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라딘 서재에서 책을 읽고 독후감이란 빌미가 글쓰기의 동기였으나, 책을 읽고 치미는 감정을 토로하는 글도 간간이 쓰게 되기도 하고, 혹은 이외에도 책에 관해서거나 이에 대한 생각하는 것들에 대해 적은 글도 있다. 어쨌거나 무슨 글이 되었든 간에, 이를 통틀어 글쓰기라고 하자. 을 쓰다 보면 느끼는 감정들이 몇 가지가 있다.

첫 번째가 글의 문장을 지어 낼 때, 나 스스로가 글을 잘 못쓰는 구나하고 새삼 느끼게 되는 부분이다. 문장 구성이 이상할 때도 많고 중구난방으로 산만하기도 하고 간간이 글의 논점인 주제를 잃고서 엉뚱하게 삼천포로 빠지기도 한다. 또는 비슷한 주장을 계속 반복하는 경우도 있다. 했던 이야기 또 하면 글은 상당히 재미가 없게 된다. 더구나 누구라도 지적할 수 있는 오자와 탈자, 심지어 맞춤법과 띄어쓰기조차 틀리는 것도 너무 많다. 아마 이 글조차 틀린 문장이나 잘못된 문장과 다른 맞춤법이 있을 것이다. 결국, 이게 나의 국어 실력이요, 문장 실력이라 느끼는 부분이다. 항상 포스팅하기 전에 맞춤법 검사로 확인해도, 맞춤법 검사한 글이 제대로인지 검증하기도 벅차다. 문장 검사는 나중에 AI 문장 검사기를 기다리기로 하자. 뭐, 너무 잘 쓸 수 있는, 그런 재능 있는 것도 아니고, 이를 일찍 감치 발견했더라면 작가했을 거 같지도 않다. 글쓰기에 제대로 못 되는 실력이라는 걸 스스로가 알아차리는 부분이라는 점이다. 글을 쓰게 됨으로써 나의 부족을 알아차리게 된다. 읽기는 먹는 것이고 글을 쓰는 것은 토해서 게워 내는 거다. 어쩌면 글이란 우웩 우웩 흥건하게 게워 내야만 속이 편해지는 건지도 모르겠다. 가슴에 담아두면 병나거든. 비록 못나게 쓸지라도 글은 쓰야 한다. 써지기도 하고... 

두 번째가, 글을 쓰다 보면 모르는 것이 많다는 지식의 결핍이다. 무엇에 대해 글을 쓴다는 것은 신처럼 전부 다 알아서 줄줄 나오는 것이 아니더라도, 어느 정도 개념을 잡고 글을 써야 하는데 자주 모르는 것들에서 막히는 경우가 있을 때다. 글을 쓰게 됨으로써 나의 무식함이 가장 잘 들어 나는 부분이다. 글은 무식해야 쓰게 되는, 그러니 계속 책을 찾게 되는 동기가 되고, 또한 원인이 되는 것은 아닐까 한다. 글을 쓰면 모르는 게 많다는 걸 느끼는 것. 글쎄 글을 안 쓰면 많은 걸 안다고 착각하게 된다는 점이다. 글쓰기는 내 결핍의 확인 용이라는 점. 글을 쓸려면 계속 지식을 배우는 공부가 필요한 이유이다. 물론 많이 배운 학자나 지식가들의 글이 전유물처럼 대체적으로 글은 많이 배워야만 나오는 게 맞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몰라도 알아가면서 쓰야 하겠지. 

세 번째가 사유가 부족하다는 것도 느낀다. 아는 것이 부족하니 동원할 단어의 부족과 생각의 부족으로 나온다. 치밀하지 못하고 엉성함의 글쓰기는 사유 부족의 증명과도 같다. 고전적인 명언인 "인간은 생각하는 갈대"라고 했다. 그러나 생각하는 갈대가 되려면 일단 뭐라도 쓰려 들면 사유가 얼마나 치밀하고 깊은건지 그 정도가 나온다. 얄팍한 것임을 느끼는 순간이 바로 글쓸 때 나온다. 흡사 빨랫감에서 수분이 툭툭 떨어질 정도로 맺혀야 물이 떨어지는데 비틀어낸 수건은 뒤틀리는 어색함이 나온다.

그래서 글을 자주 써봐야 자신의 부족함과 결핍을 알아가는 과정이 아닐까 한다. 스스로 무식함을 들어내고, 스스로 부족한 단어를 들어 냄으로써 이 반작용으로 더 추구되는 책과 글쓰기로 이어지는 동력인지도 모르겠다. 그래. 작가도 아닌데 왠 글쓰기라고 말할는지는 모르겠으나, 내가 얼마나 무식하고 부족하고 덜 익어 설었는지 글을 자주 써보면 안다. 그것도 장문의 글 A4나 원고지 몇십 장 되는 글을 써보면 글 문이 막히는 게 어디 한두 번도 아니란 것을 느낌다. 단어 몇 개로 어디 인터넷 댓글하고는 차이가 많다. 마음 같아서는 청산유수처럼 글이 줄줄줄 나오면 얼마나 좋을까 바라는 삶이겠지만 보잘것없다는 걸 느낀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은 글을 쓰는 자와 쓰지 않는 자로 나눌 수 있다. 글쓰기가 주제이니까 글을 쓰지 않는 자에 대해 논외로 하고, 글쓰는 자에 대한 생각도 있다. 글을 잘 쓰는 자와, 나처럼 글을 자유자재로 못 쓰고 부족함으로 글을 쓰는 경우로 나눈다. 물론 난 후자다. 여기서 문제는 글을 못 쓴다고 해서 글을 안쓰게 될 때의 문제이다. 앞으로 돌아가서, 글을 쓰는 자와 안 쓰는 자의 구분에서 글을 안 쓰는 자의 가장 큰 이유와 변명이 글을 못쓰니까 안쓴다라고 하는 거다. 문맹이 없는 사회라고는 하나, 읽기에 못지않게, 글을 쓰지 못하는 것도 역시 문맹이나 마찬가지로 같다. 글 한줄 쓰지 않는다는 것의 문맹은 읽는 것과 어떤 차이가 있는가?

글을 안쓰게 됨으로써 벌어지는 사유 부족을 못 느낀다. 무식해도 글을 안 쓰니, 내가 얼마나 아는게 빈약한지를 모른다. 그래서 글 쓰지 않는 사람들 중에 많은 자들이 세상에서 자신이 평균 이상의 지능으로 내 지식이 좀 많다고 느낌적 느낌으로만 아는 경우가 많다. 아무리 내가 해본 것들을 문장으로 서술하기 위한 것에서 아무것이나 쓰지 못할 때, 결국 생각의 정리와 일관성이 부족한다. 생각이 다듬어지지 못하며 산만하여 두서없는 굴곡진 생각만이 머릿속에서 요란을 떨고 있을 뿐이다. 불쑥 불쑥 스치는 생각이 정리가 안된다면 이는 글쓰기 부족으로 연결된다. 이는 글을 써보면 안다. 지식을 정리하고 생각이 얼마나 정리가 되어야 글이란 문장으로 나열하여 논지의 맥락이 일관되게 나올 수 있는지를 말이다.

내가 대학 입시 때 처음으로 도입된 논술시험이 있었다. 학력고사의 점수와 지원한 학과에서 다시 논술시험을 쳐서 학력고사와 논술시험의 합산한 성적으로 합격 여부를 가렸다. 그러다 입시제도가 바뀌면서 논술시험이 사라져 버렸다. 그 당시 소위 이름있는 유명한 대학을 지원 실력도 없어서 논술시험에 대비해서 해봤자 고작 신문의 사설을 자주 읽으라는 논술시험을 대비용이었을 뿐이었다. 글을 쓰라는 것은 없었다. 논설을 쓰는 기자들이야 글로 밥먹고 사는 사람들이라 글이 논지에 부합하게 써 내려가겠지만, 사실 논술 시험에 무슨 문제가 나와서 어떻게 문제지의 여백을 글로 매울 수 있을 것인지 재대로 교육 받은 것도 없었다. 그나마 수험서를 제외한 여러 가지 책이라도 읽은 학생들이야 이런저런 조합으로 글을 써 내려갈 수 있을는지는 모르겠으나 책도 변변히 없었기도 했지만, 읽기만 했지 쓰지는 못했고 막상 쓰려 하면 어떻게 첫 스타트의 단어를 적으면서 이어가야 할지 참 난감했을 것이다. 이런 논술시험은 얼마 지나지 않아 폐지되어 버렸다. 요즘의 대학 입시에 별도로 논술 시험만으로 전형을 하는 경우도 있다. 아쉬운 것은 정원의 몇 퍼센트로 제한되어 있다는 점이다. 일단 기본적으로 대학에서 수학 능력을 평가하려면 지식도 중요한데 가장 기본적인 것은 글쓰기 즉, 논술이 아닐까 한다. 논술이 왜 필수가 되지 않는 이유는 뭘까. 상당히 아쉬운 부분이 아닐 수 없다. 리포트를 하나 쓰더라도 글쓰기 작문이고 전공 시험을 보더라도 대부분 논술로 답을 적는데, 어떻게 입학시험에서 논술시험 전형으로만 국한 시키는 건지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다.

쓸려면 일단은 뭐든 많이 읽어야 한다. 읽지 않고 글이 쉽게 나오는 경우도 있긴 하나, 이는 글쓰기에 특출난 사람일 테고 대부분은 뭐든 읽고 정보를 얻어서 사유가 결합되었을 때나 가능하다. 두서 없이 섞여 있는 견해를 논지에 적합하게 풀어 체계화시켜 나가는 작업이 글쓰기일 것이다. 에세이나 소설, 시와 산문형식의 글도 형식에 걸맞은 글쓰기는 결국 기본적인 토대가 쓰기란 생각의 정리로 요약할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글쓰기는 일종의 마음의 배설이다. 들어간 인풋에 아웃풋이 없을 때 사람은 정신적으로 탈출구가 없다. 쌓인 것이 울분이라면 쏟아야 하듯이, 쌓인 감정이 축적될수록 눈물의 량과 농도가 짙어지며 이것을 글로 풀어 낼 때, 시원함을 느끼는 것처럼 화장실 안 가는 사람이 없듯, 글도 비슷한 것이 아닐까 한다. 어떤 노인네가 자신의 굴곡진 삶은 소설 3권도 부족하다고 토로한다. 그만큼 쌓인 것이 많다는 의미일 것이다. 그러나 소설처럼 일기라도 3권을 풀어써보면 이게 자서전이 된다. 어느 인생이든 쉽게 넘어가는 경우가 잘 없다. 늙어간다는 것은 쌓인 게 많아 무거워진다는 거다. 결국 쏟아내듯 토로하듯 글을 쓰다 보면 자신의 삶이 정리가 되고 자신의 삶에 어떤 의미를 부여하게 된다. 또한 누군가 그 글을 읽게 됨으로써 자신의 삶의 과정을 알게 되어 공감하고 교감할 수 있는 바탕이 곧 글이 될 것이다. 죽기 전에 다 쏟아 놓고 게워 내고 나면 떠날 때도 홀가분할지도 모르겠다. 가지런히 정돈시키고 물려줄 건 물려주고 버릴 것은 버리고 살아온 삶의 사랑은 가져갈 것도 생기는 이유도 바로 글쓰기가 아닐까 한다.

인류의 역사는 서술의 역사일 것이다. 역사가 쓰이지 못했더라면 역사는 기억 속에서만 존재하다가 사라져 버리는 시간일 뿐이다. 그런데 이 살아온 인류들의 역사가 기록되었기에 오늘날의 현재도 있는 까닭이다. 개인도 마찬가지이다. 비단 역사의 서술뿐만 아니라 개인적인 글 또한 역사의 일부이다. 그런 일부와 일부가 모이고 모여서 거대한 전체의 역사를 이루는 한 덩어리가 될 것이다. 글을 못쓴다고 주눅들 필요는 없다. 간혹 글 쓰라면 초등학생 생도 아니라며 고개를 가로 젖는다. 그러나 아무리 글쓰기에 대한 중요성을 강조한다 해도, 특히 밥벌이나 돈벌이를 위해 글을 이용하는 것은 위험성이라는 리스크를 안아야 한다. 그동안 밥벌이를 위한 글이 얼마나 목적에 순수한 글과는 거리가 멀다는 걸 모르는 바가 아니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익에 따른 글쓰기의 관건은 글쓰기의 목적에 대한 순수성이 글의 성격을 규정한다. 따라서 순수한 목적이 아닌 다른 어떤 목표에 의한 글쓰기는 언제든 자신이 쓴 글이 자기 목을 조를지도 모른다. 이는 글을 아예 안 쓰는 것만도 못할 수도 있다는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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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알벨루치 2019-09-11 14:5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글쓰는자가 되고야 말겠습니다 “마음의 배설”이란 표현이 너무 좋습니다 유레카님 추석명절 잘 보내십시오~

yureka01 2019-09-12 05:44   좋아요 1 | URL
그럼요.가슴에 뭔가 쌓아두면 이게 병이되죠.자꾸 풀어 내야죠..ㅎㅎㅎㅎ
카알벨루치님도 넉넉한 보름달 같은 추석 만드시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9-09-11 16:2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유레카 님 명절 잘 보내십시오

yureka01 2019-09-12 05:45   좋아요 0 | URL
^^ 곰발님도 명절 좋은 시간 많이 만나시길~^^..
감사합니다~

2019-09-11 16:3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9-12 05:4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9-11 17:4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9-12 05:4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9-11 19:2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9-12 05:49   URL
비밀 댓글입니다.

짜라투스트라 2019-09-12 00:3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정말 공감이 갑니다^^ 유레카님 즐거운 명절 보내세요~

yureka01 2019-09-12 05:50   좋아요 0 | URL
글쓰기 자신감이 저도 별로 없어요...
그런데도 불구하고 계속 써야하죠..
하다보면 조금 늘겠지요 뭐..ㅎㅎㅎㅎ
명절 즐거운 시간 많이 만나시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초딩 2019-09-12 09:5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항상 멋진 사진과 서평 감사합니다~
추석 연휴 잘 보내세요~

yureka01 2019-09-12 21:28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즐거운 연휴 되시고요..넉넉한 한가위 만드시길 바랍니다.^^..

2019-09-12 13:5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9-12 21:33   URL
비밀 댓글입니다.

서니데이 2019-09-12 13:5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유레카님, 추석연휴 잘 보내고 계신가요.
가족과 함께 즐겁고 좋은 명절 보내세요.^^

yureka01 2019-09-12 21:34   좋아요 1 | URL
네..기숙사갔던 딸아이가 오고나니 집이 꽉찬 느낌 좋네요...

즐겁고 넉넉한 연휴되시길..

감사합니다!~

강옥 2019-09-15 16:2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글쓰기의 기본은 독서라고 생각해요. 적어도 제 경험상으로는 -
초딩시절 어려운 가정 형편에도 불구하고 ‘새소년‘같은 잡지를 열독했고
활자라고 생긴 건 다 찾아 읽었던 것 같아요. 오죽하면 국어사전을 읽었다니까요
국어사전 속에 내가 모르던 낱말이 너무나 많아 잠도 안 자고 읽었어요. 얼마나 재미있던지.
책 때문인지 몰라도 상상력이 무궁무진해 한때는 만화가가 되고 싶기도 했답니다 ㅎㅎ
중학교 다닐 때 ‘여학생‘이라는 잡지에 소설을 응모해 가작인가 입선인가 했던 기억이 있어요.
‘학원‘이라는 잡지에 투고도 했지요. 참 옛날 옛적 얘기에요.
한때는 나의 개인사를 써보기도 했고, 집안 내력을 써보려고 작정하기도 했던..... ㅎㅎ
그 글쓰기의 오랜 역사가 오늘날의 블로그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덕분에 유레카님과 글과도 만나고.
죽기 전에는 글쓰기를 그만둘 수 없을 것 같아요.
잘 쓰건 못 쓰건 그냥 내 마음의 토로애 지나지 않을지라도. 유레카님도 그렇지 싶은데요 ㅎㅎ

yureka01 2019-09-15 20:50   좋아요 0 | URL
역시 소시적 부터 책을 좋아하실 줄 침작했습니다..
그럼요..읽는 것의 완성은 쓰기니까요.

저도 극히 공감~~~물론입니다..잘쓰건 못쓰건...쓰여야죠..

2019-09-16 10:4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9-16 12:4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9-17 13:4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9-17 14:15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9-09-17 16:3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책 읽고 그 내용을 글로 기록한 것을 말해야 합니다. 머릿속에 책에 본 내용, 글의 내용이 남아 있다고 해도 말을 하지 않으면 잊어버리기 쉬워요. 오류가 나도 좋으니 일단 머리에 있는 걸 꺼내야 해요. 그런 다음에 내가 말한 게 잘못됐는지 아닌지 점검해야 돼요. 예전에 읽었던 책이나 쓴 글을 다시 봅니다. 독서모임에 참석하면서 말하기의 중요성을 느끼고 있어요.

yureka01 2019-09-17 16:41   좋아요 1 | URL
글쓰기란 문장 구성과 말하기란 문장 구성이 좀 다르죠.
문어체와 구어체의 차이...

저도 말은 그닥 조리 있게 말하기가 글쓰기만큼 어렵네요.

2019-09-23 10:1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9-23 20:20   URL
비밀 댓글입니다.
 
구름의 연비 북즐 시선 1
조영래 지음 / 투데이북스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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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을 찍어 시와 접목시킬 때, 하이브리드(융합)이다. 직관과 은유가 합쳐 근사한 비빔밥같이 섞여서 피상에서 구상으로 발전하는 발견의 재미를 만들어 낸다. 사진만으로는 부족하고 시만으로도 안되는 것을 섞고 뭉쳐 조각하듯 지어낸다. 사진과 시의 문장을 통해서 발현되는 놀라운 관점의 발상이, 사진 시집 곳곳에 녹아 상상의 물이 염색되어 베여들었다. 창작이란 노력만으로는 안된다고도 한다. 시인은 하늘이 내는 거라고도 한다. 이는 하늘이란 뜻이 천부적 재능의 또 다른 은유적인 표현일 터다. 이런 발상의 놀랍고도 흥미로운 재미가 사진 시집을 읽는 묘미를 더한다. 가끔 생각해보면, 어떻게 이런 상상이 기립하며 조각할 수 있지? 혹은 어떻게 이런 사진 시선이 나올 수 있는지, 어떻게 시의 문장이 이렇게 기발한 단어로 조합할 수 있는지에 대한 흥겨운 의문이 나올 때가 있다. 사진의 직관적 시선에서 감정은 덩어리로 뭉쳐진다. 절묘해질수록 시의 문장이 간결한 진액처럼 진한 발효와 응축된 은유로 나올 때, 나는 즐겁다. 살다 보면 현실에서 만나는 게 대부분 머리 아픈 것들이 많은데, 이 사진 시집은 흥미와 재미를 더한다는 의미에서 진정으로 사진과 시의 조합이 눅진하게 다가오는 즐거움이다. 저자의 이미지적인 상념의 내공이 다져진 탓이 매우 클 것이란 짐작을 하고도 남는다. 게다가 오랜 시간 동안 내압을 높이고 드디어 흘러넘쳐 뿜어져 나오기 마련이다. 그 뿜어져 나오는 내공의 압력 분출. 이게 이 사진 시집으로 탄생된 배경일 것이라고 추측한다. 사진으로 보고서도 못 보는 것을 시로 인해 상상의 구체성을 보게 하는 게 짧고 그윽한 감탄으로 나온다.

 

그러나, 시는 내공만으로도 안된다. 시인을 흔히 농부에 빗대는 이유가 농사는 끈질김에서 나온다. 하루 이틀 한해 두해 이렇게 차곡차곡 지어야 한다. 농부가 농사를 짓는다고 하는 것도 시를 짓는 것과 다름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농자천하지대본처럼 시인천하지대본이라고 해도 이상할 것도 없다. 물론 사진도 시처럼 지어야 함은 두말할 필요는 없다. 그렇지도 모른다. 발현은 쌓임으로써 충족된다. 그래서 가을날에 곡식이 익어 추수를 하듯 시집은 익어가서 문장이란 열매로 나온다.

 

오래전 사진이 없던 시절에서도 그림 속에 시를 지어 문장에 그림을 덧댄 사례는 무수히 많다. 사진이 없던 시절에도 얼마든지 화가의 텍스트를 그림에 넣고 낙관을 찍어 퍼블리싱을 했었다. 그런 점에서 사진에 시를 녹이는 작업은 새삼스럽고 새로운 것도 아니다. 글이란 어디에 붙여도 문제는 없다. 그림의 내용을 압축하든 시의 은유를 그림에 첨부하든 그것은 어디까지나 작가의 자유의지에서만 가능하다. 그런 점에서 사진에 시 몇 줄의 힘은 사진의 힘과 합쳐져서 압축하며 압력을 높인다. 사진 시집을 받고 나서 읽은 후, 첫 느낌은 역시나 기대했던 이상의 사진과 시였다. 무언가 오랫동안 다져진다는 것은 사진과 시를 더 딴딴하게 다진다는 의미일 것이다. 몇 번에 걸쳐 급조로 만들어 낼 수 없는 시간적으로 거친 과정 속에서 하나하나 사진 한 장과 몇 줄의 시가 꾹꾹 눌러야만 다져 낸 것이 자신의 사유와 호흡을 넣게 되면 시멘트처럼 굳고 단단하게 양생되었으며 단단하게 굳어 도자기를 굽듯한 시간의 인고를 거쳤으리라.

 

영화 "kingdom of haeven"의 마지막 부분의 협상 대화에서 나오는 문장을 떠올리고 인용하고 싶었다. 당신에게 사진과 시란 무엇입니까?라고 묻는다면, 분명 시인은 "나싱(Nothing) 엔 에브리싱(Everything)"이라고 했을지도 모르겠다. 낫씽, 즉 아무것도 아닌 거. 사진은 일상의 흔히 보는 그런 피사체일 텐데 시인의 섬세한 사유적 시의 디테일은 모든 것처럼 사진을 수식한다. 그래서 시가 에브리싱이 아닐까. 그래서 사진과 시는 아무것도 아니기도 하지만 이 아무것에서 에브리싱 즉 모든 것일 수 있다는 것. 또한, 사진은 철저히 현실을 기반으로 한다. 없었던 것을 있는 것처럼 찍을 수는 없다. 없는 것을 있는 것처럼 표현하는 것은 이미지이지 사진이라고 하지 않는다. 이처럼 철저한 현실에서 시적인 상상력은 그래서 없는 것이 나싱이고 시적인 상상력은 모든 것에 적용되는 거다. 이 시집 한 권에서 사진을 찍어 표현하는 방식과 시를 덧댄 방식의 결합에서 나는 낫씽과 에브리싱을 자연스럽게 떠올리게 되었다. 누구에게나 낫씽과 에브리싱이 저마다 다 가지고 있다. 돈이 에브리싱일 수도 있고 사랑이 에브리싱일 수도 있다. 에브리싱의 이외는 다 나싱일 것이고, 자신만의 가치관이나 관념 또는 사고방식에 의한, 살아가는 환경과 삶의 조건과 교육의 정도와 지식의 넓이와 깊이에 따라 나싱과 에브리싱이 없을 수가 없다. 그럼 무엇이 나싱인지, 어떤 것이 에브리싱인지 가려 볼 일이다. 왜냐면, 이는 나싱이 아무것도 아닌, 그러니까 무심코 흘러 버리는 전혀 주목도가 없는 것과 자신의 삶의 전부를 걸어 낸 좋아하는 주목도가 굉장히 높은 것의 차이를 결정한다. 이런 결정이 삶에 다시 들어와 장래의 삶의 질과 행복감의 여부를 결정하는 덩어리이기도 하다. 따라서 시인의 사진과 시는, 나싱과 에브리싱이다.

 

​수록된 몇 편의 시와 사진을 감상하자.


 

사진은 창문을 통해 사선으로 들어와 쏟아지는 빛이었다. "흐트러진 나", 흐트러짐은 흡사 힘겨워서 흐트러지고 정돈되지 않는 나였기에, 배낭에 꾸깃꾸깃 주워 담고 멀리 떠나온 길이라고 표현한다. 본디 여행은 여정을 통하여 삶의 정돈이다. 멀리 떠나온 길은 여행 중임을 암시하고 그래서 여행을 통해서 흐트러짐을 추스르고 가지런하고자 하는 의도였을 거라 짐작한다. 그런데 가는 곳마다 빛이 가득한 것은 빛의 직진성이 주는 가지런함일지도 모른다. 그래 사진은 직선의 빛이 아니었던가. 사진에서 빛 이 자체는 아무것도 아니다. 빛이 반사되고 산란되어 퍼지며 부딪혀서 내 시야에 빛이 들어와야 비로소 모든 게 된다. 피사체는 빛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여행길에서 어느 모델에서 맞이하는 창문이었다 치자. 낯선 곳에서의 방에 아침에 부스스 일어나 피곤한 몸을 겨우 일으켜 커튼을 열고 들어오는 빛은 눈을 때리는 듯 눈이 부신다. 사진에 빛은 아무것도 아니면서 동시에 모든 거라는 것을. 내가 시인 작가처럼 상상을 하게 되는 감정이다.

 


 

 

일몰 무렵의 해변(다대포가 아닐까 추측해본다.)에 빈 의자가 있는 사진에 걸린 시이다. 역으로 보면, 의자는 사람이 앉는 도구이지만, 반드시 사람만 앉아야 할 법칙은 없다. 해질 무렵의 사람들은 모두 떠나고 그리운 사람의 떠난 자리에 덩그러니 놓인 의자는 비었다고 시인을 표현했다. 그러나 빈 의자에 사람은 떠나도 해질 무렵의 의자에 밀물 빛이 살포시 앉았다. 사람은 비었으나 대신에 빛이 잠시 앉은 의자. 그리고 어둠이 빛이 앉은 의자를 대신하여 자리를 물려준다. 의자는 또 누군가 앉을 것이다. 의자의 역할이 잠기지 않는 해변에도 있지만 빈자리가 아니었다. 빈자리가 아닌 의자는 그래서 빛과 어둠이 교차하여 앉는다. 물론 언젠가 그리운 사람이 다시 와 빈 의자를 앉을지도, 혹은 누군가 다시 앉거나. 언젠가 언젠가 그곳으로 다시 가보면 의자가 사라질 수도 있으나 빛과 어둠은 그 자리를 기억할지도 모른다. 결국 빈자리는 잠기지 않음을 해석을 한다.


 

사진 프레임 끄트머리에 보이는 오래된 지붕일 것이다. 거센 바람에 붙들고자 시멘트 블록을 얼기설기 매달았다. 사진은 분명 시멘트 블록인데 시인은 어느새 낡은 시멘트 블록을 산사의 풍경으로 탈바꿈하는 시선(視線)에서 시선(詩仙)으로 이어진다. 낡고 고단한 블록은 낭랑하게, 가볍게 땅그랑 땅그랑 바람 소리를 내는 듯하다. 사진의 은유가 이런 거다. 보는 것을 보는 것으로 국한시키지 않고 산사의 풍경으로 은유하는 메타포를 시에서 표현하고 있는 것. 이게 어쩌면 사진의 현실을 보이지 않는 산사의 풍경으로 치환시키는 관념적 전환을 보고 있다.

 


 

 

누가 바닷가에서 소주 나발을 불었을까. 그윽하게 취해서 소주 병 던져 혹시나 깨져 나간 파편이 흩어진 해변이었을 것이다. 날카로운 소주병 파편은 해변에서는 위험한 흉기가 된다. 혹시나 맨발로 걸었다가 깨진 소주 병에 다칠 수도 있는 위험의 가능성이 상존한다. 그러나, 파도는 이 위험을 날카로운 예단을 갈고 갈아 유순하게 닯았으리라. 모난 파편같은 울화통을 깍고 깍아서 오랜 시간동안 파도에 닯았을 것이다. 깨진 소주병은 결국 파도에 시간을 더하니 그 어떤 울분이 파도에 절삭되어 옥돌로 탈바꿈이었다. 깨져 날카로운 소주병 파편이 에메랄드로 변하는 환골탈퇴의 환생으로 보았던 거다. 시간을 바라보고 심리적 변화에서 물리적인 변화까지 내다 본다. 살다보면 뽀죡하고 예리했던 마음이 들었던 순간이 어디 한두번이었을까. 그러나 파도의 시간은 예리한 날카로움을 환생시켜 다시 보석으로 태어나게 하는 힘, 이게  시인의 상상력이다.

 

매너리즘에 빠져 늘 하던 대로 살아가는 일상의 삶은 무심하고 무덤덤으로 지나고 만다. 흥미로운 일도 별로 없고, 축축 늘어진 채 즐거울 일도, 하다못해 하루에 얼마나 흐뭇한 느낌으로 짧은 시간이라도 많지가 않다. 현대 도시 사회에서 만나는 과정이라고는 늘 피곤과 바쁨의 연속이다. 자신 혼자만이 즐겨 하는 것들은 얼마나 될까. 그나마 휴일이랍시고 방임할 수 있는 시간을 만나면 오락의 대상 이외엔 별로 해본 것도 없다. 시간의 공허함에 빈 것처럼 시간은 속절없다. 그렇다고 일상을 전혀 물리고 아무것도 하지 않을 수도 없다. 일상은 원래가 너무 재미없는 무덤덤한 살아 있으니 살아가는 것뿐이다. 그러나, 이 무덤덤한 일상의 삶이 환생하듯 세상의 변화에 관조하며, 말초적 쾌락이 아니라 지긋한 관조로 보는 사진과 이에 걸친 시는 일상의 자기만의 탈출이다. 오로지 벌어먹고사는 인생은 때론 구차하다. 그러나, 가끔은 시인의 사진과 시로 만나 일상의 구차함에서 탈출하여 시선의 관조와 시의 문장으로 관념적 탈출은 어떨까?. 시집 한 권이 흡사 사골 국물 머시듯이 꿀꺽 꿀꺽 넘어간다. 시집 한 권의 심리적 포만감. 그리고 일상에선 만날 수 없는 것들의 관조적 시선과 사유의 문장들. 멋진 영화 한편의 아름다운 내레이션을 만난 느낌이라고나 할까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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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19-09-02 14:1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사진모음집인가 했는데 글이 참 좋아 검색해보니 시집으로 나온 책이네요.
전자현미경실 연구원이라는 이력도 이채로운 분이고요.
소주병이 옥돌이 되기까지의 시간과 인내가 아득하기만 합니다.

yureka01 2019-09-02 15:05   좋아요 2 | URL
사진을 넣은 시집이었어요....
사진과 시의 조합이 근사했습니다...^^..

Nussbaum 2019-09-02 18:5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요즘 사진을 찍고 그림을 그리면서 뭔가 대상을 보는 관점이 조금 더 깊어진 것도 같습니다.

어쩌면 더 관심있게, 혹은 더 자세히 알아보려고 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드네요. yureka님의 간결하면서도 좋은 글이 사진과 잘 어울리네요.

yureka01 2019-09-02 22:57   좋아요 2 | URL
사진을 담는 피사체는 어떤 의미로 정한 이유의 선택이거든요..
무덕대고 선택하지는 않는 의도이거든요..
당연하게 더 자세히..살펴~~서 보는 것...사진의 시작입니다..
문제는 그런 카메라의 랜즈가 없더라도 가능한 선택임에도,
사람은 눈으로 보는 시선과 카메라 랜즈를 통해서 보는 시선은 차이가 나죠..
더 관심있고 더 자세히 보게 되는 원리입니다..
감사합니다.

2019-09-04 11:2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9-04 11:52   URL
비밀 댓글입니다.

강옥 2019-09-04 18:2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조영래 샘은 디카시를 600수 이상 쓰신 분이에요.
순간포착, 순간언술, 순간소통의 디카시는 경남 고성에서 발원한 문예운동이랍니다.
하이브리드 라는 표현보다 퓨전이라는 말이 어울리지 않을까도 싶구요.
조영래 시인은 디카시 초창기에 입문해서 십년 이상 디카시를 쓰신 분이니 대단하지요
사진시와 디카시의 경계가 다소 애매해서 헷갈리는 분들도 많지만 저도 사실 디카시에 매력을 느끼고 있답니다.
문제는 정체성인데요..... 세월이 가면 정립이 되겠죠 ^^*

yureka01 2019-09-04 20:52   좋아요 1 | URL
사진에 600편의 시를 쓰신 분이라니..놀랍네요..
시집속의 사진과 시 한편한편 모두 의미가 강하더라구요..
네 퓨전..이것도 어울리는 표현입니다.공감됩니다....

그런데 전 개인적으로 디카라는 말은 별로 와닿지가 않아서요.
디지털 카메라...
이걸 줄여서 디카인데 사진과 시이지 디(지털)카(메라)시는 왠지...좀 느낌이 살지 않는 거 같아서....

디지털 카메라라는 어디까지나 도구일 뿐인데말이죠..
뭐 어쨋거나 저쨋거나 전 사진시라고 부르고 싶어요...

2019-09-07 22:1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9-08 20:4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9-11 08:5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9-11 10:4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9-16 11:2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9-16 12:43   URL
비밀 댓글입니다.
 
가톨릭 성지 눈빛사진가선 61
이성호 지음 / 눈빛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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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호 작가는 가톨릭 성지에 카메라 포커스를 맞췄다. 개인적으로 이 사진집의 저자가 독실한 가톨릭 신자인지는 전혀 알 길이 없으나, 가톨릭 성지에 시선에 머문 이유가 순교의 장소였던 추측 때문이다. 그래, 순교. 자신의 신념이나 믿음에 의해 권력으로부터 자기주장을 굽히지 않고 기꺼이 삶을 포기해 버리는 것. 그리고 현생의 포기를 통해서 다시 부활하겠다는 신념.(신념이 틀렸든 맞든 문제가 아니라) 그런 자신의 가치관을 굽히지 않고 기꺼이 삶을 스스로 꺾어 버리는 자해와도 같은 것이 순교이다. 흡사 예수가 인간의 모든 죄를 용서하는 것이 자신의 삶을 포기해버렸던 것과 같은, 이런 같은 순교나 마찬가지였다.

 

사람의 욕구는 누구나 알다시피, 오래 살려고 한다는 것이 확정된 성향이다. 진시황이 영원히 살고자 불로불사의 꿈을 꾸었듯이 종교 또한 영원한 삶이 인간 욕구의 신앙적 근거이다. 삶의 본질이 죽지 않는 것인지도 모르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러나, 포기한다는 것은 그래서 특별한 이유일 것이다. 어쩌면 구차한 현실을 포기하고 더 나은 삶의 부활이야말로 인간이 가지는 궁극의 욕구에 부합함으로 지금의 현생의 포기도 가능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어쨌든 종교적인 이유로 가톨릭 성지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죽었다.

 

대구 지역의 팔공산 한티재에도 가톨릭 성지인 순교지가 있다. 얼마나 사람들이 많이 죽었던지, 산의 계곡이 전부 피로 흘렀다고도 전한다. 지금이야 어떤 신앙을 가지기 위해서 치러야 할 생명의 대가는 별로 없다. 지금이야 거리낌 없는 신앙인데, 탄압이 한창일 때의 신앙은 목숨을 걸어야 하는 절박하고도 위험한 신앙이었다. 과연 무엇이 그들의 삶을 포기하면서까지 신앙을 버리지 못했던 그 강렬한 근원은 무엇이었을까? 신성이 강력한 새로운 세상을 바랐던 것일 수도 있고, 낡은 현실보다 새로운 낙원의 추구하는 삶일 수도 있다. 문제는 현실에서 안주할 수 없는, 그 못 견디겠음의 반증일 수도 있다. 새로운 종교의 접근 방식은 그것이 환상이었든, 현실적인 대안이 없어서 전혀 다른 어떤 체재이었든 간에 현실의 반작용임에는 틀림없다. 현실이 거칠고 사악해지고 흉폭한 권력의 난동이 커져갈수록 종교에 더욱 집착하게 될 것이 뻔하다. 하기야 요즘 새로운 신흥 종교 하나가 나와 신도 수를 늘려 간다 해도 억압하거나 핍박해서 탄압으로 죽이지는 않는다. 엄연히 종교적인 자유가 있는 곳에서는 순교를 허락하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다.

 

개인적으로 종교를 신봉하지는 않는다. 그렇다고 종교를 싫어하지도 않는다. 각자의 신심의 종교에 대해 폄하하고 싶지도 않다. 그게 이슬람이든 가톨릭이든 그리스도교이건 불교이건 모든 종교는 인간의 욕망의 궁극에 해당되기 때문이기도 하다. 불완전한 인간의 존재의 부조리에 대해 극복할 수 있는 것들 중 하나가 종교이기도 하다. 영원한 절대적인 진리라고 믿는 것에 대해 나 스스로가 반대할 이유는 없다. 그런 점에서 가톨릭 성지의 순교에 대해 의미는 매우 특별하기도 하다. 종교는 어쩌면 불완전한 인간의 본질에 대한 결과로써 다가서려는 인간성의 본능과 다르지 않기도 하다. 크리스마스에는 성당을 가서 성탄절의 종소리를 듣고 마리아 상에 경건의 기도를 하기도 하고, 초파일에는 가까운 절에가서 등 하나 달고 이름 석자 적기도 한다. 다만 유일신이든 다신이든 상관하지 않을 뿐이다. 믿음이란 그 어떤 궁극의 다가섬의 표정과 같기 때문이며, 그래서 종종 카메라를 들고 산사를 찾고 성당에 성모상에 카메라를 통해 보려 든다. 다만 주장이 강요가 될 때는 그 주장의 순수성을 주장자가 입증할 책임이 있다.

 

일부의 인간이 위대해지는 경우는 대부분 인간의 일반적인 본능에 반대할 때이다. 욕구와 나아가서 욕망과 이기에 저항하고 권력과 압재에 도전할 때이다. 왜냐면 본능에 반하거나, 압력에 저항할수록 자신의 생존에 큰 위협이 되고 결국 죽을 수밖에 없던, 가장 큰 본질적인 욕구에 대한 도전이기도 하였기 때문이다. 과연 내가 이 글을 쓰고 있는 와중에도 생각해봐도 과연 나도 이 본능에 저항할 곤조가 있기는 있나?라는 자문을 해보게 된다. 비겁하고 상황에 따라 일희일비하며 그때 그때마다 요령의 처신으로 약삭빠르게 욕망에 부합되고 살아가는 모습이 오버랩된다. 비록 종교인은 아니지만, 자신의 신념이나 신앙으로 삶을 내려놓을 수 있는, 본능에 저항할 신념이라도 있을까?라는 부끄러움이 있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과연 난 내 삶에 신앙이 무엇인지. 내 생을 버릴 만큼의 강렬한 염원이 있기나 있는지에 대해 스스로 물어보면 비굴해지는 걸 자각하게 된다. 변절이란 간혹 위기 상황의 재빠른 대처라고 변명으로 여길 수도 있다. 뭐든 스스로에게 자기 합리화는 필요한 것이고 보면, 그런 신념으로 생을 끊어 버리는 것은 도저히 버릴 수 없어서 결국 자신의 육체를 버리는 편을 택한 것일 테다. 현재의 육신을 버리고 죄를 사함을 받아 새롭게 부활하는 곳의 낙원에서 삶은 그래야만 가능했던 이유도 된다. 거듭남이란 그런 거다.

 

삶이란 자랑스러움보다는 부끄러운 일들의 연속이다. 자신에게 떳떳하게 주장하고 모두가 공감된 나만의 오기는 과연 얼마나 되는지, 그럴지도 모르겠다. 삶의 공허와 허무를 외치는 것도 어쩌면 이런 존재의 절망 앞에서 굽히지 않는 자신의 깡다구를 가지지 못한 탓은 아니었던가 되묻게 된다. 오늘 하루 하루 이익과 돈벌이에 있어 자본에 늘 휘둘리며 살아가는 비겁한 모습이 굴욕적이기도 하다. 살아가야 한다는 보기 그럴싸한 핑계로 하루하루 사는 것이 아니라고 부정하기에도 벅찬 것도 사실이다. 자본에 저항하기는커녕, 오히려 동조하고 상황에 따라 항상 일관되지 못하고 이중 잣대로 사는 것이 뭐가 나쁜 것은 아니더라도, 쪽팔리는 것도 부정하기엔 스스로가 나약하기 이를 데가 없다. 그러니 신념이 없는 자에게는 허무와 비애가 스스로에게 독이 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현실의 비굴함을 애써 외면하고 자본에 부합하려고 이게 잘 사는 거라는 등식은 현대인의 고독과 연결되어 있는 것은 아닐까. 무엇인가 어떤 것에 자신의 전념을 받칠 거리가 없다는 것은 고독한 거다. 객기 하나 부리지 않는 고독은 스스로가 더 초라하지 않을까.

 

비록 이 책 사진집에서 순교자의 장면을 담은 사진이 없을지라도, 순교지에서 담은 조형물이나 풍경을 통해 전해져 오는 순교하는 날의 메아리가 처절하게 들리는 듯한 사진이다. 거룩함과 숭고함은 종교의 상징적 의미에서 나오는 순교의 위엄이, 그래서 뿜어져 나오는 것인지도 모른다. 기도하는 모습의 마리아 상에서 느껴지는 온화한 평화를 순교지에서 만나게 된다. 이 땅의 평화란 무엇이고 새로운 세상의 염원은 또 무엇일까. 단순히 종교적인 신념에 의한 것 이상의 가치관과 믿음을 사진 곳곳에서 발견되기 때문이기도 하다. 삶이란 경건하고 엄숙한 과정만 있는 것도 아닐 텐데, 사진에서 만나는 순교지의 풍경은 그래서 허투루 살지 않는 신념 하나쯤 가지게 된다면 온화함이 깃들 수 있다는 생각을 읽게 된다. 순교지에서의 두 가지 상반된 느낌은 처참함과 평화로움이다. 그때 당시의 처참함이 오늘날의 평화로 이어지는 새로운 세상의 모습을 그들이 순교당하면서 가지고 싶어 했던 오늘의 모습은 아닐까. 믿음에 강압이 없고 자유가 있을 때, 헌신과 자기희생이 있을 때, 어쩌면 세상은 그야말로 천국 같은 평화를 이루어 낼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과연 내가 자신의 믿는 신념에 목숨 하나 걸 수 있을까?라는 질문이 사진에서 요구를 하는듯하다. 신념의 가치관과 목숨을 바꿀 수 있는 강건한 자기 애증은 감히 내가 넘볼 수 없을 것만 같다. 하루에도 열두 번 넘게 바뀌는 삶의 방식은 늘 일관성을 위협하고, 요령껏 대처하는 약싹빠른 것이 미덕이 된 오늘날의 조변석개의 삶의 태도에 과연 무슨 문제는 없는지 따져 보게 하는 사진이었다.

 

 

PS : 개인적으로는 크리스마스철이면 성당 가서 성모 상을 보고 기도하러 간 적도 있고, 초파일에 가까운 산사에 이름 석자 넣고 등도 달아 공양한다. 종교란 전체를 아울러서 바라보지 특정 종교를 대상으로 신앙을 따지지는 않는다. 종교는 개별적으로 존중하는 편이다. 다만 예수천국 불신지옥 따위를 종교로 보지 않고 그저 영업으로 호객행위로 여길 뿐이다. 또는, 무슨 암자에서 부적 하나에 몇십몇백씩이나 들여 기도하고 재사 지는데 수백 들어가는 식의 기복적인 것들도 같은 맥락의 종교 산업의 영업으로 볼 뿐이다. 종교란 아무리 자본주의 사회에 깊숙이 들어왔을지언정, 절대적인 영역이 자본에 휘둘리면 그냥 종교 장사라 칭한다. 물론 종교 장사에 순교한 적이 없다는 것도 안다.  특히, 여자 신도는 빤주를 팍팍 벗어야 자기 신도라는 사이비 따위는 극혐한다. 그게 종교를 영업에 이용하려한 자들이 똘끼 목사가 나오게 한 배경아니겠는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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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옥 2019-08-29 11:1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하고 비슷한 종교관념을 가지셨네요. 저도 편리교 신자거든요.
세상 모든 종교를 인정합니다. 뭘 믿든 자기 마음 편하면 되고 남에게 민폐 안끼치면 되고.
나 외에 다른 우상을 섬기지 말라는 등의 독선은 별로예요.
불교는 종교라기보다 일종의 마음 수련 과정 같다는 생각이구요.
기독교 집안에 시집간 제 동생, 교회 안 나간다고 평생 사탄 취급 받으며 살았어요.
사람이 만들어낸 종교가 사람 잡습니다요

yureka01 2019-08-29 11:17   좋아요 1 | URL
앗..정말 좋은 종교를 믿으셨어요..편리교..

네 ..신앙의 가치관이 사람을 악압하면 그건 종교의 본질하곤 거리가 멀죠...

독선적 종교가 위험한 거라서요..

대부분 이단.사탄, 악마, 저주..이런 험악한 단어가 나오것치고 종교적인 신앙에 대한 본질의 고민이 없어보여서요..

2019-08-30 21:22   URL
비밀 댓글입니다.

yureka01 2019-08-31 22:46   좋아요 2 | URL
강요가 곧 영업이거든요...
종교로 장사하는 영업은 이미 순수성 실종이라서요..

가을 시작입니다..더 아름다운 시간 만드시길!~

2019-09-01 10:4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9-02 08:5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9-04 11:2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9-04 12:06   URL
비밀 댓글입니다.
 

 


전제 : 이 책을 읽기 전에 유튜브에 나오는 태평양 전쟁사를 시청하면 이해가 훨씬 빠르다. 또한, 이 책에서 다루는 디테일한 글은 읽어 보면 되니 생략하기로 하고, 다만 의견을 덧댄다.


이 책은 태평양 전쟁에서 군국주의 일본의 패망사를 다큐 형식으로 다룬 책이다. 따라서 약 1세기 전의 일본 제국의 폐망을 다루었다면, 언젠가 역사는 일본의 제2 패망사가 써지지나 않을까 싶다. 그것은 후쿠시마 방사능 때문일지도 모른다. 2차 세계대전의 태평양전쟁 폐전을 극복했다고 공식적으로 선포한 이벤트가 1965년 도쿄올림픽이었다. 2020년의 도쿄올림픽이 후쿠시마 사고의 복구와 회복의 이벤트 용도인지는 모르겠으나, 방사능은 거짓말 안 한다. 무지하다면 무지하고, 알면서도 모른 척하는 것은 자가당착이다. 방사능 대처에 천문학적인 예산을 지출해도 해결할 수 없는 핵물리학적인 관점에서는 솔직히 답이 없다. 일본 국내 문제 뿐만 아니라 인류 전체의 당면 과제이자 인류의 도전이 되어 버렸다. 어느 핵 과학자가 동일본을 포기하라는 게 뼈아프게 다가올지도 모르는 일이다. 국민들이 서서히 병 들어가고 아파가는 것을 애써 외면한다고 사라질 것도 아니다. 심지어 일본인은 방사능에 면역되었다는 게 어처구니 없이 웃게 된다. 인간은 원자력은 건드리지 말아야 할 것 중에 하나였지만, 어떻게 안건들일 수 있는 욕망의 파도는 잠들지 않겠지.


한국의 현대 정치사는 격변의 역사였다. 해방된 이후 미 군정은 일제의 관리를 그대로 이어받아 안정에만 주력했고, 이는 일본을 굴복시킨 맥아더의 정책이었다. 따라서 미 군정에 정부를 수립한 이후의 이승만의 정치도 일제 잔재를 그대로 이용해 버렸던 오염된 시작되었다. 두 번의 군사 쿠데타의 하극상 정치로 이어졌다. 우리나라도 올림픽도 거의 정치적으로 이용된 적도 있다. 독재 권력은 항상 그럴싸하게 포장하는 것을 좋아한다. 역변의 변명을 항상 올림픽등과 같은 이벤트라는 거창한 행사로 무마시키는데 아주 좋은 모델이었을 것이다. 그래도 쿠데타였다. 이렇게 발전시켰다는 것이 결국은 독재자들이 내세우는 필연적인 논리였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그 와중에서도 민주화를 멈추지 않았다. 60년대생으로 80년대를 겪었기에 광주에서 서울에서 혹은 부마사태로 불리는 부산 마산에서 대규모 시위를 통해서 독재정치의 비민주적 역사를 민주주의로 물줄기를 조금씩 바꾸어 나갔다. 수많은 민주주의자들이 이룬 그들의 피가 우리 역사의 근현대사를 뒤덮었다. 오늘날 오래전에 정착된 유럽과 미국의 민주주의에 따라가는 정치적 민주화도 이루었다. 물론 민주주의는 완성형이 아니라 진행형이라서 아직 제대로 된 민주주의는 멀었다 하더라도, 이제는 타락한 권력은 얼마든지 바꿀 수 있어야 한다. 그게 국민으로부터 국가 권력이 나온다는 민주주의적인 핵심이다. 물론 아직은 완벽하지는 않겠지만, 그나마 여기까지 온 것도 역시 다수의 국민이 가지는 민주적인 의식이 깔린 토대가 있었기에 가능했으리라.


그러나 일본은 아직도 아니다. 민주적인 선거라도 있지만 그게 어디 선거라는 시스템의 흉내만 낼 뿐, 외부의 세력이 이식된 타의적 민주주의였다. 게다가 정치인들의 자기 직분과 시민들의 자기 직분은 엄연히 나눠져 있다. 누구라도 출마할 수 있다고는 하더라도, 비정치인이 정치에 출마해서 이룬 당선은 멀리 있어 보인다. 일본은 여전히 자기 직분에 벗어난다면 이지메하는 걸 모를 리가 없잖는가 말이다. 그래서 자기 직분에 맞는 직업으로써의 정치가와 장인 정신으로 된 자기 가업은 구별될 수밖에 없다. 국민이 원해서 법률을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니라 국민들과 전혀 다른 몇몇의 극소수의 의원들이 그리고 당내의 당직자들의 권력을 가진 소수의 주장이 관철되는 것일 따름이다. 그래서 일본을 유사 민주주의라고 하는 이유이다. 일본의 사무라이식 군국주의는 여전히 사라지지 않았다. 일본 현대의 60년 동안의 정치는 거의 바뀐 적이 없다. 천왕제가 바뀌적이 없듯이, 유사 민주주의의 군국적 마인드도 여전하다. 그들의 적은 늘 내부에 있어도 그 해결책으로 외부로 돌리는 것은 변함이 없다.


아무리 자기 직분에 따라 자기의 삶을 결정지운다고는 하나, 일본 군국주의 제국 시절에서 일본 국민들의 불행은 크게 설명할 필요는 없을듯하다. 천황을 위해 가미카제가 되어 돌아올 수 없는 전투기를 타고 자살공격을 해야 하는 그 위대한? 착각에서 개개인의 행불행은 오로지 대의를 위해 개인이 철저히 희생을 바탕에 두어도 좋다는 식의 그릇된 행복이었다는 점이다. 불행을 불행으로 보지 않고 행복하다는 개인의 무한한 희생으로 누군가 얻어지는 것들에 대한 분노는 거의 없다는 거다. 그러니 주면 주는 대로 자신이 철저히 적응해야만 하는, 그래서 적응을 뛰어넘어 독보적이어야 하는 봉건 근대적 일본 막부 사무라이 시절의 국민들과 뭐가 다를까라는 점이다.


국가의 수립과 존립의 근거는 어디까지나 국민 개개인의 자유와 인권에서 나와야 하는 것은 민주주의의 본령이고 정신이다. 그러나 일본은 일본 국민 개개인의 행복이 천황에서 나온다는 식의 고대 신과 천황의 대리격이라고 보는 샤머니즘의 신도국가이다. 그래서 아직 일본에는 신사가 그리도 많은 이유가 아니고 뭐겠는가 말이다. 그게 노예적인 마인드일 것이고, 왜 노예인 줄도 모르는 노예는 늘 굴복의 역사에서 종속된 행복만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국민이 당연히 국가를 위해 희생했다는 식의 미화된 위대한 주장은 봤어도, 어느 일본 군국주의자들이 일본 국민들에게 큰 불행을 안겨 줘서 진심에서 나오는 사죄를 했다는 소식을 들은 적이 없다. 국가가 국민의 희생을 당연시하고, 이게 올바른 가치관이라고 여기는 가치관으로 보자면, 국가의 결정이 국민에게 불행을 주지 않고 영광된 길을 주었다는 논리가 될 수밖에 없다. 당연한 것인데 사과할 이유가 없었던 거다. 그렇기 때문에 어느 군국주의자라고 국민의 불행에 사과도 없고 국가를 위한 일이었으므로 떳떳했으니 반성이 없다. 국가가 국민에게 뻔뻔한 것은 민주주의가 아니다. 그런데 가장 큰 오류는 국가가 국민을 위해 필요한 존립 근거이지, 국민의 희생을 강요하기 위해 존재하지는 않는다는 점을 염두에 두지 않는 거다. 그렇다면 국가의 존립에 가장 핵심은 누구여야 할 것인가. 천황인가? 국민인가? 여기에서 일본의 사상적 배경과 사고방식은 국민의 행복이 출처가 천황이라면? 국민은 늘 노예로 살아도 할 말이 없다는 거다.


공화국과 왕국의 차이가 바로 여기에 있는 이유이다. 공화의 주체는 국민이고 왕국의 주체는 왕이지, 국민이 아니기 때문이다. 왕이 주체가 된 국가의 사람은 그저 신하일 뿐이다. 일본 국민은 왕의 신하이고, 왕이 죽으라면 영광스럽게 죽어가야 하는 것. 이게 가미카제가 탄생할 배경적 이념이다. 그런데 하물며 그 신하의 하등한 국민인 조선으로 바라보는 한국민에 대한 사과와 반성이 절대 있을 수 없는 논리적 배경이기도 하다. 아무리 한국인이 일본 정부에게 사과하라 해도 깨어있는 몇몇은 하겠지만, 대부분의 사고방식으로는 거의 불가하다. 일본의 국민이 왕의 신하로 여기는 이상, 그들이 생각은 바뀌지 않는다. 따라서 일본 역사상 단 한 번도 왕의 핏줄이 바뀐 적이 없었던 결정적인 이유이기도 하다. 국가가 국민을 못살게 굴면 바꿀 수 있는 것은 전 세계 역사적인 과정이었으나 일본이 유일하게 예외였던 까닭이기도 하다.


이와 관련된 상당히 흥미로운 역사가 있다. 일본은 천주교가 들어간 시기가 1500년대라고 찾아 보니 나온다. 상당한 박해도 많이 받았던 일본의 천주교 역사였다. 역시나 현재 일본에서 기독교 신도는 거의 미미하게 얼마 되지도 않는다. 기독교적인 역사로 봤을 때, 아프리카 오지에도 선교가 되는 마당에 일본에 기독교가 선교가 쉽지 않고 별로 안되는, 몇 안 되는 지역 중 하나다. 이는 기독교적인 교리의 핵심인 하나님과 예수라는 영역이 일본 샤머니즘적 신도에게 침투될 수 없는 부분이기도 하다. 우리나라처럼 어느 지역 웬만한 곳에 빨간색 십자가가 즐비하게 있는 것과는 사뭇 다른 것도 다 그런 이유 때문인 것은 아닐까 한다. 신이라도 다 같은 것도 아닌 것은, 신이라는 관념과 신을 대하는 신앙의 차이일 것이고  유일신과 다신의 개념은 서로 섞일 수 없는 그런 차이를 나타내기도 한다. 웃기는 거지만 적어도, 일본에서는 예수천국 불신지옥이 전혀 통용되지 않는다.


막부 시절의 일본은 미국의 페리 제독이 대포를 쏘며 개항을 요구하고 나서 메이지 유신으로 이어진다. 동양에서 처음으로 유럽의 신식 문물을 받아들이고 근대적인 국가를 이루며 제국화는 가속화되었다. 여전히 동양은 봉건적 전근대적으로 살았다. 제국주의가 전 지구적으로 약탈과 침략으로 얼룩졌어도 극동 아시아는 분위기 파악을 못했다. 유럽에서 멀리 있었으니까. 그런 아시아를 잡아먹기에는 더없이 좋은 시장이었고 쉽게 무력으로 진군할 수 있었다. 비등한 전쟁이 아니었으니까 초반에는 쉬웠다. 조선이 굴복했고 중국 대륙이 굴복했다. 필리핀과 같은 동남아시아도 전략물자의 조달처로는 좋은 먹잇감이었을 것이다. 태평양 연안과 중국 대륙, 만주까지 이렇다 할 변변한 대응할 무기조차 없이 전근대적 무기와 군사조직으로는 상대가 안되었던 거다. 아시아에서 군국주의 일본제국의 최대 적이 기상이나 날씨, 위생 등이었지, 상대방의 허약한 무력이 결정적인 것은 아니었던 거다. 쉽게 점령할 수 있었던 원인이 상대방이 보잘 것 없었으니까 가능했던 거다. 그러나 일본은 미국의 봉쇄령에 맞서 진주만을 공격해버렸던 것. 미국이야 당연히 가만있을 리도 없고 사자를 건드려 버렸으니 아시아의 패권을 쥐고 기고만장했을지는 모르나, 미국의 막대한 군사 생산력은 일본이 감당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아시아에서 미국처럼 강력한 생산력으로 근대화된 국가를 상대로 일본은 싸운 적이 없었으니 싸우면 이길 거 같은 착각을 일본 군국주의자들이 스스로는 몰랐던 거다. 상대할 대상이 심각하게 허약한 국가라면 아무리 뻘짓을 해도 문제가 되지 않고 문제가 드러나지도 않는다. 군국주의 일본이 승승장구한 것이 월등히 뛰어난 전쟁의 힘이라기보다는 상대가 처절하도록 허약한 상대였을 뿐이다. 그러나, 자기보다 더 크고 더 힘이 쎈 상대라면 자신의 조그마한 헛짓도 엄청 큰 대미지를 입을 수밖에 없다. 일본의 전쟁사에서 보면 강력한 상대로 한 심각한 뻘짓을 태평양 전쟁사에서 너무나도 잘 드러나는 패배한 전투가 부지기수이다. 게다가 뻘짓한 지휘관이 승승장구하는 승진을 거듭하는 걸 보면 왜 일본제국이 패망할 수 밖에 없는가 나온다. 이 책과 더불어 일본 태평양 전쟁사에 대해 관련 유튜브 다큐 영상을 참고하시면 금방 이해될 것이다.


최근의 허튼짓으로 최대의 판단 착오는 동일본 대지진으로 후쿠시마에 있는 원자력 발전소의 폭발 사고에서 극명하게 드러난다. 만약에, 일본 정부가 후쿠시마 사고가 났을 때, IAEA 등 국제기구를 통해서 조속한 지원과 대처 방안에 대해 신속한 결정을 하였더라면 그 이후의 전개 과정은 어떠했을까라는 가정을 하지 않을 수 없다. 방사능 문제에 있어서 만큼은 개별 국가의 자존심 따위의 문제보다 전 인류가 감당할 수 없을지도 모르는 사태에 대한 솔찍한 고백이기도 하다. 아직도 일본은 방사능이 컨트롤하고 통제되고 있다는 몇 마디로 퉁치기고 있어도, 안전하다라고만 하는 주장을 주야장천 하고 있으나 충분한 물리과학적인 근거가 너무 없기도 하다. 일례로 체르노빌 원전 사고가 났을 때, 소련이라는 공산국가였던 것인지 군인들을 갈아 넣을 정도로 투입하고 그들의 희생이 없었더라면 지금도 방사능은 뿜뿜대고 있을 거다. 콘크리트로 아예 봉쇄하였으나 세월이 오래되어 콘크리트 부식 등의 이유로 러시아는 사고 현장의 원전을 스테인리스로 아예 덮어버리는 공사를 한다. 여기에 막대한 건설자금은 러시아가 부담하기 벅차서 유럽의 여러 나라들의 십시일반의 예산까지 투입된 사례를 볼 수 있다. 단순히 남의 나라의 문제가 아니라, 방사능은 국경하고는 아무 상관이 없이 전 지구를 오염시키는 이유 때문이다. 이는 일본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러나 일본은 전혀 다른 방식으로 사고 수습은 오도하고 덮어버리려 하며, 이후는 방사능에 관한 뉴스를 차단하기 바쁘다. 일본은 개개인이 후쿠시마 방사능에 관한 사실을 알리기만 해도 처벌받는 이 웃지 못할 짓을 벌이고 있다. 기본적으로 방사능이 전부다 생물체에게 악영향을 미치는 것만은 확실한대도 이를 안전기준치를 운운하며 아무런 이상이 없다는 식으로 호도하려 한다. 미국이 이식한 민주주의는 정착된 듯 보여도, 일본은 여전히 천황이 국민의 권리에서 출발하는 봉건제 무늬만 민주주의일 뿐이다. 정치가 세속 되는 영주나 쇼군과 다를 바 없는 셈이다. 국가는 어디까지나 국민을 위해서 필요로 한 것이지, 국가를 위해 국민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앞으로도 동일본 전역으로 퍼져나간 방사능과 앞으로도 멜트 타운 되며 발생하는 지하수의 방사능 오염은 사라지지 않는다. 제염작업을 일본 전국토에 전부를 할 수는 없고 물리적으로도 불가능하다. 반감기가 도래하지 않는 이상, 계속 방사능 원자 붕괴가 계속 이루어지고 방사선은 계속 뿜어져 나온다. 감마선은 생물체의 유전자 사슬에 지속적으로 영향을 미칠 것이며 사람들은 점점 질병에 걸릴 확률은 높아간다. 어린아이들이 갑상선암에 걸린다는 소식은 이미 예견된 일이다. 이런 뉴스조차 발표를 금지하는 일본의 정치는 일본 국민들에게 눈을 가리게 하는 법률부터 만들었으니까 말이다. 후쿠시마에서 피난했던 사람들을 안전하다는 홍보로 다시 후쿠시마로 돌려 보네는 압력이 후쿠시마 피난민들의 제정 지원부터 끊어 내고 돈을 벌어 먹고살아하는 입장에서는 제정 지원이 끊기고 후쿠시마에 남은 주택 등에 대해 세금 지원을 끊고 다시 돌아가라고 한다면 언제까지 피난민으로 버틸 수 있을지 장담할 수도 없을 것이다. 돌아가자니 방사능의 위험을 알고 돌아가지 않으려니 제정 지원을 끊겠다고 하니 피난민들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입장에 처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과연 국민을 진정으로 위험으로부터 안전하도록 만들어야 할 국가의 책임은 무엇일지, 아직도 과거의 신하들처럼 그렇게 어떻게 병에 걸린 줄도 모르고 걸리면서까지 불행을 자초하게 될 것인지 아직은 아무도 모른다. 그러나 방사능에서 나오는 방사선 감마선이 거짓말하지는 않을 증상은 두고두고 현실을 증명하게 될 것만은 분명하다. 얼마나 웃끼는 문장인지 들어는 보았는가? "(방사능을) 먹어서 응원하자"라는 게 기막히다 못해 웃기기까지 한다. 피할 수 있게 차단시켜도 모자를 판에, 먹어서 응원이 될지는 모르겠으나, 먹고난 후의 내부 피폭은 감당할 수 있느냔 거다. 한번 실수는 가능하다지만 저건 너무 바보스럽다. 천황이란 샤머니즘 같은 지배층이 시키면 시키는 데로 다 하는 게 숙명처럼 받드는 게 결코 정상적으로 보이지가 않는다는 거다.


마찬가지로, 어느 지역에 작은 단위로 마을을 이루고 사는 사람이라면, 이웃 간에 상부상조하는 것과 이웃 간에 서로 반목하며 싸우는 것의 차이는 각기 개별적인 인간의 사회성과 관련된 행불행에 대해 개인별로도 관계가 깊다. 서로 좋은 이웃을 두고 함께 공동으로 사이좋은 이웃으로 있다면 관계가 밝게 발전되며 서로에게 공동의 이익으로 성립되지만, 만약에 아웅다웅 싸우고 다투게 되면 가까이 있어서 더 미워지고 서로가 불행한 관계로 개별적 삶에 악영향을 미치게 된다. 이는 국가 간에도 마찬가지이다. 유럽에서 왜 국가 공동체인 EU라는 유럽연합을 만들었겠는가. 역사적으로 가까이 있어서 허구한 날 치고 박고 싸우니 서로가 불행했던 역사적 교훈을 스스로 국민들이 너무나도 잘 알기 때문이었다. 싸울수록 서로가 가해자이자 피해자가 될 것이란 것은 유럽은 두번의 세계대전을 겪고 나서부터 경제통합에서 시작하여 이제 국가적인 통합까지 이루었던 거다. 물론 여기서 영국은 빠져나가겠다는 섬나라 특유의 아집이지만 여전히 유럽에서는 관세와 국경과 통화에서 자유롭게 된 원인이 결국은 서로가 사이좋게 지내자는 공통의 사고방식이다. 이익에 다툼이 없을 수는 있을지라도 서로에게 대포를 겨누며 싸우지는 말자는 큰 공감대가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는 특히 나라끼리 국경을 맞대고 있는 경우에 더욱더 필요한 덕목이기도 하다. 독일이 유태인이나 프랑스를 향해 필요할 때마다 사과와 반성을 하는 경향도 독일의 제국주의자들이 말끔하게 청소되어 처단된 이유도 될 것이고 독일에서 하켄 크로이츠 깃발만 내 걸어도 독일 내부에서 법정으로 세우며 처벌하는 것도 독일이 가지는 자신들의 과오에 대한 과거의 교육과 경험에서 출발한 현명한 판단이다. 그런 현명한 판단이 독일이 국제 사회에서 대접받고 지지를 얻으며 인정받는 중요한 이유가 된다. 독일의 국민들이 겪은 제국주의자들에 대한 심판은 독일 국민들이 겪었을 고통에 대한 정당한 처벌과도 같다. 제국주의에게 지지했고 종사했던 사람들을 아직도 법정에 세우는 노력을 독일 국민들이 그들 스스로가 하는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는 이유이다. 그런 독일을 바라보는 프랑스는 독일의 국민들에게 긍정의 신호로 보고 화해하는 것은 사과와 반성, 그리고 제국주의자들의 처벌이 동시 이루어지고 나서야 가능했던 일련의 과정들이었다. 철저하게 피해자였던 국가와 국민들에게 사과하고 반성하는 것과 이를 역사로 교육하는 국가에 대한 용서는 이루어진다. 과거의 앙금과 상처가 미래에도 악영향이 계속 미치게 될 때, 가해자였던 국가나 피해자였던 국가는 서로가 불행하다. 이는 우리와 일본에 대한 역사적인 과정의 적용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여전히 일본의 국민들의 민주주의 국민으로써의 시민의식에서는 시민이 아니라 천황의 신민이라는 가치관으로는 반성과 사죄도 없을 것이 뻔하다. 일본회의라며 샤머니즘적 신앙의 민족으로는 현대적 관념의 가치관과 공유가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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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호랑이 2019-08-25 21:3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개인적인 추측이지만, 오랜 기간 지방 다이묘들의 전란을 겪은 일본인들이기에 자신의 상관의 명령에 절대 복종하는 문화와, 중앙집권을 갈망하는 지배층들의 요구가 결합된 것이 메이지 유신 이후 현대 일본의 모습을 결정지은 것은 아닌가 생각됩니다. 천황제의 이면에 있는 이러한 문화가 ‘경제 선진국, 정치 후진국‘ 일본을 만들었다 조심스럽게 짚어 봅니다...

yureka01 2019-08-25 21:54   좋아요 1 | URL
전국시대의 전란에 무사가 아닌 농민이 살아 남을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이었을까 생각해보면 합리적인 추측입니다.
자기만의 특화된 업무의 곤조가 있어야 쉽게 죽이지 못했을지도 모르니까요...일본에 산재된 신사를 보면 그들이 얼마나 기복적 신도인지 느끼게 됩니다.

NamGiKim 2019-08-25 22:2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태평양 전쟁사라면 혹시 그 일본침몰인가 뭔가 하는 13부작 다큐 말씀하시는 건가요?

yureka01 2019-08-25 22:47   좋아요 0 | URL
최근에 봤던게 3부작 태평양전쟁이었습니다.
몇가지 버젼이 있으니 검색하시면 될듯합니다..
13부작은 태평양전쟁비사...이걸로 검색하시면 됩니다..

NamGiKim 2019-08-25 22:49   좋아요 0 | URL
네 알겠습니다.^-^

yureka01 2019-08-25 22:52   좋아요 1 | URL
참고로, HBO에서 방영했던 퍼시픽이란 드라마도 있으니 참고하시면 좋을듯합니다....

NamGiKim 2019-08-26 13:39   좋아요 1 | URL
아 그 드라마 제가 고등학생때 밴드 오브 브라더스와 더불어 진짜 재밌게 봤던 드라마입니다. 3년 전에도 봤구요.^-^

yureka01 2019-08-26 16:27   좋아요 0 | URL
태평양전쟁은 전투 환경이 유럽전선에 못지 않는 악조건이었죠.아니 더 나빳을 겁니다.
아마 그런 점에서 보자면 상당히 잘 묘사된 드라마였단 평가입니다.

페크(pek0501) 2019-08-26 12:2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베 정부에 반기를 들고 있는 언론사와 시민들이 있던데 그 힘이 커졌으면 합니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결국 진실이 이길 것으로 믿고 싶습니다.

yureka01 2019-08-26 12:56   좋아요 1 | URL
네 맞습니다.일본에도 과거 군국주의자들에 반대하는 사람들 있긴 있어요..아주 극소수라서요.
학교에서 과거 일본의 역사에 대해 교육도 안합니다..피해자같은 교육은 있어도 가해자로써의 역사는
안가르치거든요..그렇게 배운 학생들이 기성세대를 이루게 되거든요..

강옥 2019-08-28 08:2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서울 갔다온 사이에 포스팅이 두 개나~~~
일단 반갑고예, 유레카님은 정말 다양한 분야의 독서를 하시네요
편향된 독서가 아니라 제가 배울 게 참 많네요. 느끼는 것도 많고.
누군가는 박테리아까지 씹어먹겠다고 한다더니 방사능까지 먹어치우는 사람도 있었군요
뭔들 못 먹겠어요 하긴. 일단 먹어야 사니까.
방사능보다 강한 종족. 과연 독종들이라는 생각이 ㅎ

2019-08-28 12:5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9-01 10:4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9-02 08:5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9-04 11:3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9-04 12:04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당신은 언제까지 일을 하고 싶어 하는가? 라"라고 묻는 질문에 55세 - 79세까지 연령층의 65%가 73세까지 일을 하고 싶다는 통계 조사 결과로 나왔다. 며칠 전 퇴근길 차 안에서 듣고 있던 라디오 뉴스 한 토막이었다.

 

며칠 전, 회사에서 자체 사업으로 주거용 건물을 올리고 있는 부지의 준공전 토지 지적을 정리하는 업무가 있었다. 측량 신청을 하고 현장에 토지정보 공사에서 직원이 나와 측량 예약한 날이 17일이었다. 그런데 나는 16일을, 17일로 착각하여 16일 아침 일찍 현장에 나갔다. 물론 16일에 측량하는 직원이 나올 리가 없다. 나는 한참 동안이나 17일로 착각인 걸 모른 채, 왜 측량 기사가 제시간에 오지 않는지 일말의 의심도 없이 기다렸다. 아무리 무슨 일이 있어도 약속한 시간에는 나와야 하는 거 아니냐고 따졌다. 그러나 나는 심각히도 날짜 착각 중이었다. 그제서야 오늘이 17일이 아니고 16일인 것을 알게 된 순간, 단순한 인지 착오가 아님을 자각했다. 가끔 건망증이 새삼스럽게 심각한 느낌이었다. 나이가 들어가면서부터 부쩍 이런 착오의 일들이 잦아졌다. 아무리 정신을 차린다 해도 가끔 미스매치하는 경우가 야금야금 늘어난다. 이렇게 가다간 나 자신도 스트레스이고 일을 맡긴 회사도 업무 효율에 마이너스인 것만은 분명하다. 한창 일하던 젊은 시절인 30대나 40대에서는 전혀 볼 수 없었던 착오들이 하나 둘 늘어간다는 사실을 부인하기 어렵다. 물론 단적인 예이긴 하지만 이런 착각의 경우가 점점 잦아진다는 것.

 

나이가 들면  이렇게 단순한 것조차도 착오의 경우가 늘어가는데 하물며 새로운 시스템이 적용될 때 나 스스로가 얼마나 이 새로움에 적응하고 빠릿빠릿하게 반응할 수 있을까 생각해보면, 상당히 어렵다는 결론이 나온다. 배운다는 것도 머리 잘 돌아갈 때나 배우는 거지 점점 굳어가며 뇌의 회백질은 흡사 콘크리트처럼 굳어서 전화번호조차 뒤돌아서면 곧장 망각의 고개를 처드는 나이인데 뭘 하나 외운다는 게 보통으로는 외워지지도 않는다. 한번 보고 흡수했던 지식이 이제는 흡수되어 기억하지 못하는 뻣뻣하고 딱딱해져 버린 효용가치가 사라져버린 굳어 버린 시멘트 스펀지가 된 기분이다. 인지력과 암기력은 그만큼 떨어지고 낮아졌다. 공부도 다 때가 있다는 이유가 여기서 나온다. 새로운 일에 항상 부닥쳐야 할 업무가 점점 힘겹고 어렵게 될 때, 과연 나도 70세까지 지금과 같은 일을 할 수 있을까? 자신이 있고 없고를 떠나서, 그렇게까지 업무의 연장선상에서 머물러야 할 인생 이 자체가 정말 우울한 시간이라는 거다. 단순한 착각도 자주하다 보면, 누군가 급여를 제공하는 입장에서는 무척 큰 역효과이다. 그렇다면 계속 일을 주고 급여를 줘야 할 이유가 사라진다. 이런 일을 더 잘하는 젊은 후배들도 많다. 앞으로는 과거의 낡은 업무가 새로운 업무로 대체되고 과거의 업무에 비해 새로운 시스템의 일은 전과는 전혀 맞지 않다.

예를 들어 계산을 위해 주판 1급의 실력으로 엑셀을 잘할 수는 없는 일이다. 계산의 원리는 같지만, 그 작동 방식은 전혀 다르다. 주판 실력이 아무리 뛰어나더라도 손가락이 주판 알을 잘 만진다 해서 엑셀의 키보드 두드리는 일과는 그 체계가 전혀 다른 것이다. "내가 왕년에 주판 1급이었는데 계산이란 말이야 엑셀 정도는 웃습니다"라며 아무 문제없다는 식의 자신감은 그저 자만이며 오만일뿐이다. 계산의 시트의 체계와 주판 알의 계산 체계는 디지털과 아날로그의 차이로 멀리 있다. 주판 실력으로 75세까지 엑셀을 하겠다는 것은 더 이상 언급하지 않아도 뻔하다. 하고 싶다 해서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란 것쯤은 자각해야 한다. 착각과 자각 사이에 내가 있을 뿐이다.

젊은 시절에 모은 자산으로는 70세 넘어서 감당할 수 없다는 산술적 계산이 깔려 있다. 하기야 당장 벌어먹고사는 사람이라 축적할 수 있는 자산의 여력이 없다면 공짜가 없는 시대에 누가 노후를 보장해줄 거 같지는 않고, 더구나 공공적 복지 체계가 70세 넘은 노인네들의 생활비까지 보조할 충분한 지원도 안된다. 젊은 세대가 무대책으로 늙어 버린 노후세대까지 부양의 짐을 지우는 일도 사실 버거운 현실이다. 결국은 각자가 각자의 삶의 스케줄에서 닥쳐올 미래의 인생에 대해 무시한 결과가 아닐까 싶었다. 내가 어릴 때만 해도 나이 든 노인네는 누군가 다 봉양했다. 환갑 나이만 지나도 어디 직장을 매일 다니며 고정적인 수익을 올리는 사람을 거의 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도 다 살아가더란 것. 물론 남은 자산과 자식의 봉양으로 생존에는 그리 큰 문제가 없었다. 그러나 지금은 자신이 그 문제를 해결했어야 하나, 통계에서 보듯이, 한 달 최저 생계비도 안되는 연금으로 생활이 안되는 노후의 세대들이 너무 많다. 그렇다고 자식들이 이제는 보험도 아니었고 노후를 책임지라 말할 수도 없다. 지금 젊은 세대는 자신들의 앞가림조차 버거워서 오히려 부모 세대에게 손을 내미는 경우를 많이 봤다. 그러니 73세까지라도 어떻게라도 무슨 일이든 해야 하는, 당장의 생계 문제가 되어 버린 셈이다. 달리 대책도 없으니 죽을 때까지 일하고 당장의 생활비에 연명해야 하는 운명은 정말 처절하고도 슬픈 일이다. 70세까지 일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은 스스로도 너무 억지스러운 삶이 아닌가. 그러나 현실이다.

사람은 누구나 노예로 살고 싶지 않으려 한다. 노예로 살려고 의도적으로 태어나고자 한 자도 단연코 없다! 다만 노예로 살지도 모른다는 가정을 무시하고 태어나게 한 사람들이 있을 뿐이다. 사람이란 자존감을 가진 존재로서의 주체적 존재라는 뜻이다. 아쉽게도 우리의 운명을 탓하며 노예는 아니지만 존재의 노예화가 된 시대를 사는 것은, 결국은 살아가는 것의 노예가 아니고 뭘까? 젊은 시절이야 어떤 든든한 자리에 직업을 가지려 하는 것도 생존에 더불어 자신의 삶의 성취감 등등의 여려 가지 이유를 붙이며 존재감을 가질 수 있다. 그러나 늙어서 몸도 노쇠하고 인지력도 떨어지며 건강도 이상이 나타나는 나이에서까지 일을 해서 여전히 돈을 벌어야만 할 수밖에 없는, 일을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 이게 너무나도 억지스럽고 거북스러운 거다. 그래서일까. 결과론적으로도 노인네들의 자살률이 다른 연령층보다 월등히 높은 이유를 달리 다른 것에서 찾을 필요는 없을듯하다. 쉽게 말해, 앞가림 안되면 삶을 포기하는 것이 아프지만 정확한 지적이 아닐 수 없다. 노예가 더 이상 일을 못하면 가치가 없는 것. 내가 돈 벌지 못하면 더 이상 가치 없으니 죽어야 한다는 자조가 노인네 입에서 공공연하게 나오는 현실은 노예적으로 살았음의 직접적인 실토가 아닐까.

하기야 지금도 마찬가지다. 사람은 일을 해야 산다는 명제는 죽을 때까지 유효하다는 생각. 태어난 목적은 일을 해야 하고 돈을 벌어야 산다는 철칙 같은 관념화된 인식. 현실적으로도 가치관적으로도 일을 못하면 생존에 위협을 받는다는 불변의 자연법처럼 견고한 성같은 거다. 왜 우린 일을 해야 할까?라는 근본적인 질문은 하지 않는다. 그야 뻔한 대답이 근본적 존재론적인 질문의 자리를 차지하고 대신하는 듯하다. 다른 질문을 하면 흡사 불경죄를 지어 처벌받을 만큼 생각은 고착되어 있는 것은 아닐까. 다른 의문을 품는 자는 가까이할 수 없는 불가촉민 것처럼 이 사회와 가정에 대해 위협적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어느 부모라도 지금 태어나게 한 자식은 앞으로 권력자가 될 것인지, 죽을 때까지 일만 하도록 살게 할 것인지, 판단이야 다 권력자 대열에 서 있으리란 가정을 하겠지만, 결과는 어느 사회이든 하부 구조를 이루는 사람이 아니란 보장은, 사실 하나도 없다. 내가 살아온 모습이 자식에게 그대로 투영될 것이란 생각은 왜 하지 못할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기 대신에, 자식은 나보다 더 나은 직군에서, 더 좋은 자리에서, 더 멋지고 근사한 위치에서 호령할 자식이 되리란 보장은 할 수 있는가? 학교 다닐 때, 수학 시험은 30점을 맴돌던 부모가 자식에겐 100점을 요구하는 것도 자신의 욕망을 투사시킨 것일 뿐이다. 영어 시험을 100점 맞고, 국어를 100점 맞고 수학을 100점 맞으면 좋은 대학 좋은 학과 혹은 의사나 판사쯤 되는 꿈을 꾼다. 자식이 이루는 성취가 곧 내 삶의 성취로 둔갑하는 것은 바로 자식이 반드시 노예로 살지 않기를 바라는 것이 영 아니란 말은 못할 것이다. 하지만 어쩌랴, 엄연히 1등급 학생은 전교에서 4% 일 뿐이고 나머지 96%가 2등급 이하인 것을.

다른 이야기를 해보자. 도시에서 살면서 일상에서 먹고 마시고 쓰는 모든 것들을 거의 대부분 전자결제 시스템을 사용한다. 지갑엔 현금 대신에 플라스틱으로 된 IC 칩이 내장된 카드를 쓰며 혹은 휴대폰의 전파로 전자 결제 시스템에 접근해서 돈을 지불한다. 전산 기록 상에 존재하는 숫자가 진짜로 화폐와 비례할까 아니면 단지 숫자의 정보일까. 그리고 어떤 곳에서 사용된 결제 자는 포인트 점수를 주거나 때론 몇 번 구매하면 하나는 서비스를 준다며 쿠폰을 주기도 한다. 결제를 수납 받은 금융기관이나 통신사에서 포인트 점수나 마일리지를 주기도 한다. 현금으로 주고받으면 결제 회사를 거치지 않으니 포인트나 쿠폰이 없다. 뭔가 손해 보는 느낌은 난다. 계속 한 곳에 집중해서 소비하려는 심리가 발동된다. 내가 소비에 있어서 이른바 발목에 족쇄가 채워진 셈이다. 때론 이런 할인처럼 보이도록 유도하는 것을 마케팅이라고 하기도 하고 상술이라고 하는데 소비자의 얼마 되지도 않고 또 이미 할인된 금액을 제품가에 다 반영 시켜 놓고서 할인인 것처럼 오해하게 만들고 다른 곳을 이용하지 않도록 유도하는 족쇄형 마케팅 전술이다. 나아가서 우리가 매일 지출하며 결제하는 신용카드, 전제 결제 시스템에서는 거래 기록이 그대로 빅데이터가 된다. 어디서 무엇으로 소비를 하며 어떻게 이용하는 것인지에 대한 단순한 정보가 모이면 모일수록 소비의 패턴이나 성향이 나타나고 이런 소비의 성향을 통계적으로 추출하게 되면 적절한 시간과 공간에 마케팅의 자료로 활용된다. 모든 SNS의 수익기반이 광고 마케팅의 도구인데, 어떤 쇼셜 미디어 도구를 사용하더라도 그 마케팅 자료는 곧잘 홍보용으로 빅데이터로 제공될 때 역시 또 새롭게 유인용으로 대체된다.

오래 전 역사에서 배웠다시피, 분명 노예제도가 있었다. 고대로부터 전쟁으로 폐한 국가의 국민이나 시민들이 포로로 잡혀가면 노예로 살다 죽었다. 혹은 노예의 자식으로 태어나도 노예로 살다 죽었다. 노예는 재산이 되어 이리 지리 노동력을 제공하며 살았다. 예를 들면 로마시대에는 노예의 수명이 30년이 채 넘지 못했다는 기록을 봤다. 노예로 살았던 사람의 무덤을 발굴한 뼈를 보면 무릎이 거의 남아나지 않았다고 하니 무릎이 다 닳아 버리리 정도로 노동을 했으니 어떻게 30까지 살지는 못했던 수명이었다. 권력이 점점 고착화되면서 전쟁의 포로가 노예로 살기보다는 노예가 노예를 낳는 것이 점점 많아졌을 것이고 보면, 노예는 왜 노예를 낳았을까.라는 질문을 할 수 있지만, 하나 어느 노예가 그런 질문을 할 만큼의 자존감을 가지고 존재의 근원에 대해 따져 묻는 것은 서자로 취급받아 아버지를 아버지로 부르지도 못한 홍길동 정도나 되어야 가능했을 것이다. 노예는 질문이나 의문을 가질 자유가 없었다. 조선시대의 양반 가문의 재산을 기록한 문서에도 노비라는 항목의 재산이 얼마나 자산적 가치로 취급했는지 기록으로도 나온다. 대를 이어 노비는 노비로 살아야 했던 그 노비의 아비는 과연 무슨 생각을 했을까라고 물을 필요는 없다. 그런 노예나 노비적 사고방식에서 벗어날 만한 자각이나 인식의 지식은 감히 상상도 할 수 없었을지도 모른다. 뭘 알아야 생각이란 걸 하게 된다. 그러나 태어나면서부터 노비였으니 당연히 자식, 또한 노비로 노예로 주인을 섬기는 일은 지극히 당연한 대를 이어 가문의 노비가 가질 수 있는 정당한 생각이었고 여기에 다른 이의를 품을 수도 없는, 그런 확신의 신념 앞에서 노에 탈출은 생각도 못했을 것이다. 물론 간혹 탈출이라고는 하겠지만 극소수의 상황으로 가능했을 수는 있어도 그러지는 못했다. 노예는 생각하는 존재가 아니라 죽을 때까지 주인을 위해 노동을 끝없이 제공하는 역할만 있을 뿐,누군 태어날 때부터 노비고 양반이고라는 물음의 생각이란 것을 하는 즉시 죽게 되었을지도 모른다. 생각할 지식도 없이 태어나면서 주어진 고착될 종속된 인생에 다른 어떤 의문이 들 수는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달리 생각해보면, 우리가 태어났다는 것은 완전한 자유에 배제된다는 뜻이고 존재함으로써 반드시 구속될 수밖에 없는 근본적 이유이기도 하다. 육체의 구속일 수도 있고 생각의 구속일 수도 있고 어디서 어떻게 태어나는 것의 조건에 따르는 것으로써 필수적으로 종속되기도 한다. 어느 시대에 살았는가에 따른 구속은 필연적일 수밖에 없다. 완전한 존재로서의 신적인 전지한 존재로는 인간은 애초부터 불가능하다. 그래서 종교가 만들어질 수 있었을 것이다. 조선 시대의 누구인지 지금의 누구인지 그 사회적 환경도 마찬가지이다. 당신은 몇 살까지 일해야 하는가라고 물을 때마다 곤란하다. 네, 죽을 때까지 일하죠. 일로 노예처럼 살도록 나왔으니까요.라고 말하면 시작부터 너무 우울하지 않을까. 사는 게 도대체 일하러 나왔다는 것도 슬프다. 이럴 바에는 왜? 나와가지고 이렇게 일 없어서 삶의 졸보로 사는 걸까. 오늘도 또 지루하고 진부하기까지 한 질문을 또 받았다. 언제까지 일할 거냐라고 묻는다. 아, 이 무슨 저주스러운 질문인건지...

가스 학살로 유명했던 폴란드의 아우츠비츠 유태인 수용소 정문에 걸린 팻말이 떠오른다. 

"ARBEIT MACHT FREI"(일하면 자유를 얻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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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호랑이 2019-08-09 00:2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사람이 무엇인가에 얽매이는 순간 노예가 되는 것 같습니다. 사랑의 노예, 돈의 노예 등등... 진정한 자유를 얻어야 노예 상태에 있질 않겠지만, 자유도 갈망하다 보면 자유의 노예가 되는 것은 아닐까 싶습니다. 그런 면에서 유레카님께서 일전에 말씀하신 바와 같이 ‘욕망‘을 하는 순간 사람은 노예로 빠질 운명인 듯합니다...^^:)

yureka01 2019-08-09 09:08   좋아요 1 | URL
족쇄가 발에 차는 쇠고랑이거든요..
채워져 있으면 쉽게 풀지 못하게 되거든요..
채워진 것을 쉽게 풀지 못하는 것..이게 노예화가 아닐까 싶습니다.
결국 쉽게 족쇄를 풀어낼 지혜가 자유를 만드는 것이겠지요...
네 욕망도 족쇄가 되면..욕망의 노예가 되니까요.

강옥 2019-08-10 16:3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코끼리 조련에 대한 얘기가 생각나네요
코끼리를 길들이기 위애 조련사들은 코끼리 발에 무거운 쇠사슬을 채운대요
반복된 학습을 통해 코끼리는 아무리 발버둥쳐도 벗어날 수 없다는 걸 알고
나중엔 쇠사슬을 풀어도 도망가지 못한대요.
우리 사는 것도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노동을 운명으로 받아들이며 사는 -

광활한 황야에
피할 곳도 숨을 곳도 없는 땡볕이 쏟아집니다.
어디로 가야할지 모릅니다. 본능적으로 죽기는 두려운 거구요.
어디쯤엔가 오아시스가 있으려니.... 생각하며 그 땡볕 속을 걸어갑니다.
그 자리에 서면 그대로 타서 죽을 것 같아서. 그렇게 살아도 60년이 금방입디다 ㅎㅎ

yureka01 2019-08-11 06:16   좋아요 0 | URL
60년이 금방이었다니...아고..네....비유가 ^^.....

2019-08-11 10:3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8-12 08:4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8-12 11:4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8-12 13:10   URL
비밀 댓글입니다.

페크(pek0501) 2019-08-14 12:3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는 글쓰기를 75~80세까지 할 수 있다면 행운일 것 같습니다. 이것도 건강이 따라 줘야 가능하죠.

완전한 자유는 없을 듯합니다. 살면서 생각의 구속도 얼마나 많은지...

yureka01 2019-08-14 17:27   좋아요 1 | URL
물론이죠..좋아하는 일을 하는 건 근로가 아니죠..
글쓰기로 생계도 해결되면 뭐 더없는 금상첨화일겁니다.
완전한 자유는 없거든요...

2019-08-15 18:1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8-16 08:49   URL
비밀 댓글입니다.

서니데이 2019-08-22 21:0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지난주보다는 기온이 내려갔지만, 여전히 더운 여름입니다.
오늘도 더운 하루, 시원하게 보내고 계신가요.
유레카님, 좋은 밤 되세요.^^

yureka01 2019-08-23 15:38   좋아요 1 | URL
처서도 지나가니 헌결 선선해질 거예요..
요즘은 업무가 바쁘니..글도 못올리겠어요..ㅎㅎㅎㅎ
늘 감사!~

雨香 2019-08-25 19:2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태어났다는 것 자체가 부조리라는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인간임을 잊지 말야햐 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10대에서 20대로 넘어갈 무렵 <시지푸스의 신화>를 읽고서요

yureka01 2019-08-25 20:21   좋아요 1 | URL
무척이나 동감입니다....존재 이 자체의 부조리함...

2019-08-27 16:3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8-27 16:5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9-01 15:5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9-02 09:1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8-27 16:4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8-27 17:0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9-01 15:5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9-02 09:05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