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의 제목을 주시로 붙혀 봤다. 일반적으로 "주의를 집중하다"라는 뜻이 아니라, 술로 빚은 시를 의미한다. 그래서 주시. 이 책 시인의 울음은 한시를 풀이하고 한 시의 각 개별적인 해설을 곁들인 책이다. 그런데 한시를 쓴 시인들이 술 한잔 걸치고 나온 시들이 많았다. 역시 오래전 시인들의 시는 술로 빚어야 제맛이라고 했던 것은 아닐까 착각할 정도로 술 한 잔에 썰을 푼 것들이 시가 된 것이 많았던 까닭이다.
그렇다면 술로 이야기부터 먼저 해보자. 어릴 때부터 술로 인한 사건에 시달렸다. 집안에도 술 때문에 좋지 못한 일도 많았다. 술이 원수인지 술 마신 사람이 원수인지 아니면 사람 자체가 원수인지 분간도 못할 정도로 술로 인해 당사자도 물론, 주변 사람을 괴롭게 하는 게 너무 싫었다.(누구라고 쪽팔려서 말도 못하겠다.) 그래서일까 나는 커서 절대 술을 안 마실 거 같았지만 결국 나도 몸이 맛탱이 가기 전까지 술을 많이 마시게 될 줄은 몰랐다. 하기야 같은 아파트에 아랫집 윗집에 살며 형님 아우 하면서 지내던 동생도 간염에서 감암으로 발전해서 50도 되기 전에 죽었고, 친구 놈 하나는 부친께서 술 때문에 간암으로 돌아가셨는데도 술을 너무 좋아했다. 물론 간이 별로 좋지 못한 유전도 있는데 이상하게 간이 좋지 못한 사람이 술을 특히 더 좋아하는 경우는 자주 보게 된다. 그럴지도 모르겠다. 술을 좋아하는 사람들 주변엔 항상 술 친구가 있고 술을 좋아하게 될 개연성이 높다는 것도 안다. 그래서일까 나도 어릴 때 술 때문에 그렇게 시달렸는데 그 나이가 되니 매일 술이었고 술을 강권하는 사회 속에서 살게 되었다. 초년병 직장 생활 때는 거의 매일 회사의 회식이다 뭐다 일주일에 5일 이상은 술을 달고 살았다. 특히 건설회사부터 시작했으니 오죽 말술 들이었는지 어제는 김 부장님과 한 잔. 오늘은 김 과장님과 한 잔, 내일은 사무실 미스 김과 한잔 등등 거의 매일 술독에 빠져 살았다. 직장이 주는 스트레스를 술로 곤죽이 될 때까지 마신 기회는 곧 습관이 되고 버릇이 되고 급기야 나중에는 술자리를 만들 생각부터 하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면 깜짝 놀랄 일이다. 특히 친구와 마시면 거의 고주 망태가 되도록 마셨으니 몸도 정신도 제대로 가누는 건 거의 불가능하다.
거의 대부분 술을 마시며 하는 이야기들에서 아름다운 문장은 없었다. 사진을 찍으면서 사진의 감성 돋우기 용도의 시를 읽기 전에는 술과 시의 문장은 거리가 먼 술자리 였는데 한 두 권 사보는 시집을 읽고 술 마시며 나오는 문장을 생각하게 된다. 이제는 술을 거의 마시지도 않는다. 아니 술을 마실 수가 없다. 술로 인해 벌써 몸 덩어리는 고장투성이가 되었고 흡사 약으로 배를 채운다는 식으로 성인병 증상들이 예고장을 날리는데 계속 지속할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처음부터 술을 잘못 마신 탓도 크다. 술 한 잔에 달빛을 담그고 시한 수를 만들어 내는 조건을 만나지 못하고 그런 조건을 만들 능력이 없었던 탓에 스트레스 풀기용 술이나 친목용 술이나 빨아 댔으니 이때까지 그렇게 마신 술로 남은 것은 맛탱이 가버린 육신만 덩그러니 남은 결과였다. 하다못해 이 책에서 나오는 시인들의 말술처럼 마셨더라면 기막힌 시 문장이나 튀어나왔을 텐데 그러지를 못했다. 다 개허접들과 술을 마신 탓이고 내가 개 허접이었으니 그들에게 말술을 권하며 시 문장 하나 만들 계기나 동기조차 만들어 주지를 못한 까닭도 크다. 이제는 술로 대작을 하더라도 시문장의 대작이 나오지 못할 거면 차라리 마시기를 거부하는 편이 나을지도 모르겠다. 술 한잔 마시고 개소리나 할 꺼면 나랑 술 마시지 말자라고 단언할 수 있어야 한다.
이 책에서는 한 번쯤은 들어 본 중국의 한시에 대가들이 나온다. 이백과 두보. 국어 고전 시간에 한 번쯤은 들어 봤을 것이다. 물론 고전을 공부해본 사람이라면 들어 봤을 것이다. 그런 시인들의 술 한 잔에 나오는 시에 나는 주목하고 싶었다. 물론 권력 무상, 세월이 무상, 연인의 안타까움 등 많은 주제들이 있지만 술 한 잔에 시대의 무상을 노래하는 시인의 울림을 우는 울림으로 나오는 시에 더 관심이 끌렸다. 흡사 세상의 무질서에 피폐한 시간의 무너짐에 대한 시인의 시는 사무치는, 그러나 어쩌지 못한 처지의 비관과 희망을 내려놓음에서 술이 인생의 울음으로 표현하는 것이 차라리 슬픈 아름다움과도 같았다. 그리고 잔을 비우듯 자신의 삶을 시간의 잔에 쭉 들이키며 비우듯이 시로 풀어 냈다는 점이다.
우리는 기뻐도 한 잔이요, 슬퍼도 한 잔이다. 기분 좋은 승진 축하 자리나 누구누구가 어디 시험에 합격해서, 또는 영애로운 은퇴식이나 결혼식 등 모든 자리에 술을 내놓고 술을 마신다. 또한 슬픈 일에도 술을 마신다. 초상집에 가보면 술이 빠질 수가 없다. 슬플 때나 기쁠 때나 술은 곧 삶의 도취겠고 기쁨의 증폭제이거나 초상집의 술은 고인의 회한의 곱씹음 같은 취기가 술이었으리라. 그래서 술 한 잔을 마시고 시로써 노래를 부르고 술 한 잔으로써 인생의 희로애락을 엮어 내는 것은 아닐까.
술은 천사와 악마가 서로 의기투합된 작품이다. 기쁨은 천사가 주관할 것이요, 슬픔은 악마가 주관할 것이고 우리는 천당과 지옥을 오고 가는 여행자처럼 술이란 승차권을 마시는 것과 다름이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술은 시인이 되기 위한 첫째의 티켓은 아닐까. 무덤덤한 일상에서 술로 시의 문장이 만들어질 때, 우린 노트를 꺼내서 적어야 한다. 그게 시가 아니고 무엇일까. 낙서가 시가 될 때라면 다음날 술을 깨고 숙취에 머리를 싸매고도 술의 여운이 머리를 쪼아댈 때 잊어버린 기억이 그 기록으로 되새김질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