깎아낸 절벽에

 

지층의 시간이

 

덧게를 벗었다

 

한줄과 한줄의

 

사이에 굳어간

 

세월의 무게감

 

한순간 지각이

 

뒤집혀 일어난

 

영원한 사건들

 

순간과 영원의

 

어제와 오늘에

 

침묵한 아우성

 

모조리 부절이

 

없다는 사실을

 

무심코 앓았다

 


우리의 존재감

 

어디에 있다고

 

믿어야 하는가

 


댓글(14) 먼댓글(0) 좋아요(2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2019-06-19 09:4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6-19 09:5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6-19 14:1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6-19 14:57   URL
비밀 댓글입니다.

강옥 2019-06-21 10:2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사회생활을 할 때는 일을 통해 존재감을 느끼곤 했는데
나이 먹어가니 존재감이 점점 떨어지더군요.
가정에서의 위치나 인간관계속에서 존재감을 찾기보다
자아실현을 통해 존재감을 느끼고 싶은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다들 책을 내고 전시회를 하고.... 뭔가 확인하려하는지도....

yureka01 2019-06-21 10:44   좋아요 0 | URL
^^ 지우당님도 존재감이 있습니다.
자주 블로그에 사진과 글 보여주시잖습니까..
그럼요..늙었다고 아무것도 하지 않기보다는,
뭐라도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하는 것이
존재감으로는 제일 좋은 거라서요....

2019-06-22 12:3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6-23 07:0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6-26 11:4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6-26 13:5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7-10 11:2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7-10 12:0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7-24 13:0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7-26 09:25   URL
비밀 댓글입니다.
 

 

 

1. 뒤집자.

사진으로 가끔 세상을 뒤집어 본다.

시간도 좀 뒤집어 보는 것을 우리는 흔히,

역사라고도 하지.

 

왜곡된 물질 세계의 현상에서 뒤집어 보고,

우리의 삶을 뒤집어 보다 보면,

가지고 있는 슬픔과 고통과 쓰림의 정체가

무엇인지 따져 들게 된다.

비록 현실을 디집지는 못할지라도,

가끔 뒤집어 보자.

사진처럼 뒤집기하듯이.


 

 

긍정을 부정하고, 부정을 긍정하는 것만큼

어려운 것도 없을진대,

사진으로는 의외로 간단하다.

 

다만, 뒤집어 보겠다는 의도만 있다면

가능하다.

그러므로, 이 의도가 우리 삶에 의지로 발전할 수 있는

힘이 될 수 있기를...

 

 

2.MAY I TAKE YOU PICTURE?

 

사진 찍어도 되겠습니까?

아니오 라면 돌아서야 하고,

예라고 한다면 다가가야 한다.

 

비단, 인물만은 아닐 것이다.

 

풍경에게 말을 걸어,

풍경아, 사진 한 장 찍어도 될까?라고 물어본다.

 

오늘의 빛과 그림자에

일렁이는 이랑과 고랑 사이로,

인연의 씨줄과 날줄이 교차하는 틈을 비집고,

그래서 순간의 멈춤을 만나서,

찍어도 되겠습니까?라고 물어야 한다.

 

친수성이 친밀성으로 만나는 거룩한 관계겠지.

적어도 풍경에게서 조차 정중하고도

무례하고 싶지가 않아서이다.

 

PS 참조: 사진에 느낌을 담는 여덟 가지 방법, <스가와라 이치고(菅原一剛)지음, 김욱 옮김, 한빛미디어, 2010>

3. 어설프게 모르고 어설프게 아는, 이 사이의 길.

 

'봐야 한다.

안 보일 때까지.

 

보지 말아야 한다.

보일 때까지.

 

본다는 건 볼록 렌즈의 빛을 모아 불을 일으키는 것과 비슷하다.'

 

<인용 _ 나는 지구에 돈 벌러 오지 않았다. 이영광 산문집, 이블, 2015 12>

 

 

어설프게 알고 봤던 것들과,

어설프게 모르고 봤던 것들의 사진들.

이런다고 알면 얼마나 알 수 있을런지,

모르면 또 얼마나 모를 수 있을런지.

그래서 인간인가 싶었다.


다 아는 것도 못하고,

다 모르는 것조차도 못하고,

이 어정쩡함의 정체가 모습의 실체 같았으니까.

 

전지(全知)한 신과 전무(全無)한 백치.

이 사이에 난 길에서 서성댈 따름인 거 같아서 이다.

 

사진이란, 

얼마인지도 모르고 마구 써버린 신용카드의 전표같은 것.

훗날에야 전표에 찍힌 숫자를 보고 까무러치게도

너무 많이 써버렸구나,

이걸 다 어떻게 갚을 거지'라는 부채.

그러니 사진 찍는 게 두려워져.

 

감당할 수 없는 것들에 두려움, 

감당하려는 난감함.

 

어줍잖게라도 찍겠다고 나설 때는 

겁없이 맹렬히 날아드는 불나방이 홀린 것처럼 빛에게 달겨 들어,

그리고 초라하게 사멸한다.

 

이는 필시 중독된 거다, 나방의 맹목에 대한 어설픈 시간처럼.


-----------------------------

3년전에 담은 사진과 글입니다.

 

봉인된 사진 블로그를 보면,

이 사진과 글을 내가 직접 적은 건지

낯설 때가 있어서 다시 알라딘으로

옮겨봤습니다.

 

즐거운 감상되시길......


댓글(24) 먼댓글(0) 좋아요(2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19-06-13 11:4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6-13 11:5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6-14 12:3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6-15 08:4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6-17 11:1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6-17 12:2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6-17 13:4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6-17 13:4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6-20 04:1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6-20 08:5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6-20 12:2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6-20 12:34   URL
비밀 댓글입니다.

강옥 2019-06-15 18:1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와락, 반가워라. 낯익은 저 사진들 ^^*
유레카님이 즐겨 찍으시는 소재를 눈치챈 지 제법 되거든요 ㅎ
며칠 나갔다 왔더니 피곤이 누적되어 눈 앞이 어질어질합니다.
집 앞 저수지에서 유레카표 물결무늬 흉내도 내봤지 말입니다 제가 ㅋ

yureka01 2019-06-15 23:05   좋아요 1 | URL
네 .저걸 보면 일렁이는 시간이 느껴져서요..
앞으로도 저런 사진 궁극까지 한번 시도해보고 싶습니다...

2019-06-15 21:1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6-15 23:0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6-20 12:5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6-21 07:2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6-22 13:0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6-23 07:1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6-26 11:4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7-26 09:2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6-20 18:1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6-20 22:06   URL
비밀 댓글입니다.
 
오늘 간식은 감꽃이야! - 최순나 교단일기
최순나 지음 / 만인사 / 2019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저자가 초등학교 선생님. 교사로서의 사명감과 제자들에게 진정성 있는 사랑이 무엇인지 교사가 교단에서 쓴 일기로 구성된 책이다. 요즘 초등학교의 교육은 어떤 것인지 거의 모른다. 딸아이 초등학교 시절을 보내서 학부모가 되어서 짧은 기간 동안에 초등교육에 관심을 가졌을 뿐 딸아이가 진학함으로써 초등학교는 관심사에서 멀어져 버리는 것도 사실이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맞이하게 되는 정규 교육과정으로, 그리고 첫 사회생활의 범주에 포함되는 학창시절의 생활이 초등학교에서부터 시작된다. 인간이 사람으로 변화해야 하는 첫 과정인 셈이다. 따라서 초등학교의 교육이 별 대수롭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은 큰 착각이다. 어린 시절의 초등학교에서 경험과 지식과 담아지는 추억은 평생을 가지고 가야 할 즐거움이거나, 때론 인생의 나쁜 추억의 짐으로 자리매김 하는 과정이다. 어릴 시절에 받았던 사랑이나 결핍이 일생에 트라우마를 낳기도 하는 만큼, 굉장히 중요한 시절임에는 틀림없다. 중학교는 초등을 거쳐 고등학교의 과정으로 짧은 기억에 크게 남지 않을 수도 있고 고등학교는 대입이라는 관문에 인상이 강렬하기도 한다. 그리고 대학은 사회생활에 있어서 성인으로써의 역할에 대한 기억들 때문에도 크게 작용할 수도 있다. 이렇듯이 초등학교 시절의 추억이란 때로는 미화되기도 하고 때로는 지워버리고 싶은 아픈 과거가 될 수도 있다. 그런데 여기에서 초등학교의 선생님에 대한 역할은 인생에서 무의식적으로도 심어지는 인성의 판도에 미치는 영향이 결정적일 수 있다. 특히 선생님의 인품과 성격이나 성향 그리고 사명감이나 교육 철학과 방향에 따라 초등학교 아이들에게 미치는 영향도 일생에서 잊을 수 없는 각인되는 효력을 발휘하게 된다. 어떤 선생님을 만나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지 너무나도 중요한 이유일 것이다.

 

 

이제는 아이들이 너무나도 적다. 한 반에 고작 30명도 채 되지 않는 급격한 인구 감소를 겪고 있는 중이다. 따라서 아이 하나하나가 얼마나 소중한 보물인지를 격세지감이지 않을 수 없다. 내가 다녔든 국민학교 시절에는 베이비 붐의 끝 세대였다. 한 반에 거의 70명 가까이 넘는 아이들이 좁은 교실에서 바글바글했었다. 넘치는 아이들이 보물보다는 거추장스러운 액세서리쯤은 아니었던가 싶었다. 많아도 너무 많았던 탓이다. 그러니 선생님은 있어도, 한 아이의 일거수일투족을 지켜볼 수도 없고 개인별로 선생님과의 관계 형성도 어려웠다. 책임져야 할 아이가 넘쳐났으니 선생님의 교육은 인격형성에 영향을 미치기보다는 하루하루가 북새통으로 정신없이 지나가는 시절이었다. 열악한 품질의 교과서로 몽당연필의 교육이 대부분이었다. 선생님과의 관계란 그저 한 학년 거치면서 지나쳐 버리고야 마는 그저 스쳐버린 관계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선생님과의 추억이 별로 없다. 결정적으로 각인된 추억 자리에서는 선생이라는 교육자가 없다는 점이다. 그야말로 아이들의 생산이 사회적이거나 혹은 개인적으로도 어떤 문제와 어떤 과정의 인생을 겪는 것인가에 대한 각성은 없었던 시절이기도 했었기 때문이다. 낳아 놓기만 하면 제 먹을 것은 다 있다는 이 터무니없는 육아 방식은 때로는 효도라는 보험적 성격일 수도 있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먹고 입히고 학비를 들여서 공부 시키면 양육은 끝이라고 생각하던 시절이었으니까 말이다. 물리적으로 들이는 비용이 양육의 기본이라고는 하지만 아이의 시대적 십자가에 대해 그 시대의 부모들은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배운 적도 없고 알아야 할 개별적 동기도 없었으니까 말이다. 그저 결혼하면 아이는 자동으로 만들어지는 오토매틱 시스템처럼 작동하던 시대의 과잉의 인구는 여러가지 사회적 문제를 야기한다는 것은 지속적인 산아 재한 정책의 결과였던 것인지도 모른다. 관습적으로 혹은 전통적으로 무조건 낳기만 하면 다 되던 시절에 사연 많은 집들이 어디 한둘은 아니었던 시절이었다. 그 시절에 태어났던 사람이 이제는 장년층이 되고 보니 왜 그렇게 무턱대고 낳았던 것인가에 대한 각성과 함께 자신의 세대의 치열한 경쟁에 대해 생각할 시간이 도래했다. 한 반에서 이부제 수업까지 했었던 내 또래들 세대가 겪은 그 바글바글한 숫자에 대해 다들 좋아할 사람은 별로 없었으니까. 넉넉하지도 못했던 가정 형편에 아이들이의 감내할 고단함은 지금의 기성세대가 겪는 일종의 슬픈 트라우마로 작용했던 것인지도 모른다. 그래서일까. 많이 낳아 방임하듯 양육하기보다는 적게 낳고 보살핌을 집중하겠다는 자연스러운 발상은 전혀 낯선 것도 아니다. 우리 세대의 마지막 베이비붐 세대으로 대학 진학률은 졸업 정원제를 시작으로 급격히 고등 교육이 늘어났던 점도 이에 부합하고 따라서 우리 부모 세대가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을 생각했다는 점이다. 그런 점에서 보자면 과잉의 경쟁과 바글바글함에서 부대끼며 겨워했을 세대가 취할 행동 패턴은 당연히 각성된 여건이 이를 증명하듯 급속하게 인구 숫자를 줄이게 만들었던 것이 아닐까 싶었다. 고도성장에서 야기된 부의 재분배 문제와 더불어서 급격하게 치솟는 부동산의 가격과 결혼 비용의 증가로 이어짐으로써 혼인율을 낮아지게 만들었다. 당연히 혼인율이 낮아질수록 출생률도 비례하여 떨어지는 것도 이와 맞물려 있다. 또한 양육비와 교육비에 비례해서 소득은 늘어나지도 않는다. 그렇다면 결과야 당연히 인구 감소로 이어진다. 길게 설명했다만은, 사람들이 먹고살기 어려우면 낳기를 주저하게 되는 것쯤은 당연하다. 여유와 잉여가 없이 낳음으로써 무대책의 결핍을 재현하고 싶지 않음을 의미하기도 한다.

 

이제는 아이 하나하나가 귀중한 보물처럼 여기는 이유도 부모 세대의 바글바글함으로 빚어진 결핍을 다시는 겪지 않게 하고자 하는 것도 크게 작용하는 것은 아닐까 싶었다. 내 또래 친구들 아이를 보면 대부분 하나 아니면 둘이다. 셋 이상은 거의 없다. 넷까지 낳았다면 굉장히 측은하게 보는 것도 어쩌면 부모 세대가 겪은 트라우마의 작용과 반작용적인 역학적 관계에 있는 것이다. 우리 세대가 경험해보지 못했던 귀중한 존재로서의 아이들을 교육하는 문제에 있어서 선생님의 존재가 특별히 더 크게 부각되는 것은 어쩌면 지극히 당연한 결과가 아닐까 한다. 아이 하나하나를 지속적인 관심과 개별적인 성향을 파악하고 교육의 지침과 방향을 설정하는 문제는 아이가 장차 성장하면서 미치는 영향은 평생을 이어간다는 전인적이란 의미를 담고 있다. 이 책에서 제일 중요하게 봤던 부분이 바로 선생님의 담임반 아이들에게 지속적으로 글쓰기에 대한 교육이 굉장히 부럽게 다가왔다. 아이를 내버려 두려 하지 않는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문제인지를 느끼게 한다.

 

어릴 때만 해도 글쓰기의 시작이 일기 쓰기였다. 일기라는 숙제도 제일 골치였기도 했다. 무엇을 어떻게 쓸 것인지 혹은 생각을 어떤 단어를 조합해서 문장으로 이어 나갈 것인지 큼지막한 칸에 글씨를 채워 넣어야 하는 숙제가 제일 싫었다. 지나고 보니 일기를 쓰라는 숙제는 내줬지만 일기를 어떻게 쓰고 어떻게 이어 나갈지, 글쓰기에 대한 가르침은 거의 없었다. 단순하게 그 날 있었던 사실의 나열이 곧 일기라고 짧은 가르침이었다. 기본적으로 어떻게 생각하고 아이가 무슨 생각을 했던 것인가라는 글쓰기 창작에 대한 고민이 전혀 없었다는 점이다. 그저 일기라고 쓰기만을 강요했을 뿐이다. 주입식 일방적인 것을 교육이랍시고 그 시절의 선생님들 대부분 그러 했었다. 무슨 생각으로 어떻게 나열하며 자신의 느낌을 글감으로 만들어 내는 훈련도 없으면서도 쓰라는 일기의 강요는 결국 제일 싫은 숙제가 되어 버렸기 때문이다. 방학숙제에 제일 큰 걸림돌이 일기 쓰기 였으니까 말이다.

 

그런 점에서 이 책에서 나오는 아이들이 글쓰기에 대한 생각을 보니 문득 요즘 아이들이 무척 부러웠다는 것이 솔직한 심정이다. 이 책에서 보면 최순나 선생님의 별명이 아이들이 지어낸 "최쓰나 선생님"이라고 하니 글쓰기 교육이 얼마나 잘 강조된 것인지 감동이었다. 어린 학생들의 자기 생각을 담는 교육이야말로 앞으로 학생들이 자라면서 자신의 주관적 관점에 대해 표현하는 방법론이 이루어질 때 생각을 도출하여 판단하며 정리하게 됨으로써 논리를 갖추고 부족한 지식과 정보에 대해 찾아서 자신의 생각에 반영시키는 능력이 얻는 효과를 만들어 낸다. 이런 글쓰기야말로 비로소 창작이라는 과정으로 옮겨갈 수 있는 기본적인 토대를 만들어 줄 수 있다는 점이다. 게다가 글쓰기가 심화되면 시처럼 확대되는 효과는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발전한다. 특히, 우리 세대에서는 글쓰기를 재대로 배워 본 적이 없는 아쉬움이 매우 크다. 글쓰기를 배운 부모가 없으니 아이들이 장차 글잘 쓰는 작가가 되겠다고 하면 부모는 아이의 장례를 걱정하기 시작하는 것도 배운 적이 없는 사람의 특징이다. 시대는 바뀌었다. 글쓰기만의 문제가 아니라 앞으로 아이들이 살아갈 세상은 컨텐츠와 창작의 시대가 더 크가 작용한다는 걸 간과한다.

 

전체주의적이고 획일적인 사회는 교육에서도 개별적인 생각의 표출을 막았다. 개별적인 특출난 사고방식은 억제된 사회에서는 창의적인 사고가 나올 수 없다. 사람이 전부 다른데 비슷한 생각을 강요하는 것은 일종의 폭력이나 다름없다. "내가 이렇게 생각하는데 선생님은 저렇게 하라"고만 하는지에 대한 아무 논리의 강요가 선생님을 존경의 대상보다는 강압적 두려운 존재로 인식하게 되었다. 글감의 발상을 의도하여 이끌어 주고 의견을 지속적으로 묻고 너라면 어떻게 할 수 있을까라고 질문이 곧 교육의 토론 방식에 대한 시작이다. 개별적 학생들의 특성을 고려하고 그 적재적소의 다양한 경우의 수를 따르는 개성적인 교육이 한 아이 아이마다 이 특성을 표현하는 중요한 수단이 글쓰기가 된다는 점이다. 아마도 개인적으로는 내가 다녔던 국민학교 시절에 김순나 선생님 같은 스승이 있었더라면 작가는 못되더라도 글쓰기에 아주 좋은 가르침을 배웠을는지도 모르는 일이다. 글쓰기에 대해 배우지 못한 세대는 단순 글씨의 문맹은 낮아도 문장의 문맹은 높다. 하물며 몇 줄 조차 자신의 생각을 글로 표현하는데 상당히 애를 먹고 있다. 일방적으로 주입된 교육의 방식은 받아들이는 in put이 활발했으나 out-put이 어려운 이유이다. 읽기가 되는데 역설적으로 이해력의 미흡을 만들게 되었던 것이다. 언제나 그렇듯이 창의력은 사유에서 비롯된다. 사유의 근본은 단어와 단어로 이어지는 문장으로 도출되는 논리를 띄는 측면이 강하다. 창의력 뿐만 아니라 의견을 피력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굉장히 뛰어난 문장은 타고난 재능이 있어야 가능한 것이지만 평범한 일기 같은 글은 일상의 꾸준한 글쓰기는 많은 연습과 훈련에서 나온다. 이런 측면에서 아이들의 글쓰기 토대가 마련되고 장차 글쓰기를 통해서 사유할 수 있기에 몽매를 피해 갈 수 있다. 생각은 행동하게 하는 단초이다. 비상식적인 사회에 무지함을 이겨 낼 수 있는 기초가 결국은 글쓰기에 있다고 믿는다.

 

특히 선생님이라는 선행과 글쓰기의 모범으로 아이들에게 본보기는 진정한 선생 다운 교단일기라는 것에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선생이란 업이 무엇인가. 학생들보다 먼저 하고 선두에서 모범으로 보이며 따라오게 만드는 원인 제공자이다. 가르침이라는 게 강요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피동적인 교육보다 능동적이고 동기 유발의 교육이 확실히 효과가 있음은 이미 입증되고도 남음이 있다. 아울러, 선생님의 교단 일기를 통해서 얼마나 아이들에게 진심을 다해서 교육하는 교육가인지 엿보고 이런 훈련을 받아 자란 아이들이 정말 부럽고 행복해질 것만 같았다. 나는 일제시대에 비정상적인 교육을 그대로 이어받은 선생으로부터 교육받은 이후 세대이다 보니 바글바글한 학생을 통솔하기 위해서 매을 들고 몽둥이질하는 선생을 자주 겪었다. 좁은 교실에서 콩나물시루처럼 빽빽한 아이들에게 교사로서 할 수 있는 교육이라는 게 고작 주입과 강요에 의하는 것도 일견 이해는 한다. 교실을 더 늘리고 학생 수를 더 줄이고 교사의 수를 많이 하기에는 가난한 나라에서 교육 재정의 한계는 분명 있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성실히 교사 업무에 임하는 스승도 찾기 어려웠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이제는 달라져야 한다. 이 책의 저자인 선생님이 한해 동안의 교단에서 아이를 돌보며 관찰하고 학습계획을 아이들과 공유하며 함께 써 내려간 일기를 제자들이 보고 무심코 지나쳐 버리는 초등학교 선생은 결코 아닐 것이다. 사랑은 받아먹은 사람만이 아는 그 심리적 여유와 만족감에 대해 아이들이 얼마나 견고한 자아의 확립이 이루어질 것인지를 알게 한다. 아이들이 점점 줄어드는 시대에 아이 하나하나가 존귀함으로 대우받아야 하는 시대인 것만은 분명하다. 그런 아이에 걸맞은 교육자는 직업 가로써의 선생의 모습은 아닐 것이다. 마음을 내보이며 아이 하나하나가 선생님을 대하는 태도에서 스스로 아이가 느낀다면 그 아이가 성장하며 형성해 나갈 인격은 그야말로 품격을 갖추는 시민으로 만들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댓글(20) 먼댓글(0) 좋아요(2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19-06-11 13:3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6-11 15:1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6-14 12:2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6-15 08:4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6-17 11:1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6-17 12:3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6-17 13:4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6-17 14:0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6-20 04:1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6-20 08:5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6-20 12:2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6-20 12:3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6-11 18:5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6-12 09:4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6-20 12:5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6-21 07:2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6-22 13:1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6-23 21:3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6-26 11:4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7-26 09:27   URL
비밀 댓글입니다.
 

64만 6706㎡(19만 5천628평). 국회의원 99명(배우자 소유 포함)이 보유한 농지 면적이다. 농지라는 점에 주목하자. 일반 토지면 그러려니 해도 농지라는 것에 뭔가 상당히 의문표가 찍힌다. 국회의원이 농사지을 것도 아닌데 왠 농지가 이렇게 많은가 말이다. 전부 상속이나 증여를 받은 것일 수도 있다. 그렇다 쳐도 저렇게 많이 상속이나 증여를 받을 수 있는 것도 또한 놀랍긴 마찬가지다.

 

우리나라 농지법에는 농민이 아니면 농지 소유가 불가능하다. 농업을 경영하는 농업법인을 제외하면 일반 법인조차 농지 소유 불가이다. 대대로 우리나라의 농지는 경자유전의 원칙에 의거하여 농사를 짓는 자만이 농지를 소유할 수 있다. 다만 예외적인 사항이 있는데, 대부분 국회의원들은 이 예외사항에 포함된다고 봐야 한다. 농업을 겸직하는 국회의원은 한 명도 본 적이 없다.(아 옛날에 강기갑 전 의원은 농민이었지.) 이런 예외라는 것은 결국 경자유전의 원칙을 훼손한다. 농사를 짓지 않는 사람이 소유한 농지는 과연 무슨 용도일까? 농사를 짓는 농민만이 농지를 소유할 수 있다는 이 대원칙이 상당히 무색하게 변질되어 버렸다.

 

결국은 부동산도 소위 있는 자들끼리만의 복마전일 뿐이다. 여기의 토지 시장은 거의 대부분이 없는 자는 철저히 열외이다. 어딜 나가서 둘러 봐도 어느 구석을 해매도 내 수중에 지불할 자금력으로 든든하고 보면 또 다른 눈먼 자금이 보이지만, 없는 사람에겐 거의 보이지도 않는다. 자본력은 자본의 냄새에 아주 민감하게 하고 시야를 상당히 넓혀 주는 마력이 있기도 하다. 즉, 어떤 수준의 소유에 대한 차이가 이를 자본의 확장을 결정한다. 농사를 짓지 않아도 얼마든지 가능한 것도 다 이런 이유 때문일 것이다. 농지가 어느 공공이나 민간의 개발  계획에 포함되느냐, 개발지의 근처 주변에 있으냐에 따라 시세 차이와 호가는 천차만별이고 개발을 전혀 할 수 없는 "절대농지나 보전 임지"는 평생을 가지고 있어도 요지부동으로 거래가 없다. 대부분 자본력 있는 자들의 농지는 개발 호재를 따라가는 것이 뻔하다. 다만 그 개발 정보에 얼마나 접근할 수 있는 위치인가에 따라 농지의 소유도 판가름 날 것이다. 따라서 자본력은 자본의 집중을 위해 냄새 또한 기가 막히게 민감도를 올리는 역할도 한다.

 

부동산에 대해 좀 더 확장해서 비약해 보자. 자본력의 차이가 결국 권력의 호불호가 갈리고 정치력의 결과이다. 상당히 아픈 지적이겠지만, 어느 누가 나선다 하더라도 자신의 자본력이 삶의 방향성을 결정하기도 한다. 정치적 방향성도 마찬가지일 수도 있다. 누구는 하루하루 얼마의 일당을 받아 일상을 살아나가든, 직업이 없어도 자본력으로 얼마든지 소득을 유리하게 끌어 내서 더 많은 자본을 축적할 수 있는 것도 이 차이를 말한다. 누군 자신의 자본력으로 시세차액을 남길 곳에 투입하면서 보이지도 않는 미래의 자본을 결국은 현실화시키는 결정도 현재의 자본이 결정한다는 점이다. 물론 이에 더불어서 잔머리 잘 굴러가서 기막힌 타이밍에서, 적재적소에 자본을 투입하는 자본의 민감성 또한 실력이 될 것이겠다. 이런 삼박자가 맞아떨어지는 것도 물론 자본력과 정보력이 존재해야만 하는 기초 자산일 것이다. 특히 천민자본주의가 심화되고 강력해질수록 없는 놈은 점점 더 약탈당하듯 자본을 축적할 수 없게 될 것이고 극히 소수의 재벌가들은 평생 다 써도 못 쓰고 죽을 만큼의 자본이 집약되는 형국이다. 기울어진 자본의 운동장에서 달리는 모든 사람들이 해당된다고 보면 맞다. 신발에 모터가 달린 사람이랑 맨발로 달리는 사람의 자본적 추력은 어마어마한 차이가 벌어지는 것. 자본의 추력은 자본주의에서는 기본이기 때문이다.

 

학교 전공을 도시계획이었다. 즉 개발 정보에 접근하기 유리한 공부도 했었다. 개발 사업에 따라 부동산 가격은 진폭 파동을 이루기 마련이기에, 즉 토지이용에 따른 토지의 가격이 결정되기도 한다. 전공 수업 때 지대론(부동산 가격론)은 거의가 토지이용에 관한 것이었으나, 그동안 살아오면서 부동산 투기 혹은 투자는 한 번도 해 본적도 없다. 게다가 회사 업무도 부동산에 관한 것도 많이 있고 토지에 관한 법률이나 부동산 개발 등 건축에서 다루어왔다. 그러나 중이 제 머리 못 깎는다고 왜 당신은 하지 못하는가라고 와이프로부터 평생을 타박 받았다. 알지. 왜 모르겠나. 정보력도 관련 공부도 다 되어 타이밍도 찾아 잴 줄도 아는데 단 하나의 관건은 자본력이었더란 말이다. 자본이 천박해질수록 돈이 돈을 버는 구조에서 가장 중요한 자본력의 부재는 자본의 집약에 최대 걸림돌이었다는 걸 와이프는 간과 한 것일 테다. 월급만으로 내 살 집조차 하나 건사하기에는 이젠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즉 자본 시장에 진입 자체가 불가능한 사람들은 열심히 일해도 늘 자본 시장에서 노는 사람들에 비해 늘 뒤처지기 마련이다. 그러니 그 시장에 입장할 수 없어 거래할 수 없다면 뻔한 거 아니겠는가. 나도 물론 이 시장에 입성조차 못했다. 따라서 자본력이 계속 불로소득의 자본으로 집중될 때는 노동이나 근로가 폄하된다. 진짜 뭐 빠지게 일해도 노동 푸어가 된다는 이야기이다. 자본주의 시장에서 자본의 축적 없이 하루 벌어 하루 먹는 사람들의 일상은 늘 그자리만 맴돌 뿐이고 혹여 그 자리마저 잃게 되면 바로 나락으로 추락하는 급진 하강이 삶을 무수히 봐왔지 않았던가 말이다. 열심히 일 하는데 왜 늘 부족하고 점점 빼앗기는 것처럼 가난한가라는 질문의 답은 열심히 일해도 벌어서 축적할 동안 자본은 더 많이 축적되니 항상 허덕거리는 결과를 낳게 되는 거다. 하다 못해 열심히 농사 지어서 버는 소득보다 어느 누군가의 땅이 개발사업에 수용되어서 보상금으로 몇 억을 벌었다는 이야기는 가끔 한 번쯤은 들어 봤을 것이다. 이게 자본의 기회론에 수렴된다. 어디에 어떻게 무슨 위치에 있는가에 따라 결과는 얼마든지 달라진다. 우리 인생도 마찬가지다. 누구의 아들로 태어나는 것인가에 따라 인생이 달라지는 것도 전혀 도외시할 수 없는 본질적 운명은 다 가지고 있는 셈이다. 땅도 마찬가지이다.

 

주제넘은 생각이었지만 한동안 비교적 자주 땅을 보러 다녔다. 무슨 대단한 자본력으로 투기하고 싶어서 토지를 구하려 하지는 않았다. 얼마 있지 않을 은퇴도 대비해야 하고 그동안의 살아온 도시의 삶을 청산하고 싶은 마지막 욕망이었는데,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 이 욕망이 너무나도 어렵고 고단하다는 걸 깨닫게 된다. 지역적인 거리를 감안하고 주변의 환경을 고려하고 풍경과 조망을 고려하고 접근성을 따지는 등등의 조건과 토지의 형상과 풍수지리를 보고 게다가 이에 따른 지대 가격에 상관된 자금을 생각해보면 정말 터무니없이 올라가는 땅값을 따라잡을 방법이!~ 난감 난감이다. 2-3년 전의 땅값이 현재는 평당 몇십만 원 오르는 걸 무슨 노래 부르듯 올라 버리는 호가에 기겁하고 놀라기만 한다. 올라도 너무 올랐는데 자금력은 상대적으로 점점 반비례로 턱없이 부족해져만 가는 상황이다. 쌓이는 속도에 오르는 가격을 쫓기가 너무도 어렵다. 게다가 계획하는 토지이용을 할 수 없는 땅은 누가 공짜로 줘도 소용이 없다. 필요한 토지는 가격만 들입다 비싸지고 별 쓸모도 없는 토지조차 꾸준한 인상의 욕망에 바람만 잔득 불어 댄 꼴이다. 시골이나 산골에 인구가 급격히 줄어간다고는 하지만 시골에 땅을 소유한 사람들의 욕망 또한 강력하기 때문에 쉽게 내놓지 않는다. 새로운 인구 유입이 차단된 상태에서 시골 산촌 땅은 잡풀이 우거진 버려진 땅으로 전락할 가능성이 많다. 소위 묵전이라고 묵은 전답은 농사짓기 점점 어려워질 텐데 관리가 전혀 안된 땅들이 많다. 게다가 시골에 무슨 놈의 전원 주택 단지를 조성하는 땅 장사는 그리도 많은지, 온통 산을 깍고 전답을 매워 주택 부지로 분양을 하고 있는데 여기에 부지 조성공사에 토목공사로 투입된 자금의 본전을 생각하고 이익을 얻다 보니 터무니없는 높은 분양가격이 형성되는 형국이다. 전 국토가 부동산에 망조가 들어가는 걸 보면 토지의 필수적이고도 삶의 주거안정성에 토지의 역할이 오히려 방해되는 꼴을 낳고 만다. 지금 생산성이 전혀 없는 부동산에 발목이 잡힌 부채가 얼마나 될는지 수백 조는 넘을지도 모르겠다.

 

이제는 전처럼 열정적으로 땅을 보러 갈 의욕도 사라졌다. 그렇다고 포기까지는 아니더라도 어떻게 상황이 전개될 것인지 지켜보자는 심산이 강하게 일어난다. 어차피 쉽게 이루지 못할 거라면 당분간 지켜보며 상황이 어떻게 변화하는지 가름해보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듯하다. 뭐 그렇게 더 오르다 보면 자연스럽게 지금의 자금력으로 소화를 못 시킬 요건이라면 아예 깔끔하게 단념하는 것도 마음 조림이 덜할지도 모르겠다. 이게 다 뭐라고 아둥바둥할 필요가 있겠는가. 그렇게 소원하고 욕망을 한다 해도 종국에는 내가 다 내려놓고 떠나야 할 건데 왜 악착같이 열정의 에너지를 소모시키며 삶을 고갈시켜야 할 것도 아니란 거다. 되면 되고 말면 말자. 바락바락 달려들어도 찾아지지 않는 것들에 소모시키지는 말아야겠다. 시간은 늘 희나리처럼 흰 재처럼 날아가 버리는데 말이다.

 

어디 겔러리 하나 지을 땅 없나? 나참.


댓글(18) 먼댓글(0) 좋아요(2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cyrus 2019-06-01 16:0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땅을 살 수 있는 자금을 마련하는 것이 쉽지 않지만, 무엇보다 갤러리를 짓는 데 거의 완벽한 조건을 갖춘 땅을 찾는 일이 더 어려운 것 같아요. 여러모로 생각이 많아지겠어요.

yureka01 2019-06-02 11:50   좋아요 0 | URL
핵심입니다..자금이야 무리해서라도 조건에 맞는 땅을 찾으면 질러 볼텐데...찾아도 보이질 않으니 말이죠..

2019-06-01 16:2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6-02 11:52   URL
비밀 댓글입니다.

겨울호랑이 2019-06-03 13:03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땅을 사랑하는 이들이 많음에도 제대로 된 농촌 문제 해결책을 제시하지 못하는 것은 아이러니이면서 비극이라 여겨집니다...

yureka01 2019-06-03 13:31   좋아요 2 | URL
시골분들 거의가 70대 80대입니다..앞으로 10년 내 급격한 도시인들의 유입이 없다면,
공동화현상이 일어납니다. 지금도 공동화가 진행중입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땅값은 반대로 오르는 기현상이 발생하더군요..
부동산업자 때문인지 아니면 소유자의 욕심 때문인지 아니면 시골 땅 수요가 갑짜기 폭증해서인지는
모르겠으나 상황이 그렇습니다.
저처럼 자금력이 부족한 사람은 점점 시골로 귀향이 멀어지는 듯하네요...
모아도 오르는 땅값에는 턱없으니까요..
조바심 내지 않기로 했습니다. 땅도 다 인연이려니...합니다...

강옥 2019-06-04 10:5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언제부턴가 시골길 가다 보면 뜬금없이 갤러리가 나타나곤 하더군요
작업장 겸 갤러리로 사용되는, 거의 문이 닫혀있는, 필요에 따라 개방하는 -
사진이나 그림하는 분들의 로망이 갤러리카페나 갤러리주택일 겁니다.
전자는 상업용이고 전자는 주거용이겠지만, 좋아하는 사람들과 즐기는 정도지 싶어요.
단순 귀농이나 귀촌이 아니고 갤러리를 꿈꾸신다면 여러가지 생각할 것들이 많겠지요.
돈만 있으면 해결되는데, 그넘의 돈이 어디 가서 안 오는지 ㅎㅎ
도시계획 전공하셨으면 공무원으로 취직, 관공서에 들어가서 알짜 정보를 선점(?)할 수도 있었을텐데 ㅎㅎ

일주일 외유에서 돌아오니 반가운 유레카님의 글이 올라와있네요
날씨 더운데 컨디션 관리 잘하이소~~~

yureka01 2019-06-04 11:34   좋아요 1 | URL
사진으로 돈 벌 수 있을 만큼의 지명도나 명망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사진 재주가 월등한 것도 아니라서..겔러리 하면 ...즉각 망하는게 상업용이라서요..
그러니 상업용 겔러리는 제 주제에 과분한 거라서 ...
그저 사진 즐김용이나 은퇴후의 2막의 삶은 꼭 내가 하고 싶은 걸 하고 살았으면 좋겠다 싶어서요..
일단 시골로 가면 돈이 많이 필요가 없어서요..투자할 자금만 있으면 시골 살이 유지는 그리 많이 필요한게 아니라서 가능할듯해서요..
어릴때 아주 가까운 사람이 공무원이라서..공무원하면 제 숨이 막힐듯해서 안했습니다..ㅎㅎㅎㅎ
요즘은 공무원이 1등 직업군이더만요.

네 여름 시작이네요..감사합니다!~

2019-06-04 14:4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6-07 09:0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6-17 13:5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6-17 14:0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6-20 04:2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6-20 08:5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6-22 13:1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6-23 21:3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6-26 11:4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7-26 09:28   URL
비밀 댓글입니다.
 

 

 

 

 

 

 

 

 

 

 

 

 

자주 사용하는 카메라가 늙었는지 최근에는 여기저기 고장이 난다. 특정 모드(흑백의 거친 톤 모드)로 사진을 찍으면 큰 반점이 나타났다가 컬러로 담으면 반점이 나타나지 않는다. 혹시나 렌즈나 센서에 먼지 때문인가 의심했었다. 먼지라면 어떤 사진이든지 모두 나타나야 하고 청소하면 되지만 이와는 별개로 꼭 특정 모드에서만 반점이 출몰한다는 점이다. CCD 센서에 뭔가 전기적 이상이 있는 것이 아닌가 추측 할 뿐이다. 게다가 가끔씩 LCD 모니터가 일그러진 영상이나 혹은 빛바랜 듯한 푸른 톤의 깨진 영상이 보일 때는 깜짝 놀라기도 하고 카메라를 재부팅하면 금방 사라지기도 한다. 뭔가 증상이 왔다 갔다 하면서 서서히 맛탱이 가려는 거 같은 현상이 나타난다. 이런 증상이 반복되고 확대되면 사망에 점점 다가가는 게 꼭 우리 삶의 시간과 다르지도 않을듯하다. 어떤 날은 메모리가 인식이 되지 않는 적도 있었다. 분명 메모리가 들어 있는데도 불구하고 메모리가 없다고 나오거나 메모리 오류로 표시되고 셔터조차 눌러지지 않는 증상들이다. 이 정도면 늙은이 근근이 숨구멍이 붙어 있는 셈은 아닐까 싶다. 그러다 초기화하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말짱하기도 하고 이내 또 비슷한 증상이 반복적으로 보인다. 이 카메라는 나날이 리프레시의 낡아가는 역사를 보여주는 건가 싶었다.

 

비교적 큰 카메라가 있어도 일상에서 단출하게 다니기에는 사이즈가 작고 아담한 크기여서 들고 다니기 딱 좋은데 이걸 어쩐다 싶다. 고치려고 하니 마이너 브랜드라서 지방에는 변변한 수리 센터가 없다. 처음 구입할 때 가격이 70 정도 줬는데 지금 가격을 보니 반 토막 이하의 가격이다. 게다가 A/S 보내려고 하니 또 어디로 보내야 할지 알아봐야 하는 성가심이 뒤따르다 보니 차일 피일이다.

 

그래서 최근에는 동일 브랜드의 카메라를 찾아 봤더니, 첫 초기 출시가가 거의 100이었는데 지금 보니 30을 겨우 넘는 가격을 보고 이렇게 많이 추락했나 싶을 정도로 놀랍기까지 하다. 이렇게 떨어진 가격이면 고치는 것보다 아예 하나 더 구입을 해도 되겠다는 생각이 얼핏 스친다. 까짓 거 뭐 있나 지르고 보는 거? 문득 카메라를 검색하다가 써보지 못한 카메라에 대해 설레지가 않는다는 걸 보고 스스로에게 또 놀랐다. 처음 D_SLR 카메라를 살 때의 떨리던 마음으로 카메라 박스를 열었었는데 이제는 심드렁하기까지 한다. 나도 호기심의 예각은 많이 뭉그러졌구나 싶었다. 게다가 가격이 출시가에 비해 1/3이라면 충분히 질러야 맞는 건데 카메라를 봐도 설레지가 않는다니.

 

최근에 딸아이가 아이폰에 끼울 에어 팟을 이야기하길래 중간시험 치면 질러라고 했다. 귓 구멍에 꼽는 게 그리 비싼 줄은 몰랐으니까. 고작 이어폰인데 흔쾌히 질러라 하고 나서 가격 보고 완전 깜놀~. 내뱉은 말을 도로 담을 수는 없었다. 괜히 했나 싶어서 조금 후회? 가 밀려들었지만 어쩌겠나, 딸아이에게 약속을 해버렸으니까 시원하게 송금했다. 딸아이는 그냥 한번 해본 소리라고 넘어갈 줄 알았으나 대뜸 아빠가 돈을 보내 주니 놀랐다고 했다. 어떤 물건을 가지고 싶어서 가졌을 때의 기쁨이 이젠 나에게 없다는 것의 슬픔이 밀려들었다. 그리고 그게 뭐라고 가져서 기뻐하는 딸아이가 대뜸 부러워졌다. 딸아이의 진단은, 아빠가 가지고 싶은 것을 가질 수 있는 충분한 조건이 되니 심드렁 한 거라서 가지고 싶은 마음이 적다고도 했다. 몇억이나 하는 차를 타고 다닌 것도 부럽지도 않는 건 왜 일까라고 다시 물었다. 계속 사진을 찍기 위해서는 카메라가 필수인데 점점 고장이 늘어가는 카메라를 대체할 욕망이 줄어든다는 것의 의미는 무슨 심리적인 현상일까 싶었다.

 

가끔 일종의 수집을 좋아하는 사람을 볼 때면 부럽기도 하고 때론 허무하기도 하다. 모아 놓고서 스스로가 흐뭇할 수 있는 마음이라는 게 충족되어 어느 정도 규모를 압도하게 되면 작은 박물관것과 같은, 물건이 자신의 아이덴티티를 규정하는 것처럼 자신의 생의 업적화가 되기도 한다. 문화재 수집가들이 그랬고 심지어 우표 수집이나 병뚜껑 수집하다 못해 라면 봉지의 수집만으로도 그러하기도 하다. 카메라 기종을 섭렵하고 새로운 카메라를 모으는 컬렉터들의 자신의 심도 있는 물건의 집착이 다 비슷한 심리상태가 아니었던가 말이다.

 

심리적으로 정서의 결핍은 끝임없이 물건의 탐욕으로 발전된다. 채워도 채워지지 않는 갈증 같은 거. 이른바 수집벽이란 둘 중 하나이다. 하나는 수집함으로써 돈벌이, 즉 투기적 가치의 경제적 활동이거나, 아니면 심리적인 허기의 충족이 물건으로 대리적인 집착하는 경우이다. 아니면 또 좋아하는 선호의 취향이랄 수도 있을 것이다.

 

있으면 찍고 없으면 말고.... 다시 말해 살면 살고 못살면 안 살고.... 계속 그런 말이 뇌리 속에서 맴돈다. 억지스러움들이 온통 일상의 번뇌를 사로잡아버리는 거 같다. 그래서일까. 오늘 사진 블로그 지인의 글에서 사진에 힘을 빼라는 말이 유독 마음을 휘감는 느낌이 든다. 잔득 힘이 들어간 듯한 글과 사진들. 무거운 주제들, 어쩔 수 없었던 운명이란 핑계로 점철된 글들과 운명을 자책하는 못난 마음들. 이런 것들이 계속 어찌할 수 없는 것들에 대한 결핍으로 스스로를 괴롭히는듯하다. 그저 한 세상 힘 빼고 설렁설렁 물 흐르는 것처럼 순리대로 흐르면 될 텐데 왜 이 억지스럽게 아등바등 거리며 욕망으로 불만으로 생의 아까운 시간을 소모시키고 있을까.

 

카메라도 마찬가지다. 더 좋은 기종을 가져 본들, 더 이상 무슨 소용이 있을까라는 마음이 고개를 처들게 되니 새로운 카메라에 흥미가 엷어져 가는 느낌도 가지게 되는 원인이다. 결국은 찍고 싶은 마음 없이 찍는 것. 살고 싶은 마음도 없이 사는 것. 그래야 비움이란 무엇인지에 대해서 이 자체를 내려놓을 수 있지 않을까 한다. 스스로를 방임하고 싶을 때, 악착같음을 내려놓고서 하늘을 자주 보고 싶은 진정한 자신만의 충족감이 시시때때로 그립다. 늘상 허기지는 부족함 등이 어떤 물건으로 아무리 집착해도 영원한 것도 아무것도 없다는 걸 너무나도 잘 알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도 그럴 것이 자고 일어나면 새로운 모델의 제품이 쏟아진다. 하기야 자본주의 물질 사회에서 항상 뉴페이스의 모델이 등장하고 새로운 호기심으로 사람의 욕구를 채우게 해서 어마어마한 차액을 남기는 시대가 아니었든가 말이다. 마음의 허기를 물건에 투사시키기에 너무나도 풍족한 사회인 반면에 제품의 사용주기는 점점 짧아지고 또는 싫증 나게 만들고 비교하게 만들어 물건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대입시키게 만든다. 뭐 빠지게 일하고 벌었던 돈은 그렇게 카드 값으로 술술 빨리는 인생이 공허하지 않을까 싶다. 우선 당장에 뽀대는 그럴싸한데 흡사 목이 말라 마셔도 마셔도 갈증이 사라지지 않는 증상은 현대인의 고질병 같은 착각이다. 매달 카드 값에 월급이라고는 정거장처럼 거쳐 나가버리고 또다시 할부의 유혹은 그칠 줄 모른다. 과연 이게 발전이란 말인지 종종 헤맬 때가 많다. 결정적이고 핵심적인 기능은 거의 변함이 없이 비슷하게 작동을 해도 디자인과 모델을 변경하고 껍데기의 폼을 바꾸는 리빌딩이라는 이름들. 리체인지라는 단어에서 정작 실속도 없는 허상에 대한 만족을 찾으려고 한다. 기능이 추가될수록 가격이 올라가지만 마음에 부는 변덕은 이내 곧 허기로 더더욱 강력한 자극을 바라게 된다. 하루가 다르게 변화된 모델의 넘버는 이제 따져 보기에도 벅찬 시대가 되었다. 그러면서 할부의 카드값은 온갖 혜택으로 무장하고 공짜심리를 발동하게 한다. 소비의 허기가 소모의 인생과 별반 다를 바가 없다. 자원은 고갈되고 소비로 양산된 폐기 처분된 쓰레기와 만들어지는 유해물질들과 공해 환경은 전 지구적 현상으로 사람의 건강을 위협한다. 지구의 온도는 점점 뜨거워지고 오늘에 내가 쓰다 버린 일회용 비닐은 어느 바다를 떠돌다 거북이의 뱃속에서, 썩어가지도 못한 채로 생태계를 파괴시키고 있는 셈이다.

 

이 세상에 태어나서 과연, 죄가 없는 사람이 없는 이유이다. 쓰다 버린 것들의 유해성이 곧 죄악이다. 그러나 현대 산업 자본 사회에서 아무것도 소비하지 않고는 살 수가 없는 조건에 부닥친 사람은, 태어나자마자 자원의 소비라는 측면에서는 어쩔 수 없는 원죄가 발생하지 않을 수가 없는 까닭이기도 하다. 1g의 비닐도 안쓸 수가 없고 1g의 플라스틱을 안쓸 수가 없다는 것이 죄의 근본 원인인지도 모른다. 이런 죄로 저지른 업보는 결국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후대로 유전되고 전승되어 갈때, 농축되는 악조건의 환경을 물려주는 꼴이다. 그러면서 또 많이 낳으란다. 이 얼마나 존재론적인 모순이며 이 얼마나 치명적 오류인가. 자본의 무한대적인 수익이란 욕망으로 파생된 병든 환경은 결국 인간의 생존에 대한 병들어가는 증상인 거다. 뭐 어차피 죽을 거 팍팍 써보고 죽자라는 자살적 행위들이 야금야금 오늘도 쉬지 않는다는 점이다.

 


댓글(16) 먼댓글(0) 좋아요(3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겨울호랑이 2019-04-29 22:35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시간이 갈수록 쏟아지는 신제품 때문에 제품에 익숙해질때 쯤 교체해야 하는 경우를 많이 경험합니다. 새 것을 사용하는 즐거움도 있겠지만, 손에 익은 제품을 사용하는 편안함을 더 느끼고 싶어집니다...

yureka01 2019-04-30 08:58   좋아요 3 | URL
멀쩡하게 사용할 수 있는 제품도 ..신상에 밀려서 교체되는게 많을 겁니다..
기능은 편하게 바뀌겠지만 결국 남는건 쓰레기만 늘어나죠..


강옥 2019-04-30 06:3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올림푸스, 와락 반갑네요~
필름 시절에 저 카메라 엄청 인기 좋았거든요
하프 사이즈로 48장이나 찍을 수 있었던 추억의 명기 ㅎㅎ
친구들 사진 찍어 뽑아주면서 알바하던 친구도 있었는데
그땐 사진이 그만큼 귀했거든요. 인화지도 엄청 작고 더군다나 흑백
그래도 우린 그 사진 딜다보며 참 행복했는데
물자가 흔한 이 시대, 유행따라 가기도 벅찹니다 ㄷㄷㄷ

yureka01 2019-04-30 09:01   좋아요 1 | URL
제가 올림푸스 하프 팬입니다..ㅎㅎㅎㅎ
소시적 수학여행갈때 가지고 갔던 카메라가 올림푸스 pen이었어요...
그 모델의 디지털버젼이 E-pan 시리즈인데요..이거 가지고 있거든요.

네 필름 한 컷에 두장 찍히는 ....카메라..필름값때문에 사진 많이 못찍을때..두배로 찍게 해주었던 카메라..
선연하네요...ㅎㅎㅎ

페크(pek0501) 2019-05-02 12:0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스마트폰의 출현이 한몫할 듯싶어요. 다들 폰으로 사진을 잘 찍는 세상에 특별한 카메라가 주는 의미의 무게가
가벼워질 것으로 생각됩니다. 저 역시 예전엔 좋은 카메라를 갖고 있는 사람을 부러워했다면 지금은 그렇지 않거든요.

그러나 유레카 님처럼 전문가라면 여전히 카메라 욕심이 있을 듯한데 그렇지 않다면 나이가 들어가고 있다는 증거가 아닐까 싶네요. 저 역시 많은 것들이 시시해지는 걸 느끼곤 하거든요.
다행인 것은 어제 책 5권이 배달됐는데 책은 여전히 저를 설레게 하더라고요. 제발 이 설렘마저 나이 들어가면서 없어지지
않길 바라는 마음입니다.

사진에서 예술성이 느껴집니다. 감탄!!!

yureka01 2019-05-02 17:21   좋아요 1 | URL
네 지적하신 것처럼 스마트폰의 위력이 카메라 수요를 급감시켜 버렸죠...
그런데..스마트폰으로 도저히 사진이란걸 못찍겠더군요..

네 예봉이 무뎌진다는 것이 나이와 상관 있긴해요^^..

2019-05-04 15:2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5-07 09:5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5-21 00:2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5-21 08:5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5-22 13:2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5-23 12:1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5-30 16:3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5-31 09:05   URL
비밀 댓글입니다.

서니데이 2019-05-31 23:1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휴대전화로 사진을 찍는데, 휴대전화를 오래쓰면 점점 예쁘지 않게 나오는 것 같아요.
계속해서 높은 화소의 카메라 기능이 나오고 있어서 그럴 것 같기도 하지만,
어쩐지 선명도 같은 것들이 처음 샀을 때에 비하면 좋지 않은 것 같은 기분이 됩니다.
휴대전화와 달리 유레카님이 쓰시는 카메라는 고가라서 자주 바꾸기도 어려울 것 같습니다.
좋은 사진을 찍는데는 여러가지가 많이 필요한 것 같아요.

유레카님, 오늘까지 5월입니다.
내일부터는 새로 6월이 시작되는데,
즐겁고 좋은 일들 가득한 6월, 그리고 좋은 주말 보내시면 좋겠습니다.
편안한 밤 되세요.^^

2019-06-01 08:53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