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리 카르티에 브레송 그는 누구인가? - 카이로스의 시선으로 본 세기의 순간들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 지음, 정진국 옮김 / 까치 / 2006년 11월
평점 :
품절


 

 

 

지난번에 "우리 삶이 춤이 된다면"이라는 사진 책에 대한  리뷰를 했습니다. 여기에 서재 이웃인 Agalma님의 친절한 부연 설명의 댓글과 책을 소개해 주셨습니다. 정보를 바로잡는 차원에서 인용도 했습니다. 게다가 책을 소개해 주신 덕분에 그날 바로 주문도 넣으려고 찾았습니다. 그러나 신간 책은 출간된 지 몇 해가 지났던지 품절이었더군요. 어쩔 수없이 중고 책을 뒤지던 중, 책 상태가 중급 하나 있길래 결제를 했습니다. 그런데 판매자분이 택배를 보내야 하니 주소를 확인했나 봅니다. 소장자분은 마침 대구 분이더군요. 같은 지역 내에서 굳이 택배 거래로 며칠 시간을 소비할 것이 아니라 바로 저녁에 퇴근하고 지하철을 타고 책을 받으러 갔었습니다. 웬걸요. 묘령의 아가씨 분이 이 책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저녁에 약속이 있었던 터라 이런저런 이야기도 나눌 여유도 없이 책을 받고 바로 지하철을 타고 약속 장소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습니다. 사실 이런 사진집을 가질 정도면 책 가격도 가격이지만 사진에 보통의 취미가 아니고서는 가지기 쉽지 않은 책이기도 하고, 또는 약간이라도 사진적인 조애나 관심이 있어야 가능한 책이기 때문입니다. 사진 웬만하게 찍은 분들도 사진집 한 권 가지고 있지 않는 사람들이 태반이거든요. 그래서일까요? 이런저런 궁금함도 있었는데 선약으로 바빠서 몇 마디 이야기도 나누지 못해 아쉽기도 했습니다. 책을 입수하게 된 경위 정도는 알고 싶었는데 묻지도 못하고 책만 받고 헤어졌습니다.

 

지하철을 타고 잠깐 책을 펼쳐 수록된 사진을 보았는데 인터넷상으로 간혹 접했던 사진이긴 했더라도, 역시 그 명성에 걸맞게 보고 있어도 또 감동이 일어나기에 충분하더군요. 역시 브레송의 사진의 전설이자, 사진의 순수한 고향과 같으며 사진의 본령을 만난다고나 할까요. 1930년대 사진은 카메라가 발명된 이후 100년도 되지 않았는데 이미 그때의 사진에 대한 묘사성을 그야말로 위대함으로 천착해 나가는 마법 같은 일렁임이 일어나기에 충분하였으니까요.

 

요즘 사진 찍는 빈도가 부쩍 줄었습니다. 주말이나 휴일 아니면 전혀 사진도 못 찍으니 뭔가 아쉽고 묵은 체증이 더 쌓이는 기분을 떨칠 수 없기도 합니다. 특히 요즘은 주말마다 탄핵 춧불 집회 때문에 사진도 거의 찍지를 못 했습니다. 아무래도 이 책은 사진의 기운이 빠질 때라든가, 사진의 슬럼프가 올 때라든가 그럴 때, 사진의 원기 회복약 같은 역할을 하게 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책은 사진을 찍고 싶은 강력한 충동이 일어나게 하는 책이었던 것입니다. 이 정도로 브레송의 사진은 사진을 찍도록 부추기는 마법과도 같은 의미입니다. 사진 서너 장 보니 벌써 카메라 들고 나도 그를 닮은 마냥, 빙의 된 듯이 마구마구 셔터를 날리고 싶은 충동이 강하게 일어납니다.

 

서재 방 가장자리에 놓인 보관 박스에서 잠자고 있는 카메라를 생각합니다. 몇일 카메라를 잡지 못하고 카메라를 바라보면 카메라가 마치 울고 있는듯 하더군요. 웅~웅~웅~~거리며 어서 필드로 나가서 셔터를 눌러 달라고 요청하는 듯한 표정을 느낍니다. 그래 이 녀석 그동안 갇혀 있느라 바디가 많이 부대끼는 걸까?라는 착각에 빠지게 됩니다. 흡사 카메라가 내 마음과 연결이라도 된 듯이, 이어지기라도 한 듯이 카메라의 마음이 곧 내 마음처럼 이어지는 것과 같은 느낌이 듭니다. 세상에서 제일 좋은 카메라는 어떤 카메라냐고 묻는 사람에게 항상 해주는 말이 있습니다. 세상에서 제일 좋은 카메라는 자신이 카메라의 마음과 같은 카메라라고 말해 줍니다. 즉 지금 들고 있는 카메라가 최상이라고 말해줍니다. 카메라는 내 손에 익어야 하고 카메라의 기능이 내 손에 착착 달라 붙어서 능숙하게 쓰임새로 작동이 되는 카메라입니다. 간혹 돈이 많아서 카메라 바꿈질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새로운 기능의 카메라가 나오면 카메라를 갈아 치웁니다만, 저는 한번 구매한 오래된 카메라는 팔아 본 적이 없습니다. 손때가 많이 묻은 카메라는 처분을 못합니다. 처음 구입에서 몇 번 찍다 보면 도저히 손에 익지 않아 인연이 없는 신카메라도 있습니다. 그럴 때 몇번 찍어 보면 자신과 인연이 있는지 없는지 금방 알아차립니다. 신품이나 마찬가지인데도 불구하고 과감히 포기하며 반값으로 처분하였던 적도 있습니다. 보통은 한번 구매하면 이 카메라가 내 손에 착착 달라붙는다면 끝까지 가져갈 생각이 들거든요. 사진은 카메라가 매우 중요한 도구입니다. 아니 카메라가 사진의 반 이상을 차지한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입니다.

 

이 책의 사진집에 나온 브레송이 잡은 카메라는 라이카 브랜드죠. 라이카는 카메라의 명품이자 고가품입니다. 저도 너무 가지고 싶어요. 라이카의 브랜드는 마치 여성 분들이 명품 가방을 둘러매면 유명한 패셔니스트라도 된 듯한 착각에 빠지게 되는 것과 같이, 라이카를 들면 희한하게 나도 브레송처럼 사진 찍을 수 있을 것만 착각에 빠지는 거 같거든요. 이런 현상은 실제로 라이카를 들고 사진 찍는 분들의 갤러리에 사진을 보러 가면 그런 느낌이 들 때가 많았거든요. 이게 카메라가 지니는 자기만족감에 대한 아우라 같다고나 할까요. 네, 너무 비쌉니다. 바디 하나가 500만 원이 넘어가고 한정판 에디션 정도면 1000만 원이 훌쩍 넘어가거든요. 렌즈는 또 얼마나 비싼지요. 렌즈마다 고유한 이름이 다 가지고 있을 정도로 그 가치의 느낌은 각기 렌즈마다 특성이 있기도 합니다. 이처럼 카메라는 사진의 영혼을 살라는 마차와도 같거든요. 미지의 시간을 달리는 마차가 카메라입니다. 여기에 마차에는 감성의 길을 질주하게 해주는 도구이니까요.

 

카메라 브랜드 이야기나 나왔으니 카메라 이야기도 조금 해보겠습니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카메라로는 니콘도 있고 케논도 있고 소니도 있고 후지필름도 있고 콘탁스도 있고 지금은 소니에 흡수 합병된 미놀타도 있었습니다. 라이카도 물론 중형 카메라인 핫셀블러드 등등입니다. 카메라는 개별적인 취향에 따라 각자가 가지는 고유한 감성이 다 있습니다. 예를 들자면 남성형의 마초적 카메라 하면 니콘이고 여성적 섬세한 감성의 캐논이라고도 합니다. 따라서 각 카메라 브랜드마다 고유한 아이덴티티가 있습니다. 유저는 이 브랜드의 가격도 고려하지만 카메라의 아이덴티티를 보고 선택하는 것입니다. 카메라 브랜드가 가지고 있는 개별적인 감성 추구에 대한 성격이 있거든요. 자신이 어떤 카메라 바디를 선택하느냐에 따라서 사진의 성향도 결정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처럼 카메라의 브랜드에 걸린 감성 추구 경향은 아주 견고합니다. 수십 년에서 백 년 이상 구축돼 왔으니 얼마나 탄탄한 입지를 굳혔을까 생각해보면 금방 이해될 것입니다. 그러니 이런 견고한 아성에 신생의 브랜드가 도전을 한다는 것은 큰 모험이고 위험입니다. 쉽게 허물기가 상당히 어렵습니다. 카메라가 단순히 도구적인 장비라는 차원에서 바라본다면 대규모 자본의 힘으로 뭉개는 것도 가능할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카메라가 단순히 도구에 한발 더 나아가서 도구의 감성적인, 그리고 사진이라는 예술성까지 브랜드에 녹아져 있다면 이야기가 상당히 달라집니다.

 

일전에 삼별이란 전자회사가 카메라 시장에 뛰어들었습니다. 이 탄탄한 감성의 짜깁기 된 시장에 비집고 들어가려다가 결국 포기했습니다. 브랜드의 예술적인 감성의 가치를 뚫지 못했거든요. 시장에 뛰어든 것은 카메라 전체 시장에서 지분을 빼앗아 올 수 있을 것이라고 여겼을 것이고 가능할 거라 판단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사진을 찍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단순히 기계적인 완성도도 물론이겠지만 그 브랜드가 가지고 있는 감성의 이끌림을 뽑아내는 것은 단시간에 구축되기란 불가능합니다. 십 년 이십 년 정도로는 이루어낼 수 없는 어려운 부분입니다. 카메라를 잘 만들고 업그레이드도 정성껏 해 주는 등등, 기계적인 작동성에 승부를 보았던 것이 아닐까 합니다. 카메라를 선택하는 기준은 기계적인 완성도도 물론이지만 한 발 더 나아가서 그 브랜드가 가지고 있는 독자적인 아이덴티티도 아울러 선택의 중요한 요소를 간과한 것입니다. 이렇게 삼별 전자가 광학 사업에서 손을 때게 된 원인입니다. 단순히 기계를 만들어 놓고 안 팔리는 원인을 분석해 본 적도 없는 것은 어쩌면 사진이라는 이 예술화의 공부가 덜된 시각의 단편성 내지 편협성 탓이었거든요. 삼별의 제품들이 삼별이라는 각별한 자기 이미지라고 하는 고유한 자신만의 창조적인 아이덴티티를 구축하지 못 했습니다. 즉 자신의 브랜드에 대한 고유한 정체성을 확보하지 못하니 베끼고 비슷한 아류로 모방해서 그럴싸하게 따라 하는 것은 잘 하는데 결국은 고유함 성격을 가지고 자기로 주도하지 못하고 선도하지도 못 합니다. 사진은 어디까지나 예술적인 부분이고 인문학의 영역이기 때문이거든요. 기계공학적인 문제에서 더 나아가 철학적이고 인문적인 분야로 이어지질 않는 이유, 뭐라고 생각합니까?

 

광학 사업이라는 것은 수백 년 동안 이루어져 내려온 수공품에서 출발합니다. 항해기술이 발전됨으로써 시계와 유리 세공과 가공의 역사에서 이어지거든요.망원경을 생각해보면 유리가공기술이 핵심이라는 것을 금방 떠올릴 수 있거든요. 또 하나 예를 들자면, 중세 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영화를 보면 연금술사가 금을 만들겠다며 만들어진 실험실에는 수많은 비커와 실험에 필요한 각종 유리 도구들이 즐비하거든요. 이런 유리들이 결국은 광학적인 기술로 발전하는 것이 아닐까 추측을 하게 됩니다. 따라서 카메라가 발명되고 유리를 가공해서 렌즈가 만들어지는 그때 당시는 전부가 다 가내 수공업으로 손으로 만들어 냈거든요. 어느 가문의 부품이나 렌즈의 유리알 하나하나에 수백 년의 노하우가 대대로 전수됩니다. 각 부품들이 씨줄과 날줄로 직조된 것처럼 카메라는 섬세하고 정밀하게 손의 감각으로 수많은 훈련과 연습과 실습을 통해서 전수된 기술의 요체로써 만들어졌던 것입니다. 손의 정밀함은 감각의 정말함입니다. 미세한 차이를 손의 감각으로 나타나기 때문에 소위 말하는 명품의 1% 차이가 그 감각에 따라 결정됩니다. 그 미세한 감각을 손에 채화될 때까지 수십 년간 연구를 거듭했을 것입니다. 카메라는 바로 그 감각의 산물이었습니다. 유럽의 가내 수공업에서 만들어낸 부품들이 대부분 그런 식으로 수백 년간 이어져 온 막강한 감각의 집대성이 오늘날의 브랜드의 가치로 연결된다는 점입니다. 라이카는 여전히 일부 부품들이 아주 많은 공정과 수작업으로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이런 이유 때문에 더더욱 가치를 인정받게 되는 것이죠. 사진을 찍는 사람이라면 그 명품을 꼭 한번 써보고 싶은 이유이거든요. 카메라는 먹는 음식도 아니고 당장에 어디 필요한 제품도 아닙니다. 오로지 사진이라는 평면적인  이미지에 필요한 도구를 이용해서 예술화시키는 것이니까요. 삼성이 왜 1류가 못되고 2류로 머물러 있는 이유가 바로 여기서 차이가 납니다. 그저 그럴싸한 제품을 만들기 위해 중요한 부품을 중소기업 하청이나 주고 싼 가격으로 쮜어 짜내 저가격으로 빼앗아 와서 조립 생산하는 따위의 생산 수준 가지고 1%의 감각을 상상이나 하겠습니까 어디. 그러니 삼성의 독자적인 인문적인 아이덴티티를 짧은 시간내에 구축할 수 없었고 사진을 찍는 사람에게 어필 되지 않았으며 그저 가격 비교론적인 성능적 판단이 아니었겠나 싶었습니다. 자연히 래드 오션의 빈틈없는 시장의 공간에 파고들지 못하니 판매가 안되고 시장성이 없어진 것이고 카메라 광학사업에서 손을 땟던 이유입니다. 베끼고 따라 하며 모조품처럼 찍어내며 만들어내는 조립 제품은 중국도 똑같이 따라오거든요. 저작권이 철저히 적용되지도 않는 중국산 제품이 이렇게 추격하고 있거든요. 일반 백색 가전은 명품이라고 반문할는지도 모르겠습니다만, 가정용 전자 제품이나 부품은 품질적인 요소 대비 가격에 결정요인일 뿐이지 명품이라던가 이런 제품을 쓴다고 특별한 자기만의 자부심 따위는 카메라에 비할 바가 아닙니다. 어디까지나 주 핵심 포인트는 실용성에 대한 부분이거든요. 그러나 카메라는 일상의 실용적인 문제가 아니더란 말이죠.

 

특히, 광학 기술 분야는 카메라뿐만 아니라 항공분야, 의료장비 분야, 우주산업 분야 등 그야말로 고도의 기술집약적인 분야에 응용되는 사업이거든요. 이런 첨단 광학 사업은 삼별의 실적의 조급성 마인드 수준으로는 도저히 뛰어들 수가 없는 분야입니다. 당장에 일 년 이 년에 짧은 기간에 걸쳐 보란 듯이 표면적인 성장성으로 내보여야 하는 사업 방식으로는 도저히 그 성격이 맞지 않습니다. 십수년 이상 천문학적으로 자본 투자를 해야만 겨우 성장해 나갈 수 있는 분야거든요. 한 달, 일년, 이년 조루성 실적만 쳐다보는 기업문화에서는 도전할 분야가 전혀 못 되죠. 기업가들과 오너 가문이 분리된 것도 아니므로 예술론적인 사명감도 자부심도 없이 우선 당장에 십 원 이십 원 따지는 특성으로 졸부적 습성 가지고는 수십 년 동안 투자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방식이기에 삼별은 죽었다 깨나도 못 합니다. 고작 카메라 사업한지 십 년도 안 돼서 철수하고 마는 현실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아무리 기술이 잘 나간다 하더라도 기초 학문 분야에 노벨상 하나 없는 이유도 이와 같습니다.

 

아 사설이 길었던가요. 리뷰 글이 상당히 다른 곁가지로 흘렀습니다. 책 이야기로 넘어가기로 하죠.

이 책에 실린 사진들을 한참이나 봐라 봤습니다. 한 장 한 장 꼽씹기도 했습니다. 역시 지난 시간의 역사를 되새김질하는 것과 같이 1930년대부터 사진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참 꼼꼼하게 한 장 한 장 넘기게 되더군요. 역시 사진은 지난 시간을 해부하듯이 난도질하듯이 죽어 가는 것이었습니다. 30년대의 파리 사진들에서부터 역사의 현장에서 또는 일상의 모습에서 지금은 다시 시간의 리플레이가 되지 않는 순간의 기록들이었습니다. 사진은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과거의 이미지가 더 격정적으로 와 닿는 비례의 느낌이 강합니다.

 

브레송의 사진은 그간에 많은 평론가들에게서 대체적으로 집약하면 3가지로 설명하더군요. 첫째, 자신의 생각에 의거 구상하는 장면이 나올 때까지 기다려서 포착하였고 장면이 포착될 때까지 기다림이라는 게 어떤 건지 사진 담아 보신 분들은 금방 느끼겠지요. 둘째, 대상 속으로 들어가서 순간을 끄집어내는 구도와 흐름을 읽고 찍었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장면에 나오는 사람들이 카메라를 의식하지 않게 보이고 상당히 자연스럽게 포즈가 나오는 이유가 될 것입니다. 셋째, 포트 레이드 사진에서 인물의 표정에서 특정한 내면과 외면이 드러나도록 주변의 배경과 순간적인 캐치하는 순발력이었죠. 이런 평가가 일반적입니다. 그런데 저는 여기서 나아가 시대적인 면면에 흐르는 일상의 평범성 속에서 만나게 되는 비범성이더군요. 굳이 브레송의 사진을 사진의 분야로 따지면 다큐멘터리성의 사진인데요. 이런 사진 조류는 50년대 60년대까지 이어 오면서 비비안 마이어의 사진에서도 얼핏얼핏 보이기도 하거든요.

 

브레송처럼, 라이카 카메라 한 대. 렌즈 하나 꼽고, 온통 시내를 돌아다니며 사람들을 찍어 보고 싶게 만드는 사진이었습니다. 그러나 현재는 브레송과 같은 사진을 찍기가 상당히 어렵습니다. 아닌 게 아니라 아예 불가능한 이유가 초상권 때문입니다. 사진 기자가 프레스 완장을 차고 사진 찍어도 자칫 멱살 잡힐지도 모르는 현실에서 일반 아마추어나 혹은 사진작가라 해도 카메라를 들입다 내밀면 미소 지으며 찍히는 사람도 없거든요. 그래서 대상 속으로 들어가야 한다는 말이 그리 가볍지도 않습니다. 카메라를 의식하지 않을 정도로 시간을 많이 들여야 하겠지만 현실적으로는 이것도 그리 간단한 것도 아니었으니까요. 그때 시대는 사진을 몰랐기에 카메라가 신기했을 것이고 지금은 사진을 찍히면 어떤 좋지 않을 일이 일어날지도 모르는 위험에 노출되었기도 합니다.

 

브레송은 매그넘이란 사진가 그룹을 창설했고 창립멤버였습니다. 이른바 매그넘 포토. 현대사의 사진에 큰 획을 그은 보도사진 그룹 중 하나입니다. 매그넘 포토의 사진이 각종 잡지로 팔려나가고 사진 제공함으로써 매그넘의 입지는 그야말로 대단했거든요. 정말 사진만 찍어도 밥 굶을 걱정도 없이 오로지 사진에 전념할 수 있는 그 토대가 너무나도 부럽기도 합니다. 그런 입지를 바탕으로 공산국가였던 중국이나 동남아 등 세계 전 지역으로 들어갈 수 있었던 힘이 있었습니다. 요즘으로 치면 보도 전문 채널 방송 CNN 급 이상이었거든요.

 

따라서 이 책은 브레송의 대표적인 사진으로 구성되었기에 사진을 좋아하고 사진에 대해 더욱 큰 자극을 받고 싶은 분들이라면 꼭 보셔도 손해날 것이 없는 책이라고 자부하며 권하고 싶습니다.(그런데 책은 품절이었어요.) 저야 이미 오래전부터 브레송의 사진은 대부분 단편적으로 감상했던 사진이었는데 이렇게 또 한 권의 책으로 집대성한 연작 시리즈로 감상하게 되니 그의 사진에 대한 특징이 정리되고 나아가, 감상의 밀도가 상당히 높아지는 효과로써는 최고더군요. 특히 흑백 사진의 깊이는 참 미묘한 감흥을 불러 일으킵니다. 사진 보고 있으니 행복했습니다.~요즘은 비록 디지털 카메라가 대세인 시대이지만 아날로그의 오래된 필름 사진은 사진을 찍는 사람에게 있어서는 영원한 향수로 남을 것입니다.

 

PS : 리뷰는 일사천리..급히 쓰였습니다.문맥이 뭔가 매끄럽지 않더라도 양해바랍니다.ㅎㅎㅎ

교정 좀 봐주는 분 채용할 여력이 안되서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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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galmA 2016-12-09 00:5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드디어^^
캐논만 쓰다가 니콘 구입했다 처분한 적 있는데 손에 익을 때까지 더 써 볼 걸 한편에 늘 아쉬움이 있어요. 요즘은 카메라 들고 다닐 체력이 안 되어서 휴대폰에 기댑니다ㅎ; 예술작품 찍을 능력은 안 되는 거 같고 일상의 편린을 담는 스냅사진 용도만으로도 만족하니까요. 핸드폰이 F 1.8까지 나와주니 이 정도로도 제겐 감지덕지^^;

비비안 마이어 사진 보며 저도 브레송 떠올렸었는데 yureka01님도 그렇게 느끼셨다니 반갑^^
역시 이 책은 동기부여가 되는 책이 맞지요? ^--^b

yureka01 2016-12-09 00:58   좋아요 2 | URL
저는 처음주터 니콘만 써왔어요. 미러리스도 하나 있는데 카메라를 용도별로 쓰게 되더라구요. 아 마이어 사진집도 봤거든요..이상하게도 닮았더라구요.ㅎㅎㅎㅎ 물론입니다.사진 충동이 불끈 일어났습니다.ㅎㅎㅎ

雨香 2016-12-09 09:0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개인적으로 브레송 사진에 대한 ‘찰나의 순간‘이란 표현을 좋아합니다. ^^ 찰나라는 단어가 브레송의 사진이 너무 잘 어울리더군요.

여담입니다만, 반도체 공정중에 포토공정이 있습니다. (설계도를 웨이퍼 위에 포토하는 공정인데) 요즘이야 다른 업체가 있긴 하지만 2000년대까지만 해도 니콘이랑 캐논이 꽉 잡고 있었습니다.. 잘은 모르겠습니다만 두회사가 독보적인 기술력을 가지고 있지 않으나 생각됩니다.

yureka01 2016-12-09 09:29   좋아요 2 | URL
찰나가 불교 용어였거든요.
순간이라는 개념인데 이 짧은 순간을 자신이 원하는 바를 기다렸다 담는 방식이었죠...
사진의 셔터 스피드를 생각하면 금방 떠올려지죠.

니콘과 캐논 기술력이 독일에서 배운거죠..오래되었죠. 제가 알기로는 광학기술이 전쟁과 밀접한 관계였던 걸로 압니다.그게 발전되어서 오늘날의 광학기술력이 된건 아닐까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