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도시의 사랑법
박상영 지음 / 창비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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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사람이 본인은 소설은 잘 읽지 않으며, 소설을 굳이 읽을 때는 출간된 지 20년 이상 지난 것만 읽는다는 이야기를 하길래 살짝 기겁했다. 이야기인즉 소설은 오직 고전만, 혹은 여러 사람에 의해 검증된 작품만 읽는다는 뜻일 테다. 물론 소설을 읽는 것만큼 읽지 않는 것 또한 자유이고 고전을 소중히 대해서 나쁠 것은 없지만, 소설을 읽으면서 얻을 수 있는 큰 이점 중 하나를 놓치는 듯해서 안타까웠다.

좋은 소설은 시대를 초월하여 인간의 어떤 보편성을 보여주기 때문에 소설과 시대는 별 상관이 없는 것처럼 느껴질 때도 있다. 그러나 동시대에 쓰인 소설들, 특히 젊은 작가들이 쓰는 최신간의 소설들은 시대의 변화를 보여주기도 한다. 인물들이 과거와 비교해서 어떻게 달라졌는지, 더 중요해진 것은 무엇이고 더 하찮아진 것은 무엇인지, 시간이 흘러도 변치 않는 가치는 무엇인지 등등. 물론 시대의 흐름을 알아서 어디다 쓸 것이냐고 묻는다면 글쎄... 딱히 할 말은 없지만.

한국소설을 좋아하고 즐겨 읽지만, 그러면서 좋아하는 작가들 역시 많지만, 박상영 작가는 그중에서도 아주 특별한 것 같다. 가장 좋아하는 작가라고는 할 수 없지만(당연히 좋아하는데 ‘가장’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는 이야기), 가장 특별한 작가 중 한 명이라고 생각한다. 오늘날 젊은 작가의 거의 선두주자라고 할 만큼 그의 소설에는 색깔이 뚜렷하다. 그리고 그가 그토록 특별한 이유는 그의 작품이 누구보다 시대의 흐름을 민감하게 포착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의 소설 속 인물들은 말 그대로 요즘 사람들, 신인류이다. ‘쿨’한 (듯 보이는) 것이 세상 제일의 가치인 동시에, 섹스는 매우 중요한 삶의 요소이지만 어떤 중대한 의미부여도 해서는 안되고, 구질구질한 것을 질색하며 자기 연민을 할 바에는 차라리 죽어버리겠다는 젊은 청년들. 그의 이야기들이 그토록 빛나는 이유는 세간의 말처럼 그가 퀴어 서사를 풍부하게 다루고 있기 때문이 아니라, 그의 작품 속 캐릭터들이 과거의 어떤 전형적인 인물들과는 확연히 달라졌기 때문이다. 그리고 작가 본인은 그러한 자신의 인물들을 연민도, 동정도, 옹호도 아닌 무심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다. 그의 이야기들에는 항상 ‘쿨’ 해 보이려고 아득바득 애를 쓰다가 결국은 구질구질해지고 마는 좌절의 서사가 등장한다.

박상영 작가의 두 번째 책 <대도시의 사랑법>을 읽으며 정말로 놀랐다. 데뷔작인 <알려지지 않은 예술가의 눈물과 자이툰 파스타>를 읽었을 때도 이렇게 재기 발랄하고 신선한 젊은 작가가 탄생했다니 하고 기뻐했는데, 두 번째 소설을 읽으면서는 이 사람이 장차 현재의 매우 잘 쓰는 고만고만한 작가들을 뛰어넘게 될 것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물론 지금 쓰는 연애소설 말고 좀 더 다양한 이야기를 다룬다는 전제의 이야기이지만.)

그의 소설 속 주인공은 직업이 작가이며 외모는 본인을 그대로 묘사했다고 할 만큼 비슷하다. 하는 일, 취향, 성격, 특징 무엇이든 자기 자신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해 거의 자기 자신을 캐릭터화했다고 해도 좋을 정도이다. 얼핏 자서전 혹은 사소설과 같은 느낌을 주기도 한다. 모든 소설은 작가의 일부분을 담고 있지만, 주인공이 작가 자신이라고 믿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럼에도 박상영이 쓴 소설을 읽다 보면 어디부터가 허구고 어디부터가 현실인지 경계가 모호해진다.

그러나 많은 소설가들이 자신을 투영한 인물을 그릴 때 어쩔 수 없이 약간의 나르시시즘 혹은 자신도 모르게 변호하는 입장으로 방어적인 그림을 그리는데 반하여, 박상영은 소설 속 ‘영’을 가차 없이 다룬다. 조금의 동정심도 없이 비웃고, 조소하며, 계속 나락에 빠뜨린다. 정말 여러모로 놀라운 지점이었다. 대담한 문체, 신랄한 유머, 능수능란한 플롯, 거기에다가 임팩트 있는 마지막 마무리들. 훌륭한 데뷔작만큼 그 이상으로 훌륭했던 두 번째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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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에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이 판문점에서 극적으로 만나던 순간, 뉴스를 통해 그 장면을 지켜보던 나는 멀지 않은 시기에 어쩌면 북한을 여행하고 있을지 모르는 ‘힙한’ 나의 모습을 상상하고 있었다. 옥류관에서 평양냉면을 먹고, 김일성 동상 옆에서 사진을 찍고, 소고기 대신 생선패티가 들어있는 햄버거를 먹으며, 대동강 맥주를 마시고 있을 나. 그 사진을 페이스북에 올린 후 따봉을 쓸어 모으고 있을 나. 이 상상은 매우 구체적인 동시에 한편으로 대단히 협소했는데, 그도 그럴 것이 북한에 대한 나의 지식수준이란 고작 그 정도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냉면, 맥주, 생선 버거.

그러나 뤼디거 프랑크의 <북한 여행>을 읽고 나면, 실제로 북한 여행이 가능한 시기가 온다고 하더라도 위에 언급한 장면들이 얼마나 터무니없고 나이브한 상상이었는지를 깨닫게 된다. 아예 불가능한 것은 아니지만 그 앞뒤 혹은 중간중간 복잡하고 번거로운 절차들이 산재해 있음을 알게 되는 것이다.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은 여행의 의욕 자체를 상실할지도 모른다. 처음에 제목만 보고 북한에 대한 탐사 리포트나 르포라고 생각했던 <북한 여행>은 알고 봤더니 정말 말 그대로 북한을 여행하고자 하는 사람들을 위한 책이었다. 매우 두껍고, 세세하며, 사회 정치적 맥락을 담은 가이드북.

동독 출신으로 김일성종합대학에서 유학을 한 뒤 30년간 북한 관련 일을 하고 있다는 저자 뤼디거 프랑크는 그간의 경험을 바탕으로 북한을 여행하고자 하는 사람들을 위한 <북한 여행>이란 책을 냈고, 유럽에서 발간된 이 책은 올초 국내에도 번역되었다. 일반적인 가이드북이나 여행서적이 그러하듯이 <북한 여행> 또한 입국부터 출국, 숙소, 음식, 관광 포인트, 기념품과 기념사진 스팟, 각종 유의사항에 이르기까지 여행에 필요한 모든 요소를 북한의 정치 사회적 맥락과 함께 녹여 매우 상세히 전달하고 있다.

나는 우선 북한 여행이 가능하다는 것과 책까지 출판될 정도로 북한을 여행하고자 하는 수요가 있다는데 꽤 놀랐다. 알고 봤더니 한국(남한)과 미국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국가에서 북한을 여행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한다. 그리고 남들과 좀 다른 것을 추구하는 힙스터 역시 지구 어디에나 있는 모양이다. 하기야 전 세계를 상대로 홀로 투쟁을 벌이는 독재국가를 구경하고 온 것은 남들에게 주목을 받고 자랑을 하기에 충분한 경험일 것이다.

물론 그런 사람들에게는 늘 ‘독재국가 체제를 유지하는데 필요한’ 돈을 쓰고 왔다며 비판하는 목소리가 따라오는 것 또한 상상 가능한 수순이다. 그들 또한 나름의 할 말이 있다. “물론 우리가 관광을 가서 돈을 쓰는 것이 체제 유지에 도움을 주는 것처럼 보일 수는 있으나 한편으로는 고립된 북한 주민에게 세계를 노출시키는 동시에 그들을 조금씩 자본주의에 물들게 함으로써 궁극적으로는 체제를 붕괴시키는데 일조하고 있는 것이라고.” 어느 쪽이 진실인지는 사람에 따라 다르겠지만.

하여간 뤼디거 프랑크의 설명에 의하면, 북한을 여행하는 것은 정말로 쉽지 않은 일이다. 일단 근래 북한 자체적으로도 외화벌이를 위해 꽤나 적극적인 유치 노력을 기울이는 통에 여행 자체는 어렵지 않게 시도할 수 있지만, 그 과정이 상상초월로 복잡하다. 반드시 북한 전문 여행사를 통해 컨택해야 하고, 여행 기간 내내 북한이 배치한 관광 안내원과 함께 정해진 스케줄과 동선에 따라 움직여야 한다. 자유여행은 불가능하다.

비용도 생각 이상으로 많이 든다. 북한은 세계적으로도 빈곤한 국가 중 한 곳이며, 물가도 싸므로 여행 비용 또한 매우 저렴해야 함에도, 아예 외화를 목적으로 유치된 관광 프로그램은 당연히 별개의 기준으로 운영된다. 일주일 남짓의 일정 동안 숙식을 비롯하여 안내원 팁 등으로 몇백만 원 이상 쓸 것을 각오해야 한다. 물론 어차피 다른 곳으로 휴가를 떠나서 쓰는 비용도 비슷하겠으나 서비스의 수준이 세계적으로 훌륭하다고는 말할 수 없으므로, 가성비에 대해서는 좀 더 생각해봐야 할 것이다.

입국절차 또한 만만치 않다. 가지고 있는 소지품을 매우 자세히 검사하고, 특히 전자기기와 usb 등의 저장장치에 엄격하여 굉장히 오랜 시간이 걸린다. 중국에서부터 비행기 또는 기차를 타고 몇 박 며칠이 걸려 힘들게 북한 국경까지 접근한 뒤 다시 6-7시간의 입국 수속을 거쳐야 한다니 상상만으로도 매우 피곤하다. (물론 한국의 경우 국경까지는 훨씬 시간이 적게 걸리겠으나.) 출국 수속 역시 마찬가지다. 여행 중 찍은 사진을 일일이 검사받아야 하며, 운이 나쁘면 힘들게 찍은 사진들을 전부 삭제당할 수도 있다.

여행 중에도 무엇 하나 자유롭게 할 수 없다. 김일성 일가의 동상을 보면 매번 절을 하도록 강요당하는 동시에, 아무 사진이나 마음대로 찍어서는 안 되며, 김정은 일가 혹은 북한 체제에 대한 언급을 할 때 매우 주의해야 한다. 실제로 여행 중 돌발행동 또는 금지된 행동을 하여 문제가 된 관광객들이 없지 않았고 이들 대다수는 감옥에 갇혔다가 각 나라의 국가 원수 또는 거물 정치인의 요청에 의해 거의 죽기 직전에야 풀려났다. (몇 년 전 미국인 한 명은 결국 죽었다.)

이렇게 적으니 마치 탈레반의 나라처럼 느껴지고 대체 뭣 때문에 그 고생을 하며 북한을 굳이 여행해야 하는지 의문을 품을 사람이 많겠지만, 한편으로는 또 그렇게까지 끔찍한 것만은 아니다. 그랬다면 저자 역시 북한에 그렇게 반복해서 가지 않았을 것이다. 대부분 서양인들은 실제 북한에 가본 뒤 상상과 다른 모습에 깜짝 놀란다고 한다. 생각 이상으로 자유로운 부분이 있고 북한 주민들이 실제 욕구와 생각을 가진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신선한 충격을 받는다고도 한다. 또한 음식을 비롯하여 숙박 그리고 북한 주민과의 만남 또한 그 자체가 매우 독특한 경험이기 때문에 그러 인해 간간이 얻게 되는 즐거움과 기쁨이 있다고도 한다.

물론 이것은 유럽인의 시선으로 쓰인 것이다. 작년에 탈북 후 동아일보에서 일하고 있는 주성하 기자의 <평양자본주의백과전서>를 재미있게 읽었는데, 그게 준 내부자 관점에서의 북한이었다면, 이 책은 외국인의 시선으로 본 북한이라고 할 수 있다. <평양자본주의백과전서>가 통일을 잠재적 결론으로 놓고 그에 대비하여 북한에 대해 알아야 하는 예비지식을 알려주는 느낌인데 반하여, <북한 여행>은 말 그대로 외국인이 외국인을 상대로 북한을 여행하기 전에 알아야 하는 말 그대로 ‘실용적인’ 지식을 전달하는 것에 가깝다.

그의 시선으로 묘사된 북한은, 나에게는 마치 50-70년대 독재정권 시절의 남한을 연상시키는 측면이 많았다. 먹고살기가 힘들고 어렵지만 여전히 국가의 지도자에 존경심을 가지고 있고, 아직 사회 정치적인 의식이 완전히 박혀있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아무것도 모르는 무지한 상태는 아닌 어떤 단계. 뤼디거 프랑크에 의하면 북한 주민 ‘대다수’(아닌 이들도 있다)는 당의 시선을 의식해서가 아니라 진심으로 김정은 일가에 존경심을 갖고 있는 것으로 그려지는데, 어떻게 독재국가에서 여전히 그 지도자를 좋아할 수 있을까 싶지만, 박정희 전두환 정권 시절의 많은 이들, 여전히 박근혜를 석방하라고 외치는 많은 노인들을 생각하면 이해가 아주 안 가는 것도 아니다.

저자인 뤼디거 프랑크는 어린 시절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 관심을 갖게 된 뒤 북한에서 유학까지 하고 북한 전문 여행사를 차려 일하고 있을 정도로 북한을 좋아하는 모양이다. 그의 북한을 바라보는 관점이 아주 흥미로웠다. 체제를 옹호하는 것은 당연히 아니지만, 그렇다고 적극적으로 비판하거나 경멸하는 것도 아닌 말 그대로의 호기심과 애호. 그러한 그의 시선은 이 책의 큰 미덕이다. 그로 인하여 책에 기술된 내용이 더욱 사실적이고 중립적으로 다가오고 있으므로.

‘외국인이 바라본 한국’이라는 측면에서 북한뿐만 아니라 남한에도 공통적으로 적용될만한 내용도 많아 그 또한 매우 재미있었다. 한국 특유의 서열문화, 당쟁의 역사, 일본에 대한 감정 등등. 저자가 매우 독특한 유머 감각을 지니고 있는데, 굉장히 우스운 이야기를 아주 정색하고 하는 사람을 바라보는 느낌이었다. 주변인들이 너무 웃기다며 깔깔대는 와중에도 혼자 정색하고 이야기를 계속 이어나가는 그런 사람.

대부분의 가이드북처럼 중간중간 정치적으로 중요한 건물들의 역사적 배경을 상세하게 설명하는 부분에서는, 더군다나 그 건물들을 살아생전 보게 될 가능성이 있을지 없을지 모르는 사람 입장에서는 다소 지루함을 느낄 수 있으나, 그 대목을 제외하고는 전체적으로 매우 재미있다. 북한 사람들과의 대화, 그들의 풍습, 식사자리에서의 경험, 그에 대한 저자의 소소한 묘사 등. 사실 자극의 수준으로 따지면 <평양자본주의백과전서> 쪽이 훨씬 높지만(북한 상류층의 생활, 마약, 성 풍습 등등), 북한에 대한 어떤 전체적인 인사이트 측면에서는 <북한 여행> 쪽이 오히려 조금 더 높지 않나 싶을 정도로 아주 잘 읽은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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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르물은 좋아하지만 이상하게도 탐정물이나 추리물은 잘 안 보게 된다. 셔츠에 묻은 잉크 한 방울을 보고 살인범을 찾아낸다는 발상이 도무지 납득이 가질 않기 때문이다. 물론 주인공 ‘탐정’이 구구절절 그 중간단계를 자세히 이야기해주긴 하지만 여전히 작위적이라는 느낌이 지워지질 않는다. 물론 ‘탐정’이라는 직업부터가 비현실적인데 뭘 기대하냐면 할 말이 없지만. 하여간 커서는 장르문학 중에서도 탐정이 주인공으로 나오는 작품은 잘 읽지 않는 편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아주 몰입해서 읽었다. 꽤 두꺼운데도 잠까지 줄여가며 봤다.

루 버니의 <오래전 멀리 사라져 버린>은 아주 잘 쓰인 미스터리 추리 소설이다. 추리소설의 장점은 갖추었고 단점은 최대한 배제했다. 탐정물 특유의 부자연스러운 설정이 거의 없다. 모든 것은 ‘납득 가능하게’ 전개된다. 장르문학이지만 거의 순문학에 가까울 정도로 캐릭터들이 자연스럽고 깊이가 있다.

소설은 두 명의 인물을 중심으로 돌아간다. 어린 자신을 축제 한켠에 세워놓은 채로 결국 그대로 돌아오지 않았던 언니를 몇십 년이 지나도록 잊지 못하는 줄리애나, 그리고 영화관에서 일어난 무장강도 사건에서 홀로 살아남은 뒤 그 트라우마에 계속 시달리는 탐정 와이엇. 과거를 잊고 싶은 나머지 개명까지 하고 살아가던 와이엇은 친구로부터 거절할 수 없는 사건 의뢰를 받고 다시 오클라호마 시티로 향한다. 줄리애나는 어린 시절 언니의 범인으로 지목되었던 용의자의 행방을 전해 듣고 다시금 언니에 대한 추적에 나선다.

둘 다 사건 자체가 엄청나게 신비롭거나 미스터리한 것은 아니지만 때로 사소한 의문이 누군가의 인생에 있어서 엄청난 파장을 미칠 수도 있다는 것을 소설은 보여준다. 두 명의 주인공 모두 ‘왜’라는 질문에 사로잡혀 있다. ‘왜’ 언니는 나를 두고 돌아오지 않았을까. 어디로 갔을까. ‘왜’ 나만 살아남은 것일까.

미스터리 추리 소설이므로 자세한 내용을 말하면 재미가 반감되므로 생략하고, 일단 긴장을 조성하는 방식, 인물의 서사를 독자에게 납득시키는 방식 등이 아주 좋았다. 동시에 어떤 사건이나 장면을 활용하는 수준이 아주 적절했다. 지나치게 선정적인 방식으로 ‘사용’하거나 ‘전시’ 하지 않았다는 말. 특히나 여성 캐릭터가 아주 입체적인 부분이 인상 깊었다. 이런 장르물에서 흔히 저질러지기 쉬운 실수인 여성 캐릭터를 그려내는 방식이 전혀 전형적이지 않다. 처음에는 이름도 그렇고 여성 작가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남자인 것을 알고 조금 놀라고 또 기뻤다.

남성 작가, 그것도 장르 문학 작가가 이 정도로 입체적인 여성을 그려낼 수 있다니, 세상이 정말 조금씩 달라지고 있다는 희망이 마구 생기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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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먼 러니언 - 세라 브라운 양 이야기 외 24편 현대문학 세계문학 단편선 5
데이먼 러니언 지음, 권영주 옮김 / 현대문학 / 201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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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단편소설을 무척 좋아한다. 장편을 좋아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다만 단편을 무지 좋아할 뿐. 보니까 사람에 따라서 단편은 아예 보지 않는 경우도 많은 것 같다.

물어본 적은 없지만 단편을 보지 않는다는 사람들은 아마도 내가 단편을 좋아하는 것과 정확히 같은 이유로 읽지 않는 것이리라. 아무래도 분량이 짧으니 뭔가 스케일이 거대하고 기승전결이 분명한 임팩트 있는 이야기를 펼치기도 어렵고, 특정한 상황에서 인물 몇 명에 대한 비교적 단순한 이야기를 열린 결말로 다루는 경우가 많으므로. 물론 나는 그렇게 때문에 단편을 좋아하지만 말이다.

세상에는 훌륭한 소설이 많고 그 안에 또 단편으로 유독 이름난 작가들이 참으로 많은데, 그중에서도 현대문학에서 나온 세계문학 단편선은 단편소설 애호가를 위한 매우 훌륭한 컬렉션이다. 대부분의 세계문학 전집이 좋은 책, 별로인 책, 재미있는 책, 지루한 책이 다소 복불복으로 들어있다면, 이 현대문학 세계문학 단편선 시리즈는 한결같이 빼어난 작품들만 모아놨다. 물론 나도 다 읽어본 것이 아니라 장담할 수는 없지만 읽어본 사람들에 의하면 그렇다고 한다. (ㅋㅋ)

현재 35권인가까지 나온 이 현대문학 시리즈를 나는 틈틈이 모아 한 15권쯤 가지고 있는데, 당연한 말이지만 한 권도 제대로 읽지 않았....(먼산) 그러다가 머리도 비울 겸 평소에 좀 모르던 사람의 이야기를 읽고 싶어서 며칠 전부터 데이먼 러니언이라는 처음 들어본 작가의 책을 읽기 시작했다. 그런데 첫 작품부터 정말 놀랐다. 정말 정말 정말 정말 정말 너무 재미있는 것이다. 어느 정도로 재밌냐면, 책장이 줄어드는 게 아까워서 한 번에 다 못 읽고 있을 정도이다. 이번에 처음 읽었지만 당장 가장 좋아하는 작가 중 한 명으로 등극하고 올해의 책 중 한 권으로 바로 꼽을 수 있을 만큼 너무 좋다.

데이먼 러니언은 <아가씨와 건달들>이란 뮤지컬의 원작자인데 브로드웨이를 배경으로 한 소극을 많이 썼다. 국내에는 이상할 정도로 알려져 있지 않지만 실제로는 미국에서 굉장히 유명하고 인기도 많은 작가라고 한다. 맨해튼에 본인의 이름을 딴 거리까지 있을 정도로. 희한한 것은 대부분의 이야기가 살인, 강도, 폭력배, 건달, 매춘부 등을 소재로 다루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분위기가 엄청나게 경쾌하고 밝다는 것이다. <아가씨와 건달들> 뮤지컬을 생각해보면 알겠지만 정말 대부분의 작품이 그 암울한 소재에도 불구하고 아주 희극 중의 희극이다. 문체 또한 엄청나게 명랑해서 거의 개그처럼 느껴질 정도이다. 말 그대로 미친 듯이 재미있다.

아주 명석하고, 차분하면서 동시에 엄청난 개그감각을 지닌 재간둥이 이야기꾼을 만나는 느낌이다. 문체에서 풍기는 분위기는 스티븐 킹과 아주 아주 살짝 비슷한데(소재가 아니라) 훨씬 더 차분하고 정제되어 있는 동시에 웃기고 재미있는 느낌. 너무 재미있고 유쾌해서 아주 아주 매력적인 바람둥이를 만나고 있는 듯한 느낌도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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엿보는 자들의 밤
빅터 라발 지음, 배지은 옮김 / 현대문학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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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를 엄청나게 사랑하던 한 남자가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 남자는 그토록 사랑하던 아내와 아들을 두고 돌연 사라져 버린다. 도대체 왜?

아이를 누구보다도 사랑하던 한 여자가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 여자는 그토록 사랑하던 아이를 죽이고 잠적한다. 도대체 왜?

얼핏 생각해도 도저히 납득이 가지 않는 이야기들이다. 동시에 소설이 가질 수 있는 아주 좋은 질문들이다. 정말 궁금하지 않은가. 한눈에 반해서 8년 만에 겨우 첫 데이트에 성공한 뒤, 오매불망 사랑해 마지않던 아내와 아이를 두고 어느 날 돌연 사라져 버리다니. 운명과도 같은 만남 뒤에 이어진 진정한 사랑을 거쳐, 마침내 남편으로 맞이한 남자와의 사이에서 극적으로 태어난 아이, 그토록 아끼고 사랑하던 아이를 다른 사람도 아닌 아이의 엄마가 죽여야만 했던 이유는 대체 무엇이고. 빅터 라발의 <엿보는 자들의 밤>은 사라져 버린 남자의 아들이자 자신의 아이를 죽인 여자의 남편인 아폴로, 주인공 아폴로가 사라져 버린 아내를 추적하는 과정에서 알게 되는 어떤 진실들에 관한 이야기다.

음, 다 읽고 난 뒤, 감상을 뭐라고 해야 할까. 우선은 매우 재미있다. 소설 치고는 매우 두꺼운 데도 불구하고(600페이지), 줄거리가 흡입력 있고 문장이 매끄러워서 굉장히 잘 읽힌다. 인물들의 캐릭터도 살아있고 독자로 하여금 긴장을 놓을 수 없게 만든다. 사실 처음에 읽을 때는 엄청 흥분했다. 오오 이런 엄청난 소설을 또 발견했다!! 하고 기뻐 날뛸 뻔하다가..... 500페이지 넘어가면서 급 시무룩... 해져버렸다고 해야 하나. 그러니까 내게 있어서는, 미안한 말이지만 떡밥은 엄청나게 많이 뿌렸는데 회수가 잘 안 되는, 그런 류의 이야기였다.

사실 떡밥들이 아예 회수가 되지 않는 것은 아니다. 나름 다 회수를 하긴 하는데, 그걸 논리 정연하게, 납득 가능하게 수습하는 게 아니라 판타지스러운 어떤 설정으로 퉁쳐버린다. 그러니까 500페이지 정도까지는 현대물, 리얼 물이었다가 갑자기 비밀이 해결되는 지점부터 스티븐 킹의 환상소설 같은 분위기로 바뀌는 것이다. 그러므로 장르물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그냥저냥 받아들일 수도 있긴 한데, 이 전환이 도무지 부자연스럽다는 것도 문제다. 적어도 내가 느끼기엔 그랬다. 뭐 미국에서 여러 가지 상을 휩쓸고 엄청난 찬사를 많이 받았다는 걸 보면 나만 그런 건가 싶기도 하지만.

하지만 그런 부자연스러운 전환을 감수할 정도로 앞의 500페이지가 엄청나게 재미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읽으면서는 굉장히 즐거웠다. 이전에 읽었던 책, <베스트셀러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에서 베스트셀러들의 공통점이 설명된 적이 있었는데, 그런 면에서 이 책 또한 대중의 마음을 사로잡을만한 요소를 빠짐없이 갖추었다. 전개가 빠르고, 사회적으로 민감한 이슈를 다루고 있다는 점, 사람들이 궁금해하고 흥미를 느낄만한 낯설지만 친숙한 이야기가 세세하게 소개된다는 점, 주인공이 이방인이자 이단아로서의 기질을 갖춘 매력적인 인물이라는 점, 등등.

결말에서 너무 급격한 전환이 일어난다는 것 외에 이 소설이 가진 또 하나의 치명적인 단점은, 하고 싶은 이야기가 너무 많다는 것도 있다. 싱글맘, 여성문제, 직장 내 성적 위계, 육아의 부담감, 현대 기술의 위협, 인종문제 등등등. 작가인 빅터 라발은 어느 날 페이스북에 습관적으로 올리던 아이 사진의 좋아요 리스트를 살펴보던 중, 좋아요를 누른 사람 수백 명이 자기가 직접 알지도, 만나본 적도 없는 사람들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리고 만약 그들 중 누군가가 혹 자신의 아이를 해하려고 할 때는 과연 어떡해야 하나 하는 공포심을 느끼고 이 소설을 쓰게 되었다고. 그러므로 소설은 인터넷과 정보기술이 발달하면서 일어날 수 있는 어떤 위협을 굉장히 과장되게 그려내고 있는데, 그 부분도 좀 납득이 잘 가지 않았다. 인터넷에 매우 능숙한 인물이 나오는데 뭐 해킹해서 남의 계좌에서 돈도 마음대로 넣었다 뺏다 하고 남의 집에 카메라도 자유자재로 설치하고 별 짓 다한다. 근데 그러면서도 엄청 가난뱅이처럼 살고 있다는 것이 참.... 뭐랄까. 아무튼.

그러나, 그렇게 구멍이 많고 뭔가 미흡한 구석들이 있음에도 전반적으로 매우 훌륭하고 재미있는 소설임은 부정할 수 없다. 500페이지까지는 거의 뭐 우와 우와 하면서 봤을 정도니까. 그리고 또 하나, 그와 별개로 이 소설의 매우 흥미로운 지점은 작가 자신이 흑인이라 그런지는 몰라도 주인공을 비롯하여 많은 인물들이 흑인으로 설정되어 있다는 것이다. 뭐 흑인 캐릭터가 이제껏 한둘이었냐 그게 뭐가 흥미롭냐 하는 사람들이 있을 텐데, 읽으면서 인물들이 ‘흑인’이라는 것이 거의 느껴지지 않는다는 부분이 참 재미있다. 분위기, 행동, 생각, 말투, 등등.

그렇다고 백인으로 느껴진다는 건 아니다. 그렇다기보다는 아예 흑인이든 백인이든 아시아인이든 어떤 인종으로서의 색채가 거의 느껴지지 않는다고 해야겠다. 그런 와중에 중간중간 흑인 어쩌고 하는 대사가 나오는 걸 보고 아 맞다 이 사람 흑인이었지, 하고 깨닫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나는 이 소설을 읽으면서, 나 스스로가 그동안 얼마나 흑인의 스테레오 타입에 젖어 있었는지를 여실히 느꼈다. 그동안 어떤 전형성을 갖춘 흑인 캐릭터만 접하다가 막상 그렇지 않은 흑인을 보니 흑인이라는 게 쉽사리 연상되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면서 최근의 인어공주 흑인 배우 캐스팅 논란이 다시금 떠올랐다. 우리가 어떤 캐릭터나 이야기를 생각할 때 인종, 성별, 직업, 외모 등에 있어서 얼마나 고정관념과 편견에 사로잡혀 있는지에 대해서 말이다.

최근 몇 년간, 사회의 여러 층위에서 정치적 올바름에 대한 이야기들이 있었다. 특히나 그 정치적 올바름은 예술 분야에서 가장 강하게 이야기되었고, 그로 인해 비판도 많았던 것으로 안다. 정치적 올바름이 창작의 자유를 제한한다거나, 예술의 지평을 좁힌다는 이야기가 많은데, 나는 전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물론 인어공주를 앞으로 영원히 흑인 배우만 해라, 제임스 본드는 앞으로 무조건 여성이다, 이런 식으로 나오면 곤란하겠으나, 여성 제임스 본드, 흑인 인어공주, 남성 신데렐라 등등, 얼마나 매혹적이고 재미있는가.

정치적 올바름을 추구함으로써 우리는 기존의 고정관념과 편견을 전복시키는 과정을 거칠 수 있고, 이 과정에서 오히려 더 다양한 이야기, 새로운 이야기, 재미있고 흥미로운 이야기가 탄생할 수 있다. 이 소설 역시 흑인 작가가 썼기에 이런 흑인 캐릭터를 만들어낼 수 있었겠지만, 아무튼 이런 ‘평범한’ 흑인, ‘평범한’ 아시아인 등 스테레오 타입에서 벗어난 인물들이 점점 많아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하여간 뭐, 여러모로 흥미롭고 즐겁게 읽은 소설이지만 후반부 100페이지 때문에 뭐라 딱 집어서 말하기는 어려운. 그래도 앞으로 더 알아보고, 읽어보고 싶은 그런 작가였다. 스티븐 킹을 좋아하시는 분들이라면 대략 재미있게 읽을 수 있을 듯. 모리스 샌닥의 동화와, 북유럽 신화와, 천재 해커와, 아이 돌보기의 고됨과, 중고책 상인의 애환과, 빛나는 사랑이야기와 기타 등등. 여러 가지가 엄청나게 버무려진 즐거운 소설이었다. 그중 몇 가지는 좀 빼도 되지 싶은, 아니 빼는 게 더 나았지 싶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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