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의 시집에 "혼을 담았"다고 했다. 덜컥 겁이 났다. 구체적으로 어떤 시인인지도 모르고 받은 시인의 혼을 담은 시집을 무탈하게 받았다. 내가 시인의 혼을 농축시킨 걸 만난다고 하니 흥분의 겁이 날 수밖에. 책을 꽤 읽는다는 사람들도 시인의 시집은 그다지 인기가 없다는 걸 안다만은, 그런데도 불구하고 시인은 계속 혼을 담는 시를 계속 쓴다. 


어쩌면 몇몇 사람들은 본능 중에 특별한 한 가지가 더 있는 것을 아닐까. 먹는 욕구와 싸는 욕구, 정욕에서 특별히 혼을 담는 욕구가 더 있는 것은 아닐까. 이게 아니고서야 시집을 낸다는 게 어떤 욕망으로 뭉쳐진 것의 혼의 담론일까 궁금하다는 거다.


명색이 사진 블로그임에도 불구하고 몇몇의 시인분들이 찾아와 사진을 찍어 대고 걸어 놓은 걸 보는데 자꾸 시인의 시가 그리워지는 적도 있으니 아름아름, 건너 건너 시집을 간간히 보내주신다. 그래서 모른 척할 수가 없고, 또 그런 시인 분들과 소통을 게을리하기도 싫었다. 늘 살다 보면 만나는 사람들이 하나같이 먹고 사는데 관계된 사람들의 진부함과 지루함에 대비된, 전혀 다르게 혼을 담는 사람과의 신선함을 인간의 관계에서 느낄 수 있다는 것도 특별한 경험일 것이다. 대체 어디 가서 시인을 만날 수 있을 것이며 어디 가서 나름의 세계를 열어가는 화가를 만나서 그들의 삶에 혼이란 무엇인지 알려 줄 것인가 말이다.


하루 종일 아침부터 저녁까지 시달리는 욕구의 삶에서 혼을 추출할 수 있는 시집이 기다리는 밤은 그래서 더 영롱하다. 적잖은 저녁밥과 함께 걸친 반주 몇잔. 김치와 몇 가지 반찬에 고기 몇 점으로 때우며 하루를 움직인 육신의 허기를 면하긴 하는데도, 어디 내 영혼 한 군데에서 도지는 또 다른 혼의 허기와 허덕거림의 정체는 무엇인지 따져보면 역시 순수로 무장한 혼을 담은 사람의 정령이 그리웠던 것이 아닐까.


오늘의 뉴스와 각종 연예인들의 재롱 놀이 같은 드라마 따위에서 무덤덤히 지나치는 것에서 무미건조한 웃음보다는 날선 생혈 같은 피가 흐르는 뜨거운 "혼"을 읽는 것이 발견의 희열이었던 것이 아니었겠는가 싶었다. 분명, 배 터지도록 처먹어도 허기지는 원인이 혼의 허기가 채워지지 않았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 허기진 영혼에 혼을 불어 넣는 작업. 문학이 그렇고 예술이 그러하다는 걸 느낀다는 거다.


어느 시집을 열어서 펼쳐 읽다 보면 시어들의 종류 중에서 주식의 시황이 어쩌고 부동산의 개황과 아파트값이나 토지값이나 산업단지의 분양 소식은 없다. 아니 철저히 소거되어 있다. 시인의 혼은 완벽히 그런 종류의 단어들을 혼에다 끌어들이지 않는 방어막을 친 족속이었을 것이다. 하루 종일 주식 시황판을 들여다보며 단타의 작전과 계획에 몰두한 자본 시장의 투전판에서 완전히 소외된 사람들의 혼은 과연 어떤 언어들이 주로 서식하고 쓰이는 것인지 알 수가 있다. 그러나 사람들은 오늘의 투자에서 계좌에 찍힌 마이너스 신용잔고에 한숨을 쉬며 이 곳은 험악한 자본의 정글에서 황무지의 심성을 한탄하고 있고 그래서 생긴 허기를 어떻게 채울 방법은 오로지 통장에 찍힌 숫자에 혼을 매달뿐이라는 거다. 그것만이 사막의 오아시스라고 자평할 만도 하겠지만 또한 누구는 전혀 아닐 것이다. 과연 나는 어느 쪽인가. 그래서 언젠가 그 채워진 숫자의 빈틈으로 스멀스멀 올라오는 자신의 혼에 부정이 흘러나올 때는 속수무책이겠지.



난 말의 화랑에서 뼈아프게 사기 치는 책사이다

바람벽에 기댄 무전취식 손수무책 말의 어성꾼

이다


집요할수록 깊어지는 복화술의 늪에 빠진 허무

맹랑한 방랑자다


자 지금부터 난 시인是認이다


(중략)


관음을 의식하지 않기에 원천무죄지만

간혹 뜰에 핀 장미에겐 미안하고

해와 달 따위가 따라붙어 민망하다

날마다 실폐하는 자가 시인이라는 것이 원죄이며

사기를 시기하고 사랑하고 책망하다 결국 동경

하는 것이 여죄다

사기꾼의 표정은 말의 바깥에 있지 않다

그러니 詩人의 是認은 속속들이 참에 가깝다.


- 시인하다 부분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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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호랑이 2018-05-24 04:0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작가의 혼을 담았다는 말 앞에 읽기 전 자세도 돌아보게 될 듯 합니다...

yureka01 2018-05-24 08:49   좋아요 2 | URL
뜨끔하더라구요..ㅎㅎㅎ

서니데이 2018-05-24 17:0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혼을 담으려면 글씨를 잘 써야겠어요.
작가 사인의 글씨가 좋아보여요.
유레카님, 즐거운 하루 보내세요.^^

yureka01 2018-05-25 08:51   좋아요 1 | URL
그래야 시인이죠..
글 쓰기에는 도가 일단 터야 시인자격이 있다능..ㅎㅎㅎ
감사합니다~오늘두 화이팅.~

강옥 2018-05-24 17:5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자신의 잘못을 시인하는 사람이 시인이라지요 아마 ㅎ
저는 현학적인 시는 몇줄 읽어보고 던져버려요
아무도 이해할 수 없는 외계어 같은 시를 왜 쓰는지 몰겄어요
고릴라가 읽어도 이해할 수 있는 시가 좋아요.
물론 그 깊이는 독자가 느끼기 나름이지만 -

yureka01 2018-05-25 08:53   좋아요 0 | URL
네 시인은 시인을 잘해야 시인이라서요.
저도 시가 어렵습니다.
사진 처럼 직관적이지 않고 상당히 은유적이라서
의미의 암호같기도 하고..
이과라서 논리를 들이대면 맞는게 없고..ㅎㅎㅎㅎ

2018-05-25 00:1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5-25 08:54   URL
비밀 댓글입니다.

북프리쿠키 2018-05-26 14:2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혼을 담았다는 말, 속에
자기번민과 고통의 시간들을 짐작케 합니다. 뜻깊은 선물 축하드립니다^^








yureka01 2018-05-26 21:47   좋아요 1 | URL
아고 감사합니다....
그 혼을 만날 수 있는 기회가 너무 너무 감사하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