널 지켜보고 있어 스토리콜렉터 65
마이클 로보텀 지음, 김지선 옮김 / 북로드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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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마니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이지만, 마니는 아직 그 사실을 모른다. 나는 그 애의 사진들 가장자리에 절반만 찍힌 존재, 그 애가 고개를 돌릴 때마다 사라지는, 시야 가장자리의 그림자다. 그 애의 감은 눈꺼풀 뒤에서 춤을 추는 유령이자 눈을 깜빡일 때 따라 깜빡이는 어둠이다. 이름 없는 수호자, 팡파르도 없이 등장하는 영웅, 그리고 마니라는 교향곡의 지휘자다. 나는 지켜보는 사람이다.

남편 대니얼이 사라진 뒤 벌써 13개월이 지났다. 그동 안 쥐꼬리만 한 저금과 친구들한테 빌린 돈으로 근근이 살아왔지만, 이제는 돈도, 친구들의 호의도 모두 동났다. 집세는 두 달치나 밀렸고, 그렇다고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갈 처지도 못 된다. 게다가 대니얼에게는 도박으로 날려버린 3만 파운드라는 빚이 있었고, 그의 부채는 고스란히 마니에게 이어진다. 강요에 의한 채무 이행을 위해 마니는 에스코트 일을 시작하게 된다. 그녀는 살아오면서 단 한번도 이런 인생을 상상해보지 못했다. 돈을 위해 다리를 벌리는 것. 돈 많은 사업가들하고 노닥거리며 그들의 매력에 홀딱 반한 척하는 것. 과연 이게 정말 내 인생일까. 마니는 지금도 믿을 수가 없다. 남편의 실종은 그가 죽었다는 증거가 나타나기 전까지 아내에게 참혹한 현실을 부여한다. 마니는 남편의 은행 계좌에 접속할 수도, 남편의 체육관 회원증을 취소할 수도 없고, 그의 신용카드 연회비도 아직 내고 있으며, 자동 이체도 중지할 수 없고, 이혼도, 애도도 할 수 없었다. 남편의 사망 증서 없이는 보험금을 수령할 수도 없는데, 남겨진 두 아이를 지키며 남편이 빌린 돈을 갚아나가야 하는 현실이란 끔찍하기만 하다.

마니는 더 이상 참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자, 어떻게든 남편의 사망 증서를 받아내 보험금으로 두 아이와 새로운 삶을 시작하고자 한다. 그러던 중 남편의 소지품에서 빨간 앨범을 발견하게 되는데, 그는 마니의 생일을 위해 그녀의 삶을 거쳐온 사람들의 목소리를 담아 선물할 계획이었던 것이다. 그녀는 상담을 받아온 심리학자 조 올로클린과 함께 앨범에 담긴 인터뷰를 보게 되는데, 그 속에서 첫 번째 남자 친구로부터 갑작스러운 증오를 마주하고 당황하게 된다.

 

"나는 네가 죽기를 빌었어. 내 소원이었다고. 그리고 나 혼자만 그런 게 아니야...."

대체 그는 왜 저런 소릴 한 걸까. 마니는 이해할 수가 없다. 이미 18년이나 전에 헤어졌던 남자였는데, 그는 대체 왜 마니에게 자기 인생을 망쳤다고 분노를 표출한 것일까. 그리고 혼란스러운 그녀의 주변에서 의문의 살인 사건들이 일어나기 시작한다.

 

 

"우리가 잘못된 쪽을 위해 일하고 있는 건 아닌가 싶어 걱정이야."

조가 설명을 기다린다.

"그 여자 주변 사람들은 사라지거나 죽거나 하는 버릇이 있더군. 어쩌면 그 여자가 남편을 죽였을지도 몰라. 어쩌면 퀸도 그 여자가 죽였을지 모르고."

"나는 그렇게 믿지 않아."

"뭔가 구린 냄새가 나."

이 작품은 <용의자>, <산산이 부서진 남자>, <내 것이었던 소녀>, <미안하다고 말해>에 이은 조 올로클린 시리즈 신작이다. 물리적 세계보다는 감정에 관해 더 많은 것을 알고 있고, 어떤 상황을 경험하기보다는 이해하는 편이 더 쉽다고 말하는 뛰어난 심리학자이지만, 파킨슨 병이라는 치명적인 친구를 데리고 사는 남자 조 올로클린. 그는 대다수 사람들보다 이해심이 더 많아, 어떤 사건에서든 더 열심히 들여다보고, 더 관심을 쏟으며 인간의 심리를 이해하려고 노력한다. 어떨 때는 독자 입장에서 보더라도 어쩐지 그의 생각보다는 다른 이들의 견해에 힘을 보태주고 싶을 만큼 무모해 보이지만, 꾸역꾸역 자신의 생각을 밀고 나가는 우직함도 가지고 있다. 평범한 두 아이의 아빠답게 아이들 걱정에 잠을 설치고, 누군가 아이들에게 해를 가하려는 기색만 보여도 달려들 수 있는 과격함도 가지고 있다. 너무 젊은 나이에 찾아온 파킨슨 병이라는 무시무시한 친구에게 시달리면서도 아주 가끔은 그것을 농담으로 표현할 수 있는 여유도 있으며, 하루하루가 생의 마지막 날인 것처럼 살아야 하는 때에도 상처 받은 아이의 마음을 헤아리고 싶고, 누군가를 다치게 한 나쁜 놈을 벌주고 싶어하는 오지랖도 있다. 무엇보다 페이지가 진행될수록 드러나는, 그가 완벽한 인간이 아니라는 점들 때문에 여타의 스릴러 장르에서 쉽게 만나기 어려운 매력적인 캐릭터가 아닌가 싶다.

당신이 보는 것을 믿지 마라. 기만은 거의 대부분의 스릴러에서 이야기가 앞으로 나아가게 만드는 동력을 공급한다. 범죄소설의 전형적인 거짓말뿐 아니라, 매일 벌어지는 일상적 기만 역시 그 공급원이다. 마이클 로보텀은 이 작품에서 초반부터 독자를 솜씨 좋게 꾀어 남편의 실종 이후 참담한 현실에 내던져진 마니라는 인물의 이야기에 공감하게 만든다. 그리고 조 올로클린이라는 심리학자를 통해서 그녀의 의심스러운 과거에 관한 단서들을 촘촘히 짜 넣는다. 거기다 중간 중간 보여지는 범인으로 추측되는 그의 시점에서 들려지는 이야기들을 통해 누군가 그녀를 끊임없이 지켜보고 있었다는 증거들을 축적해 어느 정도 예측 가능한 구성으로 이야기를 이끌어 가다가, 갑작스럽게 방향을 바꾸어 버린다. 독자가 어느 정도 기대할 수 있는 그 모든 것을 넘어선 급작스럽고 잔혹한 결말은 섬뜩하고 오싹하기만 하다. 무엇보다 그 공포란 것이 현실과 현재에 머물러 있다는 점이, 인간이 견딜 수 있는 한계치까지 밀어붙이는 심리적 악몽으로 연결된다. 마이클 로보텀은 마지막 페이지에 이르기까지 독자들을 결코 방심할 수 없도록 포석을 잘 깔아두어, 한 순간도 지루할 틈 없이 이야기에 몰입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불쾌지수가 높아지는 무더운 여름에 읽기에 딱 좋은, 잘 만들어진 영리한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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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연 2018-07-12 17: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은데... 표지가 좀 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