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탑은 최초의 우주로켓 현대시조 100인선 71
장수현 지음 / 고요아침 / 2017년 10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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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혹 사진 블로거를 보면 직업도 모르고 뭐하고 사는 분들인지 전혀 모르는데 사진만 본다. 사진으로 그의 삶을 감히 추측이 불가능하겠지만 적어도 사진이 투사하고 있는 시선은 찍는 사람의 생각을 살짝 엿보는 관음증 환자처럼 살피게 된다. 그러던 중, 또 사진 찍어 보여주는 분이 시조시인인 줄은 몰랐다. 작가 스스로가 밝히지 않으면 알 수 있는 길도 없다. 사진 블로거가 다른 영역의 작품을 알리는 것이 없다면 마찬가지로 모른다. 많이 알려주었더라면 꼭 반응을 보여드리고 싶었다. 그래서 알려 주기만 한다면 꼭 주문을 하고 살펴보고자 했다. 물론 이런 건 한두 번이 아니라서 간혹 있는 형편이다. 더 자주 직접 저자의 책을 받아 읽어 봤으면 좋겠다.


이번에도 장수현님의 시집을 알게 되었다. 알라딘 온라인 서점에 냉큼 주문을 넣고 시조집을 받았다. 주문 넣었다고 알려드리니 시집을 보내주시겠단다. 사양하지 않았다. 멋지도록 사인해서 시집보내 달라고 했고 진짜 저자 사인이 아주 근사한 캘리그래피가 적힌 시집에 적어 보내 주셨다. 이렇게 해서 주문한 시집과 저자가 제공한 시집과 쌍둥이처럼 서재에 나란히 저장되는 행운을 얻게 되었다. 저자의 사인이 들어간 책은 특별하다고 믿기 때문이다.


우선 지난 일요일, 하루 종일 시집을 펴들고 정독했다. 시집의 전체적인 느낌은 어떤 시이든 간에 마치 사진처럼 이미지가 떠오른다는 점 꽤 인상적이었다. 역시 사진 블로그에서 사진을 자주 올리는 시인이라서 그런가라는 싶었고 시가 언어로 찍은 사진처럼 읽혔다. 시적인 언어가 왜 이미지의 언어와 궁합이 잘 맞는 역할을 하는지 이 시집을 보면 금방 드러나는 부분이다. 

감상을 위해서 한 편 읽어 보자.


교감 1(35쪽)


늙은 소

한 마리가

온 들판을 끌 수 있는 것

억센 힘이 아니라

흙의 표정을 읽는 까닭이다


생살을 

다 터트리고서야

발돋움하는 봄,

들판


봄이 되면 농부는 농사일을 시작한다. 처음부터 하는 일이 밭을 갈아엎는다. 쟁기를 끄는 소. 오래전 우리네 시골에는 대부분 소가 쟁기를 끌었다. 이제 밭에는 소 대신에 경운기가 쟁기를 이끈다. 그런데 경운기는 흙의 표정을 읽지는 않는다. 동력의 메커니즘은 흙의 표정을 읽도록 설계되지 않았을것이다. 여기에서 시인은 소가 힘으로 쟁기를 끄는 것이 아니라 생살을 터트리는 흙의 표정을 읽어서 끈다고 은유한다. 흙의 표정만 읽겠는가. 농부의 생살 터진 손으로 거친 삶도 소가 읽는 것이었다. 새봄의 흙에서 농부의 거친 손에서 읽어 가는 소였을 거라고 추측한다. 흙을 뒤엎는 소의 힘은 농부의 힘과 봄이라는 시간의 힘이 싹을 튀우려는 힘의 합작품인 것이다. 복합적이란 것이 아닌가 한다. 이 복합적 물리작용이 화학작용으로 바뀌어 바로 교감으로 뭉쳐짐으로 드러난다. 우리 삶의 교감이라는 것. 단절이 아니라 이입이 되고 공감이 되어야만 감각이 교류한다. 일방통행의 직류가 아니라 백만 볼트의 교류가 일어나야 봄은 생살을 터지는 겨울의 얼어버린 아픔을 이기고서도 피어나는 새싹과 같으리라. 시를 읽고 눈을 감아보면 어느새 늙은 아버지가 어느 봄날, 쟁기 매단 소를 끌던 이미지가 떠오른다. 새봄의 땅은 그렇게 갈아 엎어지고 소를 끌던 소리가 난다. 이랴 이랴 부르던 봄날 밭의 흥얼이 시조의 운율같이 멜로디가 되어 퍼져 나온다. 역시 봄은 소가 읽는 땅의 기운을 읽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 한다. 아버지가 소를 앞세우고 아지랑이 피어오르는 밭. 이 사진이 떠 올려지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시를 따라 읽다 보면 멜로디가 생긴다. 3 혹은 4의 음절로 읽어 내려가면 자연스럽게 읽으면서 호흡의 길고 짧은 장단이 생긴다. 이는 특히 시조라는 문학 장르의 형식미가 만들어내는 우리글의 독특한 낭송의 맛깔이 근사한 한 곡의 노래가 된다. 시조의 묘미이다. 간혹 고전 문학에서 나오는 시조는 오늘날의 시어와 다르겠지만 사용하는 단어가 시대에 따라 유행이 변모하는 마술의 노래처럼 읽힌다. 시조의 형식은 고전적이고 내용은 현대적인 모습으로 나타난다. 어쩌면 시조는 읽는 호흡에 따라 스스로가 만들어 내는 작곡 같은 개념이랄까 싶었다. 그럼 시가 곧 가사가 되는 셈이고 요즘 유행하는 일종의 랩 장르의 음악이다. 또 한 곡 노래 불러 보자.


여름내, 그곳에서 취하다(58P)

-조선족 김씨


저물어 가는 공사장

한 귀퉁이에서 불을 지핀다


어린 짐승 등허리 앑듯

피어오르는 불의 혓바닥들


여름내 타들어 간 몸

소금꽃 돋아난다


잦아드는 불길 속으로

빈 술병 던져 넣고


애써 울음 삼키고 있는

눈시울이 붉디, 붉다


몸 누일 방 한 칸 없어도

고향은 그리운 법이다. 


어느 소수민족의 이야기 (68P)

- 붉은 손


화덕에 빵을 꿉는

위구르족 사내들


손등에 피어 있는

붉은 꽃을 본 적이 있다


화인을 찍던 날마저

피워 올리는 불꽃들


허기진 저녁나절

모퉁이 돌아서면


불길을 어르며 산

사람의 손에서


잘 익은

생의 냄새가 

화르르 풍겨났다.


조선족 김씨와 위구르족 사내들의 삶의 이야기는 단 몇 줄의 음절로 압축된다. 원래 고향은 조선 땅인데 오늘날의 조선 대신에 타국이 되어 반대로 고향을 그린다. 살려고 취하고 빵을 굽는 사내들의 손들이 생의 맨손으로 맞잡고 한 사내는 취했고 한 사내는 불도장에 뜨거운 줄도 모른다. 그러고 보니 둘다 소수민족이구나. 어쩌면 이 시대의 마이너들의 삶이란 소수민족처럼 옹색한 생을 취하고 찍는 것은 아닐까. 두 시가 다른데 또 같이 보인다. 눈시울이 붉디붉고, 손등에 뜨겁게 찍히는 붉은 도장 같은 화상들. 생체기는 역시 붉은색으로 이어진다. 이처럼 마찬가지로 시를 읽으면 사진이 어떻게 찍혔는지 글로 촛점이 선명히 찍혀진다. 사진을 보지 않고도 사진 찍은 듯이 이미지가 역시 떠올려진다. 언어의 스냅 사진 같다.

우리는 이렇게 방식과 양식으로 규격화되고 정형적 질서를 만들어 표현한다. 물론 글이 낙서가 되느냐 그림이 낙화가 되느냐는 순전히 통일된 표준화 작업을 거칠 때로 수렴된다. 글이란 모름지기 시적인 형식을 갖출 때 혼란을 줄이게 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표현하려 하는가라고 묻는다면 표현이야 말고 일종의 본능 같은 것이 아닐까 한다. 내부에 쌓아만 놓고 있다면 숨이 막히는 것과 같이 답답한 현상이 일어나기 때문이다. 시는 결국 켜켜이 쌓여가는 삶의 고역이라는 앙금이 쌓여 가는 것이고 이 앙금을 시라는 형식과 양식으로 정제하는 행위이다. 석공이 탑을 쌓는 것도, 탑이 로켓처럼 우주로 뻗어 나가며 표현하는 것이 결국 본능의 일종이라는 점이다. 그렇다면 시조는 대단히 규격화된 양식이자 프레임이다. 사진의 사각형 속의 프레임이라는 양식에 이미지화된 언어는 음절과 단어로 나오는 로켓의 고체 같은 연료가 되고 추진력을 얻게 되는 이치가 숨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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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8-04-17 14:0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시조집 제목이 특이하네요. 책 제목만 보면 과학 책인 줄 알겠어요... ㅎㅎㅎ

yureka01 2018-04-17 15:34   좋아요 0 | URL
ㅎㅎ 그래도 시집 싸이즈라서 금방 알아 보겠더라구요..

2018-04-17 14:0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4-17 15:36   URL
비밀 댓글입니다.

겨울호랑이 2018-04-17 14:1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시조의 정형화된 양식은 작가가 자신의 감정을 담아내는 그릇같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yureka01 2018-04-17 15:38   좋아요 1 | URL
네 시조가 또 읽다보면 운율이 생겨서 흡사 랩같은 노래가 되더군요...
낭송의 묘미도 있어서요..

사실 요즘 누가 시조시를 읽냐 하겠지만 의외로 읽기 편한 시가 시조시에 있더군요..

AgalmA 2018-04-18 02:5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압축미를 정말 잘 살린 시조들이네요. ˝흙의 표정을 읽는˝ 같은 촌철살인 표현을 땅땅! 넣으셔서 시조의 강렬함도 잘 살리시고!

yureka01 2018-04-18 08:32   좋아요 1 | URL
감성 전달도 운율에 실려서 술술 나왔어요^^..
일상적인 단어들의 시라서 어렵지도 않고..느낌도 돋고..^^..
저도 어려운 시는 못읽지요~^^.

강옥 2018-04-18 20:4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작품 참 좋네요
쉽게 읽히면서 찌르르 감동을 주는 작품이 흔치 않던데....
저도 주문 넣어봐야겠네요
유레카님 덕분에 좋은 작가 한분 알았네요. 감솨 ^^*
(오늘 대구 갔다 왔어에. 덥데예~~~)

yureka01 2018-04-19 09:01   좋아요 0 | URL
대구 오셨으면 연락주시지 그랬어요..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