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 전쟁과 강간


때로는 불편한 진실을 마주하는 것이 얼마나 힘든 건지는 알고 있지만 특히 이 쳅터를 읽으면서는  탄식을 하며 읽은 것같다.  


전쟁은 폭력이 난무하는 현장이면서 강간 또한 무참하게 벌어지는 현장이다.

나도 대부분의 남성들 처럼 전쟁사을 좋아했었고 삼국지등의 소설에 흥분하며 봤던 사람이다. 전쟁에 착한 편, 나쁜 편이 어딧겠냐만은 주인공쪽에 이입하여 적들을 무참히 섬멸하고 정복하면 괜히 흥분하고 그랬다. 고등학교때 한국사를 좋아했던 나는 일제강점기시대의 한국의 독립운동사를 배우며 때로는 불타는 민족주의자가 되기도 했고 외세로 부터의 침략이 많았던 우리나라가 왜 약한지에 분노하기도 했다.

그러나 실제 전쟁의 현장에는 역사책에서 보이지 않는 참혹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을 몰랐다.


지금도 세계 곳곳에는 조그만 내전부터해서 전쟁은 끊이질 않고 있다.

하지만 전쟁에서 벌어지는 것 중에 큰 언급없이 가볍게 넘어가는 부분도 있다. 

'강간'에 대한 부분이다. 

분명 존재했지만 이 문제가 전쟁에서 일어났던 다른 문제보다 더 가볍게 치부했던 것인지 몰라도 전쟁을 연구하는 학자들에게도 '전쟁에서 벌어진 전시 강간'은 책상 한 편으로 물러났었다.


일찌기 종교전쟁에도 강간이 동반되었었다. 

이것은 '정의로운' 전쟁인지 '정의롭지 않은' 전쟁인지에 따라 전시 강간 여부가 달라지지는 않았다. 현대에 오면서 전시 강간은 전쟁에 관한 국제 규약하에 범죄 행위로 불법화되었다. 

그럼 현대에 와서는 없어진거 아니야?

실망스럽게도 강간은 여전히 전시라면 으레 있기 마련인 행위로서 집요하게 계속되고 있다.



전쟁은 평시에도 남성이 가지고 있던 여성에 대한 멸시를 극대화해 폭발시키는 데 더할 나위 없는 심리적 배경을 제공한다. 군대는 그들만 독점할 수 있는 무기가 발휘하는 잔혹한 힘과 병사 간 정신적 결속, 명령을 하달하고 복종하는 남성적 훈육 과정, 위계에 따른 명령 체계의 단순한 논리를 통해 남자다움이 무엇인지 규정하고 그것을 구성원에게 주입한다. 그리고 그 과정을 통해서 여성이 진짜로 중요한 세계와는 관련 없는 주변적 존재이며 중심부에서 벌어지는 일을 수동적으로 구경만 하는 존재라는 남자들의 오랜 의혹을 확신으로 만들어준다. 

(P.54)



전장에서 여성은 주변적 존재로 여겨졌으며 부속품에 불가하다는 인식을 남성군인들에게 심어주어 강간에 대한 도덕적인 의식을 흐릿하게 만들어 강간이 더 쉽게 벌어지는 곳이기도 했다.


전쟁에서 통하는 단순한 규칙이 있다면 바로 이기는 편이 강간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되는 데는 실용적 원인과 심리적 원인 두 가지가 있는데, 결코 패자가 승자보다 강간을 기피할 만큼 더 고결하거나 도덕적으로 우월해서는 아니다. 실용적 원인은 이긴 편의 군대가 패배한 편의 영토를 지나면서 강간을 한다면 당연히 패배한 쪽의 영토를 지나면서 강간을 한다면 당연히 패배한 쪽 여성의 몸이 주로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 심리적 원인은 강간이 정복자의 행위이기 때문이다. 이는 그저 뻔한 동어반복이 아니다. 강간이 정복자의 행위라는 말은 왜 남성이 전시 강간을 멈추지 않는지를 설명해준다.

(P.58)


승리를 거둔 군대의 시점에서 강간은 순전히 승리의 기쁨에 도취해 저지르는 행위가 된다. 국가 단위의 테러와 정복이 보여주는 커다른 패턴의 일부로 강간을 인식하는 일은 사후에만 가능하다. '사후에야'이런 인식이 가능한 이유는 강간하려는 충동이 복잡한 정치적 동기 부여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라, 그냥 언제나처럼 여성의 신체 온전성을 무시하는 데서 비롯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전시 강간은 충동이 생겨 어쩌다 저지른 일에 그치지 않고 군사적 효과도 불러일으킨다. 피해를 입은 쪽에게는 협박을 당해 사기가 떨어지는 것과 비슷한 효과를 발휘하는 것이다.

(P.61)


전시에서의 단순한 규칙은 이기는 편이 강간한다는 점이다.

수잔 브라운밀러는 전시강간이 왜 벌어지는 이유에 대해서 기본적으로 여성의 신체 온전성을 무시하는 데에서 출발하여 거기에 더해 정복자의 행위로서의 군사적 효과로 인해서 벌어지게 된다고 했다.


평화 시처럼 전시에도 강간당한 여성의 남편은 비난받을 책임을 주로 아내가 지게 만든다. 그렇지 않아도 허상일 뿐인 부인에 대한 남편의 소유권이 침해당했다며 소유물에게 책임을 돌리고 비난하는 것이다.

(P.65)


전시라고 달라지지 않았다. 여전히 남성은 비겁하게 비난을 당한 여성에게 책임지게 했다. 

그리고 1, 2차 세계대전을 지나면서 보게 되는 장면은 이 전시 강간을 정치적 필요에 의해 이용하는 경우도 있었다. 도덕적 우월성을 통해 상대 적군이 이렇게 나쁘다라는 선전도구로서 이용된 것인데...


전시에 강간 이야기는 이용가치가 있었지만, 전쟁이 끝난 후에는 더 이상 여성의 말을 믿어주거나 여성만 겪는 특수한 비극을 중요하거나 의미 있는 주제로 간주할 정치적 필요가 없어졌다.

(P.85)


2차 세계대전을 통해 나치가 행한 홀로코스트의 범죄는 많은 학자들을 통해서 연구되어 후대의 사람들도 알게 된 사건이다. 하지만 분명 같이 일어난 나치에 의해 벌어진 젠더범죄에 대한 연구는 책상 한편으로 물러나게 되었다. 90년 중반이 되어서야 나치의 대 여성 범죄가 본격적으로 연구되기 시작했다. 

이 책을 통해서 알 수 있듯 단순히 정치적 이용가치로서 써먹은 것을 뿐 진지하게 간주하지 않았다는 증거다.


솔제니친은 전시 강간의 의미나 문제점, 실제로 효과가 있는 강간 억제 처벌 시스템은 무엇인지 깊이 생각하기는 커녕, 강간은 애초에 범죄가 아니며 그저 술에 취하는 것을 과하게 즐기는 성향 때문에 일어나는 일이라고 솔직하게 생각을 털어놓는다. 그의 유일한 관심사는 비열한 경찰 국가의 참상을 폭로하는 것뿐이었고, 그것이 그의 한계였다.

(P. 113~114)


반 스탈린주의로서 당시 소련에 대한 비판한 대문호 솔제니친에게서도 전시 강간은 범죄가 아니며(?) 일탈 행위에 불과하다는 그의 솔직한 모습은 그 당시 얼마나 젠더 사건에 대해 진지하게 바라보지 못했나를 알 수 있다.


미군의 경우 자유거래 행위였다는 점이 흐릿하게나마 전시 강간과 차이를 보이지만, 실상 전시 성매매와 전시 강간의 경계는 뚜렷하지 않다. 나치 친위대 경찰이 유대인 소녀에게 "다음 차례는 너야. 5즈워티를 주겠다"고 말했을 때, 그들은 자기가 저지른 강간 행위를 피해자도 책임을 공유하는 매춘 행위로 바꾸려고 시도했던 것이다.

(P.118~119)


2차 세계대전을 통해 전시 강간은 약간 변형되어 나타나게되는데 전시 성매매제도 였다. 공창제도를 통해 강제가 아닌 대가를 치루고 한다는 방법은 도덕적 책임을 조금이나마(?) 면피하려는 얄팍한 수에 불과할 만큼 실상은 전시 강간과의 경계가 뚜렷하지 않았다. 몇푼의 돈을 쥐어줬을 뿐 그것이 강간이 아닌 것은 아니었다.


그리고 이후 책에서 소개된 베트남 전쟁부분은 한국이 가해자가 되는 지점이다. 

당시 정치적 경제적인 이유로 박정희 정권은 명분도 없던 전쟁인 베트남 전에 한국군이 대규모로 투입되었다. 당시 역사책에서는 용맹하게 싸웠던 한국군이라고 기록하였지만 실상은 그렇지 못했다. 실제로 명분도 없이 참전한 전쟁에 많은 한국군들의 희생또한 컸지만 책에서도 나오듯  베트남 전쟁에서 벌어진 전시 강간에 대한 것에 있어서는 미군과 한국군이 최악이었다라고 나온다. 자국의 어두운 면을 넣기 힘든 한국의 근현대사 책에도 나오는 것이 라이따이한(한-베트남 의 혼혈)이다.

물론 모두의 경우는 아니겠지만 꽤 많은 수의 아이들이 베트남 전에 벌어진 성범죄의 결과이기도 했다.
















끝으로 이 책에서도 잠깐 소개된 1971년 벌어진 방글라데시의 독립전쟁때의 일은 다른 책인 <작전명 서치라이트 - 비랑가나를 찾아서>에서 전쟁에서 여성을 얼마나 정치적으로 다뤘는지 다큐소설의 형태로 자세히 볼수 있다.


너는 우리의 국민이 화환으로 우리를 맞아줄 것으로 생각해? 아니 매리, 그런 일은 세계 역사에서 일어난 적이 없어. 전쟁이 끝나면 남자들은 영웅으로 칭송받지만 여자들은 타락했다는 말을 들어. 그냥 봐봐, 그들은 우리를 창녀로 만들 거야.


방글라데시의 독립 전쟁영웅이자 정치 지도자인 세이크 무집은 파키스탄군에 억류되었던 여성들을 칭송하는 단어로서 '비랑가나'를 그 여성들에게 부여했다. 하지만 이 여성들은 남성 군인들과 마찬가지로 정치적으로는 추앙받았을지 몰라도 현실에서는 철저하게 은폐되고 배제되었다. 

 이 부분은 한국에서 어째서 위안부 피해자분들이 91년이 되기 전까지 약 46년동안 '침묵'할 수 밖에 없었는가를 보여준다. 비랑가나는 가족들에게는 가문의 명예를 더럽힌 여성 취급을 받았고 마을 공동체에서는 '결혼 상대가 될 수 없는 여성'으로 여겨졌다.



우리는 역사로부터 정말 과거의 과오를 철저히 반성하고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배우고 있는 것일까?


출처 및 참고

http://www.pressian.com/news/article.html?no=223436

프레시안, 나치의 '젠더 범죄'는 왜 책상 한편으로 밀려났을까?


http://www.pressian.com/news/article.html?no=224351

프레시안, "전쟁이 끝나면 남자는 '영웅', 여자는 '매춘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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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9-01-18 15:1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언급하신 책, [작전명 서치라이트]는 저도 읽어봐야겠어요. 인용하신 문장이 뼈를 때리네요.

제가 133페이지 까진가 읽었는데, 우앗, 더 부지런히 읽어야겠어요. 블랙겟타님이 저보다 훨씬 앞서나가실 것 같습니다.

전쟁 부분 읽는데 너무 힘들더라고요. 저는 아킬레스랑 브리세이스에 대한 낭만 같은 거 갖고 있다가 완전 확 깨지면서 대체 내가 뭐한건가 싶었고요.

좋은 글 고마워요, 저도 분발하겠습니다!

블랙겟타 2019-01-18 22:33   좋아요 0 | URL
전쟁 파트는 분량도 분량이지만. 힘도 들더라구요. ㅜㅜ 저도 읽는데 힘든데 다른 분들은 더 심할 것 같네요.

다락방님 덕분에 저도 힘을 내서 읽고 있어요. ^^

앞으로도 부지런히 읽고! 쓸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