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로토피아 - 실리콘밸리에 만연한 성차별과 섹스 파티를 폭로하다
에밀리 창 지음, 김정혜 옮김 / 와이즈베리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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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여성 엔지니어가 자신과 비슷한 일을 겪었고, 심지어 자신에게 집적댔던 그 관리자에게 성추행을 당한 엔지니어들도 있었다. 말인즉, 파울러가 당한 일이 그가 처음으로 저지른 '악의 없는 단순한 실수'가 아니라는 뜻이었다. 파울러는 인사 부서를 다시 찾아가 다른 피해자들이 있다는 사실을 알렸지만, 이번에도 담당자는 부인으로 일관했다. "너무 뻔뻔한 거짓말이라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하나도 없었다"고 그녀가 글에서 밝혔다.

한국 여성 중 반 이상은 직업을 가졌지만, 아직도 세계에서 임금 격차가 가장 큰 편에 속한다. 남성 동료들에 비해 여성 임금이 무려 37퍼센트나 적고, 한국 500대 기업에서 임원직 여성 비율은 3퍼센트에도 채 미치지 못한다. 게다가 지난 몇 년간 사법 당국에 접수된 성폭력 신고 건수가 수천을 넘지만, 실제로 기소된 경우는 그에 비해 너무나도 적다. 수많은 다른 국가와 비슷하게, 오래된 남성 위주의 네트워커 및 행동 방식이 아직도 사회 곳곳에 스며들어 있는 것이다. 하지만 저자는 말한다. #미투, #위드유를 외치며 성적 학대 및 성희롱에 대해 용기 내어 말하는 여성들이 있기에 한국 사회는 아직 희망이 있다고 말이다. 이 책은 기술산업에서 전개되는 #미투 문제를 집중조명하고 있다. 애플, 삼성, 구글, 페이스북 같은 기술 산업은 세상에 엄청난 영향을 미치고 있지만, 그들 기업에서 결정권을 갖는 이들은 대부분 남성의 몫이다.

기술 산업에 종사하는 여성들에게 실리콘밸리는 어떤 곳일까? ‘브로토피아(BROTOPIA)’. 브로토피아는 브로 문화(Bro culture)와 유토피아(Utopia)의 합성어다. 브로 문화는 테크놀로지 산업과 실리콘밸리를 특징짓는 표현으로, 남성 우월주의와 남성 중심 문화를 가리킨다. 다시 말해 남성들이 직접 만든 규칙으로 완전히 지배하는 세상이다. 반면에 절대 소수인 여성들에게 실리콘밸리는 그야말로 유독한 세상이다. 성차별과 성추행이 만연하고 온탕에 몸을 담근 채 투자 회의를 하며 섹스 파티에서 인맥을 쌓는다. 블룸버그 TV의 진행자이자 기자인 에밀리 창이 이 책을 통해 실리콘밸리의 충격적인 민낯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유토피아적인 이상향에도 불구하고 어쩌다가 실리콘밸리가 성차별의 온상이 되었는지, 어떻게 해서 여성들이 침묵을 깨고 당당히 목소리를 내며 반격을 시작하게 되었는지를 말이다.

 

 

물론 남성들도 온라인 괴롭힘을 당한다. 그러나 여성들은 강간 협박, 살해 협박, 스토킹 같이 더욱 극단적인 형태의 괴롭힘의 희생양이 된다. 남성들은 자신이 응원하는 스포츠 팀 때문에 조롱받거나 업신여김을 당할 가능성이 높은 반면, 여성들은 오직 여성이라는 이유로 공격 당할 가능성이 훨씬 높다는 것을 증명하는 연구 결과들도 있다.

에밀리 창이 직접 만난 실리콘밸리의 많은 여성들은 현실이 훨씬 더 심각하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젖 먹던 힘까지 다해 열심히 '들이대고' 있지만 아무 효과가 없다고 좌절한다. 한 저명한 여성 경영자가 이렇게 말하기도 했다. "못을 박아 문을 막아버리면 아무리 열심히 달려들어도 늘 제자리예요." 뾰족한 수가 없는 진퇴양난의 상황처럼 보이지만, 언젠가는 제도적 변화가 만들어질 거라고 믿고 싶어진다. 문제는 그게 언제냐는 것이지만 말이다. 이 책에 등장하는 실리콘밸리의 성차별과 성추행, 성폭력과 그 밖의 여러 불평등한 상황들은 사실 국내의 기업에서도 숱하게 벌어지고 있는 일들일 것이다. 수위는 조금 차이가 있을지 몰라도 말이다.

 

여성들이 기술 산업에서 배척당한 역사가 우리가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지에 대한 이야기의 전부일 필요는 없다. 그리고 단언컨대 그런 아픈 경험이 우리의 미래일 필요도 없다. 과거에 얽매이지 말고 지금 이 순간을 최대한 활용해보자고, 저자는 말한다. 남녀 성비가 완벽히 균형을 이루는 실리콘밸리를, 즉 여성들이 실리콘밸리의 전체 일자리 중 절반을 차지하는 세상을 상상해보자. 유럽은 이미 비즈니스 세상에서 양성평등을 의무화하는 정책을 시행했고, 벌써 그 효과가 나타나기 시작했다고 한다. 변화가 나타나게 나려면 우리가 다음 세대에게 영감을 주어야 한다. 오늘보다 내일이, 내일보다 모레가 조금 더 달라질 거라고 믿으며 이 책을 읽는다. 우리 모두를 위해, 더 넓은 세상이 변화되기를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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