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와 분노 (반양장)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03
윌리엄 포크너 지음, 공진호 옮김 / 문학동네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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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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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과 물질에 관한 이론
앤드루 포터 지음, 김이선 옮김 / 문학동네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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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벽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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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일린
오테사 모시페그 지음, 민은영 옮김 / 문학동네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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톨스토이의 소설 <안나 카레니나>의 첫 문장은 이렇게 시작한다. “행복한 가정은 서로 닮았지만, 불행한 가정은 모두 저마다의 이유로 불행하다.” 나는 이 문장을 이렇게 바꾸어보고 싶다. “인기 있는 사람들은 다들 제각기의 매력으로 호감을 사지만, 사랑받지 못하는 이들은 서로 닮아있다.”

문자 그대로, 남들의 사랑을 받는 이들은 비슷한 듯하면서도 각자 다른 매력을 뽐내는 반면,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놀랄 만큼 유사한 모습을 보인다는 이야기다. 소심하고, 내성적이며, 인간관계에 미숙하여 열등감과 피해의식이 있는 동시에, 시기와 질투심이 심하며, 센스가 없고 눈치가 부족한 사람들. 개인적인 호오와 무관하게 많은 사람이 부정적으로 여기고 기피하는 특징들이다. 물론 인간이라면 누구나 일정 부분 마음 속 깊은 곳에 감춰두기 마련인 어두운 면들이기도 하지만.

학창 시절을 떠올려보면 대부분 한 두 명쯤 생각나는 친구들이 있을 것이다. 반에서, 혹은 학교에서 늘 혼자 다니던 아이들. 드러내 놓고 따돌림이나 괴롭힘을 당하지는 않았지만, 실은 그런 저열한 의욕조차 불러일으키지 못할 정도로 아무런 관심을 끌지 못했던 아이들. 지저분하고, 촌스럽고, 주눅 들어 쭈뼛거리고, 무엇을 하든 서툴고, 늘 교실 한구석에 오도카니 앉아있던 아이들.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싫어하며, 어떤 생각을 하고, 무슨 꿈을 꾸는지 아무도 물어본 적 없이 그렇게 잊힌 아이들.

오테사 모시페그의 소설 <아일린>은 모두가 자라면서 한두 번쯤 스쳐 지나갔을 법한, 그러나 결코 눈여겨보거나, 깊게 생각한 적이 없기에 기억하지 못하는, 그런 사람에 관한 이야기다.

보스턴 외곽의 소년원에서 일하는 아일린은 겉으론 조용하고 얌전해 보이지만 그 내면은 스스로를 비롯하여 인간에 대한 불신과 혐오로 똘똘 뭉쳐있는 인물이다. 유일한 식구인 아버지는 자는 시간을 제외하곤 항상 술에 취해 있는, 가장으로서의 역할은 전혀 하지 않으며, 유일하게 하는 일이라곤 딸을 무시하고 모욕하는 것이 일상인 알코올 중독자이다.

두 식구는 서로를 제외하고는 누구와도 교류가 없다. 아일린은 살면서 단 한 명의 친구도 가져본 적 없으며, 이웃들은 아일린의 가정을 마을의 골칫거리로 여기고 기피한다. 그렇게 아무런 희망도 없이 교도소에서 루틴한 일을 하며 매일을 무력하게 보내는 아일린이 유일하게 기쁨을 느끼는 때는 바로 아버지를 버리고 탈출하는 공상을 하는 순간. 그러나 그녀는 아버지를 죽일 만큼 혐오하면서도 거기에서 끝내 도망치지 못한다.

나는 이제껏 책을 읽으며 이렇게까지 비호감인 인물을 만나본 적이 없다. 모든 주인공이 영웅일 필요는 없지만(사실 대부분의 소설 속 주인공들은 인기인인 경우보다 태생적으로 외톨이와 이단아의 성격을 띠고 있을 때가 더 많다), 그럼에도 모두 나름대로 독자의 마음을 사로잡을만한 특정한 매력을 갖추고 있다. 반항적이지만 영리하다든지, 가난하지만 현명하다든지. 그러나 아일린의 경우는 그렇지 않다. 단순히 소심하다거나, 내성적이라거나 하는 것을 넘어 비호감의 모든 요소를 갖추었다.

그녀는 더럽고, 냄새가 나고, 기분 나쁘다. 사타구니가 가려워 속옷 안 쪽을 긁은 뒤 남몰래 냄새를 맡기도 하며, 그런 손으로 일부러 남들과 악수를 하기도 하는 등 자잘하게 섬칫하고 악의적이며, 상점에서 립스틱이나 스타킹을 서슴없이 훔치는 비도덕적인 인간인 동시에, 소년원에 수감된 아이들을 보고 야한 망상을 하기도 하고, 같은 소년원에서 근무하는 교도관을 짝사랑하며 그에 대한 집요한 스토킹을 하는 소름 끼치는 여자다. 정말 총체적 난국이 아닐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솔직히 말하면 이 책을 읽는 것이 결코 쉽지만은 않았다. 대부분의 소설은 인물을 사랑하게 됨으로써 더 깊은 몰입이 일어나기 마련인데, 이토록 혐오스럽고 기분 나쁜 여자가 잘 살든 말든 나와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싶은 그런 마음. 너무 비호감이어서 응원하고 싶은 마음조차 들지 않는 그런 인물. 사람들 내면의 부정적인 요소만을 모아 극단화시킨 그런 캐릭터. 읽는 내내 어째서 이렇게까지 기분 나쁜 여자를 주인공으로 만든 걸까 싶은 의문이 들었는데, 마지막 장을 덮은 지금에 와서는 어느 정도 작가의 의도를 알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그러니까 작가는 어쩌면 타협하고 싶지 않았던 것 같다. 아마 나를 포함하여 정치적으로 올바름을 주장하는 많은 사람들은 어떤 비호감의 전형인 인물을 실제로 만나게 되면, 비록 겉으로는 내색하지 않더라도 마음속으로 혐오의 감정을 가질 것이다. 그들을 이해하려고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머릿속의 일일 뿐, 아마도 마음 깊이 진심으로 포용하고 알고 싶어 할 일은 없을 것이다. 비참하지만 매력적인, 가난하지만 용감한, 불행하지만 아름다운 소설 속 인물들과 다르게 현실의 인간들은 절대로 서로 상반된 요소로 결합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부자는 사악하며 가난한 이는 선량하다는 것은 환상이다. 그렇기 때문에 작가인 오테사 모시페그는 어쩌면 일부러 이런 극단적이면서 현실적인 인물을 만들어 보여줌으로써, ‘진짜’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정말로 우리가 잊고 지나갔을 법한, 실은 알고 싶지도 않았고 관심조차 없었던 그런 사람들의 진짜 생각과 목소리를 전달하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하는 그런 생각을 했다. 그들은 왜 그토록 쭈뼛거리는지, 왜 그토록 이상하게 행동하는지, 왜 그렇게 기분 나쁘게 구는지, 왜 그렇게 지저분하고 불쾌한 행동을 하는지. 왜 지독한 자기혐오와 간절한 열망들은 서로 맞닿아있는지.


이와 같이 알고 싶지 않았던 불쾌한 인물의 기분 나쁜 행동이 이어짐에도 미간을 잔뜩 찌푸린 채로, 엄청난 집중력으로 끝까지 읽을 수밖에 없었던 것은, 전적으로 작가의 역량 덕분이다. 인물 묘사는 놀라울 정도로 디테일하며, 플롯은 매우 탄탄하다. 소설은 매일을 지루하고 비참하게 사는 아일린이 리베카라는 여성이 등장하며 일주일 동안 겪는 일들을 그려내고 있는데, 무언가 보여줄 듯 보여줄 듯하면서 계속 꼬리를 빼는 통에, 마지막의 마지막 순간까지 독자로 하여금 긴장의 끈을 놓치지 않게 만든다. 결국 독자 입장에서는 책장을 덮지 못하고 끝내 페이지를 계속 넘길 수밖에 없고.

이 소설은 읽는 사람에 따라 존재감이 없었던 여성이 스스로의 정체성을 획득해나가는 성장기로 느껴질 수도 있고, 비참한 상황에서 극적으로 벗어나는 과정에서 카타르시스를 선사하는 탈출소설이 될 수 있고, 뒤틀린 가족관계를 벗어나 새로운 인생을 찾는 이야기가 될 수도, 그도 아니면 그냥 기분 나쁜 여자의 기분 나쁜 이야기가 될 수도 있다. 혹은 그 모두일 수도 있고.

개인적으로 아쉬운 것은 주인공 아일린에 비해 같이 등장하는 리베카란 인물에 대한 설득력이 많이 약하다는 점이다. 물론 뛰어난 문장 아래 인물의 매력과 특징은 살아 숨 쉬는 것처럼 생생하게 전달이 되지만, 아일린이 마지막에 행동하는 계기로 작동하는 리베카의 어떤 생각들. 어째서 그녀가 그렇게 행동하는가는 끝내 납득하기 어려웠다.

*본 리뷰는 출판사 경품 이벤트용으로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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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트 워치
세라 워터스 지음, 엄일녀 옮김 / 문학동네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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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 폴리 감독의 <우리도 사랑일까>라는 영화에서 주인공 마고는 우연히 이웃집 남자와 사랑에 빠지고, 나름 감정을 수습해보려고 애를 쓰지만 잘 되지 않아 결국 남편을 떠나 새로운 사랑에게로 향한다. 그러나 놀랍게도 역경을 극복하고 이루어졌던, ‘운명’인 줄 알았던 새로운 사랑 역시 머지않아 시들해지고 만다! 그러니까 예전에 남편과의 관계가 그랬듯이 ‘일상’이 되어버린 것. 영화의 초반부에 수영장에서 만난 할머니들은 마고에게 이런 이야기를 한다. “새로운 것은 반짝거리지. 그러나 반짝거리는 것 역시 시간이 지나면 변해.” 나는 이 대사를 마지막 장면에 나오는 마고의 권태로운 표정과 더불어 영화의 핵심 메시지라고 느꼈다.

이와 같이 영원한 것은 없다는 것, 모든 것은 지나간다는 것, 그러한 기분을 일본어로는 ‘모노노아와레’라고 한다. 이를테면 삶의 모든 것이 덧없고 허무하게 느껴지는 그런 마음들. 이 모노노아와레는 아마도 생의 본질이자 인류의 보편적인 정서가 아닐까 싶다. 흘러가는 것들에 대한 안타까움, 서글픔, 두려움, 허무, 그리고 고독 등.

오늘날처럼 ‘쿨’하고 ‘힙’한 것을 중요시하는 시대에 사랑에 집착하는 것은 종종 어리석거나 순진해빠진 모습으로 취급되고는 하지만, 그럼에도 남녀노소, 동서고금을 떠나 많은 사람들이 여전히 사랑 이야기를 좋아하는 까닭은 어쩌면 사랑만큼 인간의 기쁨과 슬픔, 욕망과 허무함을 잘 보여주는 것이 없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영원한 사랑’에 열광하는 이유는 결국 그것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다름 아니다.

세라 워터스의 <나이트 워치>는 세계 2차 대전이 끝나갈 무렵, 런던을 배경으로 살아가는 청춘들의 이야기이다. 케이, 줄리아, 헬렌, 비브, 레지, 덩컨, 프레이저, 7명의 인물이 만나고, 헤어지고, 사랑하고, 미워하는 이야기. 한마디로 줄인다면 어떤 사랑의 끝과 시작을 다룬 소설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 같다. ‘시작과 끝’이 아니라 ‘끝과 시작’인 이유는, 소설 속의 시간이 거꾸로 흐르고 있기 때문이다. 소설은 1947년에서 시작하여, 1944년, 그리고 1941년으로 3년씩 거슬러 올라간다.

일단 줄리아와 연인관계였던 헬렌은 그때까지만 해도 그저 지인 사이였으며, 나머지 인물들과 아무런 연고가 없는 듯 했던 케이는 2장에 와서야 헬렌의 연인이었다는 점이 드러난다. 비브와 레지의 관계는 1장보다는 더 뜨겁고 간절한 상황이지만 둘 사이에 치명적인 사건이 발생함으로써 독자는 1장에서 비브가 왜 그토록 고독하고 허무한 감정을 느꼈는가를 이해하게 된다. 덩컨과 프레이저는 감방의 동료였던 사실이 밝혀진다. 이런 식으로 베일에 쌓여 있었던 인물들간의 관계가 서서히, 조금씩 드러나는 것이다.

그로부터 3년을 더 거슬러 올라간 마지막 3장은, 아예 아무런 관계도 시작되기 전, 그들이 서로 사랑에 빠지게 된 첫 장면을 그린다. 전쟁 상황에서, 매일 같이 누군가 죽어나가고 당장 언제 죽을지 모르는 나날이 이어지는 와중에 공습 현장에서, 기차 화장실 칸에서 누군가를 운명적으로 만나고 사랑에 빠지게 된 바로 그 순간들.

다른 많은 소설에서 특정한 사건으로 인해 인물 개개인이 어떻게 변했는가가 주된 포인트였다면, 이 소설에서는 시간의 흐름에 따른 인물 간 관계의 변화를 더 중요하게 다룬다. 그 과정에서 전혀 연관이 없을 것 같았던 두 사람이 과거에는 어떤 인연을 가지고 있었음이 드러나기도 하고, 무엇에도 흥미와 재미를 느끼지 못하며 되는대로 살아가는 듯한 인물이 과거에는 그렇지 않았음을 알게 되기도 한다. 누군가로 인해 고통스러워하는 어떤 이가 과거에는 다른 사람에게 그만큼 고통을 주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기도 하고.

물론 사랑 이야기만이 이 책의 전부는 아니다. 당대의 혼란스러운 시대상은 전쟁이 전장을 넘어 보통 사람들의 일상까지 지울 수 없는 흔적을 남기고 갔다는 사실을 보여주며, 당장 언제 죽을지도 모르는 상황에서도 기뻐하고 슬퍼하고 사랑하고 미워하며 삶을 지속해나가는 사람들의 모습은 삶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근원적인 고민을 하게 만든다. 또한 퀴어들에 대한 사회적 반응이나 원치 않는 임신으로 괴로워하는 여성의 모습을 보면서는 오늘날의 현실이 과거와 썩 달라지지 않았다는 것을 알면서 동질감과 슬픔을 동시에 느끼게 되기도 한다.

이 소설의 남다른 지점을 하나 꼽는다면, 대부분의 문학작품이 읽으면서 어떤 형태로든 인물에 공감하고 감정이입을 하게 되며, 그들의 흥망성쇠를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지켜보게 되는 반면에 여기서는 그러한 감정을 느낄 여력이 없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앞서 언급했다시피 이미 1장에서 그들의 미래(?)를 모두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인물들이 누리는 행복과 설렘이 클수록 아이러니하게도 독자는 서글픔과 애달픔을 느끼게 된다.

모든 사랑이 시작되는 순간은, 그 자체로 어떤 흐뭇함과 감동을 주지만, 그것은 우리가 끝을 모른다는 것을 전제로 할 때의 이야기인 것이다. 어떻게 끝날지 아는 사랑의 눈부신 시작을 지켜보는 것은 오히려 너무도 가슴이 아픈 경험이었다. 그러나 또 놀랍고도 재미있는 점은, 어떤 식으로든 끝나버릴 관계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아니 그것을 알기 때문에 오히려 더 두 사람이 사랑에 빠지는 그 장면이 아름답고 감동적으로 느껴지기도 한다는 사실이다. 마치 머지 않아 져버릴 꽃을 보고 감탄하는 사람들처럼.

한때는 운명적으로 느껴졌던 사람이 지겨워지는 과정, 너무도 헌신적이고 이상적인 연인 대신 이기적이고 제멋대로인 상대에게 끌리고 마는 어리석음, 그런 스스로를 알면서도, 그것이 자신을 망가뜨린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계속해서 끌려가고 마는 그런 마음, 헛되고, 덧없고, 이기적이고, 연약해서, 그래서 아름다운 마음들.

나는 이 소설의 마지막 문장처럼 아름답게 그려낸 사랑의 시작을 본 적이 없다. 이 문장이 아름다운 이유는, 이 문장이 묘사하는 사랑이 실제로는 그다지 대단한 것도, 특별할 것도 없었기 때문이다.

“이런 끔찍한 아수라장에 이처럼 생생하고 이토록 티 없이 깨끗한 존재가 숨겨져 있었다니, 좀처럼 믿기지 않았다.”

그 놀라움과 두근거림, 경탄, 지극히 평범한 어떤 것이 특별해지는 어떤 순간에 대한 포착. 비록 언젠가는 모두 사라져 버릴 것을 알아도.


*본 리뷰는 출판사 경품 이벤트 응모용으로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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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하자면 좋은 사람 마음산책 짧은 소설
정이현 지음, 백두리 그림 / 마음산책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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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력 없이 쓰여진 것 같은 너무 쉬운 이야기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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