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개발 빈집 도로변

아직도 바위 끝에 앉아

집을 지키는 물새 한 마리

 

(디카시집 "이주민", 김종태, 2018.09)

 

이주민이란 사진과 시를 보자면 우선 사진으로는 재개발 현장의 아스팔트와 시멘트로 포장된 집 앞 도로에서 발견된 페인트인지 뭔지는 모르겠으나 흔적의 형상이 흡사 물새 한 마리를 닮았다. 시인은 이것을 물새를 빗대어 바라봤고 마침 그곳이 도심 재개발 사업으로 이주하고 남은 빈집 앞이었던 것이다. 집 앞이 바위에 걸터앉은 물새는 떠나 버린 이주민을 그리워하며 언제 부서질지도 모르는 빈집을 지킨다는, 이른바 시인의 상상력의 시선과 상상력에 따른 사진 시를 의미하는 것처럼 보인다. 보기에 따라서는 거친 세파가 휘몰아치는 바닷가에 파도치는 해안선 바위에 물새가 앉은듯한 느낌도 나기도 한다. 역시 거친 세파의 바다는 도심의 재개발 사업일 것일 테다.

 

현대 도시는 도시의 낙후되어 가는 문제로 인해 재개발 사업 등으로 이주해야만 하는 사람들의 은유를 이 사진과 시에서 물새를 닮은 형상으로 떠난 사람의 유적처럼 표현 되었다. 도시는 낡아 가는데 재투자가 이루어지지 않을 때, 사람도 늙듯이 건물도 따라서 낡아간다. 마찬가지로 낡아가는 노후주택을 개량하지 못한다면 슬럼화되어가는 경향은 지구상의 어느 도시나 비슷한 전철의 사례를 엿볼 수 있다.

 

그런데 이런 도시의 노후화 혹은 슬럼화에 따른 문제는 도시의 치명적인 허약함을 들어내기 마련이고 이 허약점을 비집고 들어와 여기에 부동산 업자나 건설업자들, 낡은 주택을 소유자들의 개발사업의 이익을 위해 모조리 철거를 하고 재개발의 이름으로 분양사업에 눈을 돌린다. 그렇다면 낡은 주택에 살던 사람들, 혹은  세입자나 원주민은 이주민으로 전락한다. 정착민이 이주할 때 이주에 따른 그간의 흔적들은 깡그리 말살되어 버린다.

 

어느 사진작가는 철거민 혹은 이주민이 떠난 빈집에서 버려진 사진 앨범이나 방안에 걸렸던 사진을 수집하는 작업을 하는 걸 봤다. 버려진 앨범의 사진은 그곳에서 살았던 사람들의 채취가 그대로 버려졌다는 의미이고 자신의 흔적과 자신의 정체성까지 과거를 버린 것이라고 사진작가는 생각했던 것이다. 그래서 그런 앨범의 사진을 구출해내고 버려진 것은 새롭게 수선 작업으로 작품화시킨 작업을 볼 때, 인간에게 있어서 버릴 수 없는 시간을 버린다는 것에 대한 것을 생각해보게 된다. 버려진 사진에는 하나같이 무슨 날을 기념하거나 특별한 날의 미소들이 가득한 일상의 사진들에서 그곳에 살았던 사람들의 흔적이란 과거의 시간을 유추한다. 마찬가지로 모두 떠나 버리고 빈집으로 언제 철거될지도 모르는 패가에 아스팔트에 뭍은 물새의 흔적은 떠난 사람들의 영혼이 물새로 형상화된듯한 의도를 작가는 그런 시선으로 봐라 봤던 것일 테다.

 

도시의 재개발 사업으로 막대한 차익을 남기는 등의 폐단은 그곳에서 살았던 사람들의 존재에 대한 정체마저 깡그리 몰살시켜 버린다. 집에서 사람이 살았든 흔적과 채취가 묻어있기 마련이다. 소위 말하는 "인이 베인다"라는 그 인은 사람이 살아야만 생기는 흔적일 것이다. 그런 과거의 흔적을 모조리 버리고 새롭게 높은 아파트 단지가 재개발이라는 이익으로 편취될 때 이주민의 불공정은 대체 어떻게 할 것인지 빈 집 앞을 지키는 물새가 돌아오지 않는 주인을 하염없이 기다리는 안타까움이 묻어난다. 이주민은 보상받은 몇 푼으로 새로이 들어서는 고가의 비싼 아파트에 입주할 수 없는 것이 대부분이다. 그럼 그들은 또다시 낡은 곳으로 쫓겨가야만 하는 사태에 대해 도심 재개발사업은 상당히 비인격적이기도 하다.

 

일전에 용산 재개발사업에서 일어난 철거민들이 죽고 경찰이 죽고 누군가는 뒤에서 이익을 앞에 두고 웃었을지도 모른다. 처절하게 지키려다 죽어간 사람. 혹은 이를 막아야 했던 경찰들 모두가 재개발사업의 파생된 피해자들이 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몇 사람의 목숨을 빼앗아 놓고 지금은 개발 이익이 나지 않는다고 빈터로 남겨져 있다면 과연 그렇게 싸우고 지키려다 죽어간 사람들은 뭐가 된단 말인지 정녕 모를 일이 아닐 수 없다. 이제는 전면적인 재개발이라는 이름으로 아파트나 올리는 사업은 지양되어야 한다. 마을의 정체성을 깡그리 무시하고 전면적인 철거와 높다란 고가의 아파트만 들어서는 행퍠가 아닐 수 없다. 보상금 몇 푼 쥐여주고 쫓아내는 것이 무슨 재개발이란 말인지, 누군가의 이익에 누군가의 집은 그대로 빼앗기는 사례는 막아야 한다.

 

이제는 전면적 재개발의 방식이 아니라 마을을 그대로 살리면서 재생시키는 이른바 도심재생사업이 나타나야 하는 이유이다. 그간에 살았던 사람들의 주거 환경을 개선하고 현대적으로 편리하도록 주택의 골격은 유지한 채 내부의 하드웨어를 현대적으로 구축함으로써 그곳에서 사는 사람들이 떠돌이가 되지 않으면서도 노후 주택을 개량하며 그래서 마을의 모습이 현대적인 감각으로 세련되면서도 아름다운 공동체 문화가 남아 있고 이른바 사람 사는 냄새가 나고 아이들이 골목길에서 떠들고 놀아도 좋은 구역으로 남아야 한다. 자유로운 도심의 낙후지역의 개량 사업이 무엇보다도 도시계획적인 차원에서 이루어져야 할 문제이다.

 

무조건 부수고 다시 지어야만 것보다는 집의 이력과 역사가 보존되면서 동시에 세련됨을 추구해야 하는 이유는 전국의 도시가 아파트 숲처럼 천편일률적이지 않아서 지역마다의 고유성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똑같은 아파트의 형태에서 우리의 창작력은 단체로 사그라들고 창조성과 지역성은 오래된 집이 사라짐으로써 매몰되기 일쑤이다. 유럽의 대도시에서 수백 년의 길거리가 아직도 오래전의 모습으로 보존되고 수많은 관광객이 카페에서 에스프레소 커피의 여유를 우리라고 왜 하지를 못하는 것인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도시는 도시마다 저마다 각각의 특색과 지역의 냄새가 있다. 또한 누군가 지나쳐 갔던 그런 골목이 역사의 현장으로 탈바꿈되어 기록되는 모습은 우리가 무엇을 얻고 무엇을 잃어가는 건지에 대한 깊은 성찰을 요구하기도 한다. 그러나 우리나라 도시는 어디나 엇비슷한 모양새를 하는 특색이 전혀 없는 이유는 재개발이 곧 아파트라는 공식이 어디에서나 적용되는 천편일률적인 모습에서 너무나도 재미가 없는 도시로 전락해버리는 꼴을 낳았다. 개발 지상주의자의 장밋빛 환상은 비슷한 모습의 독같은 닭장이나 만들었던 것은 도심의 재개발 사업이 얼마나 투기적인 요소로 만들어 낸 것인지 지금의 현상이 말하고 있다.

 

인간은 환경을 만들고 만든 환경에 의해 지배당한다고 했다. 그렇다면, 환경의 영향력은 인생의 전체를 좌우한다. 나는 어릴 때 한옥집에서 태어났다. 아직도 마당이 넓은 한옥집의 그 정취가 그립다. 구시대의 불편했던 한옥의 집을 현대적으로 개량해서 살고 싶은 마음은 마치 내가 언젠가는 돌아가야 할 고향집이 모습 그대로이다. 지금의 아파트 생활은 생활의 편리함이 주는 것 이상으로 정서의 악영향이 크다. 사람은 모름지기 땅을 밟고 살아야 하는데 공중에 떠서 한 줌의 땅에 지기조차 받지 못하고 콘크리트 속에 갇혀 사는 거다. 딱딱한 콘크리트의 막혀 버린 숨쉬기는 흡사 정서의 호흡곤란을 유발하는 듯하다. 각박한 인심은 각이 진 콘크리트 속에 사는 사람들의 환경에 지배를 받은 꼴에 비유할 까닭이 여기에 있는 것이 아닐까 싶었다. 지역의 역사성은 마을을 이루는 형세에서 나타나지만 오늘날의 아파트 문화는 도심의 재개발이라는 것의 투기수요와 맞물려 독버섯처럼 자라 버렸다. 여기에 투기의 욕망이 가세를 했으니 오래된 집의 정체는 모두 사라지고 하나같이 성형의 닮은 꼴에 이골이 날 지경이다.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 집 주인을 기다리는 물새가 오늘의 도심이 낡고 노후된 주인 잃은 패가의 철거를 목전에 두었다. 하릴없이 기다리는 이 허무를 이 물새를 닮은 사진과 시에서 마주하는, 잃어가는 것들의 돌아오지 않는 기다림처럼 쓸쓸하다. 다시는 그곳으로 돌아갈 수 없음에 대한 회한과 미련이 물새에게 고스란히 투영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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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8-09-14 12:3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사진가야말로 과거를 사진으로 기록하고, 보존하기 위해 발로 뛰어다니는 역사가입니다. 그리고 기억 속에 잊힌 존재나 사물을 발굴하여 사진기로 찍는 모습을 보면 사진가의 모습읋 보면 고고학자 같습니다. ^^

yureka01 2018-09-14 14:49   좋아요 0 | URL
네 기록의 역사...뭐든 기록되지 않으면 역사가 들어나지도 못하니 말이죠..
인생의 고고학자..크...사진가라해도 될듯...

감은빛 2018-09-14 13:1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와! 시도 사진도 절묘하네요! 이건 사진이니까 가능한 또 하나의 예술이자 역사네요.(요 위에 시루스님 말씀에 완전 공감!!)

요즘 제가 일하는 사무실 주변에 대형 재개발 공사장이 양쪽으로 2개나 있어서 작년부터 늘 먼지와 소음에 시달리며 시선이 닿을때마다 우울한 감정이 들어요. 하지만 저 아파트에 입주할 사람들은 다른 감정으로 보겠지요? 원주민들 중 일부(극소수)는 긴 시간 기약 없는 철거 투쟁을 이어가고 있던데, 그들에게 저 공사장이 어떤 곳일지 상상조차 할 수 없네요. 집을 잃었다는 것은 거의 전부를 다 잃은 것과 마찬가지겠죠.

yureka01 2018-09-14 14:52   좋아요 0 | URL
발견의 묘미가 바로 사진이니까요..
유심히 보지 못했더라면 기록되지 못했을 거니까요..

재개발 공사장 어디에나 철거민과 개발주체간의 싸움이 일어나더군요...
이익과 욕망이 서로 충돌하는 형국이 아닐 수 없어서요..
무엇보다도 공정해야하는데 부당함이 숨어 있는 것이 비일비재하니 말이죠..

네 살던 집을 빼앗기고 낮은 보상금으로는 새로 집을 구입하기 어려운 불평등이 도사리니까요..
재개발 보다는 재생사업이 그래서 철거하지 않고 주거하는 사람의 입장을 고려해야 하거든요..

북프리쿠키 2018-09-14 13:2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가까운 미래에 자연이라는 것은 모조리 인간에 의해 화석으로만 남을 것 같은 생각이 드네요

yureka01 2018-09-14 14:52   좋아요 1 | URL
네 지구상 어디에 가도 플라스틱 조각이 있다고 합니다...

2018-09-14 14:4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9-14 14:5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9-15 12:3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9-17 08:58   URL
비밀 댓글입니다.

강옥 2018-09-16 20:1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디카시집 ‘이주민‘을 거의 다 읽었네요
카페에서 한번씩 본 글이라 친근한 느낌이랄까.....
유레카님을 디카시 리뷰어로 명명합니다 ^^*

yureka01 2018-09-17 08:58   좋아요 1 | URL
아고 감사합니다..디카시집 종종 나왔으면 좋겠습니다.^^..

서니데이 2018-09-16 21:1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같은 순간, 같은 장소에 있어도 사람의 느낌은 다르고, 사진으로 남은 순간도 다른 것 같아요.
지나고 나면 많은 부분 사라지는 것들이 그렇게 조금씩 남는 것 같습니다.
유레카님, 편안한 주말 보내셨나요. 좋은 밤 되세요.^^

yureka01 2018-09-17 08:59   좋아요 1 | URL
서니님 페이퍼 글쓰면 항상 사진을 찍고 올리는 거 좋은 현상입니다..ㅎㅎㅎㅎ

카알벨루치 2018-09-16 21:3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제가 <이주민>을 구입해서 읽는데 너무 좋네요 디카시! 이 쟝르 넘 맘에 듭니다 사진도 시도 넘 좋아요 나중에 다 읽고 감상 올리고 싶네요 두고두고 봐도될듯

yureka01 2018-09-17 08:59   좋아요 2 | URL
사진과 시...이 두개의 카테로리가 합쳐서 새로운 감성을 돋구게 하죠~~~^^..

2018-09-21 14:5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9-21 16:0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9-22 11:4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9-22 23:1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9-25 05:4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9-25 10:2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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