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의 진정한 이름은 무엇인가 우리 시대의 주변 횡단 총서 7
오카 마리 지음, 이재봉.사이키 가쓰히로 옮김 / 현암사 / 2016년 6월
평점 :
절판


 

 이 책은 서양 선진 공업국 페미니즘이 자신들을 보편으로 설정하고 제3세계의 베일이나 여성 성기 할례를 객체화함으로써 제3세계 자체를 송두리째 뒤처진 것으로 만들고 결과적으로 인종차별주의에 가담해버리는 현상에 이의를 제기하고 있다. 이와 동시에 같은 여성이라고 말하면서 다양이라는 특권의 방패에 보호받고 있는 한편의 여성이, 또 한편의 억압받고 특권이 없는 여성의 아픔을 나눌 수 있는 가능성을 장렬하게 묻고 있는 책이기도 하다.

 

 제3세계 여성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제3세계 여성에 관한 담론이 시장적 가치를 갖게 되면서, 실제로는 제3세계에 대한 차별적인 시선에 바탕을 둔, 그녀들을 유다른 희생자로 바라보고 그녀들의 사회를 억압적이고 야만적인 것으로서 표출하는 이미지가 인권이나 페미니즘을 표방하는 담론 속에서 확대 재생산되고 있다.

 

 서양 페미니즘 담론이 아랍이나 아프리카, 혹은 이슬람 사회를 여성 차별적, 억압적이라고 비판하는 근거로 삼고 있는 인권이나 페미니즘의 보편성이란 이러한 비판에 앞서 선험적으로 존재하지는 않는다. 그것은 사실 서양이 일방적으로 타자를 억압적인 것으로 규정하는 행위에 의해서만 담보되고 있으며, 그러한 보편적 인권이나 페미니즘에 이들 해당 사회의 여성들이 관여하지 않는 것은 어떤 의미에서는 당연하다고 할 수 있다. 그것은 여성의 인권이나 인권의 보편성을 부정하는 것과는 전혀 다르다.

 

 

 여성의 억압, 여성들이 당하는 착취와 사회적 압력은 아랍이나 중동 사회, 제3세계의 여러 나라에만 있는 특유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여전히 후진적으로 봉건적인 사회이든 과학기술혁명의 영향을 받은 근대 산업사회이든, 세계 대부분의 지역에서 지배적인 정치적 · 경제적 · 문화적 제도의 불가결한 일부를 이루고 있다.

 

 페미니즘이라는 학문과, 페미니즘이라는 정치 실천 및 조직화와의 필연적이고 불가분한 관계가, 제3세계 여성들에 대한 서양 페미니스트 저작들의 중요성과 지위를 결정하낟. 왜냐하면 페미니즘이라는 학문은 다른 대부분의 학문과 마찬가지로 단순히 어떤 문제에 대한 지를 생산하는 것만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것은 의도적이고 이데올로기적이라는 점에서 직접적으로 정치적인 실천이다.

 

 페미니즘이라는 학문의 실천은 여러 가지 힘의 관계 속에, 말하자면 그녀들이 대치하고, 저항하고 혹은 은연중 지지하기도 하는 여러 관계 속에 아로새겨져 있다. 몰정치적인 학문은 물론 존재하지 않는다.

 

 서양 세계의 페미니즘의 주요한 목적은 해당 사회에서 남성중심주의를 시정하는 것이다. 이에 비해 제3세계 페미니즘은 자기 사회 내부의 부권주의, 남성 중심주의에 대한 투쟁임과 동시에, 서양의 식민주의에 대해서는 민족의 입장에서 싸워야만 한다. 이와 같은 투쟁의 이중성이 제3세계 페미니즘을 더욱 곤경으로 내몬다. 우리는 제3세계 페미니즘에 내재하는 이 본질적인 이중성을 이해해야만 한다. 그녀들이 주장하는 민족적 주체성을 무시하고 서양 페미니즘만을 보편적이라고 말하는 것은, 그녀들에게 분명한 억압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제3세계 여성이 그녀들 사회 고유의 부권주의 때문에 서구 여성들보다 더 억압받고 있다는 것은 완전히 몰역사적인 주장이다. 중요한 것은 젠더 이외의 여러 요인들이, 제3세계 여성들이 당하고 있는 억압의 필수적인 구성 성분이며, 부권주의에서도 역시 중요한 것은 현지 사회 고유의 불평등한 젠더 관계 아래에서 이루어지는 제3세계 여성의 노동이 대부분 서양의 부권주의나 인종차별주의, 착취로 인해 강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타자에 대한 나의 공감을 오히려 그들의 공감과는 절대적으로 공약 불가능한 것으로 서술하는 것, 나의 눈앞에 주어진 타자의 고통을, 동일화에 의한 공감이 아니라 그와는 다른 공감의 말을 찾는 것. 위안부였던 여성들의 몸속 깊은 곳에서부터 치밀어 오르는 아픔의 목소리에 몸부림치면서, 그러나 그렇기 때문에 사건의 폭력성과 그녀들의 고통과 그에 대한 나의 공감은 그녀들의 몸속 깊은 곳에서가 아니라 오히려 나 자신의 철저한 무력함에서 서술되어야만 하지 않을까.

 

 일본 페미니즘은 다양하다고들 한다. 그 사실을 부정할 생각은 없다. 실제로 포스트 콜로니얼리즘 등의 말이 유행하기 훨씬 이전부터 이와 같은 식민주의 문제를 여성의 문제로 생각하고 활동해온 여성들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융성한 여성학이나 페미니즘 속에서 그러한 문제의식이 여전히 소수이며 주변적이라는 것 또한 사실이다. 그리고 우리가 다양하다고 생각하는 것이 사실은 밖에서 보면 얼마나 획일적으로 존재하는지 하는 점도 역시 마찬가지다.

 

 

 다양성을 찬양할 수 있다는 것이 실제로는 어떤 내적인 공동성으로 보증된 특권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탈식민주의의 과제를 일본 여성들의 과제로 삼아 꾸준히 고민해 온 이런 분들의 노력을, 일본 페미니즘이 다양하며 그래서 우리가 식민지주의적인 억압이나 폭력과는 무관하다고 주장하기 위한 알리바이를 증명하는 것으로 이용해서는 안 된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진정으로 그녀들의 말을 알아듣고 그녀들의 아픔을 공감하고 함께 나누는 것이고, 그녀들의 요청이나 부름에 언제나 응답해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녀들을 대리 표상하려는 욕망에서 벗어나 그녀들의 상황과 표상을 수동적인 주체의 입장에서 다른 사람에게 전해야 한다. 그리하여 언제나 그녀들과 진정으로 함께 만날 수 있어야 하는 것이 우리에게 부여된 의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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