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증
후카마치 아키오 지음, 양억관 옮김 / 잔(도서출판)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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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말이 안 돼. 그는 뭔가를 향해 중얼거렸다. 이제야 모든 것을 새로이 시작하려는데. 아버지답게 살아가리라 맹세했는데. 자기중심적인 연민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은 잘 안다. 딸이 각성제를 남겨 두고 모습을 감추지 않았더라면 아마 얼굴도 마주하지 않고 평생을 지냈을지도 모른다. 다시 한번 딸을 만나고 싶었다. 아버지다운 모습을 보여 주고 싶었다.

 

후지시마 아키히로는 아내의 불륜 상대를 폭행하고 경찰을 퇴직한 후 경비 회사에 자리를 얻어 일하고 있다. 그러던 어느 날 헤어진 아내 기리코에게서 연락이 온다. 딸 가나코가 어제 아침 이후로 연락이 되지 않는다며, 집으로 와달라는 거였다. 고등학생인 딸과는 이혼 후 1년 동안 만나지 못했다. 딸의 방에서는 100여개나 되는 각성제 봉지가 발견되는데, 이건 여고생 신분에 잠깐 즐기는 기분으로 소유할 만한 양이 아니었다. 그래서 그들은 경찰에 딸의 실종을 알릴 수가 없었다. 대체 가나코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가나코는 사건에 휘말린 걸까.

또래 여자애들보다 너무 어른스러웠던 가나코. 후지시마와 기리코는 딸에게 남자 친구가 있었던 건지, 아르바이트를 했던 건지, 전혀 알지 못했다. 옷장 안에 값비싼 옷들이 가득했고, 책상 서랍에는 신경과 병원 이름이 적힌 약봉투가 있었는데도, 부모들은 그에 대해 아는 게 없었다. 후지시마는 경비 회사에 휴가를 내고 딸의 친구들을 찾아 만나며 가나코에 대해 알아보기 시작한다. 겉으로 보이기에는 착실하게 학교에 다니고 쉬는 날은 학원에 가며 국립 대학을 목표로 하는 우등생이었던 딸의 모습은, 실상과 전혀 달랐다. 부모들은 자신의 딸에 대해 아무 것도 알지 못하고 있었다. 과연 그들이 마주해야 하는 딸의 본 모습은 무엇일까. 그들은 과연 딸을 찾을 수 있을까. 이번에야말로 가나코의 아버지이며, 기리코의 남편으로 살고 싶었던 후지시마는 과연 그의 바램대로 평온한 가정을 찾을 수 있을까.

 

 

“나는…… 난 도저히 이해할 수 없어.”

“아냐, 이해할 수 있을 거야. 누구든 사람을 죽여서라도 지키고 싶은 게 있지. 숨기고 싶은 것이 있고. 가족이나 자기 자신. 자존심과 어둠에 감싸인 비밀. 당신도 그렇잖아?”

심장이 크게 뛰기 시작했다. 사키야마의 멍한 눈길이 자신의 혼 저 깊은 곳까지 꿰뚫어 보는 것 같았다.

 

이야기는 가나코가 사라지고 딸을 찾는 아빠 후지시마의 현재와 3년 전 과거 시점이 교차 진행된다. 과거 시점에서 이야기의 주체는 가나코가 아니라 그녀에게 도움을 받게 된 왕따 소년이다. 운동부를 그만뒀다는 이유로 반 친구 모두에게 괴롭힘을 당하는 소년은 자신을 도와준 가나코를 동경하게 된다. 양쪽 이야기에서 딸인 가나코와 친구인 가나코는 모두 타인에 의해 해석되고, 설명되고, 보여진다. 어떤 모습이 그녀의 실체인지 누구도 제대로 알지 못한다는 얘기다. 후지시마가 만나는 친구들, 선생님, 신경과 의사마저도 가나코에 대해서 자신이 알지 못하는 것들을 알고 있었다. 이 세상에서 딸을 가장 잘 아는 사람은 아버지인 자신이고 싶었는데 말이다.

우리가 누군가에 대해 알고 있다고 믿는 수많은 것들이 진실이 아니라는 걸 깨닫게 되는 순간이 종종 있다.  특히나 부모, 혹은 형제 혹은 자식에 대해서 얼마나 제대로 알고 있는 걸까 의문을 가지게 되는 순간이란 사실 무시무시하다. 가족이란 세상에서 나와 가장 가까운 위치에 있는 존재이니, 거의 무조건 믿어야 하는 유일한 존재이기도 하니까 말이다. 하지만 부부와 닮은 아이들은 점점 자라면서 낯선 타인처럼 이질적이고 불가해한 존재로 변해가고, 어느 순간 아이는 친근하기도 하고 낯설기도 한 존재가 되어 버리고 만다. 그러니 부모라면 누구나 한번쯤 과연 내가 알고 있는 아이의 모습이, 진짜일까 생각해보게 되는 순간을 맞이하게 된다. 후카마치 아키오의 이 작품에서는 바로 그런 순간 부모에게 악몽이 시작된다. 가장 끔찍하고, 잔인하고, 어두운 방식으로, 그렇게 소설 속 인물들은 이야기가 진행되어 갈수록 내면 깊은 곳에 있는 인간의 본성과 마주하게 된다. 그리고 그것은 생각보다 참담하고, 지저분하고, 무시무시하다. 이 이야기를 감당해내려면 마음을 단단히 먹어야만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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