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트 읽는 남자 - 삐딱한 사회학자, 은밀하게 마트를 누비다
외른 회프너 지음, 염정용 옮김 / 파우제 / 2018년 10월
평점 :
절판


저도 카트를 가지고 이동하게 되는 무빙워크에서 이미 물건을 사가지고 올라오는 사람들의 물건을 흘깃 보곤 하는데요. 무엇을 살지 대충 적어가면서도, 뭐 재미있는 물건이 있나 본능적으로 살펴보게 되는 거 같아요. 독일의 사회학자 외른 회프너는 그 정도를 넘어서, 슈퍼마켓을 사회의 배양접시로 생각하며, 쇼핑을 하는 사람들을 사회학자의 시선으로 관찰하는데요. 그가 슈퍼마켓을 선택한 이유는 그 곳이 열린 공간이고, 사람들의 일상적인 쇼핑의 모습을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백화점과 달리 사람들은 슈퍼마켓은 자신의 주거지와 가까운 곳으로 가기 때문에 그 곳에 있는 사람들의 사회적 서열이 어느 정도 고정되어 있다는 것이죠. 이를 통해 사회적 계층수준에 그들의 취하고 있는 성향을 더하여 열 가지의 인간형으로 구별할 수 있는 시누스 환경에 자신만의 관점을 더해가는 책이 바로 <카트 읽는 남자>입니다.

책을 소개하는 문구에 삐딱한 사회학자, 은밀하게 마트를 누비다는 정말 딱 맞는 문구였어요. 하지만 당신이 산 것을 말해주세요. 그러면 내가 당신이 누구인지 알려줄게요.”라는 문구는 좀 애매모호했는데요. 사실 저는 후자에 끌려서 책을 읽기 시작했기 때문에 처음에는 상당히 난해하다는 느낌도 받았네요. 하지만 본인 소개를 잘 잘 한 것처럼 상당히 삐딱한 시선을 유지하고 있어서 나중에는 웃으면서 읽기도 했습니다. 언제나 자신을 짜증나게 하는 고급마켓의 직원 카를이 자신의 고급스러운 입맛에 맞는 사과를 찾기 위해 20여분을 고민하는 품위 있는 차림의 노인을 보며 그에게 말을 걸죠. “저 구제 불능의 부르주아 녀석이 프롤레타리아의 열악한 환경에 갇혀 쩔쩔매고 있지 뭔가.” 카를이 보여주는 시각도 흥미롭지만, 거기에 대한 그의 접근도 상당히 명쾌했죠. 우리는 비교적으로 취약한 계층의 사람들에게 쏟아지는 스티그마에 대한 우려를 표하곤 합니다. 하지만 거기에 못지 않게 보수적-기득권층의 사람들이 받는 시선도 만만치 않다는 것을 느낄 수 있는 지점이기도 했습니다. 자신과 다른 사람들을 어떠한 방식으로든 다르게 보는 것은 인류의 고질적인 문제인지 고민하게 되네요.

사회학자와 연쇄살인범의 공통점이라는 질문에 그들이 때때로 반드시 현장으로 돌아간다는 사실이라고 답하는 외른 회프너. 그가 이러한 답을 내놓게 만든 공간은 다름아닌 할인매장이었습니다. 불안정한 환경에서 태어나 살아가며 배제와 불이익이 일상이 되어버린 사람들의 공간이었는데요. 그 곳에서 그의 행동은 카를 못지 않게 독특했는데요. 생각해보면 저는 그가 관찰자를 넘어서서 행동으로 나서는 순간의 이야기들이 다 재미있었던 것 같아요. 사회학이라는 것 자체가 끊임없이 주변환경과 소통하고 영향을 주고받으며 진행되는 느낌이 들어서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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