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하일기, 웃음과 역설의 유쾌한 시공간 - 개정신판
고미숙 지음 / 북드라망 / 2013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웃음과 역설로 읽는 열하일기

조선 후기를 온 몸으로 살았던 박지원(朴趾源, 1737 ~ 1805)’은 실학자로 문장가로 알려져 있지만 그보다는 열하일기의 저자로 더 유명하다. 그 열하일기는 유명세만큼 많은 사람들에게 익숙하지는 않은 현실이다. 열하일기가 워낙 방대한 분량이고 부분적인 작품만 번역된 상태로 오랫동안 있었기에 완역된 열하일기를 접할 수 있는 것은 그리 오래되지 못했던 점도 있다.

 

나에게도 열하일기는 그렇게 더디 다가왔다. 보리출판사에서 발간한 열하일기 상, , 하 세 권을 손에 넣고 낮과 밤을 벗 삼아 한동안 꾸준히 읽었다. 이미 유명해서 익숙한 이야기들을 접할 때는 반가운 마음이 앞서 읽기에 편했지만 그 외, 다른 작품을 읽어나가는 것은 그리 만만치 않았다고 고백할 수밖에 없다. 이 점이 열하일기를 쉽게 많은 사람들이 접하기 어려운 이유에 한 몫 하는 것은 아닐까 한다.

 

고전평론가 고미숙은 박지원의 열하일기를 보다 많은 사람들이 접할 수 있길 바라는 마음으로 독특한 시각으로 바라보고 있다. 그가 열하일기를 바라보는 중심 키워드웃음과 역설이다. 실학자, 문장가로 익숙한 박지원에 대한 시각이 의외라는 생각이다. 하지만 고미숙의 열하일기 읽기를 따라가다 보면 왜 웃음과 역설이 박지원을 바라보는 중심 키워드가 될 수밖에 없는 것인지를 확인할 수 있다.

 

조선 후기는 문명이 전환되는 시기였다. 사회를 지배하던 이데올로기가 새롭게 대두되는 사상과 과학문명에 의해 점차 변화를 겪는 시기에서 이를 어떻게 바라보고 수용할 것인가가 중심이 될 수밖에 없다. 고미숙은 박지원의 삶이 녹아 있는 열하일기를 통해 시대를 맞서왔던 박지원의 중심 키워드를 웃음과 역설로 파악할 수밖에 없는 근거를 찾아 분석하고 있다. 고전평론가라는 직업적 시각이 아니라 열하일기를 좋아하는 사람으로 열하일기가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읽힐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이 책의 집필을 기획했다는 말이 공감가는 대목이다.

 

우울증을 고치기 위해 저잣거리로 나서는 연암, 지배적 코드로부터 스스로 탈주하는 연암, 신분과 나이 고하를 따지지 않고 뜻이 맞으면 밤새도록 술을 마시고 이야기를 나누는 연암, 똥거름과 기왓장에서 문명을 꿰뚫는 연암과 그러한 연암의 모든 것이 집약되어 있는 열하일기’”

 

고미숙은 박지원을 당대의 천재이자 대문호였으나 현대인에게는 아득하기만 했던 연암 박지원을 웃음과 우정, 노마드의 달인으로 새롭게 조명했다. 열하일기 속 곳곳에서 펼쳐지고 있는 에피소드를 찾아 내 고미숙 만의 독특한 언어로 해설해간다. 깊은 애정이 없으면 불가능한 그의 시각은 묻혀 있는 보석이 보석임을 온 천하에 다시금 드러내 놓는 일이다. 하여. 그의 열하일기에 대한 애정이 박지원이라는 한사람에 멈추는 것이 아닌 조선 후기를 새롭게 바라볼 수 있는 기회가 된다. 또한 열하일기를 통해 조선 후기와 우리가 사는 지금-오늘을 이어주는 가교로도 적극 활용한다.

 

열하일기, 웃음과 역설의 유쾌한 시공간이 발간된 것은 2003년이다. 발간 후 10년이 지난 시점에서 개정증보판을 발간하며 그 사이에 변화된 현실을 보충했다. 특히, 저자 고미숙의 관심은 연암 박지원에서 더욱 확장되어 다산 정약용과 비교 분석으로 이어진고 있다. 이 책에서 보론으로 다루고 있는 연암과 다산 중세 외부를 사유하는 두 가지 경로에서 확인할 수 있다. 저자의 다른 저서 두 개의 별, 두 개의 지도에서 상세히 언급하는 두 거장의 이야기를 핵심적인 사항을 중심으로 만날 수 있는 기회가 된다.

 

길은 존재하지 않았다. 내가 걸어가니 길이 되었다.” 연암이 걸어간 열하와 저자 고민숙이 걸었던 그 길이 같을 수 없다. 길은 걸어가는 사람에 의해 만들어진다. 누구 어떻게 가느냐에 따라 길이 보여주는 모습은 달라진다. 박지원이열하일기로 보여주었던 길이 우리가 걸어갈 길에 대한 이정표로 작용할 수 있다면 새롭게 주목받는 박지원과 열하일기는 그 길에 웃음과 해학으로 벗하여 줄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