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나가는 관들에게
연마노 지음 / 황금가지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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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오늘은 관측 이래 4월 최고 기온을 기록했다고 한다. 더위와는 거리가 있을 것 같은 강원도에서, 4월 중순에 최고기온이 30도를 넘었단다. 서울의 체감온도도 30도를 넘긴 듯하다. 2월에는 봄이너무 빨리 와 이르게 꽃이 피기 시작하더니 3월에는 벚꽃축제가 시기를 못 맞출 정도로 개화 시기가 느려진 지역도 있다. 차례로 피던 꽃이 동시에 꽃망울을 터뜨린다. 기후위기는 이제 부정할 수 없이 눈앞에 와 있다고, 자연이 소리를 질러대는 듯하다.
혐오 범죄 뉴스도 끊이지 않는다. 가장 최근 뉴스는 호주에서 길을 가던 사람 중에 여성과 아이만 골라 살해한 테러가 일어났다는 이야기였다. 국가간, 지역간 무력분쟁은 오늘도 계속되고 있다.이런 시대에, 그래도 미래는 지금보다 나을 것이라고 믿는 것은 지나친 낙관주의가 아닐까 생각해보게 된다.
소설집 <떠나가는 관들에게>는 현재의 이슈에 대한 단편 8편이 모여있다. 의학이 발달해도 치료하지 못하는 병을 앓는 아이가 미래에서 치료받을 수 있기를 바라며 우주선에 태울 것인가, 홀로 외롭게 우주에서의 삶을 맞지 않고 가족과 함께 지내기를 택할 것인가 고민하는 어머니의 이야기다. 아이가 나을 지도 모른다는 희망이 있는데 그걸 포기할 수 있는가. 아이를 낫게 한다는 말로
아이를 보살피는 의무에서 벗어나는 것 뿐 아닌가. 두 가지 길은 둘 다 주인공의 죄책감을 자극하고, 무엇도 완전한 답은 되지 못한다.
이 책의 주인공들은 어느 하나가 절대적으로 좋은 선택이라고 할 수 없는 딜레마 상황에서, 무엇이 최선인지 고민하고 자신이 할 수 있는 선택을 한다. 수많은 동물과 식물을 멸종시킨 인간의 유전자를 보존하려는 것은 옳은가(방주를 향해서),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 루프를 계속할 것인가 (태엽의 끝), 정신체로 아이의 의식과 섞여들어 살아남을 것인가 혹은 사랑하는 아이를 위해서 소멸할 것인가(저주 인형의 노래), 종을 보존하기 위해서 최후의 종을 인간의 뜻대로 번식시킬 것인가, 멸종하더라도 자유롭게 해 줄 것인가(마지막 인어).
거기에 차원에 대한 가설을 바탕으로 서늘한 반전을 선하는 ‘현신’, 짧지만 강렬하고 따뜻한 ‘75분의 1’까지, 책을 덮고 나서 가장 먼저 한 일은 작가의 이름을 인터넷에 검색하는 것이었다. 작가분이 창작한 만화를 하나씩 읽고, 자주 가는 인터넷 서점 사이트에 작가 신간 알림 등록을 했다.기쁘게 서점에 접속할 날이 그리 멀지 않았으면 좋겠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증정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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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노동자의 모험 - 프롤레타리아 장르 단편선
배명은 외 지음 / 구픽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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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픽의 여섯 번째 엔솔로지 ‘어느 노동자의 모험’ 구픽서포터즈로 책을 제공받아 읽어보았습니다. 2023년 도서전에서 본 포스터가 강렬해서, 출간을 기다려 왔던 책이기도 합니다. 특히 전작에서도 노동문제를 다루셨던 작가님들의 이름이 보여서 신뢰감이 더 높아졌지요. 물론 구픽 출판사의 엔솔로지 중에 기대감을 만족시키지 못한 적은 한 번도 없고요.
<수상한 한의원>의 배명은 작가님 작품 ‘삼도천 뱃사공 파업 연대기’는 박봉에 시달리는 저승의 삼도천 뱃사공 경수가 노동쟁의의 프락치로 몰린 최태수를 삼도천에서 건져 올리면서 일어나는 이야기입니다. 저승에서도 박봉에 시달리는 것도 서러운데, 죽고 나서도 갑질에 폭언을 해대는 망자들을 상대하는 건 보는 것만으로도 묵은 트라우마가 자극되는 기분이 되기도 합니다. 생존을 위해서 타협하기도 하고, 정당하지 않은 요구에 응하기도 하는 경수의 심리가 사실적입니다.
<뿌리 없는 별들>의 은림 작가님 작품 ‘카스테라’는 읽는 내내 SPC를 떠올릴수 밖에 없는 이야기입니다. 좋아하는 빵을 만들고 싶다는 작은 소망을 이루기에도 쉽지 않은 환경에서 가까이 있던 사람들이 다치는 걸 외면할 수 밖에 없는 상황, 그럼에도 불구하고 따뜻하고 달콤한 빵을 구워내고자 하는 주인공을 응원하고 싶지요. 해피엔딩이어야만 한다고 기도하며 읽게 되는 이야기였습니다.
<유미의 연인>, ‘지신사의 훈김’의 이서영 작가님 작품 ‘노조 상근자가 여주 인생 파탄 내는 악녀로 빙의함’은, 사회문제를 끊임없이 작품으로 다뤄오신 작가님의 내공에 감탄하게 되는 이야기였습니다. 이서영 작가님은, 이책의 표지와 제목을 보자마자, 참가 작가진에 대해서 알기 전부터 바로 떠올린 분이었어요. <유미의 연인>에서의 많은 작품이 그렇고, 여러 잡지나 엔솔로지 등에서 계속해서 노동문제를 다루고 계시니까요. 로맨스 판타지에 노조 상근자가 노동자 중에서도 가장 약자인 미성년노동계급소녀에게 빙의된다는 설정부터, 주변의 인물이 변화해 가는 과정까지 모두 현실적이고 생생합니다. 마지막의 작은 반전에 살짝 기분 좋은 뒤통수를 맞기도 했지만, 주인공들이 원작과 다르게 고달프지만 의미있는 삶을 살아가길 바라게 됩니다. 아, 이 이야기는 장편으로 더 보고 싶은 이야기이기도 했어요. 인물들이 정말 매력적입니다. <프록코트의 청년을 조련하는 방법>(웃음) 주인공으로 태어난 클레어는 물론이고 1인칭 서술자인 메리, 대척자인 아이린과 조연들 모두가, 더 많은 이야기를 품고 있을 것 같이 생생하거든요.
<책에서 나오다>에 ‘R.U.R: 혁신적 만능 로봇’를 수록하신 구슬 작가님 작품 ‘슈퍼 로봇 특별 수당’은 <로숨의 유니버셜 로봇>을 다시 쓴 전작에서 다루었던, 청소노동자의 시선에서 작품이 전개됩니다. 누구나 ‘존재하지 않는 사람’처럼 취급하는 노령의 청소노동자인 서진이 사회문제에 관심을 가지는 딸 율이 어떤 사람이었는지 깨닫는 부분이 가슴이 아픕니다. 책장을 넘기기가 어려웠어요. 한참 먹먹하게 페이지에 멈춰 있었습니다.
<좀비낭군가>에 ‘제발 조금만 천천히’를 수록하신 전효원 작가님 작품 ‘살처분’은 조류독감에 감염된 농장의 살처분을 담당하는 회사와, 기계 오작동으로 인한 사망사건을 풀어가는 경찰의 시점에서 이주노동자 문제 등을 다루는 글입니다. ‘제발 조금만 천천히’에서는 좀비 상황과 이상 종교 문제를 함께 다루었고, 이번 글에서는 혼인 이주 문제와 이주 노동자 문제를 다룹니다. 젊고 예쁘기 때문에 ‘뭐 연애하려고 그런 건 아니’면서도 혼자 있는 상황을 노려 뭔가를 해 보려고 하는 사람들의 접근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라린, 사고로 죽은 남편과 시동생의 죽음까지도 자신의 탓이라고 공격하는 시모를 모시고 살아가는 혼인이주여성. 자신이 피해자면서도 더 곤란해질 걸 알아서 피해사실조차 말하지 못한 강소장. 등장인물의 서사가 하나하나 현실적입니다.
첫 글인 ‘삼도천 뱃사공 파업 연대기’의 민수는 어머니가 혼인 이주 여성인 한국인이지만 죽어서도 ‘외국인’ 취급을 받고 ‘살처분’의 ‘부 응옥 란’은 혼인 이주 여성으로 이주 노동자들의 문제에 팔을 걷고 나서는 강한 여성이죠. 엔솔로지의 시작과 마무리에 적절한 배치라고 생각합니다. 다양한 장르의 작품들이고 작가들의 개성도 강하지만 하나로 묶기에 적절한, 멋진 작품집을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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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이크 손 현대문학 핀 시리즈 장르 2
단요 지음 / 현대문학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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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요 작가의 케이크 손. 가제본 서평단으로 책을 읽어보았습니다.
제목을 듣고 상상한 건 케이크로 만들어진 손이었는데 읽고 나니 케이크를 만들어내는 손이었습니다. 스트레스를 받으면 자신의 손이 닿는 생명체를 케이크로 만들어버리는, 공무원이었지만 이제는 아무 것도 제대로 먹기 힘들고 정상적인 삶이 어려워진 아저씨. 집에서는 방치되고 학교에서는 여왕의 장난감처럼 살아가는 주인공 현수영. 그리고 주인공의 여왕이자 그 여왕 주변에서 괴롭힘당하거나 이용당하는 다른 아이들의 관계가 처절하게 얽힙니다.
등장하는 인물 대부분이 누군가의 가해자이고 또 피해자인 이야기는 너무나 생생해서, 길지 않은 이야기지만 단숨에 읽을 수 없었습니다. 작가님의 다른 작품 중에는 마지막까지 손을 뗄 수 없는 이야기도, 장르적인 설정이 압도적이어서 감탄하게 되는 이야기도, 주인공의 성공을 기원하게 되는 이야기도 있었는데, 생각할수록 같은 작가님의 이야기라는 게 놀랍습니다.
케이크 손을 갖고 있는 건 아저씨지만 누구나 케이크 손을 갖고 있다고 말하는 주인공의 말이 무척 가슴에 남습니다. 우리는 모두 약점을, 누군가를 해칠 무기를 갖고 있지요. 그걸 어떻게 쓰느냐가 사람의 삶을 여러 방향으로 나아가게 만드는 거고요.
마지막을 보고 나니 가슴이 막막해지네요. 작가님의 작품 중에 가장 장르적인 면이 적지만, 또 그만큼 무척 현실적으로 생생한 작품이기도 했습니다. 다음 작품이 나오길 기대하게 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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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마법사
해도연 지음 / 구픽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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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을 보면 어떤 이야기인지 상상하게 되는 게 있지요. 하드SF의 대명사같은 작가님이 쓰신 판타지라니, 마법사라니, 의아하면서 기대가 됐습니다. 그리고 다 읽고 나서 이 글이 너무나, 충분히, 해도연작가님 답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재난으로 주변의 소중한 사람을 잃은, 벗어날 수 없는 죄책감과 상실감으로 살아가는 주인공이 다시 거대한 재난에 휘말리고 마지막의 결말로 나가는 배경은 용과 마법이 등장하는 세계이지만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입니다. 강대국의 입김이 작용하고, 직장의 갑질, 대중의 사적 징벌, 사이비 종교, 지역 혐오가 난무하는 세계죠. 그 안의 주인공 세나가 수상한 제안을 수용하는 것이 너무 당연하게 느껴져요.
초반의 위화감이 복선이었다는 걸 깨닫는 전율이 있고, 소름돋는 악역이 있고, 반전이 있고, 작가님의 탄탄한 설정을 토대로 속도감있게 전개되는 이야기가 일단락되면 마지막의 떡밥(복선)이 풀려요. 치밀하고 짜릿합니다. 이런 게 판타지의 재미인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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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과 나 - 배명훈 연작소설집
배명훈 지음 / 래빗홀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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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전 서평단으로 맛보기 소설을 먼저 읽었습니다만, 전작을 읽고 나니 이 작품들이 화성이주에 관한 외교부 연구의 결과물이라는 게 실감이 났습니다.
화성에 처음 인류가 거주와 정착을 시도하는 단계, 정착하는 단계에서 일어날 수 있는 사건들은 확실히 지구가 아니기 때문에 생겨나는 문제를 포함하고 그래서 그 해결방법도 다를 수 밖에 없겠지요. 책을 읽는 내내 그래서 지구가 아닌 세계를, 국가가 없는 세계를 상상하게 되고 지구를 생생하게 느끼게 됩니다.
“붉은 행성의 방식”에서 독자는 순식간에 화성 위로 이동해서 말랑말랑한 “김조안과 함께라면”을 읽고 빙그레 웃음도 머금어보고, “위대한 밥도둑”을 읽고 갑자기 맹렬하게 간장게장을 먹고싶어지기도 하고, “나의 사랑 레드벨트“ 를 읽고 먹먹한 기분에 한참 말문이 막히게 돼요. 긴 화성 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기분이라기보다 오히려 내 발 밑에 지구가 있음을 깨닫게 되는 기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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