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나의 조선미술 순례
서경식 지음, 최재혁 옮김 / 반비 / 2014년 11월
평점 :
우리가 주목해야 할 ‘디아스포라’
시작부터 착오였다. 주된 관심사 중 하나인 조선시대 미술에 관한 책으로 보았다는 말이다. ‘조선’이라는 단어가 가지는 의미를 좁혀 생각해 온 탓이라 자책하더라도 이 책을 선택한 것에 대해서는 유감이 없다. 고조선, 조선, 그리고 지금의 조선이 담고 있는 의미는 조금씩 다르겠지만 우리 민족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굳이 우리라는 단어 대신 조선이라는 단어를 선택한 이유가 분명해 진다. 우리가 포괄하기에는 다소 머뭇거려지는 것들에 대한 나름의 대안이기 때문이다.
서경석은 재일조선인이다. 일본에서 태어나 지금까지 일본에서 살고 있다. 하지만, 그 마음속에 늘 민족과 우리라는 정체성의 문제가 함께 한다. 그는 ‘재일교포 유학생 간첩단 사건’으로 20년 가까이 옥고를 치른 ‘서승·서준식’의 동생으로 국가주의적 폭력의 생생한 증인이기도 하다. 그렇기에 ‘민족과 우리’라고 하는 범주에서 약간 벗어난 존재다. 이 벗어난 존재이기에 주목할 수 있었던 것이 ‘디아스포라’일 것이다. ‘디아스포라’는 흩어진 사람들이라는 뜻으로, 팔레스타인을 떠나 온 세계에 흩어져 살면서 유대교의 규범과 생활 관습을 유지하는 유대 인을 이르던 말에서 유래된다. ‘민족과 우리’라는 범주에서 그 주변을 맴도는 삶과 생각을 중심으로 사람들을 만난다.
서경석의 이러한 사고의 결과물이 ‘나의 조선미술 순례’다. 미술을 통해 미술가들의 삶과 작품 속에 담겨진 이야기를 대담을 통해 얻고 저자 서경석의 생각을 담았다. 그가 만난 사람들은 현재 활동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지만 이미 고인이 된 사람도 있다.
‘긍지 높은 촌놈-신경호, 완고한 맏아들-정연두, 우아한 미친년-윤석남, 분열이라는 콘텍스트-이쾌대, 성별조차 초월한 이단아-신윤복, 이름이 많은 아이-미희=나탈리 르무안에서 사람이 아름다웠다-홍성담, 그녀의 붓질-송현숙’에 이른다. 모두 어느 경계에 서서 그 이곳과 저곳을 이어갈 무엇을 찾고 있는 사람들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신경호에게는 5.18를 중심으로 민족의 연결고리를 찾는 것이나, 애착과 객관성의 미묘한 균형으로 본 정연두, 여성과 재일조선인이라는 관점에서 공유함으로써 독특한 관계가 설정되는 윤석남, ‘군상’과 ‘푸른 두루마기를 입은 자화상’의 이쾌대에게서 월북한 작가라는 점을 빼놓을 수 없다. 그가 포함하는 다중성의 출발이다. 저자가 신윤복에서 찾는 것 역시 시대상황에서 용납되지 않을 수도 있는 그 작품세계를 통해 본 다중성일 것이다. 저자가 주목하는 ‘디아스포라’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이가 미희다. 해외 입양아로 아버지를 일본인으로 확신하기에 더 중첩된 의미가 있다.
'나의 조선미술 순례'는 한국과 전 세계를 활동무대로 하는 미술가들을 찾아내 그들과 대화를 통해 우리 시대가 안고 있는 문제들에 대한 대안을 모색하고 있다. 특히 작품들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고 미술가들과의 대화 속 공감대를 형성하는 매개로 서양 미술과의 비교는 동 서양을 시대비교를 통해 폭넓게 이해할 수 있는 기촐르 제공해 주고 있다고 보인다.
우리 민족이라는 범주에서 현 시대가 요구하는 의미의 확장이 필연적으로 대두될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한반도를 중심으로 재일 조선인, 중국동포, 20만 명이 넘는 해외 입양아에 외국으로 이민을 간 사람들과 그 자손들. 여기에 결혼을 통해 한국으로 들어온 외국인들과 그 후손에 이르기까지 이미 민족과 우리라는 범주에는 그 의미가 확장될 수박에 없는 요소들이 넘쳐난다.
이런 현실이 저자 서경석의 관심이 자연스럽게 ‘디아스포라’에 주목된 것으로 보여 진다. 그 관심사를 미술을 통해 밝히며 의미의 확장을 시도해가고 있다. 우리가 애써 인정하기 싫거나 머뭇거리는 사이 현실이 된 문제에 대해 직시할 기회를 제공해 준다는 점에서 그 의미는 크다고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