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세자가 꿈꾼 나라 - 250년 만에 쓰는 사도세자의 묘지명, 개정판
이덕일 지음 / 역사의아침(위즈덤하우스)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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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를 보는 시각이 중요한 이유
조선왕조 500년 있을 수도 있어서도 안 되는 일이 벌어졌다. 다음 왕위를 이를 왕세자가 아버지인 왕에 의해 죽임을 당한 일이다. 그것도 한 여름날 여드레 동안 뒤주에 갇혀 있다가 죽임을 당한 일이다. 그 여드레 동안 누구하나 왕세자를 살려야 한다는 그 어떤 목소리 하나도 들을 수 없었다. 심지어 왕세자비조차 침묵하고 말았다. 그 많은 신하들은 어디로 갔으며 왜? 어떻게 해서 왕조국가의 다음 왕으로 내정된 사람에게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이덕일의 ‘사도세자가 꿈꾼 나라’는 이 물음에서 시작한다고 봐도 될 것이다. 2007년 한국 역사학계의 파란을 몰고 온 ‘사도세자의 고백’의 개정판이다. 십여 년이 넘는 동안 대리청정을 했던 왕세자인 사도제자가 아버지 영조에 의해 뒤주에서 죽임을 당한 사건에 대해 그 일이 일어난 전후 사정을 각종 사료를 찾아내 밝히고 세자비였던 혜경궁 홍씨의 ‘한중록’에 나타난 오류를 지적하며 그 일에 대해 새로운 역사적 시각을 갖게 한 책이다.  

이 책이 한국 역사학계에 미친 영향은 실로 거대했다. 다양한 의견이 제기되었으며 그런 의견 중에서는 서울대 국문학과 정병설교수의 의견이 대표적인 것이다. 이덕일의 사도세자의 죽음에 대한 해석이 잘못된 것이며 이에 대한 근거로 제시하는 한중록의 시각이 정당하다고 역설한 것이다. 이를 둘러싸고 벌어진 논쟁은 단지, 책 한권의 오류를 지적하는 수준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역사학계에 팽배해 있는 학문의 권위적인 모습과 조선시대 일제침략기 그리고 해방정국을 이어온 사관에 대한 문제까지 얽힌 복잡한 문제이며 ‘사도세자의 고백’과 ‘한중록’의 차이만큼 좁힐 수 없는 벽을 실감하게 만들었다. 

저자 이덕일은 ‘사도세자의 고백’ 개정판인 ‘사도세자가 꿈꾼나라’를 새롭게 펴낸 의도 역시 그와 무관하지 않음을 개정판 서문에 확실하게 밝히고 있다. ‘사도세자의 고백’에 대한 문제제기는 학문의 권위를 이용한 강압적 태도이며 그러한 태도는 우리 역사학계의 발목을 잡고 있는 노론사관에서 출발하고 있으며 이것에 의해 오늘날 식민사관이 존재하고 그 지위를 l용하여 폭력적인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다.  

역사를 전공한 것도 아닌 일반 독자들의 입장에서 어떤 입장이 옳고 그른지에 대한 판단은 어려운 일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두 주장의 근거나 자기의 주장을 전재하는 논리를 펴가는 과정을 살펴 어떤 입장을 취할 것인가에 대한 의견은 충분히 가능할 것이다. 이는 역사를 보는 근본적 시각에서 출발하여 보아도 되는 문제이다. 역사는 ‘누가 무엇을 어떻게 보는가’에 따라 근본적으로 다른 해석할 수 있기에 시각자체가 중요한 것이며 역사를 보는 이유는 ‘현재를 올바로 판단하여 미래를 희망으로 만들기 위해’서 보는 것이기에 과거의 일이지만 결코 현재와 구분되는 것이 아님을 전재로 시작한다고 봐야 할 것이다. 이 논쟁이 바로 그러한 사실을 입증해 주고 있다. 이덕일과 정병설 그리고 이주한의 안대회 등 사이에서 벌어지는 일련의 논쟁이 그저 흥미로운 일로 그쳐서는 안 되는 이유가 그것이다. 

앞에서 제기한 의문인 왕조국가에서 왕세자가 죽음을 맞이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찾아가는 이덕일의 체계적인 논리는 충분한 근거를 제시하고 있다. 특히, ‘한중록’의 기록과 대조하며 한중록의 오류를 조선왕조의 공식적인 기록인 ‘조선왕조실록’에 근거해 앞뒤 맥락을 살펴 사도세자와 정치적 대립을 했던 당시 노론을 중심으로 한 당파적 이해관계 그리고 왕조국가에서 왕의 권력을 능가한 신권의 상황 등을 면밀하게 살피고 있어 대중적인 관심을 넘어 역사적으로도 충분한 의미를 가지는 역사서로 보인다. 효종이후 정조까지 조선의 역사의 맥락을 이해하는데도 중요한 텍스트로 읽힌다. 

사도세자의 죽음에 얽힌 당시의 정치적 상황과 역사적 맥락을 통해 살피고 서로 다른 주장을 하는 의견에 대해 무엇이 올바른 역사적 시각으로 보고 있는지를 확인해야 할 것이다. ‘사도세자의 죽음’과 관련된 일련의 논쟁이 중요한 이유는 왕세자 한 명의 죽음의 진실을 아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역사를 보는 올바른 시각과 현재 한국 사회의 발목을 잡고 있는 식민사관에서 벗어나는 일이 아닌가 한다. 이덕일의 역사적 시각이 주목받는 이유가 바로 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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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공부
신영복.백낙청.조국 외 19인 지음, 하승창 엮음 / 상상너머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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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우리가 살아갈 공부를 하자
누구나 자신이 살아가는 시대와 떨어져서 살아갈 수는 없다. 이는 단순히 자신이 일상을 살아가는 동안 영향을 주고받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일상이 때론 자신을 포함한 타인에게 결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까지를 포함한다. 현대의 사람들의 삶을 개별화, 개인주의 등으로 이야기하지만 이는 사람들의 모습을 한 측면만 바라보고 전면화 시키는 오류를 범하게 된다. 알게 모르게 행하는 자신의 말과 행동이 자신이 살아가는 시대의 산물이며 부인하고 싶어도 부인할 수 없는 사회적 관계 속에서 살아가는 것이 사람들의 삶의 본질일 것이다.  

이로부터 자신이 살아가는 시대와 떨어진 삶을 상상할 수도 없다는 것에 이르게 되는 것이리라. 그렇다면 오늘의 자신을 있게 한 근본이 직, 간접적으로 영향을 주고받는 이 사회이며 공동체를 구성하는 이웃임을 자각하고 사는 삶과 그렇지 못한 삶의 차이는 무엇일까? 무슨 거창한 뜻을 세워야 한다고 주장하는 말이 아니다. 나를 포함한 이 공동체를 구성하는 타인을 나와 같이 바라보는 것부터 나라와 민족의 운명에 영향을 미칠 결정적인 행위까지 이 모든 범주에 들어가는 것이 나의 삶이며 우리들의 삶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삶은 나와는 거리가 있는 특정한 사람들만이 하는 일로 생각하게 된 이유는 어디에서 연유한 것일까? 이 역시 우리가 살아왔던 시대의 상황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내가 나서면 피해는 고스란히 내가 받을 수밖에 없다’, ‘굳이 내가 하지 않아도 할 사람은 얼마든지 있을 것이다’ 등의 소극적인 개인주의나 피해의식이 생기게 된 역사, 사회적 배경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살아가는 현 시대는 한 개인의 삶이 개인에 국한된 삶이 아나라는 점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사건들이 연이어 일어나고 있다. 눈을 감고 살아간다면 모르겠지만 하루에도 수없이 많은 일들을 접하다보니 오히려 무감각해지는 지경에 이르게 되었다. 어쩌면 의도적으로 이러한 사태를 만들어가는 것이 아닌가 싶을 때도 있다. 그렇더라도 이러한 사건들을 대하는 사람들의 모습에서는 미래를 희망으로 끌어안고자 하는 뜨거운 몸짓이 보인다. 이것이 우리의 사회를 지탱하는 근본 힘이 아닐까. 여기에 우리시대 우리에게 절실하게 필요한 공통의 과제가 등장하는 이유가 될 것이다. 

바로 이러한 필요성에 의해 우리시대 대표적인 지식인과 깨어있는 사람들에 의해 지금 우리들에게 필요한 공부가 무엇일까라는 물음에 구체적 답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모아진 이야기를 담은 책이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공부’라는 결과물로 나왔다. 신영복, 백낙청, 박웅현, 조국, 오연호, 김여진 등 15인과 나눈 대화를 기반으로 오늘 한국 사회가 풀어가야 할 과제에 대한 모색을 하고 있다. 

국민들로부터 위임받은 권력의 모습이 그 권력을 위임한 국민들의 삶을 피폐하게 만들어가는 현실에서 권력을 위임해준 국민들이 무엇을 할 수 있고 또 해야 하는가에 대한 깊은 성찰을 요구한다. 또한 변화된 현대사회 각 부분에서 요구되는 시대적 요청 또한 귀 기울이게 하고 있다. 여기에는 학문적 담론, 정치적 견해를 비롯해 사람과 사람 사이의 밀접한 끈이 이어지는 근본에 대한 성찰과 배우 김여진이 행복한 삶을 살기 위한 일상의 모습에서 찾을 수 있는 사람들의 희망까지 다 담겨 있다. 이들이 보여준 이 시대의 화두는 변화, 공존, 정의, 행복이다. 이 화두를 들고 가야할 사람들은 국민의 권력을 위임 받은 권력을 가진 사람들에게서 기대하는 것은 이제 물 건너간 일이 되었기에 이제 그 권력을 위임한 국민들이 구체적으로 해결해야 할 일로 받아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공부란 깨달음이며 자기변화로 이어져야 한다’는 신영복의 이야기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할 것이다. 공부가 책장이나 학교 또는 전문가들의 전유물이 아닌 일상을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의 일로 받아들여진다면 일상의 작은 변화가 큰 물결로 이어져 사회적 변화를 가져올 출발점이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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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영만 맛있게 잘 쉬었습니다 - 일본의 숨겨진 맛과 온천 그리고 사람 이야기
허영만.이호준 지음 / 가디언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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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리만족으로 충분할까?
여행을 다녀온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양한 경로로 접하게 된다. 요즘은 흔히 외국여행을 다니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대부분이고 그것도 가까운 지인의 이야기보다는 책을 통해 듣고 보는 경우가 그것이다. 여행은 어떻게 보면 지극히 개인적인 활동이기에 여행후기에서 기대하는 것은 그 사람의 개인적 취향과도 맥을 같이 한다고 봐도 지나친 말이 아닐 것이다. 그런 의미로 본다면 다양한 여행후기들이 의미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흔하게 접하게 되는 여행기들을 만나면서 그들의 여행기를 대부분 공감하는 것은 아니다. 혼자 쉬고 즐기는 것을 굳이 책을 통해 다른 사람과 소통을 원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하는 생각을 하게 만드는 여행기들도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공감할 만한 이야기가 빈약하기 때문이다. 자신의 여행을 다른 사람들에게 마치 자랑이라도 하고 싶어 책으로 발간한 것이 아닌가 싶은 이야기를 만나는 것은 좋은 느낌을 가질 수 없다. 지극히 개인적인 경험이라도 나와 다른 사람들에게 무엇인가 공감할 수 있는 요소가 있을 때 의미를 갖는 것이 아닐까? 

그런 상실감은 이미 사회적으로 지명도가 있는 사람의 이야기라면 더 할 것이다. 마치 자신의 개인적 경험을 강요하는 듯한 것은 쉽게 받아들이기 어렵다. 이런 시각을 기본으로 ‘허영만의 맛있게 잘 쉬었습니다’라는 책은 일단 온천과 먹을거리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라면 혹 할 만한 이유가 충분하다. 우리나라와 가까운 일본의 대표적인 관광 상품 중 하나인 온천여행과 먹을거리를 결합하여 소개하고 있다. 허영만과 먹을거리는 이미 허영만의 전작 ‘식객’이 많은 독자들로부터 공감을 얻었기에 그 후광을 입어 더 관심을 가게 만든다. 

만화가 허영만과 오랜 기간 동안 함께 작업한 이 책의 공동저자 이호준이 머리말에서 이야기하는 여행은 ‘얼마나 많은 곳을 돌아보고 왔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행복감을 느꼈느냐’에 달렸다는 말에 공감한다. 2년에 걸쳐 일본의 13개 지방 22현을 돌아보며 일행이 느끼고 담았던 ‘행복감’이 책을 읽어가는 동안 곳곳에서 만날 수 있어 그들의 여행이 어떠했을지 짐작이 가고도 남는다. 

아키타를 시작으로 홋카이도까지 일본의 13개 지방을 돌아본 여행기는 일정한 형식을 갖추고 있다. 이 책의 주제가 되고 있는 온천에 대한 소개와 먹을거리, 볼거리 그리고 그 안에 담아내지 못한 이야기를 구석구석 살펴보기와 그 지방 여행을 마치며 여행후기와 같은 또 다른 이야기 순으로 엮었다. 여행지마다 친절한 안내를 담고 있는 관광 안내지도와는 다른 맛을 느끼게 하는 것은 이야기 속에 담겨진 그들의 솔직한 속내를 드러내고 있어서 일 것이다. 

온천이 발달한 일본의 독특한 목욕문화와 우리의 문화가 무엇이 어떻게 다른지를 그들이 현지에서 겪은 에피소드를 통해 이야기해 주는 것처럼 말이다. 또한 여행의 주요 목적 중 하나인 먹을거리에 대한 소개에서도 단지 그 음식의 맛에 대한 느낌을 전하는 것에 머물지 않고 각 지방에서 생산한 소재로만 음식을 만든다든지 이를 지역에서 활발하게 활용하여 지역특성으로 만들어가는 것을 통해 우리의 음식문화와 비교한다. 무엇이 옳은가는 독자들의 판단으로 넘기고 있지만 행간에서 보여주는 것은 이미 알 것 같다. 또한 다양한 사진자료와 만화가의 특색을 담은 그림은 상상을 넘어 현실감을 느끼게 만들어 내는 장치로도 적절하게 사용되었다. 

‘맛있는 휴식 여행’ 누구에게나 바라는 기회가 아닐까? 누군가 그렇게 잘 보네고온 여행에서 대리만족이라도 좋으니 공감할 수 있길 바라는 마음 또한 많은 사람들이 가지는 소망중 하나일 것이다. 하지만, ‘허영만의 맛있게 잘쉬었습니다’에서 그림의 떡이라는 느낌을 얻었다면 지금 당장 가까운 곳에 가 자심만이 누릴 수 있는 행복함을 찾아 가길 바란다. 그 역시 이 책에서 얻은 재미가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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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설일 것 없네 당장 부처로 살게나 - 도법 스님의 화엄경 보현행원품 강의
도법 스님 지음 / 불광출판사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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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깨비 방망이를 휘두르자
수 십 년 절에 다니며 마음 다해 불공을 드리는 사람들을 본다. 지극한 나이에 세상을 살만큼 살았다고도 보여 지는 연륜이 있는 사람들이다. 그들이 절에 오는 대부분의 이유는 아마도 자신과 가족의 행복을 빌기 위해서라고 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오로지 현실적 어려움과 곤란을 겪지 않고 편안하고 무사하게 일생을 마칠 수 있길 바라는 마음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들의 모습에서 불교의 가르침을 찾기란 쉽지 않음도 사실이다. 종교를 떠나 연륜이 그만큼 있으면 너그러워 질만 한데도 불구하고 조그마한 것에 연연하여 얼굴을 마음 상한 모습을 보여준다. 왜 그럴까? 

한국불교가 개인의 안녕만을 비는 기복 불교에 머물고 있는 것이 바로 그 이유가 아닐까? 한국불교의 대다수 신도는 여성분이다. 그것도 할머니로 본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닐 것이다. 그들이 수 십 년 동안 그렇게 해 온 것이 모두 잘못되었다고 보기도 어려운 현실이 아닌가도 싶다. 이는 불교의 교리를 전하며 부처님을 찾는 사람들에게 그 길을 안내하는 스님들도 그 책임을 나눠져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서이다. 깨달음의 길에 나선 스님이 자신의 구도의 길에 대중이 어떤 존재인지를 명확하게 인식하고 그 길을 함께 가고자 했다면 위에서 언급한 상황은 이렇게까지 보편화되지는 않았으리라.  

사찰이 변하고 있음을 느낀다. 바로 부처님 곁으로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진정 불교에서 행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게 하는 다양한 활동이 눈에 띄기 때문이다. 시대가 변하고 사람이 변했으니 부처님을 찾는 사람들에게 대하는 불교의 모습도 변해야 하는 것처럼 이러한 움직임은 불교 테두리 안에서 뿐 아니라 보다 넓은 의미에서 중요한 변화로 생각된다. 바로 사회적 문제를 외면하지 않고 어지럽고 혼란스러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과 같이 걸어가고자 하는 모습은 참으로 보기에도 좋다. 

그러한 변화된 불교의 모습을 구체적으로 느낄 수 있는 것은 비록 몇몇 스님들의 모습을 통해서이지만 그들이 걷는 발걸음은 변화를 이끌어가는 귀중한 자원이 될 것이기에 희망을 가져보는 것이다. 그 선두에선 스님이 도법스님이다. 도법 스님은 실상사에서 주석하며 ‘인드라망 생명공동체’를 이끌어가고 있으며 구체적인 일상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과 같은 걸음을 걷고자 하는 모습이 반가운 스님이다. 그 도법스님이 실상사에서 법회를 열고 1년여에 걸쳐 진행했던 법문을 모아 책을 발간했다. 바로 ‘망설일 것 없네 당장 부처로 살게나’이 그 책이다. 

불교의 대표적인 경전인 ‘화엄경’의 ‘보현행원품’을 주제로 현대인들에게 적절한 법문을 펼친 것이다. 화엄경은 ‘대방광불화엄경’이라는 경전을 줄여 말하는 것으로 부처님이 설한 경전이라기보다는 무수한 보살과 천신들이 부처님에 대해 설한 경전이라고 한다. ‘법과 인간의 삶’을 이야기 하고 있다. 간략한 내용으로는 선재동자가 지혜를 상징하는 문수보살에게 보리심을 발하여 직업과 신분에 구애받지 않고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 도를 구하는데 마지막으로 보현보살에게서 들었던 법문을 ‘보현행원품’이라고 한다.  

도법스님은 보현보살의 십대행원을 가지고 그것이 불교에서 어떤 의미가 있으며 이를 현실의 삶을 살아가는 자신의 삶에 구체적으로 어떻게 실천해 갈 것인지에 대해 말하고 있다. 경전의 구절이 갖는 본래적인 의미가 무엇인지를 정확하게 알게 하며 이 의미가 자신의 일상과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를 현대인의 일상과 결부하여 설명하고 있다. 

실상사 법당에서 행한 법문을 그대로 옮겨놓은 글이기에 마치 현장에서 법문을 듣고 있는 듯 실감나게 대할 수 있는 것이 장점이기도 하다. 하지만, 무엇보다 크게 다가오는 것은 어렵게만 느껴질 수 있는 경전을 변한 시대 상황에 맞게 적절한 예와 언어를 사용하여 설명하고 있으며 자신의 일상에서 구체적인 실천으로 이어지게 해설하고 있다는 점이라 생각된다. 이것은 그동안 불교의 본래 모습을 잃고 복이나 비는 모습으로 여겨졌던 현실을 깨부수는 일로 받아들여지기에 의미가 크다고 생각되는 것이다. 

남은 나와 다르지 않고 똑같이 소중한 존재이기에 나를 대하듯 남을 대한다면 현대사회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문제점을 바로 해결해 가는 실천적 지침이 될 것이다. 이것이 도법스님이 경전을 해설하는 이유가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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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감록 - 신역 홍신한문신서 42
이민수 엮음 / 홍신문화사 / 198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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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세상을 꿈꾼다는 것
사람들은 현실에서 느끼는 어려움을 피하고 싶어 한다. 그렇다고 특별한 대책이 있는 것도 아니다. 무엇하나 희망을 찾을 수 없을 때 사람들은 이상적인 세상에 대한 꿈이 현실에서 나타나 주길 바라는 마음이 강해지는 것이 바로 이러한 것이 아닌가 싶다. 역사 속에서 우리는 그러한 사람들의 모습을 비교적 쉽게 찾을 수 있다. ‘이상향’이나 ‘무릉도원’ 또는 화가 미치지 않을 것이라고 하는 ‘십승지지’의 땅을 찾는 것이 그러한 사람들의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리라. 

이렇게 현실에서 겪는 혼란과 어려움을 피하고자 하는 모습은 사람들이 살아가는 시대의 환경과 조건에 따라 차이가 나지만 유사한 흐름을 형성하는 것이 아닐까? ‘이상향’, ‘십승지지’ 또는 조상에 대한 막연한 기대감으로 ‘명당’을 찾고 이에 몰두한다. 한편으로는 이러한 현상이 집단화되는 모습도 보여준다. 각종 민란이나 종교의 형태를 띤 것들이 그것이다. 모두 현실은 어렵지만 미래는 조금 더 나은 삶을 살기 위한 소망의 다른 표현들이다. 

우리나라에서 사람들의 이러한 마음을 가장 잘 표현하는 것으로 신년운세를 보는 것이나 풍수지리와 관련된 생각이 아닌가 싶다. ‘정감록’, ‘토정비결’과 같은 책이 주목받는 것이 그 반증일 것이다. 이러한 책들이 갖는 공통점은 보통의 사람들은 알지 못하는 비밀스러운 어떤 것을 담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사람들의 마음과 교묘하게 결합되어 현실의 삶에 작용한다.  

정감록으로 대표되는 이러한 비기들은 수많은 종류가 있다. 정감록만 해도 그 속에는 ‘감결’부터 ‘동국역대기수본궁음양결’, ‘역대왕도본궁수’, ‘도선비결’, ‘토정가장결’ 등 다양한 비기들이 포함된다. 속칭 정감록은 원본도 알 수 없고 저자 또한 누구인지 밝혀지지 않은 책으로 사람들의 관심 속에 다양한 이본이 생겼고 그 종류만 해도 40~50여 종에 이른다고 한다. 홍신문화사 발행 정감록은 규장각 본을 기본으로 하여 다수의 이본 중에서 20여 편의 비기를 추려내 엮은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그만큼 다양한 비기들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정감록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조선 이후의 흥망대세를 예언하여 이씨의 한양 도읍 몇백 년 다음에는 정씨의 계룡산 도읍 몇백 년이 있고, 다음은 조씨의 가야산 도읍 몇백 년, 또 그 다음은 범씨의 완산 몇백 년’을 기록한 ‘감결’의 내용이 아닐까 싶다. 

그렇다면 정감록을 비롯한 이러한 비기는 어떻게 생겨났으며 또 후세에 전해지는 까닭은 무엇일까? 앞에서 언급했듯이 대부분의 비기는 사회적 혼란이나 현실에서 느끼는 어려움을 피하고자 하는 마음과 이러한 사회에서 정치권력을 가진 사람들에 의해 의도적으로 활용하는 적극적으로 정책으로 기인한다. 자신이 누리는 권력의 정당성을 얻거나 현실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사람들의 마음이 합쳐져서 이러한 비밀스러운 기록들을 유포, 재생산하여 후세에까지 전해지는 것이라는 점이다. 

홍신문화사 발행 본 정감록을 읽어가는 도중에 혼란스러운 마음이 들었다. 이것이 무엇을 말하는지 도무지 알 수 없는 것들로 가득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점은 예언서나 비기 등에 익숙하지 않은 점도 있지만 한자를 직역하여 앞 뒤 맥락과 단어의 뜻을 알 수 없는 애매함도 한몫하고 있다고 보여 진다. 현대 사람들에게 친숙한 현대어로 번역된다면 정감록 등에 담긴 내용이라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되 아쉬움이 남는다. 하지만, 이러한 비기 등에 자신의 마음을 의탁한 사람들의 마음에 안쓰러움이 있다. 현실이 그리고 현실정치가 사람들의 삶에 보다 긍정적인 모습으로 다가온다면 이러한 비기에 의존하지 않아도 될 세상을 꿈꿔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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