醫美, 의학과 미술 사이
전주홍.최병진 지음 / 일파소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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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미醫美, 의학과 미술사이>, 막연하게 미술에 나타난 의학에 대한 이야기가 아닐까 했다. 예를 들자면 위대한 해부학자라는 찬사 역시 받고 있는 레오나르도 다빈치, 그가 자신의 해부학적인 지식을 어떻게 미술작품에 녹여냈는지에 대한 이야기처럼 말이다. 그러나 이 책은 내 생각과는 달리, 의학사를 다루면서, 이를 반영한 미술작품을 소개하고 있었다. 그래서 조금은 어렵게 느껴지는 부분도 있었지만, 한 편의 역사책을 읽은 거 같은 즐거움도 있었다.

의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히포크라테스, 그에게 그런 칭호가 주어진 것은 질병을 신의 개입이 아닌 자연적인 것으로 이해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로 인해 환자의 임상증상을 관찰하는 것이 중요하게 여겨졌고, 병에 걸린 사람의 몸을 살피는 합리적인 접근이 가능해진 것이다. 그리고 병리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에라시스트라토스가 있다. 그 역시 관찰과 분석을 중요하게 여겼다. 시리아 왕인 셀레우코스 1세의 아들 안티오코스 1세가 원인을 알 수 없는 병에 걸렸다고 한다. 그런데 에라시스트라토스는 환자를 살펴본 결과, 그가 상사병에 걸린 것을 파악하고, 이는 많은 화가에게 영감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기독교가 지배한 중세유럽에서는 종교의학이라고 하여 정교한 의식으로 의학이 존재하게 된다. 그리고 히포크라테스의 4체액설이 1800년이라는 시간이 흘러서도 여전히 영향력을 갖고 있어서, 알브레히트 뒤러의 멜랑콜리아네 명의 사도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는 것이 놀라웠다. 그래도 중세의 연금술은 의화학 발전에 기여를 했고, 장기이식이라는 개념 역시 만들어냈다는 것도 신기한 일이었다. 유럽 전역을 휩쓸었던 최악의 대재앙 페스트는 다양한 미술 작품속에 남아 있다. 이탈리아 작은 소도시 클루소네의 오라토리움 정면부에 배치된 프레스코화 죽음의 춤이 기억에 남는다. 페스트가 만들어낸 두려움을 사회적 계급이나 지위 역시 죽음 앞에서는 힘을 발휘할 수 없음을 이해하게 해주었다. 이런 것이 시민혁명에도 조금이나마 기여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백신을 개발한 에드워드 제너, 지금과 달리 당시에는 그의 새로운 시도를 비판하는 그림이 나올 정도였다고 한다. 풍자삽화가 제임스 길레이의 우두 또는 새로운 예방의 놀라운 효과라는 작품이 소개되기도 했다. 또한 체액설이 무너지고 과학적인 근거를 갖고 있는 현대의학이 어떻게 미술작품속에 드러나고 있는지를 확인할 수 있는 그림들도 있었다. 미술은 그 시대를 비추는 거울이라고 하지 않는가? 그래서 의학사를 통해 미술을 감상하는 것도 꽤나 흥미로운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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