섹시함은 분만실에 두고 왔습니다
야마다 모모코 지음, 장선정 옮김 / 비채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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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니클로 속옷 위에 줄무늬 티셔츠, 육아에 허덕이는 좌충우돌의 나날. 짬이 나면 스마트폰과 눈싸움을 벌이거나 과자 먹기..... 나의 심신도 여성스러움도 깨끗이 말라버렸습니다. 여성 호르몬의 사하라 사막인가?!

하지만 아이를 사랑하는 마음은 태평양보다 넓고 깊습니다.

세상 모든 엄마들에게 어떤 상황에서도 예외 없이 적용되는 일이 바로 '육아'라 가끔은 누구나 하는 걸 과연 힘들다고 생각해도 되는 걸까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힘들고 어려운 건 어쩔 수가 없다. 돈과 경력을 포기할 수 없어 눈물겨운 워킹맘 타이틀을 가지고 있는 엄마도, 종일 집에서 아이만 돌봐야 하는 전업 주부인 엄마에게도 말이다. 직장 생활을 하는 것도 모자라 퇴근 하자마자 집에 와서 제2의 일을 시작해야 하는 워킹맘의 고달픔이야 실제 엄마가 아닌 사람들도 어느 정도 알 것이다. 하지만 의외로 24시간 아이와 함께 지내느라 온 마음과 시간을 다 투자해야 하는 독박육아에 시달리는 맘들의 고충을 이해하는 사람들은 많지 않다. 오죽하면 매일같이 그만둬야 하나 말아야 하나를 고민했던 직장 생활을 다시 하는 게 아이를 종일 돌보는 것보다 훨씬 낫다고 생각하겠는가.

 

나도 엄마는 당연히 처음이다 보니, 아이를 낳고 키우면서 매일매일이 새롭고, 매 순간이 실수투성이에 정신 없는 하루하루를 보내왔다. 물론 지금도 그렇지만 말이다. 육아에 관련된 책도 읽을 만큼 읽었고, 주변 친구나 선배맘들에게 노하우도 많이 전수받았고, 이 정도면 엄마로서 준비가 충분하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실제 부딪히는 육아의 세계란, 책을 통해 만나고, 사람들의 경험담을 통해 짐작했던 그 수준이 아니었다.

그 스트레스를 해소 하기 위해, 공감하고, 위 받고 싶어서 숱한 육아와 관련된 에세이들을 죄다 찾아 읽었다. 그리고 그 중에서도 가장 강력하고, 유쾌하고, 공감되는 책을 만났으니, 바로 인기 일러스트레이터야마다 모모코의 리얼 엄마 데뷔전을 그리고 있는 이 책이다. 이름하여 '섹시함은 분만실에 두고 왔습니다'!! 이런 제목으로, 이렇게나 충격적인 비주얼의 일러스트가 어울리나 싶은 생각은 잠시 접어 두시길. 그야말로 유쾌한 자학이 작열하는 폭소 육아일기는 당신에게 엄청난 공감과 위로와 유쾌함을 안겨줄 테니 말이다.

 

산휴, 육휴 기간은, 뚜껑을 열어보니 정말 눈 깜짝할 새였다. 휴직 전에 예상했던 생활이나 외모와는 많이 다른 결과가 된 것도 아쉽다. 전혀 살이 빠지지 않았고, 옷으로 가려지지도 않는다. 스마트폰이나 기성 유아식에 의지한 채 아무렴 어때 하고 생각해버린 적도 있었다. 나는 전혀, 절대로, 완벽한 엄마가 아니었다.

야마다 모모코임신과 출산 그리고 육아라는 18개월의 대장정 동안 좌충우돌하는 진풍경을 담은 육아 카툰 에세이는 예쁜 엄마는 도시전설에 불과하다며 이야기를 시작한다. 실제 저자가 어떻게 생겼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녀가 일러스트로 그려내고 있는 모습은 전 프로레슬러 '라이오네스 아스카'랑 닮은, 섹시함은 원래 없었지만 출산 후 완전히 상실했다고 표현되는 모습이다. 자세히 보면 남자인지 여자인지 헷갈릴 정도로 일부러 못생겨 보이도록 그려낸 인물이지만, 이상하게도 자꾸 눈이 가고, 자꾸 웃음이 나고, 이해되고, 공감되는 캐릭터이다. 임신 하고 자신의 모습을 보며.. 달걀형 얼굴이 되고 싶었는데, 달걀형 몸매가 되고 말았다는 그녀의 한탄은 아마 대부분의 임신부들이 경험해본 이야기일 것이다. 날씬하게 임신 전 원래의 몸매 그대로 배만 볼록 나온 임신부도 참 많더만, 전체적으로 거대해져버려 마치 험프티 덤프티 같은 모습이 되어 버린 모습에 그만 빵 터져 버리고 말았다.

아이가 태어나고 나서의 하루는 문자 그대로 '눈 깜짝할 새에 밤이 왔다!'의 느낌. 아무것도 안 했는데 하루가 다 가버린 기분이다. 매일매일 아기가 중심인 생활이 반복되다 보니... 아기가 낮잠을 자고, 밤에는 덜 보채고, 수유를 주기적으로 하고, 때 맞춰 병원에 가서 예방 접종을 하고 등등... 잠시도 엄마 곁을 떠나지 않으려 하는 아이 때문에 샤워할 때 욕실 문을 열어두고 하는 건 기본, 잦은 수유 때문에 노브라에 구질구질한 옷을 입고, 화장은커녕 얼굴 상태가 말이 아닌 그 모습들이 너무도 리얼하게 그려져 있어 엄마들의 폭풍 공감을 불러올 것 같았다. 거울을 볼 때마다 내 모습은 어디론가 사라져 버리고, 궁극의 못생김에 가까워져 가는 낯선 얼굴에, 출산 후에 수유만 열심히 해도 원래 몸무게로 돌아간다고 하던 수많은 사람들의 사연은 다 거짓말인 걸로, 나도 경험했고, 당신고 경험했을 그 모든 구질구질하고, 불쌍한 사연들이 특유의 자학형 유머로 유쾌하게 소개되고 있다. 정신 없이 웃으면서 읽히는 카툰 에세이지만, 촌철살인의 문장들이 가슴 속에 콕콕 남아 찡하게 만드는 책이기도 하다.

해도 해도 끝이 없는 집안 일, 청소해놓아도 바로 난장판이 되어 버리는 집, 한 번에 너무 많은 일을 한 꺼 번에 감당해야 하는 우리의 엄마들. 그 속에서 자기 자신이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 잊지 않는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엄마로 산다는 것'이 얼마나 멋지고, 행복한 일인지 충분히 느끼고, 그 상황을 즐기며 누리기에는 우리의 현실이 그다지 녹록치 않으니 말이다. 부모가 된다는 것은 세상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행복이지만, 동시에 가장 치명적인 약점을 끌어 안고 살아야 한다는 굴레와도 같다. 자신의 모든 시간과 노력을 들이고, 많은 것을 포기하고 감수하면서, 아이를 키우는 매 순간 자신이 잘 하고 있는 건지에 대한 의문이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가니 말이다. 세상의 모든 엄마들에게, 그리고 곧 엄마가 될 이들에게 이 책을 추천한다. 그리고 엄마들의 고충을 알 수 없는 세상 모든 남자들에게도. 이게 바로 진짜 '현실 엄마'의 일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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