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맹 - 자전적 이야기
아고타 크리스토프 지음, 백수린 옮김 / 한겨레출판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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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읽는다. 이것은 질병과도 같다. 나는 손에 잡히는 대로, 눈에 띄는 대로 모든 것을 읽는다. 신문, 교재, 벽보, 길에서 주운 종이 쪼가리, 요리 조리법, 어린이책. 인쇄된 모든 것들을.

오래 전 <존재의 세가지 거짓말>이라는 작품을 처음 읽었을 때 굉장히 인상적이었던 기억이 난다. 사실 국내에서 3부작으로 한꺼번에 출간된 이 책은 5년여에 걸쳐 각각 별도로 발표된 작품이다. <비밀 노트>에서 <타인의 증거>, <50년간의 고독>으로 연결되는 이 충격적이고 놀라운 작품이 작가의 자전적 이야기에서 탄생한 거라는 사실 때문에 아고타 크리스토프의 삶에 대해서 더욱 관심이 갔었다. 그래서 이번에 출간된 아고타 크리스토프의 자전적 이야기인 <문맹>이라는 작품에 굉장히 기대가 되었다. 이 책에는 네 살 때부터 글을 읽기 시작해 병적일 만큼 독서와 이야기에 빠져들었던 어린 시절부터, 스위스로 망명해 모국어를 잃고문맹이 되어야 했던 시절, 그리고 다시 프랑스어를 배워 첫 소설이자 『존재의 세 가지 거짓말』의 1부인 「비밀 노트」를 쓰기까지의 그녀의 반생이 기록되어 있다.

아고타 크리스토프는 오스트리아와 국경을 접한 헝가리의 한 시골 마을에서 태어나 제2차 세계대전을 어린 시절에 겪었다. 결혼을 하고, 아이가 생겼지만 조국을 탈출해야 했고, 난민으로 스위스에 정착했지만 생활은 궁핍했고 생계를 위해 하루 열 시간씩 시계 공장에서 일해야 했다. 프랑스어를 배울 시간이 없었으므로 헝가리어로 시를 썼고, 이후에 대학에 들어가 프랑스어를 배우고 그것으로 작품 활동을 하게 된다. 그녀는 공장에서 일하는 당시에도 기계의 리듬에 맞춰서 머리로는 시를 썼다고 한다. 그녀는 쓰는 것 이외에는 흥미가 없었으므로, 작품이 출판되는 여부와 상관없이 계속 써야만 했다. 쓰지 않으면 살아 있을 이유가 없었고, 쓰지 않으면 삶이 너무도 따분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당연하게도, 가장 먼저 할 일은 쓰는 것이다. 그런 다음에는, 쓰는 것을 계속해나가야 한다. 그것이 누구의 흥미를 끌지 못할 때조차. 그것이 영원토록 그 누구의 흥미도 끌지 못할 걸이라는 기분이 들 때조차. 원고가 서랍 안에 쌓이고, 우리가 다른 것들을 쓰다 그 쌓인 원고들을 잊어 버리게 될 때조차.

아고타 크리스토프는 자신이 사랑했던 오빠를 클라우스로, 작가 자신을 루카스로 그려 <비밀 노트>라는 작품을 완성했다. 그들이 살았던 마을이 소설의 배경이었고, 극중 등장하는 고양이를 매달 거나, 단식훈련, 부동자세 훈련 등도 실제로 했던 것들이었다. 그녀는 유년기부터 청소년기, 그리고 결혼을 하고 헝가리를 떠나 오스트리아를 거쳐 스위스로 이주하기까지 끊임없이언어를 잃고, ‘언어를 배우는 경험을 하게 된다. 하지만 프랑스어로 말한 지 30년도 더 되었고, 글을 쓴 지는 20년도 더 되었지만, 자신은 여전히 이 언어를 알지 못한다고 말한다. 여전히 프랑스어로 말할 때 실수를 하고, 사전들의 도움을 빈번히 받아야만 프랑스어로 글을 쓸 수 있다고 말이다. 그리고 이 책의 제목인 '문맹'을 벗어나고자 끈질기게 글을 써왔지만, 모국어인 헝가리어가 타의로 인해 그녀의 삶에서 사라졌기에 자신은 영원히 문맹에서 벗어나지 못하리라는 것을 말한다.

당연히 그녀는 태어날 때부터 프랑스어를 쓰는 작가들처럼 프랑스어로 글을 쓰지는 못할 것이다. 프랑스어로 글을 쓰는 것은 그녀에게 강제된 일이었고, 하나의 도전이었으니 말이다. 뒤늦게 배운 외국어로 글을 쓰거나 말을 하게 되는 경우, 아무리 능숙해지더라도 모국어처럼 될 수는 없을 것이다. 김연수 작가는 이 책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그녀는 하고 싶은 말이 아니라 할 수 있는 말만을 골라서 썼을 테고, 당연히 말은 가난해지고, 그를 둘러싼 세상은 단순해졌을 거라고. 그 단순하고, 가난한 언어의 집이 한없이 투명하고 명징해서 너무도 치명적이라고 말이다. 한 사람이 어떻게 작가가 되는지, 하나의 작품이 탄생하기까지 어떤 과정을 거치는지 그려지고 있는 이 책은 굉장히 짧지만 묵직한 울림을 남겨 준다. 그녀의 삶과 작품을 결코 별개로 생각할 수 없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는 작가가 된다. 우리가 쓰는 것에 대한 믿음을 결코 잃지 않은 채, 끈질기고 고집스럽게 쓰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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