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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보라 구슬
김휘 지음 / 작가정신 / 2014년 7월
평점 :
욕망의 포로에서 탈출하기
현실은 불편하다. 7.30선거 결과를 보면서 드는 생각이다. 권력으로부터 얼마나 더 당해야 현실을 직시할 수 있을까? 무참히 밟히면서도 자신의 목숨이 경각에 달려있다는 알지 못하며 혹은 알고 있더라도 현실의 욕망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것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현실의 욕망과 사회적 정의는 이렇게 늘 이율배반적인 것일까?
그렇다면 인간이 가지는 욕망이라는 감정은 어떤 모습으로 나타나는 것일까? 사회적 관계를 형성하며 그 관계로부터 한 순간도 벗어날 수 없는 사람들의 욕망이라는 감정은 그 관계 속에서 형성되고 규정된다. 그렇다보니 자신이 원하는 경우보다는 이런 사회적 관계에서 일어나는 영향의 그늘에 숨어드는 것이 자연스러운 결정이라고도 볼 수 있다. 자신을 둘러싼 사회적 관계가 어떻게 개인의 일상 속으로 파고드는 것인지를 주목하는 작가의 이야기에 주목해 본다.
언제나 그렇듯 문학작품을 대할 때면 오독하게 된다. 보고자 하는 것을 우선으로 첫장에서 마지막 장까지 읽어가는 도중 어느 곳에서라도 마음을 울리는 글을 만나는 순간부터 그것에 주목하여 작품을 대하기에 오독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김휘의 눈보라 구슬에서도 나만의 오독의 키워드는 욕망이다.
‘눈보라 구슬’의 작가 김휘는 “인간을 숙주 삼아 자라는 수만 개의 욕망이 웃고 있는 세상을 본다.”라고 말하고 있다. “인간을 숙주삼아 자라는 수만 개의 욕망”은 결국 사회적 관계 속에서 형성된 욕망의 다른 이름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자신이 살아가는 시대의 정의와 개인이 추구하는 욕망 사이에 충돌이 일어날 경우 대부분의 사람들이 선택하는 욕망이라는 이름 속에 숨겨진 그 무엇으로 세상을 이뤄지고 있는 것은 아닐까?
김휘의 소설집‘눈보라 구슬’에는 ‘목격자, 아르고스의 눈, 괴담 라디오, 아트숍, 감염, 나의 플라모델, 동물소통중개소’등 일곱 개의 단편소설이 담겨있다. 일곱 편의 단편소설의 주요한 테마는 저자가 머리말에서 언급하듯이 ‘욕망’에 있다고 보인다. 이 욕망이 개인적 차원에서 발로되는 것과 사회적 관계에서 그 관계로부터 규정되어지는 과정이 묘사되어 있다. 저자가 주목하는 “인간을 숙주 삼아 자라는 욕망”을 실재와 환상, 악몽 등을 넘나들며 그려가고 있어 혼란스러운 경우도 있지만 이 역시 욕망을 불러일으키는 일상과도 맥을 같이한다고 보인다.
“미스터리하고 해석 불가능한 사건들로 가득”찬 일상에서 개개인들이 삶을 영위하는 과정에서 반드시 만나게 되는 욕망의 발현은 ‘우리가 알고 있는 것과 우리가 믿고 있는 것들이 진짜가 아닐지도 모른다’는 의문과 결합되면서 독자들을 혼란스럽게 만든다. 이 혼란스러움이 어쩌면 ‘욕망’에 굴복하는 우리의 현주소가 아닐까 싶다.
독자의 한사람으로 주목하는 작품은‘아르고스의 눈’이다. 박제된 공작의 꼬리에 달린 여러 개의 ‘눈’을 본 뒤, 괴물의 ‘눈’이 언제 어디서나 자신을 지켜보고 있다는 망상장애에 시달리는 주인공이 등장한다. 온갖 종류의 감시카메라에 노출되어 있는 현시대 우리들의 자화상은 아닐까?
‘그래서, 그게 나와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상관이 없다고 생각하는 것, 그것이 바로 죄가 아닌가!’
사회적 파장을 몰고 온 사건일지라도 자신의 일상에 직접적인 영향이 없다고 느낄 때, 개인의 욕망은 적극적으로 작동한다. 선거와 같은 개개인의 선택이 직접적으로 나타나지 않은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하여, ‘자신이 다른 누군가의 삶에 관여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지 못한다면, 또한 자신의 의지와는 달리 거대한 폭력의 메커니즘에 연루되어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지 못한다면, 악(惡)은 계속해서 힘이 세질 것이다.’폭력적인 사태를 방관하고 “고개를 돌리거나 눈을 질끈 감는” 대신 “피투성이 광경”을 마주하며 진실에 가까이 다가가라고 충고한다. 작가의 충고를 심사숙고 해야할 우리의 현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