓸 필요 없이 지붕에 구멍만 뚫으면 바로 맨 꼭대기 층에 있는 회계부로 들어올 수 있다는 거다. 말로는 엄청 간단해 보인다. 그런데 과연 어떻게 지붕을 뚫고 현금을 가지고 무사히 빠져 나올 수 있을 것인가. 지붕에 올라갈 방법이야 수만 가지가 있겠지만, 내려올 방법은 시간 제약 상 현실적으로 단 한 가지뿐이었다. 해답은 헬리콥터뿐이었다. 그렇게 그들의 황당무계한 강도 사건이 점점 구체화되기 시작한다.

각자의 방식으로 어두운 뒷골목을 어슬렁거리면서 살아 왔던 네 명의 남자, 그들은 국적도 사는 환경도 다른 평범한 청년들이었다. 그들이 6개월간에 걸쳐 모의한 세계에서 가장 대범하고도 놀라운 희대의 강도 사건은 과연 성공할 수 있을까. 이 책은 이들이 사건을 공모하고, 구체화시키는 과정부터 긴장감 넘치는 사건 당일의 현장 풍경을 놀라우리만치 생생하게 그려내고 있다. 그리고 이 엄청난 사건에 대처하는 경찰과 검찰, 국가 고위 관계자들의 대처 과정까지 낱낱이 파헤치고 있어 더욱 이야기에 현실감을 부여한다. 과연 이런 말도 안 되는 계획이 성공할 수 있을까 의심이 되는 순간이 있었을 정도로 사건 자체는 황당무계하지만, 이것을 둘러싼 인물 군상들의 드라마는 마치 한 편의 블랙 코미디 같기도 하고, 뛰어난 범죄 스릴러로서의 면모를 제대로 보여주고 있기도 해서 인상적인 작품이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