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생각하는 눈
최건수 지음 / 인덱스(INDEX) / 2017년 9월
평점 :
절판


초저녁잠이 늘어나고 아침잠이 줄어든다는 것은 노화의 대표적 증상이다. 아침에 일어나야 할 시간보다 훨씬 빨리 잠을 깨게 될 때 하루 종일 또 피곤함에 쩔어야 하는 경우가 발생한다. 늙어서 직장을 다닌다는 것이 그래서 더 두려운 일이다. 온종일 피곤에 업무를 가중하는 게 우울할 지경이다. 출근하자마자 종일 내내 수면 부족에 시달려야 하는 고역이 뻔한대도 아침의 숙면이 달아난다. 왜 쓸대없이 일찍 일어나서 덜거덕거리는 걸까라고 생각했던 적이 있었다. 어릴 때 나이 많은 노인네를 이해할 수 없었다. 일찍 일어나서 밭에 갈 일도 없고 시간 맞춰서 출근할 일도 없는데 새벽에는 더 게을러져도 됨에도 불구하고 일찍 일어나 부산했던 이유가 결코 부지런해서가 아니었던 거다. 노화는 결국 몸이 말을 점점 듣지 않는 현상이었다. 일찍 일어나서 멀뚱멀뚱 깨어나는 머리와 눈을 감게 만드는데 잠을 들 수 없는 어중간한 시간이 난감할 때가 자주 발생한다. 그래서 깊게 자버렸다간 출근에 늦을 거 같고 다시 눕기도 마뜩하지도 못했을 때 출근 시간까지 집어 들었던 책이었다.

 

이 책은 저자의 사진 평론서인데 한 작가의 사진에 대한  평론을 한다. 간혹 평론서라고 하면 사진의 품평하듯이 잘 찍었냐, 못찍었냐로 우열을 가리는 듯이 공모전 심사하는 듯 마냥 언급을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면 보기 좋게 빗나간 평론서이다. 유독 사진계에서 사진 작품은 품평용으로 전락하는 경우가 있다. 구도가, 색감이, 흔히 작가의 실수로 보일 법한 뉘앙스를 평론이란 이름으로 점수화시켜 평가하려 든다. 그러나 이 책은 저자가 작가주의적 시점에서 사진에 대한 창작론과 결합된 사진작가의 사유를 설명한다. 물론 보는 입장에서 사진에 대한 논함이었다. 이른 아침 시간에 좋아하는 사진에 관한 책이 그리 나쁘지는 않았다. 평론서가 비록 내가 사진 찍는데 있어서 1도 반영이 될 수는 없었어도, 사진의 창작에 대해 바라보는 시선의 각도를 잴 수 있다는 점이다. 이 평론서를 읽으면서 책 저자는 사진을 아우르며 살아온 경험과 쌓은 지식의 넓이를 읽게 된다. 누군 그러겠지. 고작 사진에 무슨 이론과 지식과 경험이 첨부되어야만 하는지 따질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사진을 보는 사람의 입장에서 사진의 평론을 읽고 알게 됨으로써 사진을 보는 방법과 방식, 사진의 양식을 조금이라도 얻어먹을 수 있다. 사진도 예술이란 범주에 끼어들어서부터 모든 예술론이 심오할수록 사진도 예술화된 심오를 느낄 수 있다는 점이다. 이 책은 다루는 사진작가의 예술론이었던 셈이다. 각 개별적 사진작가의 사진 예술의 방향을 재보고 카메라의 시야각을 어느 쪽으로 방향성을 가지는 것에 대한 분석이 그래서 돋보인다. 앞서 전 편의 리뷰에서도 언급한 발터 밴야민의 인용 문구에서도 나온다. 현대 사회의 문맹은 이미지를 읽지 못한다는 것이라고 했다. 이미지를 보고 읽는 것이 현대의 문명의 총아로서의 누릴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진다는 사실을 직시했다고 언급한다. 읽을 수 없는데 쓰기가 가능한 것이 사진이라면, 아무렇게 쓴 사진은 그야말로 디지털 시대의 낙서일 뿐이다. 백날 낙서질이 카메라로 이미지를 쓰기를 일찍 멈추는 현상이 조루증으로 나타난다.

 

한때 광풍처럼 유행으로 불었던 디지털카메라 시장이 많이 축소되고 죽었다. 카메라 소비시장이 줄었다는 것은 사진의 생산자도 줄었다는 뜻이고 한때나마 개나 소나라 하며 작가처럼 나서던 사람들도 안개 사라지듯이 사라져 버렸다. 대규모 사진 포털도 퍠업 선언과 함께 하였고 문을 닫았다. 소비시장이 점점 줄어드니 흡사 시골 장터에 그 북적북적했던 사진 사이트도 휑하다가 흔적을 찾기도 어려워졌고 더 이상 사진 시장은 바람이 불었던 전으로 돌아갔다. 디지털의 호기심은 단지 호기심으로 그쳐 버렸다. 나는 많이 떠나고 그만두었어도 여전히 아직도 사진에 미련을 버리지 못했고 작가도 아니면서 작가처럼 사진을 오늘도 가슴 한편에 버젓이 돌리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술잔을 앞에 두고 선술집에서 삼겹살을 구워 먹으며 밤이라도 셀 듯이 사진에 대해 이야기하고 토론했던 사람들은 다들 어디로 떠난 것일까? 나보다 더 오래 사진 할 것처럼 사진작가의 꿈을 키우던 선배들과 후배들은 지금 카메라를 어디다 두었을까. 그래서 동호회에서 서로 눈이 맞아 결혼하고 부주 돈 써가며 행복한 사진의 삶을 살 거라 다짐했던 선남선녀들은 무얼 할까? 그들에게는 사진이 단지 놀이였을 뿐이다. 사진의 가치와 의미보다는 "놀기 삼아"라는 호기심이었고 이 놀이가 흥미가 떨어지고 지루해질 무렵이면 호기심도 사라지니 더 이상 카메라는 중고로 혹은 장롱으로 보관용 신세로 전락시켜 버렸던 것은 아닐까 싶었다. 한 걸음만 더 들어가면 또 안개에 싸인 세계가 보일 텐데 거기서 멈출 때가 안타깝다.

 

우리가 곰곰이 중고등학교 다닐 때를 생각해보면 어떤 인생을 살아갈 것인지 추측도 못하고 살았다. 그런데 막상 살아보니 사는 게먹고사는 일이 녹녹하지 않았고 사람과의 관계가 쉽지가 않았다. 그때를 비추어 지금을 돌이켜보면 인생이란 참 지루한 고통스러운 현상을 겪고 만났던 것이다. 무슨 재미로 이 세상을 살아왔을까 따져 보면 흡사 자학적인 삶을 산 듯이 고난스러운 일들이 행복하다 여기는 일들보다 훨씬 많았다. 대기업 금수저 자식놈들도 화를 버럭버럭 내며 소리를 고래고래 질러대는 삶이 행복하냐고 묻는다면 아니라고 여길 만하다. 있는 놈이건, 없는 놈이건 대부분의 시간이 무덤덤한 시간을 제외하면 짜증 나고 열통 터지는 일들이 즐거워 흐뭇한 미소지를 수 있는 것보다 많았다. 일상은 뭐 하나라도 가볍고 단편적이지를 못하고 머리를 싸매는 선택에 내몰리는 삶을 사는 걸 보고 있다. 어딜 가더라도 요즘 경제에 분석하고 주식과 부동산에 이야기한다 한들 무엇 하나 확실하게 이거다라도 느끼는 것도 부족하다. 삶이란 지긋한 스트레스성 미열에 시달리며 구역질 나는 울렁거림의 연속이라는 것에 대해 단 한순간이라도 이 세계를 갈아엎을 수 있는 것을 잠시 잊어버리고 전혀 다른 세상에서 내가 누구인지를 물어보는 것이었다. 이곳에서 잠시 딴 눈으로 보지 않으면 도저히 내가 속한 이 세계의 나를 만날 수 없는 것과 비슷한 느낌이랄까 한다. 그 지점의 외나무다리에서 만난 것이 사진이었다.

사람은 눈을 통해서 세상을 본다. 그런데 이 본다는 의미는 눈을 통해서였다. 눈이 세상과 나를 보이는 시계로 이어준다. 종착지는 마음이다. 역으로 마음으로 세상을 본다. 결국 사람의 마음이나 심리는 시발점이자 종착지였던 거다. 마음은 욕구나 욕망에 의해서 표출된다. 사람의 본능은 보는 것으로 다시 튀어나오는 피드백이 본능이다. 이것을 표현이라고 한다. 가슴에 쌓아두고서 표현하지 못할 때는 미쳐 버릴지도 모른다. 보는 것만이 전부가 아니란 것이다. 보고 듣고 그래서 말하고 생각을 드러내는 것. 모슬로우의 안전 5단계에 최고 정점에 있는 인간의 욕구에서 왜 자아실현이라는 욕구가 가장 위에 있는지를 생각해보면 금방 느끼는 일들이다. 사람이 단순히 밥만 먹고도 살수야 있을지는 모르나 왜 밥도 아닌 예술적인 일상에 갈구를 하게 되는 것인지. 이것이 일종의 본능이라는 점이다. 형이하학적인 본능에 매몰되느냐 아니면 형이상학적 본능에 의탁을 하느냐는 무엇으로 결정되는 것일까 진지하게 자신의 행복론에 스스로가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한다. 결국 사진은 존재적 가치와 의미의 미시적 형태이다. 어쩌면 이게 인문학이란 본령이 아니던가 한다.

이 책의 제목이 사진이 생각하는 눈이라고 했다. 사진은 어떤 관점으로 보느냐에 따라 결정된다. 넓게 인문학적 예술적 관점에서 본다는 의미이다. 음악가의 눈으로 사진을 보면 사진은 하나의 음악처럼 보이고 문학가의 눈으로 보면 사진은 한편의 시처럼 보인다. 무엇을 어떤 관점에서 바라보느냐에 따라 사진작가의 시선이 희석되거나 탈색되거나 주관성을 부여하는 생각이라는 것의 눈이다. 랜즈와 카메라를 통한 보이는 현상을 휘저어 가공된 사상화되는 것. 이것이 사진의 묘미이자 재미이다. 문학의 근처도 가보지도 않았던 내가 굳이 시를 읽는 이유도 이와 다르지 않다. 사진은 어떤 예술과도 좋은 양립형 콜라보이다. 사진의 눈이 뭔가 덧댈수록 사상의 변이성을 나타낸다. 사진은 흡사 수만 개의 눈으로 바라본 세상의 모자이크 같은 퍼즐이다. 이게 곧 생각이자 의미라는 것이 아닐까 한다. 겉으로만 보면 수박의 속이 왜 그렇게 빨간색인지를 모르는 것처럼 우리는 수박을 깨듯이 사진을 깨는 것과 같이 따져 보고 분석하고 평론해야 빨간지 노란지 다른 차원의 세계에 진입할 수 있는 것이다. 본질은 현상을 결정하고 현상은 본질을 드러내는 것. 이것을 심미안이라고 하자. 사진도 심미스러울 때 가장 행복한 사진이 될 수 있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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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호랑이 2018-04-24 13:0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비평을 통해 자신의 예술관을 표현할 수 있다면, 그 비평가는 다른 작가의 작품에 기대지 않고 자신의 세계를 만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yureka01 2018-04-24 13:21   좋아요 2 | URL
물론이죠.사진의 지평을 더 넓고 깊게 만들기도 합니다....
사진도 볼줄 알아야 오래 사진 찍을 수 있거든요...
찍는거야 카메라가 다 해 주지만 사진 읽기는 카메라로만 읽을 수야 없거든요...

stella.K 2018-04-24 13:5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앞의 이야기와 유레카님의 서평이 무슨 관계가 있는지 잘 모르겠지만,
나이들고 웃긴 게 TV 켜놓고 잠이 드는 경우가 부쩍 많아졌다는 겁니다.
그리고 얼른 TV를 끄고 자려고 하면 달아나고 이리뒤척 저리뒤척하다
한참만에 잠이 들죠. 중간에 잠깐씩 깨는 적도 많고.
나이들면 더하겠죠?ㅎ
그런데 작년에 대학원 공부를 시작한 저랑 동갑내기 지인이 그러더군요.
공부 다시 시작해 보라고. 학교 다니고 공부하고 집안 일하고, 교회 다니고
등이 바닥에 닿으면 바로 잠든다고 하더군요.
잠 잘 못 잔다고 하는 사람 그거 다 편해서 하는 말이라고 하더구요.
일견 그럴 수도 있겠다 싶어요. 저도 학교 다닐 때 그랬던 것 같아요.
너무 바쁘고 힘드니까 집에 오면 퍼지고. 불면 걱정할 것 없겠다 싶어요.ㅎㅎ

yureka01 2018-04-24 14:12   좋아요 1 | URL
네..물론입니다.나이들어 공부해보면 ...잠이 보약이 되죠..ㅎㅎㅎㅎ
머리 뉘이자 마자 골아 떨어지거든요..
그런데 또 공부하려니..무서워요 ....흐.....
공부는 불면을 해결하긴 하는데 기억력과 싸움이고..
작년에 자격증 공부해보니..이건 뭐 잠하고 한판 시름 ㄷ ㄷㄷㄷㄷㄷ

sprenown 2018-04-24 14:4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잘 읽었습니다. 학교공부가 아닌 나이들어 관심분야에 대해 공부하는 것은 또다른, 새로운 의미가 있는것 같습니다. 인생과 사회를 보는 시각이 달라지거든요^^.

yureka01 2018-04-24 14:57   좋아요 2 | URL
그럼요.자신이 무슨 분야이든 좋아할만한 그래서 오래토록 찾을 수 있는 분야를 꼭 하나씩 만들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야 인생이 비록 고독할 수는 있어도 외롭지는 말아야 하거든요.
특히 나이들어가는 늙어질때는 반드시 있어야 합니다.
죽기전까지 남아도는 시간 주체할 수없이 허송하는 게 인생 낭비같아서요.

강옥 2018-04-24 18:3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네이버 ‘오늘의 포토‘가 사라지길래 이상하다 생각했더니
디지털 사진이 한물 간 거였군요.
아닌게 아니라 제가 가끔 들락거리던 사진방도 이름만 걸어놓고 스산하더군요.
주말마다 유명 출사지로 몰려다니더니 요즘은 각개전투로 바꿨나 싶었더니...

글도 사진도 너무 심각하게 생각하면 어깨가 무거운 것 같아요.
산에 왜 오르냐고 물었더니 산이 거기 있어서, 라고 대답했던 산악인처럼
저는 카메라가 곁에 있으니 찍는 것 같아요. 그냥 재미있어서~
그래서, 철학도 사유도 없는 사진을 찍으면서도 결코 그만두고 싶지는 않아요 ㅎㅎ

yureka01 2018-04-24 23:35   좋아요 1 | URL
사진인구가 줄어도 유명관광형 출사지 즉 소위 포인트는 그래도 여전히 카메라 대열이
서있을 거예요..물론 그때만으로 그치고 만다는게 너무 아쉽지여,,,
그기서 한 걸음 더 들어 가보는 호기심은 왜 생기지 않는지도 참 의문이더군요..
비비안 마이어처럼 일단 찍는 것..그것도 꾸준히....그럼 됩니다...

cyrus 2018-04-24 20:1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만약에 인공지능을 가진 기계(초성능 사진기)가 나온다면 인간은 사진 찍는 일을 하지 않게 될까요? 인공지능에 대한 책을 읽고 있어서 그런지 유레카님의 글을 읽다가 문득 궁금증이 생겼어요.. ^^;;

sprenown 2018-04-24 20:21   좋아요 1 | URL
인공지능의 초성능 사진기가 나와도 인간은 사진을 찍을거예요. 사람만이 갖고 있는 기억과 감성은 기계가 도저히 흉내낼수가 없을거 예요.^^

cyrus 2018-04-24 20:22   좋아요 1 | URL
제가 예상했던 답변입니다. ^^

yureka01 2018-04-24 23:37   좋아요 1 | URL
지금도 거리에는 수많은 카메라가 있죠...
차에도 블렉박스..다 카메라잖아요..
실용성으로 따지면 인공지능은 아마 사진 안찍을 겁니다...

생각이라는 걸 인공지능에 불어 넣지 못하는 이유가...
인공지능에 인간의 욕망을 넣을 수 없다는
인공지능학자의 주장이었어요.,,,

아마 인공지능이 스스로 욕망이 생기기 시작하면
인간은 멸망할지도 모르거든요,,ㅎㅎㅎ

이걸 경고한 것이 터미네이터에 나오는 스카이넷이라는 인공지능이었지요..

2018-04-27 21:1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4-28 09:3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5-02 08:1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5-02 09:05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