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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의 여행법 - 불편하고 아름다운 것들을 사랑하는 마음에 관하여
이지나 지음 / 라이프앤페이지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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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은 여행 때마다 비가 왔다.

일정을 대거 포기하고 숙소에만 있어야 할 정도로 궂은 날씨도 있었다.

폭우에 차 안에서 망연자실해 있는데 아이의 한마디가 웃음을 터트리게 했다.

"엄마, 이 정도면 세차 10만원치는 공짜로 하는 거 아냐?"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내리치는 빗줄기가 아이에겐 세차장 안에서 세차하는 것 같았나보다.

아이가 폭우에 겁먹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은 어른의 기우일 뿐이었다.

아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황에서도 유머러스하고 긍정적이었다.


여행에서 날씨가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궂은 날씨에 할 수 없는 것들이 생기기 때문이다.

하지만 좋은 날씨는 어른들의 기준에서만 있었다.

아이들에게 날씨는 중요하지 않았다.

비가 와도 바람이 불어도 너무 추워도 너무 더워도 모두 좋은 날이 될 수 있다.

어른이 되는 동안 마음대로 되지 않고 어쩔 수 없는 일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즐기고 누리는 방법을

잊어버렸다는 사실이다.

내가 마음대로 할 수 없는 일, 어쩔 수 없는 일, 예기치 못한 일들이 일어나곤 한다.

어른인 나는 이런 일들에 걱정부터 했지만 아이들은 달랐다.

있는 그대로를 받아 들이고 즐기고 누리는 것은 늘 아이들이 먼저였다.

어쩌면 우리는 어른이 되어 가며 세상을 즐기고 누리는 법을 잊은 것은 아닐까.


이 책이 좋았던 건 세상을 향한 따뜻한 시선들이 곳곳에 담겨 있어서다.

작가는 10여년 간 아이와 수많은 곳을 여행하며 사려깊은 마음을 얻게 된 것 같다.

특히 사회의 약자들에 대한 작가의 생각에 동조한다.

작가는 사회 안에서 약자가 드러나고 자리하는 방식에서 그 사회를 읽을 수 있다 말한다.

무언가 하나를 미워하고 배제하는 사회에는 반드시 다른 구석에도 어둠이 있다고 한다.

불편하고 이상하고 연약하고 특이한 이들에 대한 혐오와 따돌림이 있는 사회에서 영원한 강자는 없다.

우리는 누구나 어린이였고 또 나이들어 갈 것이기 때문이다.

약자들이 머물 자리를 없애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함께 어우러질 수 있도록 자리를 내주어야 할 것이다.

아이들에게 이 사회가 더 너그럽고 따뜻한 공간으로 자리했으면 좋겠다.

아이는 배울 것이 많은 미성숙한 존재라 여겼다.

하지만 아이와 함께 살아가며 어른이 배워야 할 것도 많다는 걸 느낀다.

아이는 무언가를 재지 않고 있는 그대로 사랑할 줄 안다.

또 있는 그대로 즐기고 누릴 줄 안다.

아이는 그래서 더없이 사랑스럽고 아름다운 존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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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리다 보면 웅진 모두의 그림책 49
김지안 지음 / 웅진주니어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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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에 임하는 태도는 늘 '성실'이 우선이었다.

매일 매일 해야 할 일들을 모두 다 차질없이 해내겠다는 마음이 컸다.

오늘 할 일을 내일로 미루면 큰 일이라도 날 듯이 무리를 해서라도 끝마친다.

최선을 다하는 삶이 나쁜 것은 아니나 삶에는 적절한 쉼도 필요하다. 며칠쯤 아무것도 안해도 괜찮은데 그 쉼이 쉽지 않았다.

반복되는 일상이 무료하고 지칠 때 낯선 곳으로 무작정 발길을 옮기는 것도 좋다.

낯선 곳에서 마주하는 풍경에 감탄하기도 하고, 낯선 이의 친절과 배려에 감동 받기도 한다.

잠깐의 여행이 삶에 활력을 다시 찾게 해준다.

쉼이 필요하다 느낄 때 낯선 곳으로 떠나는 용기도 부려볼 만하다.

가끔은 잠깐 멈춰도

괜찮다는 걸.

요즘은 어른들이 읽어도 좋은 그림책이 많다.

오히려 아이보다 어른들에게 그림책이 더 필요하지 않나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쉽고 명료한 글과 예쁜 그림이 짧은 시간에 큰 위로를 건넨다.

『달리다 보면』 이 내게 건넨 위로는 쉼이었다.

가끔은 잠깐 멈춰도 괜찮으니 앞만 보고 냅다 달리지 말고, 잠시 쉬어가라며 마음을 잡아 끌었다.

이 그림책의 주인공 뚜고 씨는 바쁜 회사원이다.

늘 같은 시간에 일어나 졸린 눈을 부비며 출근길에 오른다.

하늘이 맑고 상쾌하지만 회사에 가야 하는 뚜고 씨와는 아무 상관 없는 일이다.

출근 길 극심한 교통 정체에 뚜고 씨는 내비게이션에 새로운 경로를 검색하고 낯선 길로 들어선다.

내비게이션에서 갑자기 튀어 나온 노별 씨의 안내로 여행을 시작한다.


그들이 도착한 핑크색 바다 장면이 제일 아름답다.

핑크색 바다로 거침없이 운전해 가는 뚜고 씨는 멋져 보였다.

잘 먹고 잘 살기 위해선 회사에 꼭 가야한다던 뚜고 씨는 이제 어디든 그냥 떠날 수 있는 용기를 얻었다.

하루뿐인 짧은 여행이고 노별 씨는 사라졌지만 뚜고 씨는 믿는다.

달리다 보면 언젠가 다시 노별 씨를 만나게 될 것이라고.

판타지적 상상이 가득하지만 거부감보단 내내 미소를 머금게 한다.

그 이유는 이 책이 건네는 위로의 힘에 있다.

성실하게 최선을 다하는 삶은 분명 아름답다.

하지만 쉼이 필요할 땐 잠시 멈춰도 괜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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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에게 주는 감정 유산 - 가족심리학자 엄마가 열어준 마음 성장의 힘
이남옥 지음 / 라이프앤페이지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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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많은 부모님에게 넉넉한 사랑을 받으며 자랐다.

경제적으로 넉넉하지 못했지만 하고 싶은 것이 있으면 무엇이든 도전했다.

실패에 대한 두려움 없이 도전할 수 있었던 건, 부모님의 변함없는 사랑과 믿음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내가 받은 사랑을 아이들에게도 똑같이 전해주고 싶었다.

사랑 표현을 수시로 하며 이 감정이 온전히 아이에게 전달되기를 바랐다.

한편으로 아이가 실패로 인한 좌절감을 겪지 않기를 바랐다.

실패의 확률이 높은 일은 애초에 경험조차 못하게 했다.

조금이라도 위험 요소가 보이면 염려부터 했다.

나의 불안한 감정은 아이에게 고스란히 전달되고, 아이는 새로운 일을 해야 할 때면 겁부터 냈다.

꼭 경험했으면 하는 일, 전혀 위험하지 않은 일조차 하지 않으려 했다.

긴 시간 나의 욕망만을 끊임없이 아이에게 전달하면서 실패할 기회는 차단하고 있었다.

성공에서 오는 성취감을 많이 느끼길 바랐고 실패했을 때 오는 절망감은 느끼지 않길 바랐다.


이 책은 아이에게 부모의 감정을 유산으로 물려줄 수 있음을 얘기한다.

아이의 마음 성장에서 부모의 역할이 얼마나 크고 중요한 지 실감하며 읽었다.

책을 읽으며 내가 아이에게 주고 싶은 감정과 기억들에 대해 정리해 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아이를 잘 키우기 위해 아이보다 나를 먼저 성찰해보게 했다.

나의 시선은 아이에게 더 많이 머물렀고 언제나 우선순위였다.

나의 삶과 그 삶에서 오는 감정들이 아이에게 전달된다는 것을 간과했다.

내가 잘 사는 것이 우선이다.

결국에는 아이의 삶이다.

자기 스스로 선택하고 인정하는 길이라야

그 인생은 힘이 있다.

아이의 삶이 내 삶인 것처럼 더 완벽하게 설계해 주리라 안달복달하지 않았나.

완벽한 삶에 수많은 실패의 경험은 흠이 될 것 같았다.

흠없이 말끔한 삶은 없는데 아이의 삶은 말끔하기를 바라면서...

실패에서 오는 절망감은 분명 고통이지만 이를 극복하고 다시 나아가는 삶이어야 한다.

나는 수없이 실패하고 다시 일어서면서 아이에겐 넘어지지 말라고 옆에서 잡아 주고 있었다.

아이는 언젠가 내가 없는 세상을 오래 살아가야 한다.

내가 할 수 있는 역할은 부모님이 나에게 준 사랑과 믿음의 눈길을 아이에게 전해 주는 것이었다.

아이가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 힘을 키울 수 있게 안정된 환경을 주는 것으로 충분했다.

아이에게 긍정적인 감정을 더 갖게 하면서 부정적인 감정은 드러내지 못하도록 하기도 했다.

긍정적인 감정은 옳고 부정적인 감정은 그르다고 생각했다.

되도록 부정적인 감정들은 외면하거나 덮어 두도록 했다.

단지 덮어둔 것뿐인데 극복한거라 여겼는지도 모른다.

부정적인 감정에 직면할 수 있어야 하고 자신이 믿는 사람에게 솔직하게 표현할 수 있어야 한다.

정서적으로 안정이 된 아이는 자신의 감정을 인지하고 스스로 극복해 나갈 힘을 갖고 있다.

감정에는 옳고 그름이 있는 게 아니라 다양한 색깔로 존재하는 거예요.

다양한 감정을 겪는 것은 삶을 살아가면서 자연스러운 상황일 뿐입니다.

아이가 자신만의 색깔로 빛을 내며,

용감하게 세상을 살아갈 수 있도록

따뜻한 눈길로 바라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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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고 싶은 수학
사토 마사히코.오시마 료.히로세 준야 지음, 조미량 옮김 / 이아소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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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고 싶은 마음이 드는 수학 문제가 과연 있을까?

초등 고학년인 아이와 두달 전까지 함께 수학 공부를 했다.

초등 교과서와 문제집을 보며 내가 공부하던 때와 많이 다름을 느꼈다.

지금 아이들이 하는 수학은 사고력 수학, 창의성 수학, 논술형 수학 등등 수학 앞에 붙는 수식어만 봐도 다르다.

단순 연산에서 나아가 생각을 깊이 해야 해결의 실마리를 찾는 문제들이 많다.

또, 문제를 '푸는 것'이 아니라 식만 주어지고 본인이 문제를 만들어 보라고 한다.

주어진 문제를 푸는 것보다 만드는 것이 훨씬 더 어렵다.

아이가 모르는 문제를 들고 올때면 한참을 읽고 또 읽는다.

정확히 뭘 구하라는 것인지 이해하면 그때부턴 문제 해결 방법을 또 고민한다.

정 모를때는 해답지를 찾아 이해가 될 때까지 또다시 정독한다.

생각을 많이 해야 하는 문제가 늘어나며 결국 아이를 사교육 시장으로 떠밀었고, 나는 수학으로부터 해방됐다.


이 책이 눈에 띈 건 '수학이 재미있어지는 시간'이라는 문구였다.

나는 '수학이 골치아파지는 시간'을 겪고 있었다.

수학 문제를 푸는 게 머리가 아팠다.

생각의 시간이 길어지고 머리의 통증이 오기 직전이면 어김없이 해답지의 도움을 받았다.

수학은 인내심을 요하는 학문인데 계속 요행을 찾게 되었다.

수학에 대한 관심을 완전히 내려놓기 전에 무언가 대책이 필요했고, 이 책이 때마침 눈에 띄어 내게 왔다.

우리의 일상은 수많은 수학 원리들로 가득하다.

이 책에선 이게 과연 수학이 맞나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기발하고 재미있는 문제들을 제시한다.

바로 답이 나오는 문제부터 한참 생각해야 하는 문제, 절대 풀 수 없을 것 같은 문제 등 다양한 난이도이다.

한 귀퉁이에 난이도 미터를 그림으로 표현해 놓았는데, 난이도 2까지는 쉽게 풀리지만 3부터는 생각을 오래했다.

그동안 푼 수학 문제들은 생각을 오래하면 머리가 아팠는데, 이 책의 문제들은 그렇지 않았다.

오히려 생각의 과정이 재미있고 문제의 답을 찾아냈을 때 희열과 쾌감까지 얻었다.

무엇보다 새로운 생각의 틀을 갖고 사고력을 키우기에 매우 좋은 책이다.

그간 수학에 고정되어 있던 생각의 틀이 있었음을 알게 되었다.

무조건 답을 찾는데만 몰두한 나머지, 답을 구할 수 없는 문제도 있다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

문제에서 요구한 조건으로 찾으면 답을 구할 수 없는데, 한참을 답을 찾는데만 골몰했다.

그러다 "에라, 모르겠다." 포기하고 해답을 확인한 순간 실소가 터졌다.

애초에 답이 없는 문제는 아무리 찾아봤자 답을 구할 수 없다.

아이의 수학책을 통해 평면적으로 만나던 문제들은 머리가 아팠다.

이 책을 통해 입체적으로 다가오는 수학을 만났다.

생활 속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구체적 이미지를 통해 수학이 한걸음 친근하게 다가왔다.

수학에 가졌던 편견과 고정된 생각의 틀을 깰 수 있어 더욱 좋았다.

수학적 사고가 갑자기 부쩍 늘진 않겠지만 새로운 사고법으로 일상을 바라보게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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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우연들
김초엽 지음 / 열림원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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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사람 사이에도 인연이 있다고 생각한다.

내가 찾는 책이 있지만 나를 찾아오는 책도 있다.

힘든 시기에 나를 찾아오는 책 덕분에 큰 위로와 힘을 얻은 적이 많다.

겉으로 표현하지 못하고 속앓이를 할 때면 책부터 찾는다.

책은 어김없이 내게 위로를 전하고 다시 일어설 힘을 준다.

김초엽 작가를 처음 만난 건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이라는 책이었다.

인터넷 서점에서 광고를 보고 책의 표지가 예쁘단 이유로 구매했다.

나중에 집에 도착한 책을 보고 나서야 장르가 SF소설이란걸 알았다.

평소 즐겨 읽지 않는 장르인데다 SF소설 작가 중에 아는 사람도 전혀 없었다.

외국 작가라면 모를까, 우리나라에 SF소설을 잘 쓰는 작가가 있을까 하는 의문부터 들었다.

별 기대 없이 읽기 시작한 책에서 다채로운 감정을 느꼈다.


경이롭다.

작가는 어떻게 이런 세계를 창조해 낸 걸까.

인간 중심의 문학에만 갇혀 있던 내게 인간 외의 존재와 세계가 새롭다 못해 경이로웠다.

나 혼자 알고 있기에는 너무 아까운 책이었다.

마음의 빚을 진 지인들에게 책 선물을 하기 시작했다.

“우리나라 SF소설이 이 정도로 놀라워요, 이 책은 꼭 읽어야 해요, 이 작가 책은 앞으로 꼭 사세요.”라는 당부의 말도 함께 전하면서 말이다.


책뿐만 아니라 동시에 작가에게도 경이로움을 가졌다.

작가가 평범한 인류가 아니라 비범한 신인류처럼 느껴졌다.

『책과 우연들』은 SF소설로만 만나던 작가의 첫 에세이다.

작가가 그간 만난 책들과 읽기에서 쓰기로 나아가는 여정을 세세하게 담았다.

나는 작가가 경이로운 이야기 주머니를 어마어마하게 가지고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글을 쓸 때면 밑천이 없어 두려웠다는 작가의 고백에 적잖이 충격을 받았다.

쓸 밑천이 없기에 계속 책을 읽어야만 하고 자료를 수집하며 끌어모으고 모아서 이야기를 빚고 있었다.

작가는 비범한 신인류가 아니라 나와 같은 평범한 인류였고 끝없는 노력으로 밑천을 채워가고 있었다.


새로운 세상을 창조해 내는 일은 누구에게나 막막한 일이었다.

작가는 글을 쓰고자 하는 이들과 무언가 새로운 일을 시작하려는 이들에게 말한다.

준비가 덜 되어서 또는 밑천이 없다는 두려움을 겪는 이들에게 자신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다고.

경이롭다 칭송했던 작가가 계속 노력하며 글을 꾸준히 쓰고 있단 사실에 감동 받았다.

어느 날 갑자기 이야기가 다가와 순식간에 놀라운 이야기를 써내려가는 기적을 바랐다.

이게 얼마나 어리석은 꿈이었나싶다.

요행을 바랄 때가 아니라 더 많이 읽고 쓰며 밑천을 채워야 한다.


더 많은 책이 우연히 우리에게 도달하면 좋겠다.

그런 우연한 충돌을 일상에 더해가는 것만으로

우린 충분할지도.

- 『책과 우연들』 서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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