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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망의 나라의 행복한 젊은이들 - 어려운 시대에 안주하는 사토리 세대의 정체
후루이치 노리토시 지음, 이언숙 옮김, 오찬호 해제 / 민음사 / 2014년 12월
평점 :
이 시대의 행복한 젊은이가 되기 위하여 한국의 젊은이들은 쉼 없이 달린다. 스펙이면 스펙, 탈스펙이면 탈스펙, 정규직에 연봉 3000만원 이상을 쟁취하기 위한 오랜 여정에서 연대하고 경쟁한다. 작년 최종 면접 스터디에서 만난 이들과의 마지막 카톡이 생생하다. 2명은 합격하고 4명은 탈락했다. 탈락자들은 스스로를 위로하는 듯 한 부드러운 메세지를 남기고 떠났다. 합격자들은 XXX씨는 더 좋은 곳에 합격할거란 위로를 건냈다. 탈락자들은 다시 스스로를 '부족한' 인간으로 끌어내려 탈락 원인을 분석한다. 그들보다 못난 점이 무엇인가, 면접에서의 불필요한 표정과 대답들은 무엇이었는가. 다시 행복한 젊은이가 되기 위한 서류, 인적성, 1,2,3차 면접을 뚫기 위한 재무장에 나선다.
'절망의 나라의 행복한 젊은이들'은 더 나은 내일을 꿈 꿀 희망 마저도 박탈당한 일본 젊은이들을 다룬다. 저자의 조사에 따르면, 일본 20대의 약 70%가 '현재 자신의 삶에 만족하는가?'란 질문에 만족한다고 답했다. 이런 놀라운 수치는 얼핏 기억에 남는 방글라데시의 행복지수 이후론 처음 봤다. 각종 사회 문제를 떠안고 있는 일본 젊은이들의 놀라운 행복지수는 어떻게 이루어졌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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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교토 대학교 교수인 오사와 마사치는 조사에 회답한 사람들의 마음을 다음과 같이 정리했다. 인간은 어느 순간에 "지금 불행하다.", "지금 생활에 불만족을 느낀다."라고 대답하는 것일까? 오사와 마사치에 따르면, 그것은 "지금은 불행하지만, 장차 더 행복해질 수 있을 것이다."라고 생각할 때라고 한다.
미래의 '가능성'이 남아 있는 사람이나 장래의 인생에 '희망'이 있는 사람은 "지금 불행하다."라고 말하더라도 그것이 자신의 모든 것을 부정하는 일은 아니기 때문이다.
바꿔 말하자면, 이제 자신이 '이보다 더 행복질 수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 때, 인간은 "지금 이 순간이 행복하다."라고 말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즉, 인간은 미래에 더 큰 희망을 걸지 않게 됐을 때, "지금 행복하다." 혹은 "지금의 생활에 만족한다."라고 대답하게 되는 것이다.
- p.133 ~ 134.
절망의 나라의 행복한 젊은이들은 스스로 미래의 희망을 잘라버려야만 하는 고통 속에서 태어났다. 일본 경제는 일본 젊은이들에게 더이상 정규직 일자리를 통한 지속가능한 미래를 설계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하지 않는다. 아르바이트와 계약직 등 유연하게 노동자를 정리 가능한 일자리에 몸을 맡겨야만 한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행복과 만족을 느끼는 일본 젊은이들의 선택은 결국 막다른 길에 봉착한 결과로 여겨진다.
구조적 불행만이 아니라 언론, 학술, 문화 전방위에 걸친 압박이 젊은이들에게 가해진다. 일본의 젊은이들은 기성 세대들로부터 열정과 패기 그리고 노력이 부족한 세대로 낙인 찍혀져 국가와 사회를 좀먹는 이들로 그려진다. 책에서 다루는 '젊은이론'에 도취한 언론과 학자들은 젊은이에게 부족한 점이 무엇인지 조목조목 따지고 든다. 과거 '젊은이'였던 자신들과 다르게 오늘날 젊은이들은 부족한 것 투성이라고 삿대질 한다. 기성세대가 양산하는 '젊은이론'은 거진 허구와 같다. 계급, 계층, 성별 등 무수히 많은 준거 기준들은 무시한 채로 '젊은이'를 부르짖는 모습은 더한 절망을 불러일으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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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이론'은 엄청난 무리를 감수하면서까지 '무엇인가'를 만들어 내고 있는 것이다. 예컨대 15세부터 30세 사이의 일본 국적 보유자를 젊은이라고 가정했을 때, 2011년 시점에서 보면 약 2013만 명이 젊은이 층에 속한다. 여기서 언급된 '젊은이 층'에는, 에르메스의 시계를 차고 아오야마가쿠인 고등학교에 다니는 '상큼한 분위기의 남학생'부터 텔레비전과 인터넷을 사용하지 않고 오직 라디오로 정보를 수집하는 스물세 살의 일러스트레이터, 이시노마키 시 연쇄 사상 사건의 피고인으로서 사형 판결을 받은 열아홉 살의 소년까지 모두 포함된다.
- p.84~85.
결국 절망의 나라 일본의 행복한 젊은이들을 보며 다시 생각해야하는 대상은 한국 젊은이들이다. 책 서두에 실린 오찬호의 해제 "일본은 절망적이고 한국은 '더' 절망적이다"를 읽으며 과연 우리 사회의 젊은이들의 행복은 어느 수준일지 궁금했다. 일본처럼 현재 삶에 대한 '만족'이 높은 게 나을까, 아님 밑바닥을 치는 게 나을까. 개인적으론 청년, 젊은이, 대학생, 취준생 등 폭 넓게 10~30대를 아우른 세대론을 넘어 계급이 맞닥뜨린 현실로 돌아와야 한다고 본다. "세대론이 사회에서 유행하게 되는 때는 계급론이 현실성을 잃었을 때다."(p.76.)는 저자의 말은 뼈아프다. 한동안 우리 사회에서 '청춘'으로 호명된 이들은 금전적으로 문화적으로 갖은 착취를 당했다. 직면한 문제를 제대로 풀기 위해선 본질을 가리는 허울들을 뚫고 나아가야 한다. 지금 당장 무언가를 하기는 힘들지만, 희망 없는 미래를 막기 위한 경각심을 일깨우고 이를 해결할 공부를 시작해야 한다. 특정 세대의 문제를 넘어, 우리 사회가 개선해야 할 구조적 병폐를 바라봐야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