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옥은 없다
- 백무산 -
고깃집 뒷마당은 도살장 앞마당이었다
고기 먹으러 갔다가 그곳에서 일하는 친구 따라갔다
고뭐 먹는 데만 하루에 황소 서너 마리를 소비한다는
대형 고깃집 수백 명이 한꺼번에 파티를 열고
회식을 하고 건배를 하고 연중무휴
요란하고 벅적거리는 대궐 같은 집이다
그는 쇠를 자르고 기계를 분해하고
기름 먹이는 일을 하다 직장을 옮겨 우족을 자르고
뼈를 발라내고 피를 받아내는 일을 한다
소를 실은 차들과 고기를 싫어 나르는
트럭들이 들락거리는 마당을 지나
전동 문을 열고 들어서니 피를 뒤집어쓴
잘린 소 대가리가 거대한 탑을 이루고 있다
바닥은 피와 똥과 체액으로 질펀한 갯벌이다
더운 피의 증기가 뻑뻑한 한증막이다
하수구 냄새와 범벅이 된 살 비린내가 고체 같다
욕탕 같은 수조는 똥과 내장의 늪이다
뜯긴 살점이 사방에 튀고 벽은 온통 피 얼룩이다
컨베이어 소리 기계톱 소리 갈고리 부딪는 소리
육절기 돌아가는 소리가 패널 벽에
왕왕 메아리 되어 울부짖는다
이곳에서 누군가는 지옥을 읽었다지만
지옥이 아니다
지옥과 닮지도 않는다
이곳은 천국의 부속 건물이다
천국의 주방이다
우리가 괜찮은 노동을 하고
그럴듯한 세상을 살고 있다는 자부심을 장만하는 곳이다
식당으로 돌아와 함께 떠들고 고기를 먹었따
맛이 있어서 불안했다
그러나 안도했다
지옥은 편입되고 없었다
( 유심 2015 9월호, 2016년 오늘의 좋은 시 144P-145P)
불이론
-문 숙
개와 강아지는
나쁜 놈과 착한 놈만큼의 거리다
낮과 밤만큼이나 멀고도 가까운 사이
욕과 칭찬만큼이나 적대적인 관계
개는 부정어의 접두사
강아지는 사랑의 대명사
천한 것은 개
자식이나 손주처럼 귀한 것은 강아지
세상의 모든 강아지는
개를 빌려 세상에 왔고
세상의 모든 개들도
강아지를 거쳐서 왔다
밤이 낮을 품고 낮이 밤을 품듯
우리는 하나다
비틀비틀 취객 하나가 내 옆을 스치며
"개새끼"하고 지나간다
(시작 2015년 봄호, 2016년 오늘의 좋은 시 108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