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주의 : 유령 이야기
아룬다티 로이 지음, 김지선 옮김 / 문학동네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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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스의 <공산당 선언>은 다음과 같이 시작한다.
˝하나의 유령이 유럽을 배회하고 있다. 공산주의라는 유령이˝ (A spectre is haunting Europe - the sprectre of communism.)

<작은 것들의 신>으로 영국의 맨부커 상을 수상한 인도의 유명작가 아룬다티 로이가 쓴 이 책 <자본주의: 유령이야기>(원제는 Captitalism, A Ghost Story)은 맑스의 <공산당 선언>에 바치는 오마쥬다. 책 제목과 공산당 선언 첫구절의 유사성 때문만이 아니라 책 내용 곳곳에서 드러나는 아룬다티 로이의 상황 인식을 보면 분명 그렇다.

저자 아룬다티 로이는 신자유주의 정책을 적극 수용해 경제발전에 매진하고 있는 인도에서 경제성장의 이면에 어떤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지, 기득권 세력은 자본주의의 야만성을 어떻게 교묘히 감추는지 등을 통렬하게 고발한다. 우리나라보다 경제발전 단계가 10~20년 가량 뒤쳐진 것으로 평가받는 인도이지만 읽다보면 ‘이건 우리나라 얘기가 아닌가‘ 하는 묘한 기시감을 느낀다. 읽으면서 자꾸 인도가 아닌 한국의 현실이 눈에 밟힌다.

아룬다티 로이는 대기업이 지배하고 있는 인도인의 삶을 다음과 같이 묘사한다.
˝우리는 모두 타타 스카이로 TV 를 보고, 타타 포톤으로 인터넷 쇼핑을 하고, 타타 택시를 타고, 타타 호텔에 묵고, 타타 도자기에 담긴 타타 티를, 타타 철강에서 만든 티스푼으로 저어가며 마신다.... 우리는 타타 서점에서 타타 책들을 산다. 우리는 타타의 녹을 먹고 산다. 우리는 포위 상태다˝

하긴, 자본주의 생산양식이 지배하는 나라에서는 자본이 무한증식한 결과, 대기업이 없으면 삶을 살 수 없는 예속의 상태에 빠지는 것이 특별한 일이 아닐 듯싶다.

아룬다티 로이는 인도가 지금 처한 상황을 벗어나려면 ˝자본주의를 갈아 엎어야 한다˝고 말한다. 또 ˝곧 뒤집힐 이 차안에서 뛰쳐 나와야 한다˝고도 말한다. 과격하고 무모한 주장으로 비치지만 그녀가 이 책에서 묘사한 인도의 현실이 진실에 가까운 것이라면, 나는 그녀의 주장에 공감하고 지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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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19-03-12 16: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인도식 유사 자본주의의 폐해를
아룬다티 로이가 절절하게 지적했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하고 싶습니다.

갈아 엎긴 해야 하는데, 그 뒤가 더
문제로 보입니다.

그보다 먼저 카스트 시스템부터 갈아
엎어야 인도의 발전이 이루어지지
않을까 싶습니다. 요원하지만 말이죠.
 

프랑스 냄새가 물씬 난다. 유머 코드가 확실히 우리나라와는 다르다.
이 그림책의 1/10도 이해하지 못했지만, 내가 이해할 수 있던 그림 앞에서는 껄껄 웃었다.

우리와는 다른 문화권의 이질적인 것들이 필요할 때가 있다. 오늘이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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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치에 부역한 전범들 중 아이히만(Eichmann)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히틀러의 명령을 받아 유태인 숙청을 깔끔하게 수행 했던 인물이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남미에 숨어있던 그는 이스라엘 정보기관에 의해 체포되었고 뉘른베르크 전범재판에 넘겨진다.

그의 재판 과정은 전세계에 중계된다. 아이히만은 이 재판에서, 유태인을 의도적으로 살해할 의도는 없었으며 “단지˝ 상부에서 지시한 일을 수행했을 뿐, 이라면서 자신은 피해자이자 무죄임을 주장한다.

정치 사상가 한나 아렌트(Hannah Arendt)는 아이히만의 모든 재판과정을 지켜보고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이라는 책을 쓰는데, 이 책에 “악의 평범성(Banality of Evil)˝ 라는 유명한 구절이 등장한다.

-참고로, 일본에서는 악의 평범성 대신 악의 진부성이라는 번역어를 사용한다고 한다.-

아이히만은 유능하고 충실하고 순종적이면서 야망도 별로 없는, 쉽게 말해 부려먹기에 딱 좋은 인간유형이다. 이와 같은 인간은 자기가 어떤 일을 하는지 모르면서 사회에 거대한 악을 행하고도 죄책감 같은 것은 전혀 느끼지 못한다. 피해자의 고통에도 둔감하다. 혹여 죄책감 비슷한 것을 느끼더라도 ‘내가 아니라도 누군가는 했을 일‘, ‘가족을 먹여 살리려면 해야만 하는 일‘, ‘내 일을 충실히 하는 것일 뿐” 등등의 이유를 들어 스스로 면죄부와 면벌부를 주고 자신의 행동을 정당화한다.

연쇄살인범만이 악마는 아니다. 우리 주변에 아이히만과 같은 평범한 악마는 얼마든지 많을 수 있다. 악마는 머리에 뿔이 나고 온몸에 털이 듬뿍난 괴물과 같은 모습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와 같은 평범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나는 오늘 TV 에서 또 한명의 악마를 보았다. 살아있는 악마인 그와 그의 부인에게 뉘른베르크 판결문 중 한 구절을 읽어주고 싶다.

˝실제로 피해자를 살해한 사람과 거리가 얼마나 떨어져 있었는지는 책임범위에 조금도 영향을 주지 않는다. 오히려 책임의 정도는 자신의 두 손으로 치명적인 살해도구를 사용한 사람에게서 멀리 떨어져 있을수록 증가한다.˝

내가 악마라고 부르는 그가 80년 어떤 도시에서 총을 들고 사람을 직접 죽이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80년 그날 벌어졌던 살육은 모두 그로부터 나왔다. 그 도시와 총구로부터 가장 멀리 떨어져있었던 그에게서.

한나 아렌트가 80년 한국의 어떤 도시와 대머리 장군을 먼저 보았다면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은 분명 <광주의 xxx>이라는 책이 되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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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시무스 2019-03-12 00: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은 글 감사합니다! 오늘 정말 어울리는 멋진 문장입니다!
 

그러니까,
이 이야기는 16세기 프랑스의 어떤 마을에 살던 불성실하고 소심했던 한 가장이 가족을 버리고 집을 나가버리면서 시작한다.

마르탱 게르라고 불렸던 그 가장은 몇년 후에 무사히 집으로 돌아온다. 친구, 친지들을 포함한 대다수의 마을 사람들은 그의 무사귀환을 반기고 축하한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마을 사람들 중 일부가 그는 진짜가 아니라고 의심을 품는다. 급기야 그가 친지와 상속재산 다툼을 벌이면서 그의 정체를 둘러싼 재판이 시작된다.

문제는 그가 진짜인지 가짜인지 확인할 방법이 사람들의 기억/증언 말고는 없다는 것이다. 사실 여부를 기억에만 의존해야 한다니! 대다수의 사람은 그를 진짜 마르탱 게르라고 여기지만 그 기억이 정확하다는 보장은 없다. 물론, 그가 진짜인지 가짜인지 가장 확실히 알 수 있는 사람은 있다. 그의 아내다. 하지만, 그녀는 중요한 순간에 그가 진짜인지 가짜인지에 대해 ‘침묵‘ 한다. (책의 맨 마지막에 아내는 그녀가 왜 침묵했었는지 얘기한다. 스포일러가 될테니 여기까지!)

이 이야기는 이 재판을 실제로 담당했던 프랑스의 법관이 사건 기록을 남겼기에 알려졌고, 프랑스의 국민배우라는 제라르 드빠르디외 주연으로 영화로도 만들어졌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도 이야기의 주인공인 ‘마르탱 게르‘라는 이름이 책 제목에 담겨 출판된 책이 세 권이나 된다. 하긴 우리나라 영화인 광해도 비슷하게 생긴 가짜로 하여금 진짜의 역할을 대리하게 함으로써 벌어졌던 일들을 다룬 것이니 이 책의 소재가 아주 생소한 것만은 아니다.

사진, 주민등록, 지문, 생체정보 등으로 개인의 신분을 확인하기 어려웠을 과거에는 이런 일들이 꽤 많았을 것 같다. 하긴 지금도 유명인을 빙자해 사기치는 사람들이 많은데 과거에는 오죽했을까.

이 책은 일단 재밌다. 그래서 재미만으로도 읽어볼 가치가 있다. 거기에 더해 짧은 시간이나마 당신을 철학자로 만들어준다. 책을 읽고 나면 진짜와 가짜, 선인과 악인에 대한 판단 기준에 대해 이전과는 다른 생각을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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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미는 판화 - 리놀륨.목판화 제대로 만들기
샌디 앨리슨 외 지음, 김하늬 옮김, 앨런 와이체크 사진, 스튜디오198 감수 / 그림씨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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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천재는 지적 능력이 뛰어난 사람일까 예술적 재능이 충만한 사람일까.

우리나라 현실에서는 천재란 주로 전자를 일컫는 것이겠지만 나는 천재란 주로 후자라고 믿는 편이다.
왜냐면 예술에 꼭 필요한 직관과 창의는 영재교육이나 타고난 암기력만으로는 습득하기 어렵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나저나 책으로 읽으면 이리도 쉬운 예술이 책만 벗어나면 나를 힘들게 하는 까닭은 내가 천재가 아니기 때문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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