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깻잎을 묶으며 / 유홍준


추석날 오후, 어머니의 밭에서 

동생네 식구들이랑 어울려 깻잎을 딴다 

이것이 돈이라면 좋겠제 아우야


다발 또 다발 시퍼런 깻잎을 묶으며 쓴웃음 날려보낸다 

오늘은 철없는 것들이 밭고랑을 뛰어다니며 

들깨 가지를 분질러도 야단치지 않으리라 

가난에 찌들어 한숨깨나 짓던 아내도 

바구니 가득 차오르는 깻이파리처럼 부풀고 

맞다 맞어, 무슨 할말 그리 많은지 

소쿠리처럼 찌그러진 입술로 

아랫고랑 동서를 향해 연거푸 함박웃음을 날린다 

어렵다 어려워 말 안해도 뻔한 너희네 생활, 

저금통 같은 항아리에 이 깻잎을 담가 

겨울이 오면 아우야 

흰 쌀밥 위에 시퍼런 지폐를 척척 얹어 먹자 우리 

들깨 냄새 짙은 어머니의 밭 위로 흰 구름 몇덩이 자나가는 추석날 

동생네 식구들이랑 어울려 푸른 지폐를 따고 돈다발을 묶어보는


아아, 모처럼의 기쁨!


시집 <저녁의 슬하> 창비.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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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호랑이 2016-10-21 01:0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유레카님께서도 전공을 확징하셔서 알라딘 음악 DJ로 데뷔하시려나 봅니다^^: 좋은 음악과 서사적인 시 감사합니다.

yureka01 2016-10-21 08:56   좋아요 2 | URL
ㅎㅎㅎ 음악에서 만큼은 알라딘에는 오거서님이죠^^..

쿼크 2016-10-21 01:5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술먹고 들어와서 가을의 전설 ost 듣는데...울컥... 가을의 전설에서... 브래드 피트 형이던가요... 철조망에 걸려 총 세례를 받는 장면이 기억에 남네요.... 지루하게 봤지만... 의외로 가슴에 남는 영화... 흐르는 강물처럼 이라는 영화도 비슷한 인상을 풍기던.... ㅎㅎ

yureka01 2016-10-21 08:57   좋아요 1 | URL
네..가을이면 꼭 이곡 안듣고 지나면 섭섭한 느낌이랄까요..
오래전에 영화봤던지라 영화는 다 잊어 버렸지만 브레드피트가 집으로 돌아올때
금발 머리를 휘날리며 말타고 오던 장면이 떠 오릅니다..

samadhi(眞我) 2016-10-21 07:5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깻잎은 가난의 상징인가 봐요. 대학 때 ˝깻잎 폴아가꼬 대학 보내놨더니 술이나 처묵고 댕기냐... ˝ 는 말을 들었고 후배들에게도 했었죠. ㅋㅋ

yureka01 2016-10-21 08:58   좋아요 1 | URL
네 맞습니다..깻잎..깻잎이 가진 정서....^^

오거서 2016-10-21 06:3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시와 음악의 콜레보! 유레카 님은 음악으로 가을의 서정을 만끽하시는군요. 새삼 풍류에 감탄합니다!

yureka01 2016-10-21 08:59   좋아요 1 | URL
네 풍류..꼭 가을에는 풍류 한번 누리면서 지나야 되지 않을까 싶어요..
풍류에 음악이 빠지면 풍류가 아닌~~~^^..


음악이 바람의 흐름을 일깨웁니다^^.

기억의집 2016-10-21 09:4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문화유산이야기 쓴 유홍준이 쓴 시인가요?? 가을농촌들녁의 한 장면 같아요~ 깻잎 따는 거보다 전 저렇게 처곡차곡 쌓는 게 더 힘들더라구요. 요즘은 애들이 깻잎짱아찔 잘 안 먹어 안 하지만 깻잎 따 와 장아찌 담을 때 가지런히 쌓는 거 귀찮아했던 기억이 나네요.

yureka01 2016-10-21 09:44   좋아요 1 | URL
동명이인일 거예요..이분은 시인이예요..^^..
깻잎이 참 지루한 작업이죠....맞습니다~

컨디션 2016-10-22 01:0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가을의 전설.. 영화음악의 힘이 느껴지네요. 브래드피트는 긴 금발을 말갈기처럼 휘날리고.. 가을들판은 온통 마른 깻잎 향기로 넘실대는 요즘.. 좋네요. 음악도 영화도 시도. 그러니 돈 걱정일랑 다 잊고 들짐승처럼 살고 싶네요..^^

yureka01 2016-10-22 09:48   좋아요 1 | URL
저도 꼭 한번 조지 소로우의 윌튼처럼 살아 보고 싶습니다..^^..

2016-10-25 21:3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10-25 22:11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