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언제까지 일을 하고 싶어 하는가? 라"라고 묻는 질문에 55세 - 79세까지 연령층의 65%가 73세까지 일을 하고 싶다는 통계 조사 결과로 나왔다. 며칠 전 퇴근길 차 안에서 듣고 있던 라디오 뉴스 한 토막이었다.

 

며칠 전, 회사에서 자체 사업으로 주거용 건물을 올리고 있는 부지의 준공전 토지 지적을 정리하는 업무가 있었다. 측량 신청을 하고 현장에 토지정보 공사에서 직원이 나와 측량 예약한 날이 17일이었다. 그런데 나는 16일을, 17일로 착각하여 16일 아침 일찍 현장에 나갔다. 물론 16일에 측량하는 직원이 나올 리가 없다. 나는 한참 동안이나 17일로 착각인 걸 모른 채, 왜 측량 기사가 제시간에 오지 않는지 일말의 의심도 없이 기다렸다. 아무리 무슨 일이 있어도 약속한 시간에는 나와야 하는 거 아니냐고 따졌다. 그러나 나는 심각히도 날짜 착각 중이었다. 그제서야 오늘이 17일이 아니고 16일인 것을 알게 된 순간, 단순한 인지 착오가 아님을 자각했다. 가끔 건망증이 새삼스럽게 심각한 느낌이었다. 나이가 들어가면서부터 부쩍 이런 착오의 일들이 잦아졌다. 아무리 정신을 차린다 해도 가끔 미스매치하는 경우가 야금야금 늘어난다. 이렇게 가다간 나 자신도 스트레스이고 일을 맡긴 회사도 업무 효율에 마이너스인 것만은 분명하다. 한창 일하던 젊은 시절인 30대나 40대에서는 전혀 볼 수 없었던 착오들이 하나 둘 늘어간다는 사실을 부인하기 어렵다. 물론 단적인 예이긴 하지만 이런 착각의 경우가 점점 잦아진다는 것.

 

나이가 들면  이렇게 단순한 것조차도 착오의 경우가 늘어가는데 하물며 새로운 시스템이 적용될 때 나 스스로가 얼마나 이 새로움에 적응하고 빠릿빠릿하게 반응할 수 있을까 생각해보면, 상당히 어렵다는 결론이 나온다. 배운다는 것도 머리 잘 돌아갈 때나 배우는 거지 점점 굳어가며 뇌의 회백질은 흡사 콘크리트처럼 굳어서 전화번호조차 뒤돌아서면 곧장 망각의 고개를 처드는 나이인데 뭘 하나 외운다는 게 보통으로는 외워지지도 않는다. 한번 보고 흡수했던 지식이 이제는 흡수되어 기억하지 못하는 뻣뻣하고 딱딱해져 버린 효용가치가 사라져버린 굳어 버린 시멘트 스펀지가 된 기분이다. 인지력과 암기력은 그만큼 떨어지고 낮아졌다. 공부도 다 때가 있다는 이유가 여기서 나온다. 새로운 일에 항상 부닥쳐야 할 업무가 점점 힘겹고 어렵게 될 때, 과연 나도 70세까지 지금과 같은 일을 할 수 있을까? 자신이 있고 없고를 떠나서, 그렇게까지 업무의 연장선상에서 머물러야 할 인생 이 자체가 정말 우울한 시간이라는 거다. 단순한 착각도 자주하다 보면, 누군가 급여를 제공하는 입장에서는 무척 큰 역효과이다. 그렇다면 계속 일을 주고 급여를 줘야 할 이유가 사라진다. 이런 일을 더 잘하는 젊은 후배들도 많다. 앞으로는 과거의 낡은 업무가 새로운 업무로 대체되고 과거의 업무에 비해 새로운 시스템의 일은 전과는 전혀 맞지 않다.

예를 들어 계산을 위해 주판 1급의 실력으로 엑셀을 잘할 수는 없는 일이다. 계산의 원리는 같지만, 그 작동 방식은 전혀 다르다. 주판 실력이 아무리 뛰어나더라도 손가락이 주판 알을 잘 만진다 해서 엑셀의 키보드 두드리는 일과는 그 체계가 전혀 다른 것이다. "내가 왕년에 주판 1급이었는데 계산이란 말이야 엑셀 정도는 웃습니다"라며 아무 문제없다는 식의 자신감은 그저 자만이며 오만일뿐이다. 계산의 시트의 체계와 주판 알의 계산 체계는 디지털과 아날로그의 차이로 멀리 있다. 주판 실력으로 75세까지 엑셀을 하겠다는 것은 더 이상 언급하지 않아도 뻔하다. 하고 싶다 해서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란 것쯤은 자각해야 한다. 착각과 자각 사이에 내가 있을 뿐이다.

젊은 시절에 모은 자산으로는 70세 넘어서 감당할 수 없다는 산술적 계산이 깔려 있다. 하기야 당장 벌어먹고사는 사람이라 축적할 수 있는 자산의 여력이 없다면 공짜가 없는 시대에 누가 노후를 보장해줄 거 같지는 않고, 더구나 공공적 복지 체계가 70세 넘은 노인네들의 생활비까지 보조할 충분한 지원도 안된다. 젊은 세대가 무대책으로 늙어 버린 노후세대까지 부양의 짐을 지우는 일도 사실 버거운 현실이다. 결국은 각자가 각자의 삶의 스케줄에서 닥쳐올 미래의 인생에 대해 무시한 결과가 아닐까 싶었다. 내가 어릴 때만 해도 나이 든 노인네는 누군가 다 봉양했다. 환갑 나이만 지나도 어디 직장을 매일 다니며 고정적인 수익을 올리는 사람을 거의 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도 다 살아가더란 것. 물론 남은 자산과 자식의 봉양으로 생존에는 그리 큰 문제가 없었다. 그러나 지금은 자신이 그 문제를 해결했어야 하나, 통계에서 보듯이, 한 달 최저 생계비도 안되는 연금으로 생활이 안되는 노후의 세대들이 너무 많다. 그렇다고 자식들이 이제는 보험도 아니었고 노후를 책임지라 말할 수도 없다. 지금 젊은 세대는 자신들의 앞가림조차 버거워서 오히려 부모 세대에게 손을 내미는 경우를 많이 봤다. 그러니 73세까지라도 어떻게라도 무슨 일이든 해야 하는, 당장의 생계 문제가 되어 버린 셈이다. 달리 대책도 없으니 죽을 때까지 일하고 당장의 생활비에 연명해야 하는 운명은 정말 처절하고도 슬픈 일이다. 70세까지 일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은 스스로도 너무 억지스러운 삶이 아닌가. 그러나 현실이다.

사람은 누구나 노예로 살고 싶지 않으려 한다. 노예로 살려고 의도적으로 태어나고자 한 자도 단연코 없다! 다만 노예로 살지도 모른다는 가정을 무시하고 태어나게 한 사람들이 있을 뿐이다. 사람이란 자존감을 가진 존재로서의 주체적 존재라는 뜻이다. 아쉽게도 우리의 운명을 탓하며 노예는 아니지만 존재의 노예화가 된 시대를 사는 것은, 결국은 살아가는 것의 노예가 아니고 뭘까? 젊은 시절이야 어떤 든든한 자리에 직업을 가지려 하는 것도 생존에 더불어 자신의 삶의 성취감 등등의 여려 가지 이유를 붙이며 존재감을 가질 수 있다. 그러나 늙어서 몸도 노쇠하고 인지력도 떨어지며 건강도 이상이 나타나는 나이에서까지 일을 해서 여전히 돈을 벌어야만 할 수밖에 없는, 일을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 이게 너무나도 억지스럽고 거북스러운 거다. 그래서일까. 결과론적으로도 노인네들의 자살률이 다른 연령층보다 월등히 높은 이유를 달리 다른 것에서 찾을 필요는 없을듯하다. 쉽게 말해, 앞가림 안되면 삶을 포기하는 것이 아프지만 정확한 지적이 아닐 수 없다. 노예가 더 이상 일을 못하면 가치가 없는 것. 내가 돈 벌지 못하면 더 이상 가치 없으니 죽어야 한다는 자조가 노인네 입에서 공공연하게 나오는 현실은 노예적으로 살았음의 직접적인 실토가 아닐까.

하기야 지금도 마찬가지다. 사람은 일을 해야 산다는 명제는 죽을 때까지 유효하다는 생각. 태어난 목적은 일을 해야 하고 돈을 벌어야 산다는 철칙 같은 관념화된 인식. 현실적으로도 가치관적으로도 일을 못하면 생존에 위협을 받는다는 불변의 자연법처럼 견고한 성같은 거다. 왜 우린 일을 해야 할까?라는 근본적인 질문은 하지 않는다. 그야 뻔한 대답이 근본적 존재론적인 질문의 자리를 차지하고 대신하는 듯하다. 다른 질문을 하면 흡사 불경죄를 지어 처벌받을 만큼 생각은 고착되어 있는 것은 아닐까. 다른 의문을 품는 자는 가까이할 수 없는 불가촉민 것처럼 이 사회와 가정에 대해 위협적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어느 부모라도 지금 태어나게 한 자식은 앞으로 권력자가 될 것인지, 죽을 때까지 일만 하도록 살게 할 것인지, 판단이야 다 권력자 대열에 서 있으리란 가정을 하겠지만, 결과는 어느 사회이든 하부 구조를 이루는 사람이 아니란 보장은, 사실 하나도 없다. 내가 살아온 모습이 자식에게 그대로 투영될 것이란 생각은 왜 하지 못할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기 대신에, 자식은 나보다 더 나은 직군에서, 더 좋은 자리에서, 더 멋지고 근사한 위치에서 호령할 자식이 되리란 보장은 할 수 있는가? 학교 다닐 때, 수학 시험은 30점을 맴돌던 부모가 자식에겐 100점을 요구하는 것도 자신의 욕망을 투사시킨 것일 뿐이다. 영어 시험을 100점 맞고, 국어를 100점 맞고 수학을 100점 맞으면 좋은 대학 좋은 학과 혹은 의사나 판사쯤 되는 꿈을 꾼다. 자식이 이루는 성취가 곧 내 삶의 성취로 둔갑하는 것은 바로 자식이 반드시 노예로 살지 않기를 바라는 것이 영 아니란 말은 못할 것이다. 하지만 어쩌랴, 엄연히 1등급 학생은 전교에서 4% 일 뿐이고 나머지 96%가 2등급 이하인 것을.

다른 이야기를 해보자. 도시에서 살면서 일상에서 먹고 마시고 쓰는 모든 것들을 거의 대부분 전자결제 시스템을 사용한다. 지갑엔 현금 대신에 플라스틱으로 된 IC 칩이 내장된 카드를 쓰며 혹은 휴대폰의 전파로 전자 결제 시스템에 접근해서 돈을 지불한다. 전산 기록 상에 존재하는 숫자가 진짜로 화폐와 비례할까 아니면 단지 숫자의 정보일까. 그리고 어떤 곳에서 사용된 결제 자는 포인트 점수를 주거나 때론 몇 번 구매하면 하나는 서비스를 준다며 쿠폰을 주기도 한다. 결제를 수납 받은 금융기관이나 통신사에서 포인트 점수나 마일리지를 주기도 한다. 현금으로 주고받으면 결제 회사를 거치지 않으니 포인트나 쿠폰이 없다. 뭔가 손해 보는 느낌은 난다. 계속 한 곳에 집중해서 소비하려는 심리가 발동된다. 내가 소비에 있어서 이른바 발목에 족쇄가 채워진 셈이다. 때론 이런 할인처럼 보이도록 유도하는 것을 마케팅이라고 하기도 하고 상술이라고 하는데 소비자의 얼마 되지도 않고 또 이미 할인된 금액을 제품가에 다 반영 시켜 놓고서 할인인 것처럼 오해하게 만들고 다른 곳을 이용하지 않도록 유도하는 족쇄형 마케팅 전술이다. 나아가서 우리가 매일 지출하며 결제하는 신용카드, 전제 결제 시스템에서는 거래 기록이 그대로 빅데이터가 된다. 어디서 무엇으로 소비를 하며 어떻게 이용하는 것인지에 대한 단순한 정보가 모이면 모일수록 소비의 패턴이나 성향이 나타나고 이런 소비의 성향을 통계적으로 추출하게 되면 적절한 시간과 공간에 마케팅의 자료로 활용된다. 모든 SNS의 수익기반이 광고 마케팅의 도구인데, 어떤 쇼셜 미디어 도구를 사용하더라도 그 마케팅 자료는 곧잘 홍보용으로 빅데이터로 제공될 때 역시 또 새롭게 유인용으로 대체된다.

오래 전 역사에서 배웠다시피, 분명 노예제도가 있었다. 고대로부터 전쟁으로 폐한 국가의 국민이나 시민들이 포로로 잡혀가면 노예로 살다 죽었다. 혹은 노예의 자식으로 태어나도 노예로 살다 죽었다. 노예는 재산이 되어 이리 지리 노동력을 제공하며 살았다. 예를 들면 로마시대에는 노예의 수명이 30년이 채 넘지 못했다는 기록을 봤다. 노예로 살았던 사람의 무덤을 발굴한 뼈를 보면 무릎이 거의 남아나지 않았다고 하니 무릎이 다 닳아 버리리 정도로 노동을 했으니 어떻게 30까지 살지는 못했던 수명이었다. 권력이 점점 고착화되면서 전쟁의 포로가 노예로 살기보다는 노예가 노예를 낳는 것이 점점 많아졌을 것이고 보면, 노예는 왜 노예를 낳았을까.라는 질문을 할 수 있지만, 하나 어느 노예가 그런 질문을 할 만큼의 자존감을 가지고 존재의 근원에 대해 따져 묻는 것은 서자로 취급받아 아버지를 아버지로 부르지도 못한 홍길동 정도나 되어야 가능했을 것이다. 노예는 질문이나 의문을 가질 자유가 없었다. 조선시대의 양반 가문의 재산을 기록한 문서에도 노비라는 항목의 재산이 얼마나 자산적 가치로 취급했는지 기록으로도 나온다. 대를 이어 노비는 노비로 살아야 했던 그 노비의 아비는 과연 무슨 생각을 했을까라고 물을 필요는 없다. 그런 노예나 노비적 사고방식에서 벗어날 만한 자각이나 인식의 지식은 감히 상상도 할 수 없었을지도 모른다. 뭘 알아야 생각이란 걸 하게 된다. 그러나 태어나면서부터 노비였으니 당연히 자식, 또한 노비로 노예로 주인을 섬기는 일은 지극히 당연한 대를 이어 가문의 노비가 가질 수 있는 정당한 생각이었고 여기에 다른 이의를 품을 수도 없는, 그런 확신의 신념 앞에서 노에 탈출은 생각도 못했을 것이다. 물론 간혹 탈출이라고는 하겠지만 극소수의 상황으로 가능했을 수는 있어도 그러지는 못했다. 노예는 생각하는 존재가 아니라 죽을 때까지 주인을 위해 노동을 끝없이 제공하는 역할만 있을 뿐,누군 태어날 때부터 노비고 양반이고라는 물음의 생각이란 것을 하는 즉시 죽게 되었을지도 모른다. 생각할 지식도 없이 태어나면서 주어진 고착될 종속된 인생에 다른 어떤 의문이 들 수는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달리 생각해보면, 우리가 태어났다는 것은 완전한 자유에 배제된다는 뜻이고 존재함으로써 반드시 구속될 수밖에 없는 근본적 이유이기도 하다. 육체의 구속일 수도 있고 생각의 구속일 수도 있고 어디서 어떻게 태어나는 것의 조건에 따르는 것으로써 필수적으로 종속되기도 한다. 어느 시대에 살았는가에 따른 구속은 필연적일 수밖에 없다. 완전한 존재로서의 신적인 전지한 존재로는 인간은 애초부터 불가능하다. 그래서 종교가 만들어질 수 있었을 것이다. 조선 시대의 누구인지 지금의 누구인지 그 사회적 환경도 마찬가지이다. 당신은 몇 살까지 일해야 하는가라고 물을 때마다 곤란하다. 네, 죽을 때까지 일하죠. 일로 노예처럼 살도록 나왔으니까요.라고 말하면 시작부터 너무 우울하지 않을까. 사는 게 도대체 일하러 나왔다는 것도 슬프다. 이럴 바에는 왜? 나와가지고 이렇게 일 없어서 삶의 졸보로 사는 걸까. 오늘도 또 지루하고 진부하기까지 한 질문을 또 받았다. 언제까지 일할 거냐라고 묻는다. 아, 이 무슨 저주스러운 질문인건지...

가스 학살로 유명했던 폴란드의 아우츠비츠 유태인 수용소 정문에 걸린 팻말이 떠오른다. 

"ARBEIT MACHT FREI"(일하면 자유를 얻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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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호랑이 2019-08-09 00:2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사람이 무엇인가에 얽매이는 순간 노예가 되는 것 같습니다. 사랑의 노예, 돈의 노예 등등... 진정한 자유를 얻어야 노예 상태에 있질 않겠지만, 자유도 갈망하다 보면 자유의 노예가 되는 것은 아닐까 싶습니다. 그런 면에서 유레카님께서 일전에 말씀하신 바와 같이 ‘욕망‘을 하는 순간 사람은 노예로 빠질 운명인 듯합니다...^^:)

yureka01 2019-08-09 09:08   좋아요 1 | URL
족쇄가 발에 차는 쇠고랑이거든요..
채워져 있으면 쉽게 풀지 못하게 되거든요..
채워진 것을 쉽게 풀지 못하는 것..이게 노예화가 아닐까 싶습니다.
결국 쉽게 족쇄를 풀어낼 지혜가 자유를 만드는 것이겠지요...
네 욕망도 족쇄가 되면..욕망의 노예가 되니까요.

강옥 2019-08-10 16:3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코끼리 조련에 대한 얘기가 생각나네요
코끼리를 길들이기 위애 조련사들은 코끼리 발에 무거운 쇠사슬을 채운대요
반복된 학습을 통해 코끼리는 아무리 발버둥쳐도 벗어날 수 없다는 걸 알고
나중엔 쇠사슬을 풀어도 도망가지 못한대요.
우리 사는 것도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노동을 운명으로 받아들이며 사는 -

광활한 황야에
피할 곳도 숨을 곳도 없는 땡볕이 쏟아집니다.
어디로 가야할지 모릅니다. 본능적으로 죽기는 두려운 거구요.
어디쯤엔가 오아시스가 있으려니.... 생각하며 그 땡볕 속을 걸어갑니다.
그 자리에 서면 그대로 타서 죽을 것 같아서. 그렇게 살아도 60년이 금방입디다 ㅎㅎ

yureka01 2019-08-11 06:16   좋아요 0 | URL
60년이 금방이었다니...아고..네....비유가 ^^.....

2019-08-11 10:3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8-12 08:4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8-12 11:4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8-12 13:10   URL
비밀 댓글입니다.

페크(pek0501) 2019-08-14 12:3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는 글쓰기를 75~80세까지 할 수 있다면 행운일 것 같습니다. 이것도 건강이 따라 줘야 가능하죠.

완전한 자유는 없을 듯합니다. 살면서 생각의 구속도 얼마나 많은지...

yureka01 2019-08-14 17:27   좋아요 1 | URL
물론이죠..좋아하는 일을 하는 건 근로가 아니죠..
글쓰기로 생계도 해결되면 뭐 더없는 금상첨화일겁니다.
완전한 자유는 없거든요...

2019-08-15 18:1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8-16 08:49   URL
비밀 댓글입니다.

서니데이 2019-08-22 21:0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지난주보다는 기온이 내려갔지만, 여전히 더운 여름입니다.
오늘도 더운 하루, 시원하게 보내고 계신가요.
유레카님, 좋은 밤 되세요.^^

yureka01 2019-08-23 15:38   좋아요 1 | URL
처서도 지나가니 헌결 선선해질 거예요..
요즘은 업무가 바쁘니..글도 못올리겠어요..ㅎㅎㅎㅎ
늘 감사!~

雨香 2019-08-25 19:2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태어났다는 것 자체가 부조리라는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인간임을 잊지 말야햐 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10대에서 20대로 넘어갈 무렵 <시지푸스의 신화>를 읽고서요

yureka01 2019-08-25 20:21   좋아요 1 | URL
무척이나 동감입니다....존재 이 자체의 부조리함...

2019-08-27 16:3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8-27 16:5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9-01 15:5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9-02 09:1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8-27 16:4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8-27 17:0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9-01 15:5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9-02 09:05   URL
비밀 댓글입니다.
 

일단 텍스트 없이 사진만^^.

 

 

 

 

 

 

 

 

 

 

 

 

 

 

 

 

 

 

 

 

 

 

 

 

 

 

 

 

 

 

 

 

 

 

 

 

 

 

 

 

 

 

 

 

 

 

 

 

 

 

 

 

 

 

 

 

 

 

 

 

 

 

 

 

 

 

 

 

 

 

 

 

 

 

이상입니다^^...편안한 감상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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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ussbaum 2019-08-06 11:0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그림도 그렇듯, 사진도 좋은 사진들을 많이 봐야 한다는 생각을 하는데 멋진 사진 감사합니다. ^^


yureka01 2019-08-06 11:13   좋아요 1 | URL
피사체들이 그리 심각한 생각을 요구하지 않는 사진들이라서..편안하게 감상하셨기를!~^^..

hnine 2019-08-06 12:2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가로등 아래 비 맞고 있는 나뭇잎 사진, 저는 제일 좋아요.

yureka01 2019-08-06 13:22   좋아요 0 | URL
비올 때 사진 찍으면 비와 상념에 푹 젖어 들죠..

단점은 사진 찍기가 상당히 불편하다 입니다..
우산과 카메라 같이 들고 찍기에 자세가 안나와서요..

책읽는나무 2019-08-06 14:4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빛들이 아름답게 느껴지네요.
태풍 영향으로 비도 오고 있고~~고요하게 사진 감상하기 딱 좋은 시간입니다.

yureka01 2019-08-06 16:57   좋아요 0 | URL
네 편하게 감상하셨길....
지금 비내리네요..바람은 세지 않고 시원하게 내립니다....^^..

stella.K 2019-08-06 14:5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와우, 얼마만에 보는 사진입니까?
못 보는 사이 명작을 탄생시키셨군요.
그림 같습니다. 훌륭합니다!!

근데 비오는 날에도 나가 사진을 찍으시는군요.
그 열정에 박수를 보냅니다. 짝짝짝!

yureka01 2019-08-06 16:58   좋아요 1 | URL
비내릴 때 카메라들면 ..비의 감성에 젖어들게 되더라구요..
비내리는 사진 좋아하는 이유입니다..^^..
편안한 감상 되셨길.

아 사진 많이 못찍으니..자주 못올리게 되었어요..

2019-08-06 15:1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8-06 16:59   URL
비밀 댓글입니다.

syo 2019-08-06 19:4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우와...
자주자주 많이많이 찍어주세요.....

yureka01 2019-08-07 09:06   좋아요 0 | URL
알라딘 서재에서는 포스팅하기 좀 멋쩍긴해요..ㅎ

겨울호랑이 2019-08-06 23:5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7번 째 사진의 구름은 마치 빛을 발하는 새, 불사조 처럼도 보입니다. 빛을 쫓는 유레카님의 마음이 피사체에 투영되어서일까요. 사물은 사진기 앞에서 작가의 눈에서 한 명의 배우/모델로 거듭남을 느낍니다. 좋은 사진 감사합니다.^^:)

yureka01 2019-08-07 09:05   좋아요 1 | URL
구름이 새로 보였다니..그러고 보니 새로 보이긴 하네요..^^..

2019-08-07 10:1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8-07 10:23   URL
비밀 댓글입니다.

강옥 2019-08-07 15:4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그 바쁜 와중에도 꾸준히 사진을 찍으셨군요.
맨 앞의 사진은 유레카님 사업장 내지는 근무처(?)인가 싶은 생각도 ㅎㅎ
사진 사이즈를 좀 키우셨으면 어쩔까.... 싶은 생각도.
몇 페이지 글보다 사진 한 장이 훨 낫습니더!!!

yureka01 2019-08-07 16:16   좋아요 0 | URL
혼자 즐기는 사진이라서요..꾸준함..이거 좋아합니다..
아 동네도 있고, 여러지역에 걸쳐 있는 사진이었습니다...

아참..알라딘 서재블로그는 텍스트용이라서 사진하고는 안맞아요..

블로그 프레임이 자동 리사이즈 축소되어서 사진 크게 올리기가 어렵더라구요.

저도 역시 글보다는 사진이 좋아서요..

강옥 2019-08-07 18:5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 물결무늬 사진 말인데요
우리 동네 저수지에 가서 시도해봤는데
생각만큼 멋있게 안 나오던데요 ㅠ.ㅠ
촬영 팁을 좀.... ㅎㅎ
어떤 조건에서 찍으면 좋은지 한 수 갤카주세욤~~~

yureka01 2019-08-07 20:10   좋아요 0 | URL
모티브는 미국의 추상화가 잭슨폴록의 화화를 참조 했습니다.
이미 오래전 부터 파고 들었던 주제입니다.

조건은 역광에서의 반사입니다.순광에서는 명암대비가 적어요..
즉 피사체의 반사된 그림자를 담아보세요..
환경은 수면과 피사체가 가까워야 하고
적당한 물결이 일어야 합니다.
바람이 없어도..바람이 너무 일어도 물결은 정지되거나 흐트러지거든요..
골과 산을 이루는 물결에 반사된 피사체..
영원과 무한...순간과 유한이겠지요...

이와같은 조건과 환경이 아니면 이런 사진은 나오지 않으니 참고 하세요.
이렇게 되어 있는 항구나 가까운 포구에 가셔도 됩니다....

서니데이 2019-08-07 21:3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사진 잘 봤습니다. 흑백사진과 컬러사진은 서로 다른 느낌이 좋은 것 같아요.
유레카님, 시원하고 좋은 하루 보내세요.^^

yureka01 2019-08-07 23:34   좋아요 1 | URL
때론 거친 흑백도 좋아하고..
아주 말끔한 컬러도 좋아하죠..
매 순간마다 땡기는 색감이 있더라구요..

에어콘 빵빵하게 틀어요..더위 며칠 안갈 겁니다..ㅎㅎㅎ

2019-08-11 10:4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8-12 08:4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8-12 10:4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8-12 11:2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9-01 16:0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9-02 09:06   URL
비밀 댓글입니다.

AgalmA 2019-08-13 05:2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사진 너머 이렇게 세상을 볼 수 있는 시선이 더 감동스럽고 아름답네요🐳👍👍👍

yureka01 2019-08-13 09:11   좋아요 1 | URL
아름답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1. 휴가 마지막 날. 아침 일찍 일어나서 충남 공주에 있는 우금치로 향했다. 갑자기 우금치였던지 모르겠다. 특별히 작정한 바 있어서 가 보고 싶었던 것은 아니었다. 1894년 11월 그날의 전투의 현장에서 과연 이름 없는 아무개 농민이 변변한 무기조차 없이 죽창 하나 들고 우금치 고개를 달렸을 그 순간을 떠 올렸다면 너무 비약인지는 모르겠다. 좁은 골 양 사이드에 대포와 개틀링 기관총은 밀집 대형으로 뛰어오는 농민군들이 쉬운 표적지나 마찬가지였겠지. 전투라기보다는 그냥 학살 수준이었을 것이고, 농민군 입장에서 보자면 거의 자살 수준이었다. 1-2만 명이 50번의 "둘격 앞으로"에서 죽어 나간 숫자가 산을 이루듯이 시체가 쌓였을 것이다. 참가한 인원이 정확히 몇몇인지 참가 대장을 기록하지도 않아서 일까 기록이 없으니 아마 누군지도 몰랐을 것이고 구체적인 숫자도 몰랐을 것이다. 전황을 분석할 줄 아는, 군사지식을 전문적으로 배운 지도자도 없이, 싸우던 대로 변변한 무기조차 없이 오로지 돌격 앞으로!~였으니, 패배하는 거야 아쉽지만 어쩌면 너무나도 당연했을 것이다. 썰에 따르면, 일본군 1명이 거의 500명을 죽였을 정도로 전투 수치는 극명히 대비하는 것을 보게 된다.



2. 시작은 전라도 고부 군수의 폭정이 원인이었지만 국내외의 정세는 제국주의가 침략이 시작되고 전 세계는 식민지로 만드는 것이 유행처럼 번졌을 때이다. 일찍 개항을 하고 막부의 군국주의가 임진왜란에서 주장한 정한론이 다시 군국주의적 제국건설과 대동아공영권이 다시 정한론으로 나온 것도 어쩌면 자연스러운 것이었을 것이다. 소비시장이 필요하고 자원을 약탈할 식민지가 그래서 필요한 목표가 조선 점령이었을 것이다. 하나의 국가가 패망하는 이유나 원인은 수도 없이 많았겠지만, 결국은 집권하고 있는 통치 세력의 무능과 판단력 부재, 그리고 기득권의 집착으로 요약될 수밖에 없다. 일개 군수가 저지른 패악으로 비추어 보면 중앙의 집권세력의 패악은 오죽할까만은, 철저한 기득권의 권력 안주는 국제정세를 너무 둔감할 수밖에 없고 기득권의 손실을 두려워 놓지를 못하게 하는 것도 판단을 방해하는 결정적인 원인이었는지도 모른다. 쇄국도 자신의 권력을 잃을까 두려워서 문을 닥고 막기에 급급한 방편일 뿐이었음에 대한 결과일 뿐이었다. 그러니 이런저런 사건과 사고가 다 국가의 힘을 가질 수없는 허수아비로 만들었던 것이 아닐까 한다. 집권세력의 판단에 대한 책임은, 그대로 국민으로 피해로 전가되었고 국가를 잃은 식민지 2등 국민의 역할은 36년 동안의 피지배자로 약탈당하는 고통으로 연결되었다. 권력의 무능한 책임에 대한 대가가 국민이 고스란히 전가 받을 수밖에 없는 운명이었던 것이다. 역사적으로 볼 때 똥칠은 권력자들이 질러 놓고, 치우는 것은 국민이었던 아픔이다. 사대주의 속에 빠져 있었을지라도, 복속당해서 말과 글을 잃은 적이 없었던 역사에서, 일본 군국주의자들의 침략으로 흡수 합병되어 나라가 사라지는 결과는 처음이었으니 근대사의 뼈아픈 치욕적 패배였다.



3. 러시아에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집단 돌격 앞으로!~의 구령이 우라!~이다. 돌격 앞으로 할 때 우라!~~~를 외치며 총알과 포탄이 터지는 사이로 달려 들어가 백병전을 벌이는 전술은 무모하기 이를 대가 없겠지만 그 순간만큼은 피를 끓게 했을지도 모른다. 아마도, 그날의 전투에서 이름 모를 농민이 죽창 하나 빼어 들고 앞으로 달려 나갔을 것이다. 죽창으로 한번 찔러 보지도 못한 채 멀리서 쏘는 타깃이 된 돌격은 무참히 쓰러지고 나뒹굴고 말았을 것이다. 그런 고통의 아우성 같은 바람 소리가 우라!~~로 들렸을 법도 한 착각이었다.



4. 우금치 골짜기에는 너무나도 적막한데 한 여름의 바람 소리는 흡사 그날의 아우성처럼 복잡한 소리를 내고 있었다. 골짜기를 타고 빠르게 흐르는 바람은 그날의 소리를 닮은 듯이 거세게 불어 댔다. 그리고 100년도 더 지난 한 여름날의 더위는 숨 막히게 했다. 이름 모를 무수한 들풀들이 우금치 골짜기에 빼곡히 피어 있었다. 개망초꽃이 뜨거운 한여름의 바람을 맞아 흐드러지게 흔들렸다. 이 많은 풀들이 흡사 그날 치열하게 내 달렸을 농민들이었을 것만 같았다. 스치는 바람은 더 뜨거웠던 함성을 닮았다.



5. 휘몰아치는 바람에 골짜기의 나무는 온몸을 비틀어 가지를 흔들 거렸다. 역사는 그날의 기록으로 한 페이지를 남겼지만, 추풍낙엽처럼 떨어져간 영혼들은 외로운 위령탑 하나로 가름하기에는 너무 초라한 모습이었다. 그렇겠지. 장비도 변변하게 없이 군복이란 것도 없이 전투모 하나 없이 짚신으로 전투를 했을 사람들의 생명들은 바람 앞에선 촛불과 다를 바 없었던 비극의 현장이었던 거다.





6. 역사는 지나간 과거의 영향이 여전히 현재 진행형으로 미치고 효력은 되풀이로 살아난다. 징용당해 청춘을 빼앗긴 피해자가 민간 개인 신분으로 기업에 착취 당해 배상을 청구한 결과를 두고 정치적 대응한 현재의 일본 정치권은, 수출 규제라는 카드를 꺼내 들었고, 이에 국내는 일본에서 만든 제품의 불매를 시작했다. 결과는 어디까지 미치게 될지 장담은 할 수 없으나 현대에서 기업의 제품은 각종 부품의 생산 유통 제조 판매가 분산되어 있거나 분업화되어 있다고 보면 정확하다. 한 기업에서 모든 것을 다 하기에는 벅차다. 하려면 다 할 수 있지만 너무 비효율적이고 생산 코스트의 상승을 야기하게 된다. 이런 국제 무역의 질서가 효율적이고 상대적인 이익 발생이 우월하기 때문에 분업화되는 무역 선정한 방식이다. 그런데 이런 질서에 대해 정치적인 영향으로 재제적 수단화시키는 것은 양자 사이에서 대단히 위험하다는 거다. 그런데 일본 정치권에서 사법적인 문제를 정치적 문제로 무역의 제재라는 카드가 상대에게 피해를 줄 수도 있지만 자칫 자해적이기도 하다. 일본은 간과한 것이 하나가 있다면 한국인의 냄비근성을 몰랐을 가능성이 매우 크다. 대대로 일이 꼬여 박살 날 지경에 이르게 되었을 때 분연하게 일어난 것은 이름 없는 의병이 불처럼 일어나듯 같은 시민들의 합일점이었다. IMF 때 금반지까지 빼서 던질 분위기를 잘 타는 민족임을 몰랐던 거다. 아직 IMF의 자금을 받은 국가치고 이렇게 금을 모아 달러로 바꾼 경우는 우리가 유일하다. 즉, 분위기 타는 것을 냄비근성이라고도 하지만 이랬든 저랬든 그 위기의 대응은 결국 다수의 결집으로 타나 났던 거다. 이런 분위기가 언제까지 갈지는 모르겠으나, 인터넷이 대중화되기 전과 후의 양상은 사뭇 다를 수 있다는 거다. 요즘 가끔 대두되는 문구가 떠오른다. 독립운동에 나서지는 못했으나, 불매운동은 참가할 수 있다고 한다. 동학 농민군들처럼 죽창을 들고 개틀링 기관총 앞으로 돌진할 수는 없어도 내가 가진 자본으로 일본산 제품을 구입하지 않는 것은 독립운동보다 훨씬 쉽다는 의미일 것이다. 무역이란 어디까지나 구매처가 갑이다. 사달라고 마케팅이 있고 판매가 이루어져야 이익이 발생한다. 팔아도 사주지 않겠다는 단체의 구매력의 힘은 자본주의에서 함부로 건들기 상당히 힘든 상황에 빠지게 한다. 일본은 개개인의 청구권에 제갈을 물리겠다는 발상에는 동학 농민군이 지금 나타났다면 과연 찬성했을까 따져 볼 문제일 것이다.


7. 일본의 방식은 늘 한국이 그들의 존재적 이유였던 것처럼 이익을 많이 봤다. 식민지에서 뽑아 먹은 노동력이 얼마였으며 자원이 얼마였고, 수탈한 물자들은 얼마였겠는가 싶다. 6.25한국 전쟁의 군수물자 생산 기지로 막대한 수익을 올린 것도 한국 때문이었을 것이고 베트남전에 한국의 군수물자를 수출해서 벌어들인 돈은 도쿄의 올림픽을 하고 자신들이 부를 쌓은 과시를 했다. 그러나 그들은 옆에 뽕 빨아먹는 존재가 있어서 고맙기는커녕 항상 혐한이 그들의 방식으로 임란 때나 지금이나 어찌 그리 닮았을까.


독일에 점령 당한 프랑스의 어느 서점에서 혐독일이란 책이 매대를 차지하고 베스트셀러로 등극하는 일은 없다. 영국과 프랑스가 백 년 전쟁을 벌였을 정도로 앙숙이었다지만 영국의 어느 서점에서 혐 프랑스 코너로 다수의 책이 베스트셀러라고 하는 책도 없고 프랑스에서 어느 서점에서 혐영국이란 베스트 코너도 없다. 하물며 이스라엘 예루살렘의 어느 서점에서도 혐독일하는 책이 베스트셀러로 제일 잘 보이는 매대를 장식하는 경우도~ 거의 없다. 그러나 일본의 유명 대형 서점에는 혐한의 지독한 정서로 장식된 책이 버젓이 베스트셀러로 등극하며 판매 순위를 오르락 거린다. 일본에서도 분명 지식인이 있고 양심이 살아 있는 층이 있을 수 있다지만 이건 좀 아닌 거 같아서이다. 반대로 우리나라 어느 서점에서도 혐일하는 책을 모아 제일 잘 띄는 위치에 매대를 세웠다는 뉴스를 본 적이 없다. 알라딘 온라인 서점에서도 혐오의 일본에 관한 책을 모아 코너로 만든 것도 없다. 과연 한국이 일본에 무슨 잘못을 하고 밉보였던 걸까? 혹시 그들의 섬나라 특유의 열등감은 미움과 혐오로 발전되고 살아가는 존재적 이유는 아닐까 싶을 정도이다.


일본은 한때 잘 나갔다. 잘 나갔을 때의 갈라파고스 같은 똥고집은 곧 잘 장인정신으로 우대되며 오로지 자기 분야의 최고 실력으로 발현되었다. 그러나 지금은 어떤가. 아날로그 시대가 저물고 디지털 시대는 복제가 자유로운 시대이다. 광범위한 복사의 방식은 진본과 모방의 구분을 없애 버렸다. 여기에서 일본의 장인정신은 타협 없는 똥고집이 최고하는 신화가 무너진다는 점이다. 그 똥고집과 혐한의 정서는 결국 자신들의 존재 이유에 대한 성찰을 방해한다.

사과와 반성은 피해자가 그만하라고 할 때까지 하는 것이고 용서를 구하는 것도 피해자가 그만하면 많이 했으니 반성과 사과를 받아들일 때 비로소 해소가 된다는 가장 기본적인 사고방식을 그들의 특유의 자존심이 허락하지 못하는 자만심의 민족이 아닐까 싶다. 앞으로 한일간의 갈등 역시 양상의 방향과 키는 가해자이자 전범국이 쥐고 있는 것이 아니다. 피해자였던 우리가 용서와 반성을 받아 줄지 말지를 결정권자이다. 이런 인식이 없는 한, 앞으로도 한일간의 서로 앙숙은 계속될 수밖에 없다. 국가가 패망한 것은 한 번도 과하다. 다시는 막무가내의 돌격 앞으로 같은 우를 범하지 않고 국가가 복속되었을 때의 식민 국민의 한을 되풀이하지 말아야 한다.


노예는 가끔 자발적일 때가 제일 안타까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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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7-31 22:1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7-31 22:1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8-01 00:1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8-01 08:49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9-08-01 09:20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휴가를 일찍 보내셨네요. 저는 좀 일부러 휴가 날짜를 늦게 잡았어요. 이번 휴가는 그냥 집에서 보낼 건데 일찍 잡든 늦게 잡든 똑같은 거 같아서요.. ^^;;

드라마가 방영된 이후에 우금치 전적지를 찾는 사람들이 조금 늘어났을까요? 일제 강점기 때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분들도 존경하고 기억해야 하지만, 근대 이전에 활동한 독립운동가, 의병장들도 많이 주목받았으면 좋겠어요.

yureka01 2019-08-01 09:31   좋아요 0 | URL
드라마 했군요..TV를 아예 시청하지 않는터라 드라마 하는 줄도 몰랐어요..
네.영화나 다큐로 제작된 적은 있다고 알고는 있지만 본 적은 없었거든요..
일제 치하 통치기간의 독립운동은 그나마 조명되는데 이전에 대한 근대 저항역사는 약간 못미치는듯하더군요..

휴가 길지도 않고 해서 시간은 금방 지나버렸어요..아놔..

강옥 2019-08-02 16:3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마낫!
며칠만 일찍 이 글을 읽었더라면 우금치엘 가보는 건데요....
수요일(7/31) 공주, 서천 그 동네 돌아다녔거든요
일주일동안 수도권을 맴돌았는데 갑사, 마곡사는 알아도 우금치는 몰랐던..... ㅠ.ㅠ

오늘 일본이 2차 공격을 감행했네요
미국이 중국을 밟고싶은 것처럼 일본도 우리를 밟고 싶겠죠
니 마이 컸네? 하면서 마구 밟아 뭉개고 싶을 거예요. 우리가 앞설까봐

yureka01 2019-08-02 19:56   좋아요 0 | URL
국가 조선은 힘없는 나라였는데,
쮜뿔로 없는 농민이 낫들고 호미들고 죽창들고 죽을 줄 알면서도 우라!~~~~를 외치던 그 객기.....

지금은 낫들 필요도 없이,
안사고 안먹고 안가면 되니 얼마나 편한가 싶습니다..

ㅎㅎㅎ 라이카 너무 비싸요.
그런데..와잎이 라이카 살까 하니 사라더군요..핫ㄷㄷㄷㄷㄷ

Nussbaum 2019-08-03 09:5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공주는 제 고향인데, 올리신 사진을 보니 며칠 전 다녀온 고향이 생각납니다.

음.. 제 고향 사람들의 성향으로 볼 때 그 때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화가 났을까 하는 생각으로 닿게 되네요.

일본과 독일은 참 대비가 잘 되는 국가라는 생각을 해 봅니다. 둘 다 인류에게 끔찍한 짓을 저질렀지만 한쪽은 아직도 그 망령에 사로잡혀 있고, 한쪽은 많은 반성을 하는 모습을 보이고.

이번 일로, 조금이나마 반성의 시간을 갖게 되는 일이 벌어졌으면 하는 바람 가져봅니다.

그나저나 라이카 Q2가 나와서 무척 고민이신가 봅니다. 요즘 생각을 해 보는데 만일 카메라 하나를 더 사야 한다면 저는 라이카입니다 ^^


yureka01 2019-08-03 10:56   좋아요 0 | URL
아고 공주가 고향이셨군요...
고향에 대해 대단한 자부심 가져도 좋은 고장이더군요.
다른 거 다 제치더라도 그 자유를 향한 저항의 역사는 두고두고 기념할 사건이었으니까요.

지금 유럽에서 EU의 경제 공동체 정치공동체..심지어 화폐조차 유로화로 단일 체제가 된 주축의 원인은
독일이 전쟁범죄에 진정한 사과와 반성을 했기 때문에 가능했던 거죠..
가까운 나라들이 합심하고 단일 경제로 나갈 때 얼마나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는지 규모의 경제를 이룰 수 있는지 좋은 사례거든요..

네..라이카.... 침만 삼키고 있습니다...내년에 예금 만기되면 지르까...고민중입니다..
가격이 진짜 넘사벽이라서..아흑.~~~~~

더운 여름날 시원하게 나시구요~~~감사합니다~

2019-09-01 16:0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9-02 09:08   URL
비밀 댓글입니다.
 
모든 것의 가격 - 인간의 삶을 지배하는 가격의 미스터리!
에두아르도 포터 지음, 손민중.김홍래 옮김 / 김영사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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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흐가 그린 "붉은 포도밭"이란 작품이 팔린 가격은 그 당시 가격으로 400프랑. 참고로, 근래에 소더비 경매장인가 거기서 고흐가 그린 "해바라기"라는 그림은 2억 4000만 프랑에 팔렸다. 고흐의 그림은 하나를 뺀 나머지는 전혀 팔리지도 못했다. 가격을 비교해도 어마어마하다. 고흐는 가난과 정신분열증으로 인해 생을 자살로 마감했다. 생후에 그의 그림으로 수집가들이나 소장가들은 막대한 부를 고흐의 그림으로 쌓아 올렸다. 정작 만든 사람은 아프게 죽어갔으나, 그림 소장자들이 결과적으로 돈을 벌어들인 셈이다. 어쩌면 시대를 너무나 앞서가버린 회화 천재라서 불행한 것인지도 모른다. 만약 지금 고흐가 살아 있다면, 자신의 그림 가격을 보고 무슨 생각이 들었을까 상당히 궁금하다. 뭔가 억울해라고 하지 않을까? 보통 예술 작품의 가격은 당대의 작가가 삶의 비용으로 치르는 가격과 폭등해버린 작품의 가격의 불균형이다. 도대체 이 가격이라는 덩어리를 어떻게 취급해야 할지 이 책에서 밝혔다. 물론 문화라는 가격에 대한 고찰도 장황하리 만큼 길게 나오는 이유일 것이다.

절대적인 가격은? 없다. 가격이란 대게가 상대적일 뿐이다. 특히 절대적일수록 가격은 무한대로 커졌다가 일순 사라져 버린다. 이 물건은 가격을 메길 수가 없다고 하는 순간, 가격은 사라진다. 가격을 메길 수 없다는 것은 가격이 없는 것과 같으니까 말이다. 우리가 매일 숨 쉬는 공기를 가격으로 따질 수도 없고 매일 마시는 물의 가격도 따질 순 없다. 공기의 질적인 부분이나 물의 질적인 부분으로 가격이야 상대적일 따름이다. 특히 시간을 돈으로 사고파는 거라면 부자는 남의 시간을 사들여서 영원히 살지도 모르는 일이다. 시간을 사고파는 일은 없다. 즉 가격이 없다는 의미이다. 가격을 매길 수 없는 것일수록 꼭 필요한 필요성이 절대적인 것들이다. 논리의 가격과 철학의 가격, 문학의 가격 등등 우리가 인문학적으로 추구하는 예술의 가격은 절대성에 수렴하게 될수록 가격을 매길 수 없다. 상대적인 것일수록 가격에 민감성이 높다.

 

이처럼 가격이란 우리들이 시장 경제와 자본주의 체재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과 임무가 있다. 하루라도 소비를 하지 않고 가격에 전혀 도외시하며 사는 사람은 거의 없다. 한편으론 대부분 종속되어 있거나 심지어 이 가격에 의해 지배당하기도 하고 또는 가격을 주도하기도 한다. 이 책에서는 은행가들에게 질타를 한다. 시장의 가격을 주도하는 역할이 은행가들이었다고 봤다. 은행가들의 이익에 따라 가격의 흐름을 리드하는 것도 결국 이자율일 것이다. 이렇게 돈에도 가격이 있다. 돈의 가격을 매기는 은행가들에게 고액의 연봉은 일반 노동자의 노동 가격보다 훨씬 많다. 결국 돈을 주무른 자와 돈에 굴복된 자의 차이는 노동의 가격으로 차이를 낸다. 이 또한 상당히 큰 불공정한 거다.

 

추상적인 것들의 가격의 결정은 극히 소수의 수요와 공급으로 결정되며 현실적인 것들일수록 상품의 가격은 수요에 결정된다. 어떤 제품을 구입하고자 하루에 서너 번씩 가격을 비교하고 가용성. 즉 가격 대비 효율성을 따지는 것도 결국 가격의 상대적인 가치에 높은 효율을 얻어야 이익이 발생한다는 원리일 것이다. 앞서 언급했듯이 공기의 가격, 우주의 가격, 문학의 가격, 심지어 가정의 가격. 혹은 도덕과 윤리의 가격을 따져 보면 우리 인생의 삶이란 모든 것을 가격이란 객관적인 가치로 환승해보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 것이다. 자신의 삶의 가치는 과연 얼마인지를 따져 본 적이 있었는가?라는 질문에 적절한 사유를 하게 만들어 주는 책이다.

이 책에서 조금 흥미롭게 읽었던 부분이 공짜의 가격이었다. 공짜에도 가격이 있고 공짜에 숨은 이면의 심리적 현상에 대해 저자는 조목조목 지적한다. 그러고 보니, 알라딘 서재에서의 리뷰의 가격은 얼마일까 싶었다. 막상 이 책을 읽고 떠오른 소감을 글로써 써 내려가는 것의 가격은 얼마일까 싶었다. 자기 돈을 들여서 책을 구입하고 읽은 책의 독후감을 또 생산하여 보여주는 것에 가격이 얼마라야 하는지 크게 따져 본 적은 없었는데 문득 이 책에서 공짜의 가격에 대해 지적하는 걸 보니 리뷰의 가격은 얼마냐라는 생각이 들게 되었다. 간혹, 출판사에서 책을 얻고 쓴 리뷰는 제외하더라도 알라딘의 서재에서 포스팅되는 리뷰 대부분은 아마도 거의 공짜일 것이다. 나도 어떤 대가도 없는 책 리뷰라서 그런지 몰라도 과연 이 리뷰의 가치는 얼마일까 비교론으로 따지기도 애매하다. 어떤 리뷰의 기준이 없이 길든 짧든, 독후감의 가격이란 무엇인지 이 책이 따져 묻게 한다. 어느 작가는 자신이 글에 저작권을 걸어 책으로 발표하여 출판사와 작가에게 인세라도 가는데 알라딘 유저 대부분은 글이 거의 공짜다. 전통적인 경제이론이었던 사람들은 합리적인 소비를 한다는 전제가 깔려 있는데 알라딘의 유저들은 과연 합리적인 생산자이자 소비자 일까.라는 질문을 할 수 있다. 합리적이지 않는 것이 공짜이었기에. 경제 시간에 배웠던 가격의 결정요인이었던 수요와 공급이라고 했다. 그러나 리뷰에 수요는 얼마이며 공급이 얼마길래 가격이 결정될까 싶기도 했다. 리뷰의 수요는? 그리고 공급은? 사실 리뷰의 수요와 공급은 객관적이지 못하다. 그러니 가격을 객관적으로 얼마다 이야기할 수도 없다. 그러나 얼마나 집계되지는 못해도 분명 수요와 공급은 있을 텐데 다만 드러나지 않는다는 것뿐이다. 그렇다고 앞으로 물론, 리뷰로 가격을 정하고 싶지는 않았다.

이 책을 읽었던 토대로 사진을 오래 했던 나로서는 가격과 연관 지어서 사진의 가격이 얼마일까?라는 질문은 한편으론 자연스럽게 일어났다. 내가 찍은 사진의 가격은? 물론 고전적 경제이론에 따라 수요가 없으니 아무리 공급이 있다 해도 가격은 늘 0에 수렴한다는 것쯤은 잘 안다. 혹여 수요가 있다 해도 가격을 떠받칠 만한 강력한 수요는 아니기에 역시 가격은 0에 수렴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사진이 어떤 특정한 사건이나 사고에 우연찮게 관련이 되면 그 가격 역시 0에 수렴되는 웃지 못할 상황에 빠진다. 사진은 반드시 수요가 있어야 공급이 이루어지는 수주형 가격이 맞는 거 같다.

오래전에 내가 사는 지역의 지하철에 큰불이 났었고 많은 사람들이 다치거나 죽었다. 잠시 몸을 담았던 동호회 친구 한 분이 그 지하철 기차를 타고 있었다. 물론 사진동호회 회원답게 사진을 좋아해서 늘 카메라를 소지하고 있었다. 지하철에서 누가 불을 지르고 연기가 온 열차 칸칸이 퍼질 때의 상황을 카메라로 담았다. 그런 사진을 개인 홈페이지에 포스팅하고 그때의 상황을 기록했었다. 그러나 그 위기의 순간에 담았던 사진은 온 언론사가 모두 퍼갔다. 그리고 자신들이 취재한 양 저자에겐 동의 한마디 구하지도 않은 채로 사고를 기록한 긴박한 순간의 그 사진을 그대로 신문에 실었다. 심지어 통신사와 제휴를 맺은 외국 통신사도 그 사진을 실었다. 사진은 비록 유명해졌으나 사진을 찍었던 작가에게는 이런저런 한마디 설명도 전혀 없었다. 그저 작가는 사진만 제공한 셈이 되었고 신문사는 손쉽게 사진기자를 투입하지도 않고 기삿거리의 사진을 얻었다. 신문사로는 사진을 얻는 비용이 거의 공짜였던 거다. 사진 기자가 취재하러 오며 가는 시간을 줄였고 사진 기자가 취재할 경비를 줄였다. 분명 그 사진으로 신문사로써는 비용을 아끼는 등의 이득을 취했으나 작가는 그 어떤 소득을 얻지는 못했다. 다만 작가에게는 공공의 소식에 알리는 역할만 있었을 뿐이다. 문제는 단순히 얻어걸려 찍은 사진이든, 작정하고 취재하여 찍은 사진이든 사진에는 목적에 따라 가격은 달라진다는 것이었다. 지하철에서 불이 나서 자욱한 연기에 감싸인 객실의 모습을 담은 사진 한 장의 수요는 폭발적이었으나, 공급은 딱 한 장이었다. 물론 경제 이론상 공급이 한 장이었고 수요가 너무 많았으니 가격은 천정부지였겠지만, 아쉽게도 공익이란 목적이 경제 이론적 수요 공급의 가격 절정권을 무너 뜨린 셈이다. 그렇다고 그런 사건이나 사고를 재현해서 담은 사진은 가치가 없다. 사진의 가격은 조작이 없을 때라야 가격이 오르며 공공의 목적에 가까울수록 가격도 사라진다. 그러나 가격이 사라졌다고는 하나, 그 사진의 가치는 가격으로는 도저히 매길 수 없는 사진이었다. 가끔 뉴스에서 결혼식이나 이런 사진을 망쳐서 클라이언트에게 사진을 못 주고 사기 치는 경우도 사진의 가치와 가격에 대해 고민하게 되는 이유이다. 결국 시간의 가격과 공간의 가격이 맞물린 것이 사진의 가격일 것이다.

역시나 나 또한 사진으로 가격을 매겨 본 적은 없다. 누구에게 사진의 가격을 매겨서 팔아 본적도 없다. 사진의 수요가 없었던 이유이다. 그러나 수요도 없는 사진이라고는 하지만 내 삶의 정체성과 사유에 대한 과정이 사진에 담겨 있다. 그러니 가격으로 따지기는 상당히 곤란하다. 이게 얼마라 말 할 수는 없다. 이때까지 사진을 담기 위해 돌아다녔던 시간을 기회비용이라고 한다면 그 시간에 다른 일을 했더라면 돈을 더 벌었을 수도 있겠으나, 그러지를 못했다. 특히 사진을 담았던 시간은 가격으로 따질 수는 없다. 돌아다니며 들였던 이동 수단에 대한 경비는 일절 자부담이었다. 누가 찍어 달래서 담은 적이 거의 없으니까. 결국은 사진도 내가 좋아서 돈 들여서 해야하는 노고 일 뿐이다. 누가 하라 해서 한 것도 아니고 하지 말란다고 안한 것도 아니었던 거다. 역시 사람은 자기가 좋아하는 것에는 비용을 들여야 한다는 것은 분명하다. 대가를 바라는 마음이 없는 것 중에 하나가 사진이 얻어 걸린 거나 마찬가지다. 이 책을 읽고 리뷰를 쓰다 보니, 한편으로는 저마다의 각자가 가진 시간의 가격은 얼마일까? 시간의 절대적인 균등성에서 사람마다 가진 시간은 다 같다고 한다면, 하루에 주어진 시간 24시간의 가격은 어떻게 책정될 수 있을까? 시간 단위당 가격이라는 것. 결국 그 시간 동안에 무엇을 생산하거나 어떤 행위로써 가격이 정할 수 있나 싶었다. 그래서 이 책에서는 노동의 가격에 대한 여러 가지 고찰이 나오기도 한다. 노동자의 노동 가격의 차이가 어떻게 벌어지고 좁혀질 것인지에 대한 흥미였다. 다 같은 시간을 사는 이 순간의 가격이 싼 것인지 비싼 건지를 떠나서 무거웠을 것만 같았다. 인도의 어떤 아이가 하루 종일 쓰레기를 뒤져 플라스틱 병을 모아서 벌 수 있는 돈의 시간과 월가에서 펀드매니저가 벌어들이는 펀드 수익의 시간적인 비교론이다. 어떻게 사는 것이 가치로운 것인가에 대한 비교론만으로는 어렵겠지만 그렇다고 분명 없는 것도 아닐 것이다. 오늘을 사는 우리들에게 주어진 가치와 가격에 대한 고민은 고품격인지 저 품격인지 비교의 기준이 뭔지에 대한 생각은 실로 다양하기에 어떤 가격으로 자신에게 부여할 것인지 따져 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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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옥 2019-07-23 11:5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작권이라는 게 있는데 남의 사진을 마구 퍼가도 되는 건가요?
친구분(저작권자)가 그 사진을 공개로 설정해놓으셨던가요?
저도 글 도둑질을 많이 당한 사람이라 그 심정 이해합니다.
요즘은 스마트폰 화면을 통째로 복사하는 기능이 있다보니
사진이고 동영상이고 마구 퍼나르는 추세 같아요 ㅠ.ㅠ

yureka01 2019-07-23 14:01   좋아요 2 | URL
퍼가는 거야 막을 수야 없겠지요.다만 퍼간 사진을 어떤 목적으로 무단 사용이 문제라서요...
공개된 사진이라도 이용했을 때 공익적 목적이었더라도 양해를 구해야 하는 것이 먼저 순서이니까요...
돈벌자고 찍은 사진이 아니더라도 저작자의 권리를 무시하면서
신문사는 자신들의 기사에 저작권을 걸고 있는 모순을 보면 상당히 잘못된 거죠..
자기의 권리는 지켜 달라면서 남의 권리는 무시하는 처사는 비판 받아 마땅하니까요..

2019-07-23 16:0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7-23 16:29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9-07-23 16:2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리뷰를 쓰는 일도 본인이 정말 좋아해서 하는 일이라면 어느 정도 비용이 들어요. 책을 덜 사고, 도서관에서 빌린 책 위주로 읽다보니 도서구입비는 예전보다 줄어들었어요. 그런데 문제는 교통비가 조금 올랐어요. 제가 차를 소유하지 않고 있어서 주로 탑승하는 이동 수단은 버스에요. 내가 읽고 싶은 책을 직접 보기 위해서는 버스를 타고 다른 지역구의 도서관에 가요. 이 도서관, 저 도서관에 가게 되면 버스카드에 충전된 금액이 야금야금 줄어들어요. ^^;;

yureka01 2019-07-23 16:28   좋아요 1 | URL
그럼요,좋아한다라는것은 비용이라기 보다는 좋음의 값을 치르는 의미겠지요...
네 보고 싶은 책 대부분 사는 것도 적은 것도 아니니까요...

2019-07-24 11:1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7-25 09:0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7-25 15:5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7-26 09:1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9-01 16:1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9-02 08:59   URL
비밀 댓글입니다.

雨香 2019-08-05 14:4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사진은 비록 유명해졌으나 사진을 찍었던 작가에게는 이런저런 한마디 설명도 전혀 없었다. 그저 작가는 사진만 제공한 셈이 되었고 신문사는 손쉽게 사진기자를 투입하지도 않고 기삿거리의 사진을 얻었다. ‘

기사를 무단 전제하면 안된다는 하는 이들이 그 사진은 공공의 것으로 생각한 것일까요. 명예기자가 아니라면 최소한 지면 한칸을 통해 감사의 인사를 전해야 했어야 하는게 아닌가 생각됩니다. (물론 요즘 언론의 데스크나 편집에 제 정신인 사람들이 있을 거라는 생각은 안들지만요)

yureka01 2019-08-06 09:14   좋아요 1 | URL
흔히 경험하는 거죠..
나는 공적이라 되고 넌 사적이라 안되고....이런 이중성이 쩔죠..
 
오늘도 인생을 찍습니다 - 사진이 넘쳐나는 세상에서 사진을 찍는다는 것
MJ Kim 지음 / 북스톤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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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읽는 사진 책이긴 한데, 보통은 제목부터 먼저 눈이 띄지만, 이 책은 부제가 굉장히 마음에 들어서 선택했다.


어떤 사진이든 자기 인생의 일부이다. 사진 하나하나 조각들이 모인 전체가 곧 그 사람의 보았던 인생이고, 시간의 단면에 자신의 인생을 시간 농축했다고 보면 된다. 그런데 부제가 "넘쳐나는 사진에서 (자신의) 사진을 찍는다는 것"에 방점을 찍었다. 그래, 누구나 다 찍는 사진이지만 자신의 사진은 어떤 차이점과 공통점을 담보로 내세울 것인지에 대한 문제이다. 자신이 찍는 사진의 정체성. 나아가 확장해서, 자신의 인생에 대한 정체성. 어느 편에서는 정체를 밝혀야 할 때가 있고 어느 때엔 정체를 숨겨야 할 때가 있다. 사진도 이와 비슷하다. 내가 찍지 않는 듯한 사진이나, 꼭 내가 찍었다고 주장해야 할 때가 따로 있으니까. 어쩌면 그게 인생 자체인 것이 아닐까.


생각해보면 참 멋지다. "당신은 무슨 사진을 찍나요."라고 하면, "난 내 인생을 찍습니다."라는 명답이 나올 법도 하다. 자신의 인생에 대한 자기 책임이 결국 사진화되어 기록시키는 것. 그리고 누군가 그 인생에서 일부의 사진을 보고, 그의 인생에 대한 스토리를 파악할 수 있다는 것. 이게 이 책이 전해주는 콘텐츠의 인생 재미다. 사람이 저마다 제각각 살아가는데 있어서 무슨 콘텐츠로 살아갈까. 누구는 문학으로 누구는 음악으로 혹은 누구는 오로지 생존을 위해 돈벌이만 죽어라 하다 내 손가락 사이로 지나쳐 버리는 시간의 앙금이 빠져 버린 허허로움으로 살아갈 수도 있다. 삶이란 무슨 목적으로 살아가야 할는지는 저마다의 인생에 주어진 각자의 이유를 순리로든 억지이든, 붙여서 살아가기 마련이다. 무목적으로 사는 사람들도 차후에는 목표에 따른 의미를 부여하고자 한다. 자신의 인생에서 부여되지 않는 타이틀과 콘텐츠가 얼마나 사람은 공허하게 만드는 건지 모를 일이다. 우연이든 필연이었든 삶의 목적의 일부가 사진인 사람의 이야기가 그래서 사진을 담는 나로서 유심히 보게 된 이유도 된다. 이 양반은 무슨 사연으로 사진을 담게 되었던 걸까라는 사진 인생의 궁금증이, 흡사 나 자신에게 감정 이입에는 더없이 좋은 방식이 되기 때문이기도 하다.


나는 아무에게나 사진이 위대한 현대적 예술이라고 주장하고 싶은 마음은 1도 없다. 예술은 무슨 얼어 죽을. 오히려 누군가가 " 내가 사진을 좀 찍고 싶어서 사진 배우고 싶은데 도와줄 수 있냐"라고 한다고 해도 도와주지 않겠다고 할 것이다. 어떻게 하면 사진을 좋게 찍을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해서도 말하기도 싫다. 내가 그랬던 것처럼 누군가로부터 도움받아서 사진 찍지는 않았고 어떻게 사진을 좋게 찍겠다는 마음도 없는 사람에게 그런 요청도 부질 없어 보이는 것은 매한가지다. 누구나 비슷하게 자신의 인생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알아 달라는 뉘앙스로 자꾸 이야기를 하려 들 때도 짜증 난다. "내가 왕년에 말이야"로 시작하는 그런 이야기들, 한때의 무용담들, 한때에 절박한 버둥 거렸다는 위로 요구적 이야기들. 그래서 뭐 어쨌다는 것의 결과는 뭐냐? 혹은 과정의 이야기는 굳이 하려는 의도가 뭐냐?로 되묻고 싶을 때 차라리 어릴 적에 추억이 담긴 사진이나 보여 달라고 하고 싶다. 사진을 보면 떠오르는 이야기들이 내가 왕년에 말이야. 어쩌고저쩌고라는 이야기 보다, 훨씬! 흥미롭기 때문이다. 어느 누구든 지나고 난 후의 인생에는 회한이 없을 수가 없다. 인생은 예정된 수순이 없는 불규칙과 불측의 양상이다. 오늘은 지난 10년 전엔 어떻게 예상이 안되는 부분이다. 결국, 지나 봐야 안다. 시간은 냉혹하고 철저하며 완전한 간격으로 인생을 지나가게 하지만 과거에 찍었던 사진은 오늘에서 다시 환기의 추억으로 만들어 과거의 추억이 현실의 이야기로 복귀시킨다. 그래서 사진은 기억의 학문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이야기로만 듣는 왕년에 말이야 보다는, 사진 한 장으로 그땐 그랬지라며 사진 한장에 설명 한 줄이 더 잘 이해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사진은 내 인생의 일부에 대한 증명사진이 되는 순간이 바로 이런 이야기에 사진이 결합되었을 때나 가능하다.


사진을 찍으러 나갈 때 예상은 하되 예측은 불가능이다. 흡사 우린 삶이 예측이 안되는 것과 같다. 예상하고 사진을 찍으러 나갔으나 늘 예측 불허의 우연하게 얻어걸린 사진. 어쩌면 바로 이게 우리 삶이고 인생일는지도 모른다. 하물며 우리 삶이 어떻게 예상이야 무수한 해석과 분석으로 하겠지만 정착 정확한 예측은 예언하고는 다르게 흐르기 마련이다. 사진도 비슷하게 예측하지 못하고 우연하게 얻어걸린 현상의 사진을 더 우연적인 흥미를 돋게 하듯이 우리 인생도 전혀 예측이 안되는 와중에서 살아보니 아 그랬다는 흥미의 요소를 발견하게 된다. 이와 비슷하게 이 책의 저자도 예측되지 않는 사진 인생길을 책으로 나왔으니 흥미로운 거야 당연한 것일 테다.

누구나 사진을 찍을 수 있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일상에서 작가적 마인드로 사진을 찍는다면 인생을 좀 더 근사하게 포장하고 담아낼 수 있는 기회를 사진이 제공한다. 혹여 사진적인 가식이 포장될지라도 그런 가식적으로라도 담겠다는 그 마인드의 첫 시작이 무엇인지에 대해 따져 보면 누구나 다 자신의 인생을 근사하게 꾸미고 싶은 욕망에서 나온다. 가식이 계속 가식이라면 언젠가는 이 가식이 진식이 될 수 있는 원리이다. 근사한 인생으로 보이는 것의 행복감은 그래서 사진에 녹아 있는 건지도 모른다. 누구나 자신의 인생을 행복이라는 콘텐츠로 장식하고 싶은 이 욕망. 탓할 일도 아니라는 것. 일상 하나하나가 흥미와 그 행복의 욕망으로 도배돼 갈 때 순간 순간순간이 모여서 전체의 일생을 이루듯 행복으로 전체가 도색된다. 가끔은 우울할 때도, 때로는 짜증이 날 때도 순간 순간의 감정에 대해 사진에 투사시키고, 지나고 나면 언젠가 사진을 보며 '아 그땐 그랬지. 이땐 정말 우울했어.' 또는 '이 땐 정말 짜증 났어.'라며 시간의 객관화가 이루어지게 된다. 그 땐 왜 그렇게 짜증이 났을까 괜한 일도 아니었는데라는 반추의 효과는 앞으로의 인생에 작은 경험적 감정으로 소화시켜 낼 수 있는 까닭이기도 하다.


이 책의 저자는 사진을 직업으로 얻어걸린 사진의 삶이었다. 절박한 직업을 구하기 위한 사진이었던 것에서 천직의 사진처럼 예정된 고스의 사진 전공이 아니라도 사진은 얼마든지 찍을 기회가 주어진다면 가능한 사진이었던 거다. 인생의 기회를 사진을 통해서 만났다는 것. 만약 그런 절박한 상황이 아니었더라면 과연 사진이 그에게 다가설 수 있을 보장은 없었을 것이다. 한편으로는 부러우면서도 무데뽀 정신의 사진이 만들어 낸 기회가 대단했다. 사진 책의 부제에서도 밝히다시피 "사진이 넘쳐 나는 세상에서, (자신이) 사진을 찍는다는 것"의 의미를 저자는 사진으로 알고 있다는 의미이다.


안생은 예정된 것은 없다. 우리 삶이란 것도 실로 우연이다. DNA의 조합이 우연이든 우리 삶이 필연으로 보일진 모르지만 누가 예상할 수는 없다. 태어나고 보니 나였고 태어나고 보니 아버지와 어머니가 있었을 뿐이다. 그러나 이 우연을 필연화 시키는 것 또한 살아가는 인생일 따름이다. 한동안 오랫동안 나의 삶이 결핍에서 비롯된 우울의 사진이 자글자글 머릿속을 헤매었다면 지금부터는 이 결핍으로부터 또한 해방된 삶을 살아야 하지 않을까 싶다. 물론 이런 사유가 남들도 찍는 사진이지만 내가 찍는 사진으로 기록하고 싶다. 우연하게 얻어걸린 사진이 필연적인 사진으로 만들 수 있는 것을 믿고 싶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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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7-13 10:2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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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7-13 10:4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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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7-14 20:4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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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7-15 09:0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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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옥 2019-07-15 09:3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평생 삶의 결정적 순간을 찍으려 발버둥쳤으나 삶의 모든 순간이 결정적인 순간이었다‘
브레송이 말했다지요.
특별한 사진 한 장을 위해 평생을 바친 사람들도 있겠지만
요즘은 국민사진사 시대라 사진에 대한 의미가 많이 달라진 것 같아요
특히 sns로 확대재생산되는 사진들은 자아도취, 자기미화, 자뻑 이상도 이하도 아닌 것 같아요.
셀카전성시대에 사람들은 어쩜 행복해보이고 싶은 욕구 속에서 스스로 행복하다고 최면을 거는 지도 모릅니다.
<설령 비합리적인 신념이라 해도 계속 반복되면 사람의 뇌 속에서는 중독회로가 생긴다.>

yureka01 2019-07-15 09:44   좋아요 1 | URL
스스로 행복의 자기 최면..캬....
그렇게라도 스스로 행복회로 돌려야 살 수 있을 것만같은 시대거든요..
맞아요..신념의 중독회로가 행복회로 인지도 모르니까요..

뭐 전 이제 결정적인 순간의 사진 욕심이 없어졌어요..ㅎㅎㅎㅎ

시원하고 건강한 여름 나시고요..감사합니다~

2019-07-16 11:4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7-16 12:13   URL
비밀 댓글입니다.

서니데이 2019-07-18 21:3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휴대전화에 카메라가 생기면서부터 사진은 조금더 우리 일상의 한 부분이 된 것 같아요.
오늘도 더운 하루였어요.
유레카님, 편안한 밤 되세요.^^

yureka01 2019-07-19 08:40   좋아요 2 | URL
휴대성의 간편성이 사진을 더 가깝게 했지요.ㅎ
태풍이 올라온다고 하니 비가 많이 내릴듯하네요..
주말도 넉넉한 시간 되시길..`~~^^..

2019-07-19 11:0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7-19 11:0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7-24 12:4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7-25 09:0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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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7-25 15:5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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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7-26 09:1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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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9-01 16:1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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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9-02 08:5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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