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정의
아키요시 리카코 지음, 주자덕 옮김 / 아프로스미디어 / 2018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노리코는 내 친구 아니었어!? 도대체 어느 편인 거야!"

[말했잖아.]

노리코의 말투가 갑자기 무언가에 취한 듯 열정적인 것으로 바뀌었다.

[나는 마사히코 씨의 편도 유미코의 편도 아니야. 나는..... 정의의 편이야.]

정의의 편. 그 말이 이렇게 차갑게 느껴질 줄이야.

논픽션 작가로 활동하는 가즈키는 어느 날 연보라색 봉투로 된 우편물을 받는다. 봉투의 한쪽 면에 멋지게 꽃무늬가 양각으로 새겨져 있어 청첩장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발신인의 이름을 본 순간 그녀는 얼어붙고 만다. 거기엔 5년 전 자신이 죽였던 친구 다가키 노리코의 이름이 있었던 것이다. 노리코로부터 초대장을 받은 것은 가즈키를 포함한 네 명의 고등학교 동창 친구들이었다. 두 아이의 엄마가 된 유미코, 미국인 남편과 사업을 하고 있는 리호, 그리고 중견 배우로 활동하고 있는 레이코. 과거 한 여자가 네 명의 고등학교 동창 친구들에게 살해당했다. 그리고 5년 뒤, 그녀들이 죽인 여자로부터 초대장이 도착했다. 대체 어떻게 된 일일까? 노리코는 왜 친구들에 의해 살해당한 걸까. 그리고 죽은 그녀가 보낸 초대장은 대체 어떻게 된 걸까.

이야기는 가즈키, 유미코, 리호, 레이코 각각의 시점에서 고등학교 시절과 현재를 오가며 진행된다. 처음부터 범인이 공개된 상태에서 시작된 이야기가, 피해자가 아닌 다수의 가해자의 시점에서 펼쳐진다는 점이 독특했다. 게다가 다카키 노리코라는 인물은 정말 그 어디서도 만나볼 수 없었던 독특한 캐릭터였다. 정의라는 명목하에 단죄의 칼을 휘두르는 행동 자체를 나쁘다고 볼 수는 없겠지만, 그 과정에서 전혀 사람들의 마음을 배려하지 않고, 궁지에 몰리는 사람들을 무표정하게 지켜보는 걸 보며 괴물 같다는 느낌마저 들었다. 그녀는 오직 선악으로만 세상을 판단하고 사람의 기분이란 걸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마음이라는 것이 없는 차가운 사이보그 같은 존재였다. 그저 머리끝부터 발톱 끝까지 정의로 똘똘 뭉쳐 백 퍼센트 올바른 일밖에 하지 않으며, 조금이라도 어긋난 행동을 하는 이들에게 벌을 주며 쾌감을 느끼는 존재. 책을 읽는 내내 무섭고 오싹했다.

전라의 정의.

정의의 누디스트.

노리코의 정의는 너무나 드러나 있고, 노골적이고, 보는 사람이 눈을 돌리고 싶게 만든다. 어디든 상관없이 상대를 가리지도 않고, 망측스럽게 '정의'를 드러내며 달려든다. 융통성과 배려라는 옷을 두르지 않은 알몸의 정의 앞에 주위 사람들은 고개를 떨구고 있을 수밖에 없다.

영화 어벤져스에서는 지구의 안보가 위협당하는 위기의 상황에서 슈퍼히어로들이 세상을 구하기 위해 함께 모여 힘을 모은다. 이들은 초인적인 능력으로 악당들과 맞서 싸우는 정의의 히어로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들이 등장할 때마다 건물이 무너지고, 자동차가 부서지며, 주위의 자연들은 파괴되고, 사람들은 이리저리 허둥지둥 도망친다. 그렇다면 가공할 악에 대항한다는 이유만으로 무차별적인 정의가 과연 옳은 것인가 의문이 들게 마련이다. 우리에겐 모두 각자의 도덕적 나침반이 있다. 누구나 옳고 그름을 판단할 수 있다. 어디가 북쪽이고, 어디가 남쪽인지. 우린 그 나침반을 믿어야 한다. 하지만 가끔은 그 경계가 모호할 때가 있다. 아키요시 리카코의 이 작품은 바로 그 정의란 것에 대해 아주 극단적인 해석을 보여준다.

정의야말로 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거라고 믿는 한 여자. 다카키 노리코. 그녀는 언제나 단 한 번도 잘못을 저지르지 않았고 결코 타인의 죄를 용서하지도 않는, 그야말로 '절대정의'의 신봉자였다. 이 작품이 그려내고 있는정의감이 맹목적일 경우 초래할 수 있는 무서움'이 너무도 현실적이었다. 사실 "어떤 경우에도 절대로 규칙을 지키며 살아야 하고, 올바른 행동을 해야 한다고. 정의야말로 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라고 말하는 그녀의 말 자체는 틀리지 않았다. 하지만 세상은 사람들과 더불어 사는 곳이고, 그런 세상 속에서 융통성과 배려 없이, 타인의 마음을 전혀 헤아리지 못하는 행동은 어울릴 수가 없다. 위법인가, 위법이 아닌가. 올바른 것인가, 올바른 것이 아닌가. 단지 그것만으로 사람을 평가하고, 무차별하게 단죄할 수는 없는 법이다. 읽기 시작하면 쉽게 손에서 뗄 수 없을 정도로 흡입력 있는 전개도 재미있었지만, 무엇보다 너무도 독보적인 캐릭터도 인상적이었던 작품이었다. '정의'라는 것에 대해서도 생각이 많아지는 작품이었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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