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와 벌 2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85
표도르 도스토예프스키 지음, 김연경 옮김 / 민음사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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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본질에 대한 찬란한 대서사시.
1편을 읽으면서 긴가민가했던 대목이 있었는데, 라스콜니코프가 본인의 영웅이 될 자질을 따져보고자 살인을 저지르기 이전, 과연 그는 본질적으로 선한 부분을 갖고 있었는가에 대해 궁금했고 의구심이 일었다.
물론 결말에서 소냐의 끝없는 숭고한 희생과 사랑으로 그가 마침내 새로운 이야기를 맞을 것임을 암시하지만, 그 전까지는 그는 ‘이‘를 죽인 것에 그 일말의 죄책감도 없었다. 오히려 탄로가 나게끔 행동했던 그의 옹졸함과 다급함을 자책했을 따름이다.
그의 본질은 인간을 넘어서서 운명이 그를 위대한 선도자로서 선택했을 것이라는 최고에 대한 갈망, 여기에서 비롯되는, 그럼으로써 본인은 죄 많은 이들을 엄벌할 수 있다는 특권의식이다. 더군다나 엄벌의 형태로 살인을 선택했다는 것은, 그가 죄를 저지르면 판결을 받고 감옥에 간다는 통상적인 사회시스템을 당연히 무시하고 본인을 위대한 존재로 인지하기 위한 도구로 썼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준다.
그래서 그가 과거에 선한 행동을 했음에도 끝까지 그의 선한 부분에 대해서 의심했었다.
하지만 그에 대한 맹목적인 사랑은 그의 죄를 걷어내버렸다. 그가 좁고 어둡고 본인의 정신력을 옥죄는 감옥 같은 방에서 버티다 결국 광기에 스스로를 내맡겼던 것처럼, 그의 선한 부분도 다른 무엇보다 뛰어난 것이 되고 싶다는 욕구의 방에 갇혀 있었을 것이다.
사실 소냐라는 캐릭터는 나에게 성녀의 이미지를 불러일으켰는데, 어떤 의미에서는 타락했지만 그 누구보다 순수한 여자가 순수를 아예 외면해버린 타락한 남자를 구원했기 때문이다.
아이러니가 잠재된 인물은 그 자체로 흥미를 불러일으키는데 나에게는 소냐가 그랬음에도 어쩐지 고착화된 성녀 이미지를 끝내는 벗어나지 못했다는 아쉬움이 더 크다. 일정 부분 김기덕 감독의 영화 피에타가 생각 나기도 했다.
스비드리가일로프는 굉장히 입체적인 인물이라고 느꼈는데 일단 그의 역겨운 삶을 차치하고서라도 결국엔 그가 두냐의 사랑을 얻는 것에 실패하자 그토록 본인만을 생각하는 이기심을 버리고 자살을 선택했기 때문이다. 사실 살면서 제일 마주치고 싶지 않은 뱀같은 인물이다. 하지만 또한 라스콜니코프와 닮았으면서 완전히 다른 인물인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상황과 인물의 적합한 배치, 어느 곳으로도 빠져나갈 수 없게 실로 단단히 묶어 놓은 듯한 플롯, 죄에 대해 말함으로써 결국 인간의 본질에 대해 탐구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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