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얀 국화
매리 린 브락트 지음, 이다희 옮김 / 문학세계사 / 2018년 8월
평점 :
절판


8 14일은 일본군 위안군 피해자 기림의 날이라고 합니다. 저도 그 즈음에 <하얀 국화>를 읽고 있었기 때문에 더욱 안타까웠고, 저도 모르게 기억하겠습니다라는 말을 되뇌었습니다. 이어서 일본군 성노예 피해자라는 보다 직관적인 표현을 사용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 이유에 이 책도 한 몫 했습니다.

한국계 미국인 여성작가 매리 린 브락트의 <하얀 국화>에는 우리나라의 근 현대사의 비극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자매가 등장합니다. 더없이 평안했던 제주도에서 해녀로 살아가던 소녀들, 동생을 대신하여 성노예로 끌려간 언니 하나와 언니의 희생으로 가족 곁에 남았지만 제주 4.3사건에 휘말리며 가족이 해체되는 아픔을 겪어야 했던 아미입니다. 이야기는 만주로 끌려간 언니의 과거 이야기와 서울에 갈 때마다 참여하는 수요집회에서 아미의 현재 이야기가 교차하면서 진행됩니다. 전에 해녀에 대한 이야기를 책으로 읽은 적이 있었는데요. 해녀가 간직하고 있는 슬픈 역사까지 겹쳐져서 두 자매가 들려주는 이야기가 참 질곡의 세월처럼 다가오기도 했습니다.

책을 읽으면서 참 여러 번 책장을 넘기지 못했어요. 이런 표현 어떨지 모르겠지만, ‘재미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읽는 것 그 자체가 힘들었어요. 특히나 성노예로 살아야 했던 하나의 이야기가 그러했는데요. 최근에 봤던 영화 아이 캔 스피크허스토리에 이어서, 슬픔과 분노가 이렇게 한 몸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경험하게 되네요. 그리고 우리에게 많이 알려져 있지 않았던 제주 4.3사건 역시 그러했습니다. 일본군의 반인간적인 성범죄도 그러하지만 제주 4.3 사건도 나름 역사적 부채감을 갖고 이런 저런 자료를 찾아보고는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과 이렇게 문학작품으로 옮겨진 것은 또 다른 느낌이 들어요. 역사적 사실을 넘어 그저 우연히 그 시절 그 곳에 존재했다는 이유로 유린당했던 그들의 삶과 그들이 느꼈던 감정들이 세밀하게 다가오기 때문이죠.

"앞으로 펼쳐질 새로운 인생을 생각하면 오히려 깃털처럼 몸이 가볍다.", 하나가 호수에서 느꼈던 이 해방감이 모든 피해자들에게도 전해지기를 바랍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과거라는 이유로 침묵하고 애써 모른 척 하고 싶어하는 사람들 역시 이 책을 읽어야 하지 않을까 합니다. 얼마 전에 읽었던 일본 헌병의 참회록처럼 말이죠.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악마가 되었던 그들 역시 다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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