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흉기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민경욱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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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봐, 농담하지 마. 그럼 그게 여자가 한 짓이라는 거야? 여자가 경찰 목을 졸라 죽였다고?"

준야는 익살스러운 표정으로 두 손을 들었다. 그러나 쇼코는 진지한 표정을 바꾸지 않았다.

"보통 여자가 아냐. 어릴 때부터 센도 밑에서 자랐어. 물론 평범하게 키우진 않았겠지. 너희들이 상상도 못 할 일이 그 아이에게 행해졌을 거야."

한밤중, 호숫가의 별장에 전직 국가대표였던 이들 네 명이 몰래 숨어 든다. 허들 육상선수였던 유스케, 체조선수였던 쇼코, 단거리 육상선수였던 준야, 역도 일본 챔피언인 다쿠마까지. 이들은 별장의 주인인 스포츠 닥터 센도가 가지고 있던 자료를 찾으려 하지만 우발적으로 센도를 살해하고 만다. 그들은 살인의 흔적과 함께 찾지 못한 자료도 없애기 위해 저택 전체를 태워버리자고 방화를 하고, 그 모든 것을 브라운관을 통해 지켜보고 있는 한 여자가 있었다. 그녀는 남자 셋, 여자 하나로 이루어진 침입자들의 얼굴을 바라본다.

이 자들이 그를 죽였다.... 죽이고, 불태웠다.

 

처음에는 단순한 절도범의 소행처럼 보였던 화재 사건은, 별장 뒤 편에 잠겨 있던 창고에서 경찰관이 살해당하면서 살인 사건으로 대대적인 수사가 시작된다. 체조용 매트와 바벨, 트레이닝 머신 들이 놓여 있어 체육관처럼 보이는 의문의 창고에는 누군가 살고 있던 흔적이 있었고, 그곳에서 사라진 것은 바로 센도가 비밀리에 키우던 강력한 헵태슬론 선수였다. 육상 7종 경기에 능숙한 신체로 실험을 통해 극한의 능력을 끌어올려 만들어진 괴물 같은 여자, 타란툴라. 이야기는 센도의 복수를 하기 위해 타란툴라가 네 명의 범인들을 쫓는 여정으로 이어진다.

 

그 남자가 말한 대로 하면서 실제로 오랜 염원을 이룰 수 있었다. 신기록, 일본 대표, 국제무대 등등……. 덕분에 준야는 명예와 안정된 생활을 손에 넣었다.

하지만 나는 도대체 무엇을 위해 달렸던 걸까. 준야는 생각했다.

자신의 능력을 시험하기 위해서? 그게 자신의 능력이었을까? 아니면 이기기 위해? 누가 누구를 이기기 위해……. 나는 이길 수 없었다. 아니, 어쩌면 달리지도 못했던 것인지 모른다.

타란툴라가 지나간 현장에서 발견된 흔적들이란 도저히 보통 인간의 힘으로 죽였다고는 할 수 없을 정도로 것들이 대부분이었다. 하물며 여자가 한 짓이라는 걸 상상하기엔 어려울 정도로 엄청난 괴력을 보여주는 모습에, 네 명의 스타 스포츠 선수들은 자신들을 향해 점점 포위망을 좁혀 오는 그녀에 대해 공포를 느낀다. 마치 할리우드 액션 영화를 보는 것처럼 느껴질 정도로, 너무도 거침없이 사람을 죽이고, 괴력을 휘두르는 타란툴라의 모습은 센도가 남몰래 키워온 거구의 인간 병기를 마치 사이보그처럼 보이게 만들기도 한다. 그러니까, 세상에 적수가 없는, 천하 무적의 그것처럼 보였으니 말이다. 히가시노 게이고는 이 작품에서 운동선수들이 성적을 높이기 위해 자행하는 도핑을 주 소재로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처음부터 범인을 밝혀 놓고 시작한 스토리인데다, 그 범인을 찾아 복수하려는 인물 또한 명백하게 보여주고 진행되고 있어 미스터리 보다는 서스펜스에 가까운 작품이라 할 수 있겠다.

 

그야말로 '피도 눈물도 없는' 타란툴라의 복수의 여정 뒤에 함께 하는 것은 바로 과거 센도와 스포츠 선수들이 저질렀던 도핑과 관계된 배경이다. 센도는 단순한 도핑을 넘어서 나치의 인체 실험에 관한 자료를 바탕으로 인간의 육체를 개조하는 연구를 해왔던 걸로 보인다. 특히나 여자가 임신을 하면 근력을 증강시키는 물질이 평소보다 몇 배 더 분비되는 걸 알아내, 여자 선수를 일부러 임신시켜 근육이 붙기 쉬운 상태로 만들어 트레이닝하고 일정 시기가 되면 중절을 시켰다는 무시무시한 연구를 해왔다. 혈액 도핑보다 더한 악마의 실험이 아닐 수 없다. 출간된 지 30여 년이 지난 히가시노 게이고 초기 작품이지만, 지금 읽어도 여전히 손에 땀을 쥐게 만드는 힘이 있는 작품이다. 이번에 리커버 개정판으로 새로운 표지로 다시 만나게 되었는데, 내용만큼이나 강렬한 표지 이미지가 인상적이다. 속도감 있는 추격전이 일품이라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페이지를 넘기게 만드는 작품이지만, 마지막 장면에서 남겨주는 여운은 인간의 광기 어린 욕망이 불러온 비극 이면의 그것을 보여주고 있어 여운을 남겨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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