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만히 나를 말린다
며칠동안 볕을 볼 수 없었다고 타박했더니 가을 그 마지막 날 그것도 늦은 오후의 볕이 참으로 좋다. 사철나무 열매가 속내를 드러내는 양달을 서성인다. 아직 산을 넘지 않은 볕의 기운을 가만히 품어보기 위함이다.
"가을볕이 너무 좋아
가만히 나를 말린다
내 슬픔을
상처난 내 욕망을
투명하게 드러나는
살아온 날들을"
*박노해의 시 '가을볕'의 일부다. 애써서 가을과 이별하기에 좋은 날이라 위안 삼으며 속으로만 중얼거린다. 겨울을 맞이하는 의식을 치루듯이ᆢ.
볕과 볕이 만나면 밝아지는 것이 순리다. 그 볕에 의지하여 사는 뭇 생명들은 그 만남으로 인해 두터워지고 깊어지는 진한 온기로 일상을 가꾸어 간다. 삶에 사람의 인연으로 겹이져야하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겨울이 춥지 않을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