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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리무중에 이르다
정영문 지음 / 문학동네 / 2017년 3월
평점 :
처음에 도서관에서 멋모르고 표지에 끌려서 정영문작가님의 소설집 「목신의 어떤 오후」를 대출하여 읽었을 때 솔직하게 이 책을 선택한 것을 너무 후회스러웠어요. 너무 읽기가 힘들기도 했지만 그리고 읽으면서 무슨 내용일까 알 것 같기도 하고 알 것 같지 않은 것 같기도 하고 정말 무슨 내용인지를 모를 것 같기도 하고 모르고 싶었던 것 같기도 했었습니다. 그 다음에 출간된 장편소설「바셀린 붓다」는 처음부터 읽는 순간부터 힘겨워서 구매하고도 읽어보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2011년 장편소설이자 샌프란시스코가 등장하는「어떤 작위의 세계」또한 힘겹게 읽었는 데 이 작품으로 2012년 동인문학상, 한무숙문학상등 굵직한 문학상을 차지하셨습니다. 그 이후로 소식이 아예 없으신 것은 아니었지만 「어떤 작위의 세계」이후 약 6년 6개월만에 소설집 「오리무중에 이르다」가 출간되어 읽게 되었습니다. 혹시나 했는 데 역시 정영문작가님의 특유의 문장들이 저를 어김없이 반겨주고 있습니다.
이 소설은 개의 귀를 접었다 펼쳤다하는 것을 좋아하여 잘 알지도 못하는 흰 티셔츠 속에 비친 검은 유두가 매력적인 여자의 애완견 몰티즈의 귀를 접었다 펼쳤다를 반복하는 남자(개의 귀)의 이야기인지 여자와 산책을 하던 도중 보기에도 사납게 생겼고 또 사나울 성격 같고 또 사납게 남자를 보면 미친듯이 짖어대던 포메라니안이 여자의 다리를 물어뜯고, 엉큼한 프랑스인들이 개의 똥을 치우지 않아 개의 똥을 밟아 넘어질 수모를 당할 뻔하였으며 오래 전에 멸종된 턴스핏에 대해 잘 알고 있으며 또 다른 멸종된 콜리와 비슷한 잉글리시워터스패니얼을 알게 해준 여자와 술을 마시다 관계를 가졌는 지 관계를 가지지 않았는 지 관계를 가지지 못했는 지 관계를 가지려고 했었는 지 어떠한 이유로 가지지 못했거나 가지지 않았거나 아무튼 알몸의 상태로 잠들다 유치원에서 찬송가를 부르는 사람들의 목소리에 깨어 발코니에 알몸인 채로 나가봤으며 분수에서 가장 못생긴 여자애와 그 보다 덜 못생긴 여자애한테 담배를 빼앗기다시피 줘버리고 분수에서 여자와 함께 산책나온 웰시코기가 분수에서 물을 마시고 똥을 싸놓고 갔거나 웰시코기는 똥을 싸지 않았고 못생긴 여자애와 그보다 덜 못생긴 여자애에게 신경이 가있어 다른 개가 와서 똥을 싸고 갔는 지는 몰라도 아무튼 분수 주변에 개의 똥을 발견한 프랑스 파리가 아닌 미국 테네시 주에 있는 파리의 에펠탑이나 텍사스 주에 있는 파리의 에펠탑에 가서 보고 싶고 기념품을 사고 싶은 충동을 일으켰던 남자(유형지 X 에서)의 이야기인지 친구의 여자친구와 그들이 데리고 온 똑똑한 푸들과 그보다 똑똑하지 않고 사고치는 푸들과 함께 토끼들이 눈 앞에 나타나기를 기다리고 지인이 맡긴 고양이를 밤에 높이뛰기 훈련시키다 지쳐버린 남자(어떤 불능의 상태)의 이야기인지 꽃집에서 프리지어를 사서 말리고 그 말린 프리지어를 불에 태워 유성처럼 빛나게 또 기쁘게 타는 말린 프리지어를 보고 기분이 좋아지며 꽃집 주인이 프리지어를 불에 태우는 것을 모르고 있다는 사실에 기뻐하는 남자(오리무중에 이르다)의 이야기인지 아님 어떤 소설가의 이야기인지 소설가의 소설 속에 등장하는 소설가의 소설 속의 남자이자 소설가의 이야기인지 잘 모르겠고 잘 모르는 것 같고 잘 알 것도 같고 잘 알고 싶은 데 잘 알려고 하고 싶은 데 잘 알 지 못할 것도 같고 잘 알고 싶지 않은 것 같기도 하고 그런 것 같은 데 또 생각해보면 그런 것 같지도 않은 것 같아요. 제가 지금 무슨 이야기하는 건지 모르는 것 같고 모른 것은 아니지만 알고 싶지 않고 모르는 척하고 있는 것 같고 아무도 모르게 하고 싶기도 하고 어쨌든 「오리무중에 이르다」를 읽고 난 제 마음이 이렇습니다. 그래서 두 번 다시 정영문작가님의 작품을 읽지 않고 또 읽지 못할 수도 있고 그런데 또 출간하면 구매는 하지만 읽지 않을 수도 있고 아니면 읽지 못할 수도 있을 지도 모르겠지만 그런 것이 중요한 것은 아니니까 그렇습니다.
(제 나름 정영문작가님의 문장방식으로 표현해봤는 데 변변찮은 글 솜씨때문에 작가님의 작품과 명성에 먹칠한 것 같아요. 죄송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