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꽃이 피었다. 말복이 지나면 올라온다던 벼이삭에 올해도 어김없이 꽃이 핀 것이다. 벼꽃을 부르는 말로 도화稻花, 인秵, 자마구라고도 한다지만 '벼꽃'이 주는 어감만큼 정다운 것이 없는듯 싶다.


벼꽃 피면 푸르기만하던 들판이 조금씩 색의 변화를 가져오는 때다. 벼이삭이 여물어 고개를 숙일때쯤 벼잎도 누렇게 말라 황금들판으로 풍성한 가을의 진면목을 보여 줄 것이다.


벼꽃


지은 죄 없으면서
잎 뒤에 숨어
눈곱처럼 초라하게 피어나
하늘 점점 높아지고 바람 살랑대면
서로 꽃술 비비다 지는 꽃


세상에서 제일 귀한 꽃
떨어진 자리
만백성 먹여 살릴 벼이삭 달리더니
흙냄새 땀 냄새 이슬로 씻고
여물어 갈 때
온 들판 가득 퍼지는
천 년을 맡아도 물리지 않을 구수한 냄새
아하, 이제야 알겠네
벼꽃은 숭늉냄새를 남겨놓고
떨어지는 것을


*정낙추 시인의 시 '벼꽃' 전문이다. '세상에서 제일 귀한 꽃'이라는 문장에 공감할 사람들이 몇이나 될까마는 그러건말건 '숭늉냄새' 품고 벼꽃은 피었다.


배꼽 아래 쯤 벼꽃 피었으니 이제 무논 논두렁 풀섭에 필 여리디여린 벗풀, 수염가래, 물달개비를 보기위해 논둑 서성이며 몇번이고 허리를 숙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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