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나들이'
볕 좋은날 느긋한 주말을 봄마중 나갔다. 궁금한 몇가지 꽃들의 만나기 위해 비워둔 시간이라 급할 것도 없이 나선 길이다. 몇해전 떠나온 도심의 봄은 만개한 매화가 주인이다. 제 철을 맞을 매화보다 이제 시작되는 나무와 풀의 몸풀이가 더 궁금하다.
조그마한 수목원 입구엔 삼지닥이 수줍은 미소로 반기고 툭툭 터지듯 산수유도 같이 노랗게 피어난다. 가장 먼저 꽃소식을 전했던 납매는 여전히 건재하고 그 옆지기 풍년화도 만발했다. 꿈틀대는 운용매를 뒤로하고 다소 먼 길을 재촉한다.
볕좋아 나들이 하는 사람도 많다. 꽃무릇으로 유명한 불갑사를 지나 저수지 안쪽으로 들어서며 조심스런 발걸음에 눈동자만 바쁘다. 산자고 새순이 올라오고 현호색도 반긴다. 이곳까지 발걸음을 하게만든 변산바람꽃 앞엔 꽃보다 사람들이 더 많다. 쓸고 닦고 치우고 말끔해진 자리에 돗자리까지 펼치고 대포를 쏘느라 정신없는 사람들 틈에 겨우 눈맞춤 한다. 싹나고 꽃봉우리 맺고 활짝핀 다양한 모습을 한자리에서 볼 수 있어 그것으로 위안 삼는다. 자리를 옮겨 연약한 노루귀의 하늘거리는 털과 순수한 얼굴을 보고자 산길을 걷는데 여기도 어김없이 흔적을 남겼다. 제법 그럴싸한 모델들은 치우고 보테며 다 꾸며놓은 것이다. 사람 흔적없는 건너편으로 옮겨 낙엽 속 빼꼼히 얼굴 내미는 수줍은 미소와 만났다.
잘 찍은 사진 속 야생화는 분명하게 좋아 보인다. 그러나 조금만 신경써서 식물을 지켜본 사람이라면 금방 알 수 있다. 인위적으로 꾸민 사진인지 아닌지 말이다. 잘 찍힌 사진 속 야생화보다 우선되는 것은 야생화들의 삶이다. 다시 보고 싶으면 그 터전을 보호해야 한다. 꽃들에게 미안한 마음으로 돌아오는 발걸음이 무겁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