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에 대한 발랄한 이야기를 쓴 에세이 책이다. 역시나 술 이야기는 술의 비책을 적은 글이 아니더라도, 술에 얽힌 에피소드가 재미있게 담았다. 술을 자주 마시는 사람들이 할 수 있는, 이런저런 술에 관한 이야기 정도는 다들 가지고 있다마는, 문제는 그런 술에 대한 경험을 술책처럼 공유하려 했다는 것이 핵심 포인트이다. 자주 술자리를 만들어 이런저런 이유 때문에 술을 자주 접하는 거야 시내 저녁 길거리를 돌아다니면 흔히 만나는 모습이다. 때론 하루의 회포를 풀거나 쌓인 감정의 골짜기의 계곡을 오르내리는 모습은 우리의 익숙한 일상이기도 하다. 그러나 저자의 술에 대한 경험론에 담긴 술과 삶의 의미를 적절하게 풀어내는 이야기의 묘사가 흥미롭기까지 하다. 그렇다고 칸트의 순수이성비판(다시 한번 읽고자 책을 폈는데 잠부터 온다.)처럼 알듯 모를듯한 애매하고 모호하게 보이는 글은 전혀 없다. 역시 술 이야기는 진지와 코믹이 적절하게 배합비율을 따르듯 가볍게 읽었다.

 

술, 즉 알코올은 기본적으로 독이다. 이미 알코올은 발암물질이라고 밝혀졌다. 많이 마시면 반드시 독성의 효과가 나타난다. 어쩌다가 인간이 술을 발견하고 술을 만들려고 했는지 정확하게는 모르겠으나, 알코올의 증상을 좋아했다. 마취제나 최음제나 흥분제로도 쓰였다. 독이라는 것은 어떻게 쓰는가에 따라 약으로도 쓰였기 때문이다. 세상에 인간이 만든 모든 물질은 약이자 독이라는 이중성인 형태를 가진다. 완전한 독은 있지만 완벽한 약은 없다. 독도 쓰임이 있고 약도 쓰임이 제각각 가진, 일종의 합목적성을 동시에 띈다. 알코올도 마찬가지다. 어쩌면 오늘도 인간 사바세계는 술 때문에 벌어지는 희로애락 오욕 칠정의 바다 한가운데를 허우적거리며 생과 사를 넘나들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적당한 취기가 오르면 평소 말수가 없던 사람도 대화에서 무수한 말을 내뱉는다. 술이 말의 생산력이야 비슷한데, 의외로 혼술을 하다 보면 취기로 인한 건지 취기 때문인 건지 음주 글을 쓰곤 한다. 물론 음주운전은 절대 금물이지만, 음주 글을 쓰다 보면 말이 많아지듯이 글도 많아진다. 다음날 술을 깨고 진한 숙취로 컨디션이 다운되어 깨보니 전날에 취한 채 내뱉은 무슨 말을 했는지 기억도 잘 나지 않는다. 그러나 음주 글은 기록으로 남는다. 웃기는 글에서부터 이상한 너무 터무니없는 말들의 잔치처럼 문자들이 난무한다. 난잡하고 조잡한 글들이 너무 많다. 그런 글처럼 말도 비슷하지 않을까. 그래서 알콜이 얼마나 사람을 흥분하게 만드는 것인지, 감정을 증폭시키는 것인지, 때론 과도하게 웃음으로, 때론 심각한 울음으로 표현되는 일종의 착각의 증폭제와도 같은 역할을 하기도 한다.

 

술 먹고 꽐라된 사람을 업고 허우적이며 걸어 본 적이 있는가? 나도 몇 번있다. 반대로 내가 꽐라되어서 고주망태로 업힌 적은 단!~한 번도 없다. 자고로 술에 자기제어력이 없는 사람은 술을 입에 대지는 말아야 한다. 제어력이 작동할 수 없는 사람의 취기이라면 거의 십중팔구는 주사파가 될지도 모른다. 나는 개인적으로 주사파 가족이 몇몇 있어서 어릴 때부터 주사파의 영향을 지대하게 받았다. 주사파는 일단 한 대 쥐어 터져도 잘~ 모른다. 내가 왜 터저있지를 생각해도 기억이 나지 않는 정도의 주사파는 상대하고 싶지 않아서이다. 너무 주사파는 어느 누구라도 피곤하게 하기 때문이다. 어릴 때의 주사파에게서 받은 상처는 내가 나이 먹을 만큼 먹어도 아직도 사라지지 않는, 나의 심연에 도사리는 쪽팔림과 부끄러움으로 남아 있는 이유이다. 부끄럽게도 [***]이라고 불렀던 인간이 주사파 중 하나였고 [***]도 마찬가지였다. 거의 알코올 중독자로 매일 술이었고 취한 상태의 행폐는 지긋지긋하고 너무너무 오랫동안 지쳤다. 어떻게 가족 중 하나가 알콜 중독이면, 슬픔과 괴로움과 고통을 만들고 증오를 만들고 악의를 만들어 내는지 당사자는 전혀 고쳐지지가 않았다. 고주망태로 취한 상태의 모습에서 화가 나고 짜증을 돋우다가 깨고 나서 미안하다는 그 말을 들었을 때 치밀어 오르는 허탈감과 울분. 그리고 화남 허탈 울분의 반복되는 횟수가 증가할수록 쌓여가는 인간의 환멸과 증오, 그리고 모종의 깊어가는 우울증. 자고로 우리 인생을 법구경을 그렇게 설명하였다. 만나고 싶은 자는 못 만나고 만나고 싶지 않은 자는 항상 만난다는 인연의 고통까지. 술은 어쩌면 여기서 악연의 충동질이었던 셈이다. 역시나 당사자 또한 정상적이지는 못했다. 인생에 멀정하게 취하지 않는 상태에서 성공도 어려운 마당에, 취한 상태로 인생을 잘 살았을 경우가 희박하듯이, 당사자들은 이미 추락하고 외면당하고 무시당하기 일쑤였다. 술을 감당하지 못한 것도 역시 자신의 인생은 떳떳하게 감당할 수밖에 없을지도 모르겠다. 이젠 그 주사파로 해방되었지만 여전히 알코올에 절은 그들에게서 받은 트라우마는 내 평생에 떨칠 수 없는 오점이 되고야 말았으니까 말이다. 달리 표현하자면 술이 취하느냐, 알콜에 오염되었냐 이 차이는 아닐까 한다.

 

그런 점에서 주사파의 상처와 트라우마에 찌들은 내면의 상태로 이 책을 만났을 때 모종의 기쁨이랄까 술의 미학이랄까 이런 생각이 들었다. 술의 음미하는 감각의 쭈뼛하게 서는 감수성의 깊이를 알게 해준다. 술의 상황의 맛에 따른 그 미묘한 차이를 느낌으로 감각의 감수성으로 느껴 가는 저자의 술에 대한 자기 감성이 참 일반적이지만 글로써 표현됨의 정서를 느끼며 술 한잔하고 싶게 만드는 글이기도 했다. 어린 시절에 만난 주사파들과는 그 수준과 격을 달리하는 품격의 술에 대한 에피소드가 신선하기까지 한다.

 

얼마 전부터인지는 모르겠으나, 어느 훗날에 한적하고 고적한 시골 산중으로 내려가면 꼭 만들어 보고 싶은 게 술이다. 특히 한 겨울철에 불을 지핀 따뜻한 아랫목에서 뽀글뽀글 거리며 올라오는 효모의 섭생으로 끓어오르는 기포로 익어가는 술맛을 맛보고 싶다. 천천히 익어가며 화학공장에서 일률적으로 제조한 형편없는 맛이 아니라 시골 땅에서 나는 향신료 맛나는 효소를 넣고 내가 만든 술맛을 맛보고 깊어가는 겨울밤의 밤새 울어 대는 그 소리에 젖어 보는 것도 한 인생 마감하는 기념적 술은 아닐까 한다. 그리고 펜을 들고 서서히 오르는 술기운에 무슨 글이라도 바람같이 쓴다면 무슨 글을 써야 할지는 술이 결정할지도 모르는 일일 것이다. 더구나 지인이라도 찾아오는 날이면 근사하지만 소박한 밥상에 올려낸 직접 만든 술맛의 평가도 받아 보고 싶다. 아이야 동동주 내어 와라라고 할만한 아이는 없어도 눈을 해치고 마당에 심어 놓은 독에 차갑게 쿨링 된 청주 몇 잔에 긴긴 겨울밤은 잠들지도 못할 것만 같다. 하기야 환경이 만들어 내는 술맛은 장소에 따라 다르고 누구냐에 따라 다른 결정을 하겠지. 그래 그런 날을 기리는 의미에서 오늘도 소주나 한잔 당기도록 하자.

 

(개인적인 치부를 들어내는 거 같아서 무척 망설이는 글일지라도 글은 솔직해야 한다는 신념이 나의 부끄럼까지 더 태워지니 또 우울해지려고 한다. 이해 좀 해주시리라 믿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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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1-15 14:0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11-16 09:35   URL
비밀 댓글입니다.

얄라알라 2019-11-15 14:2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꽐라˝라는 말을 평생 처음 봐서 더 흥미진진, 읽었습니다. ^^

yureka01 2019-11-16 09:36   좋아요 1 | URL
주사파 중에서도 특히 길바닥이 안방이 되어 누워 버린 걸 꽐라라고 보시면 됩니다.~

빵굽는건축가 2019-11-15 14:3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의외로 혼술을 하다 보면 취기로 인한 건지 취기 때문인 건지 음주 글을 쓰곤 한다.는 고백에 마음이 한표 가네요. 저는 집에서 누룩으로 막걸리 바로직전의 쉰다리를 만들어 먹어요. 아주 쉽고 그래요 샘은 담번에 막걸리 담아 드세요. 시골이 아니어도 될 정도로 가볍게 할 수 있으실거에요.

yureka01 2019-11-16 09:38   좋아요 1 | URL
창의력 높은 작가들이 음주글에서는 명문장이 나오거든요..환각이 예술의 매게도 하니까요..
언제 도전 한번 해보겠습니다.막걸리..만들어 봐야겠습니다..

겨울호랑이 2019-11-15 20:2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몸에 술이 맞지 않아 안 마시고 있습니다만, 술을 적절하게 즐기시는 분들 보면 많이 부럽습니다^^:)

yureka01 2019-11-16 09:39   좋아요 2 | URL
아예 전혀 못하시나 봐요..아고..이걸 수양적 체질이라고도 합니다..
술 전혀 입에 못대는 체질도 타고 나거든요.
알콜 알러지 반응은 술 먹음 바로 증상이 나타나거든요..

초록별 2019-11-15 21:3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소싯적엔 주신이었는데~~^^

yureka01 2019-11-16 09:40   좋아요 1 | URL
아 주당은 넘어 주신이셨다니 오!~^^..

초록별 2019-11-16 09:5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선생님처럼 술을 전혀 못 마시는 친구가 한명있어요~~^^ 술은 참 좋은데~~ㅎㅎㅎ

yureka01 2019-11-16 20:14   좋아요 1 | URL
독처럼 마시느냐 약처럼 마시느냐...이 차이겠지요..
술은 장소에 따라, 누구와 마시느냐에 따라 차이도 크더군요...
특히 책 좋아하고..사진 좋아하는 분과 마시는 술은 약이더군요..

강옥 2019-11-16 16:2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술술 넘어간다고 술이라면서요? ㅎㅎ
친정 아버지가 애주가셨지요. 도에 넘칠 정도로 ㅎ
길바닥에서 주무시기도 했고....
학교에서 돌아오는 길에 길바닥에 누운 아버지를 보고 피해 달아났던 아픈 기억이 있네요

오늘 오후엔 가까운 도서관에 가서 몇 시간 보내고 왔네요
문학사상 11월호, 보보담 가을호, 펜문학... 서너시간 금방 가버렸네요

yureka01 2019-11-16 20:16   좋아요 1 | URL
아고 지우당님 부친께서 애주가 셨다니요...
아무래도 술에 대한 영향을 많이 받으셨지 싶습니다...

책 읽으면요..시간 순삭이더라구요,.~~~~
개인적으로..심심하다는 사람 이해가 안되더군요.
책보면 시간 금방이거든요..

2019-11-22 19:0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11-23 14:0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11-25 12:2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11-25 15:3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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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2-15 13:3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12-15 19:5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12-15 21:0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12-16 20:59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