뷰티풀 마인드
실비아 네이사 지음, 신현용 외 옮김 / 승산 / 200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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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재에는 두 종류가 있다. 하나는 우리와 똑같지만 양적으로 우리를 압도하는 천재이고, 다른 하나는, 분명, 남다른 인간적 섬광을 지닌 천재이다. 4분 이내에 1마일을 달릴 수 있는 천재가 있지만, 우리 모두 늦게라도 달릴 수는 있다. 그러나 <위대한 G단조 푸가>와 비견되는 것을 늦게라도 누구나 창작할 수 있다고는 말할 수 없다. - 수학자 폴 핼모스


● 다른 모든 사람들은 어딘가에 있는 산길을 찾아 하나의 산봉우리에 오르려고 했다. 내쉬는 다른 산봉우리에도 올라가서, 당초의 산봉우리를 멀리서 서치라이트로 비춰보려고까지 했다. - 수학자 도널드 뉴먼

 

● 존 내쉬는 20세기 후반의 가장 주목할 만한 수학자이다. …… 우리들 다수는 기존 아이디어를 발전시키는 능력을 지니고 있다. 우리는 남들이 닦아놓은 길을 간다. 그러나 우리들 대부분은 내쉬가 만들어낸 것에 비견되는 어떤 것도 만들어낼 수 없다. 그것은 번개가 치는 것과 같다. 심리학적으로 볼 때, 그가 무너뜨린 장벽은 참으로 환상적인 것이다. - 수학자 미하일 그로코프 

이 책은 1994년,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존 내쉬 John Forbes Nash Jr. 의 삶을 그리고 있는 전기 문학입니다. 비록 그가 노벨 경제학상을 받았다고는 하나, 기본적으로 그는 (위에서 인용해 놓은 바대로) 순수 이론 수학자였었기 때문에 (그런 이의 일대기인) 이 책은 애초부터 매우 한정적인 독자를 대상으로 할 수 밖엔 없었을 거라 생각됩니다. 게다가 이 책을 읽는 기간 내내, 들고 다니기조차 싫었었을만큼 너무나도 무거운, 본문만! 무려 720 페이지에 달하는 이 책이 과연 몇 권이나 팔릴 것이라, 출판사는 예상했었을까마저 살짝 궁금하기도 했더랬지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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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 5부로 구성되어 있는 이 책은, 한 사람의 저자가 써내었다라는 것이 믿어지지 않을만큼 방대한 양의 기록들을 기초로 쓰여져 있습니다. 내쉬의 비교적 평범했었던 유년 시절, 그의 천재성이 발휘되었던 프린스턴 대학의 수학과 시절, 그리고 그가 '편집증적 정신분열증'을 앓으며 정신병원에의 입원과 퇴원을 반복하던 시절, 그리고 그의 노벨 경제학상 수상에 얽힌 여러 비화들과 수상 이후 현재까지의 삶으로 구분되어져 있지요. 

 

1928년에 태어난 존 내쉬의 삶은, 대한민국에서 교육을 받고 자란 저의 눈에는 그야말로 '비정상'의 연속입니다. 그의 천재성을 알아 보고, 그 천재성을 해치지 않으며 더욱 발전시키려는 미국 대학교육의 시스템도 (부러워 죽겠을만큼) '정상적이지 않아'보였고, 그가 보여주었던 동성애 기질, 그리고 결혼도 하지 않은 상태에서 아이를 낳았으며, 이후 그 아이를 전혀 돌보려 하지 않았다라는 사실도, 또한 그 모든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내쉬와 결혼을 하려는 (한 마디로 퀸카!였었던) 여자가 있다라는 것도 예의 쉬이 이해되지는 않았더랬습니다. 게다가 내쉬가 정신병원을 들락날락하는 와중에도 끝까지 그를 금전적 · 학문적 · 정서적으로 도와주며 그의 재능을 결코 포기하지 않았던 동료들의 행동들 또한 쉽사리 받아들이기에는 너무도/지극히도 헌신적이었었지요. --- 이 책의 앞에 실려 있는 각종 언론매체들의 평가는 부인 앨리샤의 헌신적인 사랑을 이 책의 포인트로 말하고 있습니다만, 저 개인적으로는 딱히 그 부분이 그다지 감동적이라거나 인상깊지는 않았습니다. 그냥 약간 감동적이고 약간 더 인상깊었다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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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9년에 경제학과에 입학해 1995년에 대학원에 입학하기전까지, 제 기억에, 학부에서는 그저 4학년 후생경제학 수업시간에 들었었던, '게임 이론이란 것이 있다!'라는 정도가 제가 배운 지식의 전부였었습니다. 대학원 1학기의 미시경제학 수업에서야 처음으로 기본 모형들에 대해 배웠었었고, 2학기 때 본격적으로 배울 수 있었던 게임 이론은, 그 첫 수업부터 '내쉬'라는 단어를, 게임 이론에서는 빼놓을 수 없는, 일종의 '고유 대명사'스럽게 취급하고 있었었지요. 게다가 바로 직전 해인 1994년의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가 바로 존 내쉬였었었으니, 저는 처음부터 그를 당연히! 경제학자라 생각하며 처음 만났었던 겁니다. (물론 나중에 그가 사실은 수학자라는 걸 알게는 되었었으나, 그럼에도 일정 수준의 경제학적 백그라운드는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었더랬습니다만, 이 책을 읽고 나니 존 내쉬가 배운 유일!한 경제학은 학부 시절에 수강했었던 '국제 무역론'이 그 전부였다더군요.)

 

존 내쉬에게 있어 '게임 이론'은 그의 박사 학위 논문의 주제였었다는 것 이후로는 사실 거의 아무런 의미를 가지지 못했습니다. 그의 학문적 일생은 사실 '삽입 이론 embedding theory, 홀더 연속성의 선험적 추산, 유체운동의 수학적 해석, 비선형 편미분 방정식, 실대수 다양체 real algebraic varities' 등, 어지간한 수준으로 수학을 전공하지 않고서는 사뭇그 이름들을 받아쓰기조차 힘들 듯한 분야들로 이루어져 있었었지요. 그러했기에 1994년 그가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것에 대해, 프린스턴의 수학과가 낳은 또 다른 천재라는 존 밀너 교수는 "내쉬의 게임 이론 업적은 그가 이룬 순수 수학 업적에 비하면 사소하다"라고까지 (질투라 해야할지, 폄하라 해야할지 모르겠는 뉘앙스의) 말했었다고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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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나이 서른 살 즈음부터 나타나기 시작한 정신분열증은, 비록 그가 여러 번의 회복의 과정 중에 뛰어난 논문들을 발표하기는 했었으나, 결국엔 그를 수학계에서 거의 잊혀진 인물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이후 1980-1990년대의 존 내쉬는 프린스턴 대학에서 일명 '파인홀의 유령'이라 불리우며, 그저 컴퓨터로 뭔가를 엄청나게 열심히 하고만 있는, 그런 존재로 전락해 있었었지요. (그 당시, 프린스턴 학 경제학과 박사과정에 계셨었던 제 은사님 한 분께서 말씀하시길, 누군가가 맨날 컴퓨터 랩에서 뭔가를 하고 있길래, 저 사람은 대체 누구냐라 물어보았는데, 그 사람이 바로 '한때 천재'로 불리웠다는 존 내쉬였었다라고...) 하지만!!! 다들 여전히 그가 정신병으로부터 완전히 회복되었다고 생각하지 않았던 1990년 가을, 프린스턴  대학 수학과의 사르낙이라는 교수가 우연한 기회에 내쉬와 수학 이론에 관해 심도있는 이야기를 나눈 후 "여기 분명 거인이 있는데, 그는 수학계서 완전히 잊혀져 있었다. 그런 홀대의 사유는 더 이상 타당하지 않았다. 그런 사유가 (한때) 있기는 있었다 치더라도"라는 말을 했었을만큼 그의 천재성은 여전히 남아있었던 겁니다.

 

1980년대 후반부터 유명 경제학 저널들에 실린 논문들에 드디어 존 내쉬의 이름이 등장하기 시작합니다. --- 사실 '게임 이론' 자체는 프린스턴 대학의 수학과 교수였던 존 폰 노이만의 '최대 최소 정리(1928)'로 부터 시작되었었지요. 비록 폰 노이만이 이처럼 게임 이론의 창시자적 위치를 가지고는 있었으나, 사회적 존재간의 연합과 협력을 강조하는, 즉 인간을 항상 의사소통을 하는 사회적 존재로 파악했던 그의 모델은 현실 세계를 설명해 내는 데에는 많은 취약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존 내쉬는 협력 게임과 비협력 게임을 분리하였고, 협력과 경쟁이 혼합된 게임으로 확대시켰을 뿐 아니라, 참여자의 수와 상관없이 모든 비협력 게임non-cooperative games에는 '끝까지 지속되는 경향이 있는 자연적 휴지점natural resting point'로서의 균형equlibrium이 있다라는 것을 밝혀냄으로써, '게임 이론'이 수학의 영역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이후 경제학은 물론 정치학, 사회학, 진화 생물학 등에도 적용되어질 수 있는 길을 열었다 책은 설명하고 있지요.



경제적 선택이 문제는 다른 행위자가 아예 없거나 아주 많으면 훨씬 단순화된다고, 프랑스 경제학자 앙투안 오귀스탱 쿠르노가 1세기 앞서 갈파한 적이 있다. 로빈슨 크루소처럼 외딴 섬에 혼자 있다면, 자기 행동의 결과에 영향을 미치게 될 타인의 존재를 염려할 필요가 없다. 아담 스미스가 언급한 푸줏간 주인과 빵집 주인의 경우의 경우도 (그 반대의 의미에서 또한) 그러하다. 즉, 주변에 너무 많은 행위자가 있으면 결국 서로의 영향력이 상쇄되어 버린다. 그러나 행위자가 너무 많아 각각의 영향력을 무시해도 좋을 정도는 아니지만 두 명 이상의 행위자가 있을 경우, 전략적 행동을 하게 되면 일견 해결 불가능한 문제가 야기된다. …… (따라서) 거대 합병, 거대 정부, 대규모 해외 직접투자, 도매업의 사기업화 차원, 즉 소수의 참여자가 각자 타인의 행동을 고려하며 각자 최선의 전략을 추구하는 세계에서는, 게임 이론이 부각될 수밖에 없었다. - 본문 pp20-21, p6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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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게임 이론'을 밥벌이의 밑천으로 삼고 싶었었던 저에게 이 책의 하이라이트는 단연코!!! 존 내쉬의 노벨 경제학상 수상 뒷이야기들을 담고 있는 이 책의 <5부>였었었지요. 존 내쉬의 이름이 노벨 경제학상 후보에 오르기 시작한 것은 1980년대 중반이었다고 책은 밝히고 있습니다.  

 


노벨상은 뛰어난 개인에게 주는 상이 아니며, 평생의 업적을 기려서 주는 상도 아니라는 사실이다. 노벨상은 특정 업적, 발명, 발견을 치하하기 위해 주는 상이다. 그 업적은 이론일 수도 있고, 분석 방법이나 순수 경험 결과일 수도 있다.

존 내쉬가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하기 이전까지 노벨 경제학상은 폴 사뮤엘슨, 캐네스 애로우, 제임스 토빈 등, 누가 봐도 '명백한' 경제학자들에게 수상이 되었었으나, 경제학의 좀더 새로운 분야를 찾고 있었던 노벨 위원회는 당시 경제학계에서 한창 뜨겁게 논의되고 있었던 게임 이론에 주목하게 됩니다. 이에 1984년과 1988년 두 차례에 걸쳐 게임이론에 대한 외부 보고서를 외뢰했었던 노벨 경제학상 '5인위원회'는 결국 모두 존 내쉬를 게임 이론의 발전에 있어 1순위로 적혀져 있는 결과물을 받아들게 되지요. 하지만 존 내쉬는 1950년대에 이미 게임 이론에 대한 연구를 그만두었었으며, 그에게 정신병력이 있다라는, 게다가 여전히 완치가 되지 않았다는 사실이 '5인위원회'를 주저하게 만듭니다. 그래 1989년 직접 존 내쉬를 만나 그의 상태를 확인하기위해 존 내쉬가 있던 프린스턴 대학으로 바이불 교수를 보냈었는데, 당시 존 내쉬를 만났던 그의 회고 중, 다음의 문장은, 이를 읽는 순간은 그야말로 짜릿!하 그 자체... 였었었지요.   


(교수 식당에서 점심을 먹기 위해 들어가기 직전) 내쉬는 우물쭈물하며 이렇게 말했다. "내가 들어가도 될까요? 나는 교수가 아닌데요." --- 이 위대한, 위대한 학자가 자기 자신을 교수 클럽에서 식사할 자격조차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는 것은, 바이불이 보이게 마땅히 바로잡아야 할 너무나 부당한 사태였다.

이후 책은, 게임 이론의 유명 학자들의 이야기와 더불어 결국 존 내쉬가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하게 되는 - 경제학, 그 중에서도 게임 이론에 관심 많은 분이라면 필히! 읽으시길 권해드리는 - 드라마틱한 과정들을 흥미진진하게 기술해놓고 있습니다. (1994년의 노벨 경제학상은 존 내쉬와 더불어 라인하르트 젤텐, 존 하사니의 3인 공동수상이었습니다. 책에도 기술되어 있듯이, 젤텐과 하사니 역시 게임 이론으로 노벨 경제학상을 받기에 전혀 부족함이 없는 대가들이기는 하나, 노벨 위원회가 존 내쉬의 정신병을 염려하여, 노벨 연설을 대신할 누군가를 원해 '공동 수상'을 결정했다라는 이야기를 제게 게임 이론을 가르쳐 주셨던 교수님으로부터 듣기도 했었었네요.)

 

(이 책에 나와있듯이) '5인위원회' 중 리더격이었던 린드벡의 회고처럼 대부분의 노벨상 수상자들은 이전에도 이미 저명했으며 충분히 존경을 받는 학자들이었었죠. 즉, 노벨상이 이미 영예로운 자에게 월계관을 씌워 주는 것일 뿐이라는 비난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롭지는 못했었던 겁니다. 하지만 존 내쉬는 (50여년 전 발표했었던 그의 이론을 제외하고는 최소한 경제학계에서는) 완전히 잊혀진 존재였었었기에, 1994년 당시 그가 완치되지 않은 정신병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과 더불어 여러 모로 화제가 되었었다라 책은 또한 밝히고 있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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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하고 나면, 하다못해 그의 (이미 비쌌었었던) 강연료마저도 엄청나게 뛰어오른다고 합니다. 그러나! 노벨상 수상자가 수상 이후, 무언가 그에 필적할만한 새로운 학문적 기여를 했다라는 소식을 듣기는, 최소한 경제학계에서는 찾아보기 매우 힘들지요. 이런 두 가지 면에서, 존 내쉬의 다음 두 일화는, ① 과연 존 내쉬를 괴팍한 천재로만 보아도 되는 것인가, 또한 그에게 여전히 '정상이 아님'이라는 표현을 할 수 있는가 하는 의문을, ② 한때! 학자로서의 인생을 꿈꿔보았었던 저에게, 그리고 공부는 안하면서 폭넓은 사회적 인간 관계에만 신경 쓰고 있는 적지 않은 우리나라 대학의 선생님들에게, 너희들 모두는 과연 '학자'로서 이러한 길을 걸으려 했었던 적이 있기는 했었었느냐/(있었다라면) 기억은 하고 있느냐라는 가슴 시린 질문을 던져주고 있다 생각합니다.

 

너무도 세세한 기록/구술들의 나열에, 정신병에 관한 지나친 전문적 설명들에, 읽어내기에 수월하지 않았던, 가끔은 지루하기도 했었던 책이었습니다만, 이 책을 읽지 않았었더라면, 비록 지금은 그 꿈을 완전히 버렸다해도 한때! 제게 꿈이기도 했었던 분야의 최고 학자에 대해 아는 것이 전무하다고 했었어야 했다라는 창피를 면할 수 있게 되었다는 점에서, 그래서! 그것만으로도!!! 이 책이 제게는 상당히 유익한 독서였었었다 말하지 않을 수 없네요.

 

(노벨상 수상자로 발표된 날 오후, 프린스턴 수학과가 있는 파인홀에서 열렸던 조촐한 축하연에서 내쉬가 했던 말) 연설을 하고 싶지는 않지만, 세 가지 할 말이 있다고 그는 말했다. 첫째, 노벨상이 신용 등급을 높여줄 테니 이제 신용카드를 갖고 싶다. 둘째, 상을 나눠 갖게 되어 정말 기쁘다고 말해야겠지만, 돈이 너무나 필요하기 때문에 혼자 수상했으면 더 좋을 뻔했다. 셋째, 게임 이론 공로로 상을 받게 되었는데, 게임 이론은 초끈 이론 string theory과 닮은 점이 있는 듯하다. 오늘날 대단히 본질적인 지적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초끈 이론을 세상 사람들이 유익하게 활용할 수 있기를 바라마지 않는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내쉬는 (그의 나이 67세인) 1995년 프린스턴 대학 출판부에서 3만 달러를 제시하며 그의 전집을 출판하겠다는 것까지 거절했다. "나는 오랫동안 연구 결과를 발간하지 못했기 때문에 심리적으로 부담을 느낀다. …… 나는 (지금은) 전집을 발간하고 싶지 않다. 아직 나는 활발히 연구중인 수학자라고 생각하고 싶고, (최소한) 그런 수학자인 척이라도 하고 싶기 때문이다. 나는 남들이 월계관이라고 말하는 것에 안주하지 않겠다. 물론 전집을 지금 내지 않는다 해도 후일 언젠가는 출판할 수 있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다. 그때 그 전집에 새로운 멋진 것을 보태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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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웬지 가슴 짠~해졌었던,

"숫자를 다루는 일에는 신이 부럽지 않을 만큼 능란했으나 인간관계의 함수를 파악하는 데는 갓난아기처럼 서툴렀던"으로 묘사되고 있는 그의 

노벨상 수상 이후 현재까지의 삶... 이 참 많이 부럽기도 하네요.

 

결혼은 인간관계 가운데 가장 신비한 것이다. 일견 피상적으로 보이는 애착 관계가 놀라울 정도로 깊고 지속적인 관계가 될 수도 있다. 내쉬와 앨리샤 사이의 유대관계도 그러하다. …… 그는 자기가 천재라 해도 모든 문제의 권위자일 수야 있겠느냐고 농담조로 말한다. 다시 집을 저당 잡히고 대출을 받는 일이나, 가스 보일러를 놓을 것인지 기름 보일러를 놓을 것인지 선택하는 일이 생길 때 그는 익살스럽게 투덜거리곤 한다. 그가 "노벨상으로 빛나는 …… 경제학의 현자"라는 것을 앨리샤가 진지하게 인정해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 스톡홀름에서 내쉬의 노벨상 수상 소식을 전해왔을 때, (존 내쉬와 앨리샤의 아들인) 조니는 정신병원에 있었다. 내쉬와 앨리샤는 먼저 조니에게 전화를 걸었다. 조니는 부모님이 자기를 놀린다고 생각하며 전화를 끊어버렸다. 나중에 조니는 CNN 뉴스를 통해 아버지의 얼굴을 보았다. …… (아내 앨리샤는 수상 이후에도 여전히 생활비를 벌기 위해 직장 생활을 계속 하고 있으며) 이제 조니를 돌보는 것이 내쉬의 주된 삶의 과제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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