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딘 걸음은 잡힌 마음 탓이리라.

꽃소식을 접하고도 움직이지 못했다. 이런저런 핑계야 없진 않지만 조바심 내지 않아도 될만큼 넉넉해진 마음이 큰 이유라 스스로를 위로한다.

모처럼 나선 길, 숲은 봄인양 스스로를 풀어내고 있다. 땅도 나무도 새순도 볕을 품어 존재를 드러내기에 소리없는 아우성이다. 이끼가 전하는 봄소식이라 이해하니 마음에 초록으로 싹트는 듯하다.

짧은 눈맞춤으로 봄기운을 품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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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시우행 2024-02-13 23: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봄기운이라 맘이 포근하네요.
 

차가운 아름다움, 매화梅花

細竹淸梅緣水涯 세죽청매연수매

東風春意滿香閨 동풍춘의만향규

가는 대와 맑은 매화 물가에 따라있고

동풍에 봄뜻이 규방에 가득해라

이는 보한재 신숙주가 서첩에 쓴 시구다. 매화는 예나 지금이나 시인묵객을 비롯하여 모두가 좋아하는 꽃이다. 찬바람 부는 한겨울 탐매를 나선 사람이나 만발하여 상춘객을 불러 모으는 때에도 단연코 선두에 서는 꽃이라 할 수 있다.

䟱影橫斜水淸淺 소영횡사수청천

暗香浮動月黃昏 암향부동월황혼

물은 맑고 얕은데 그림자 빗겨 있어

달 뜬 황혼에는 그윽한 향기 떠다니네

매화를 좋아했던 사람으로 매화로 처(妻)를 삼던 송나라 사람 임포를 빼놓을 수 없다. 죽음을 앞두고 매화분에 물을 주라던 조선의 퇴계 이황도 있다. "천엽이 단엽만 못하고 홍매가 백매만 못하니 반드시 백매의 화판이 크고 근대의 거꾸로 된 자를 선택하여 심으려고 하였다"는 정약용도 있다. 이후로도 수많은 사람들이 매화를 애지중지하며 키우고 돌보거나 이름난 매화를 찾아 탐매의 길을 나서기도 했다.

그 취향은 오늘에도 이어져 전국에 사는 벗들이 섬진강 기슭에 모인다. 해가 바뀌고 첫 꽃나들이 장소로 정한 곳이 섬진강 소학정이다. 전국에서 가장 먼저 매화꽃이 핀다는 곳이다. 오랜 꽃궁기를 건너 첫 꽃을 찾는 나들이이고 그것도 모두가 사랑하는 매화라 더욱 즐거운 나들이가 된다. 어쩌면 꽃은 애둘러 말하는 핑계고 벗들과 만나 회포를 푸는 것이 우선인 듯도 하다.

매화타령의 한구절로 차갑고 아름다운 매화를 만난 소회를 대신한다.

매화 옛 동걸 봄 철이 돌아온다.

옛 피던 가지마다 피염즉도 하다마는

춘설이 하도 분분하니

필지 말지 하더매라

*문일평의 '화하만필'을 정민 선생이 번역하고 발간한 책, '꽃밭 속의 생각'에 나오는 꽃이야기에 내 이야기를 더하고자 한다. 책의 순서와 상관 없이 꽃 피는 시기에 맞춰 내가 만난 꽃을 따라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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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산

대부분 꽃으로 만나지만 꽃도 잎도 모르면서 매번 열매로만 만나는 나무다. 그러니 볼때마다 미안한 마음이 앞선다. 숲길에서 열매를 보고서야 겨우 이름 부를 수 있다.

꽃은 노란빛이 도는 녹색으로 잎보다 먼저 잎겨드랑이에 달려 핀다는데 아직 직접 확인하진 못했다. 암꽃과 숫꽃이 딴 그루에서 다른 모양으로 달린다고 하니 기억해 둬야겠다. 보고도 기억하지 못하는 것이 한둘이 아니다.

독특한 모양의 열매가 그냥 지나치지 못하게 발걸음을 붙잡는다. 4개의 씨방이 대칭형을 이루며 꽃처럼 달려 있다. 씨방에는 검은색 종자가 들어 있다.

많은 꽃들이 피는 시기에 함께 피니 주목하지 못했나 보다. 매년 꽃도 잎도 확인할 기회를 가져야겠다고 생각하지만 때를 놓치고 나서 하는 말이 된다. 올해도 그러는거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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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읽는수요일

동백꽃

나는 저 가혹한 확신주의자가 두렵다

가장 눈부신 순간에

스스로 목을 꺾는

동백꽃을 보라

지상의 어떤 꽃도

그의 아름다움 속에다

저토록 분명한 순간의 소멸을

함께 꽃 피우지는 않았다

모든 언어를 버리고

오직 붉은 감탄사 하나로

허공에 한 획을 긋는

단호한 참수

나는 차마 발을 내딛지 못하겠다

전 존재로 내지르는

피묻은 외마디의 시 앞에서

나는 점자를 더듬듯이

절망처럼

난해한 생의 음표를 더듬고 있다

*2월은 동백꽃과 관련된 시를 모아본다. 문정희 시인의 시 '동백꽃'이다.

'시 읽는 하루'는 전남 곡성의 작은 마을 안에 있는 찻집 #또가원 에 놓인 칠판에 매주 수요일에 올려집니다.

#곡성 #곡성카페 #농가찻집 #곡성여행 #섬진강 #기차마을 #통밀천연발효빵 #들깨치아바타 #곡성천연발효빵

전남 곡성군 오산면 연화길 5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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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기억이 그곳에 있었다 - 추억이 오늘의 나를 지켜줍니다
김용일 지음 / 메이트북스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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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기억의 공유

 

익숙한 모습의 집그 뒤로 아주 풍선한 한그루 나무가 있다어린 시절은 떠올리게 하는 아주 다정한 모습이라 눈길을 사로잡기에 충분했다하나 둘 비슷한 느낌을 전해주는 그림들을 챙겨보며 속으로만 좋아했다어느 날 전시회 소식을 접했으나 너무 먼 길이라 아쉽기만 했지만 딱히 방법을 찾지 못하다가 화가가 발간한 책이 있음을 알게 되고 다른 책과 함께 장바구니에 넣어두었다.

 

며칠 지나지 않아 그 장바구니에 들었던 책들이 내게로 왔다주문한 기억이 없어 어찌된 영문인지 알지 못하다 한동안 시간이 지난 뒤에야 의문이 해소되었다그렇게 해서 spo게 e\온 책이 바로 김용일 화가의 행복한 기억이 그곳에 있었다.

 

손길 닿는 곳에 두고 보내준 이의 마음까지 얹어 아껴가며 읽었다어느 날은 그림을 주목하고 다른 날엔 담긴 글에 주목했다그림과 글 사이를 거듭해서 반복하는 동안 꽤 많은 시간이 흘렀고 이제야 흔적을 남길 여유를 찾았다.

 

추억이 오늘의 나를 지켜줍니다.”라는 부제가 어떤 의미인지를 알게 하는 내용으로 꾸며진 자신이 그린 그림들에 글을 덧붙여 아름다운 한 권의 에세이” 만들어진 것이다어린 시절고향추억 등이 주제다익숙한 모습의 집들과 화가의 추억이 고스란히 담긴 마을의 이야기가 마치 내가 살았던 옛날의 시간으로 이끌어 주는 듯 따스함이 함께 한다.

 

수 십 채의 집과 그 집들을 포근하게 감싸는 듯 아주 크게 그려진 나무가 보는 이를 압도하는 수월리 2019’, ‘상동이내집 2019’, ‘몽석리의가을 2019’, ‘동례마을 2019’, ‘창우네집 2019’ 등을 주목하였다그림 앞에 잡힌 눈길이 빠져나오려면 온갖 몸부림을 쳐야 가능할 정도로 큰 울림이 있다.

 

그림 100여 점그 하나하나가 내 기억 속 풍경처럼 살갑게 다가온다그림 제목 역시 정겨운 이름들이 붙었다화가가 살았던 동네 모습이 사실적으로 표현되고 그림 제목 역시 저절로 따스한 미소가 떠오르게 한다.

 

기억은 힘은 쎄다기억을 한순간에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사람을 마음을 움직이게 한다기억이 함유한 감성으로 지금 오늘을 보다 풍부하게 살아갈 힘을 얻기 때문이다이 책은 화가의 기억이 불러 온 작품들이지만 기억이 가지는 긍정의 힘을 마음 것 발휘되게 만들어 주는 행운을 가져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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