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련사 동백숲길에서

누이야. 내 죄 깊은 생각으로
내 딛는 발자국마다엔
동백꽃 모감모감 통째로 지는가
검푸르게 얼어붙은 동백잎은
시방 날 쇠리쇠리 후리는구나
누이야. 앞바다는 해종일
해조음으로 울어대고
그러나 마음 속 서러운 것을
지상의 어떤 꽃부리와도
결코 바꾸지 않겠다는 너인가
그리하여 동박새는
동박새 소리로 울어대고
그러나 어리석게도 애진 마음을
바람으로든 은물결로든
그예 씻어 보겠다는 나인가

*고재종의 '백련사 동백숲길에서'다. 구강포 바다가 보이는 곳, 동백숲에 들었다. 동백나무를 쓰다듬고 내린 지난 눈이 숲길을 밝힌다. 막 피어나는 동백의 단내가 꽃보다 먼저 반긴다. 꽃 터널을 걷기에는 시간이 더 필요한가 보다.

애써 찾아온 이를 반기듯 동백의 속내는 여전히 붉다. 동박새 울음으로도 다독일 수 없는 마음을 떨어진 동백 붉은 꽃잎에 덜어두고 일상으로 돌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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