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어를 읽다 - 공자와 그의 말을 공부하는 법 유유 동양고전강의 3
양자오 지음, 김택규 옮김 / 유유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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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919년에 일어난 중국의 5.4운동은 중국 사상사에 한가지 기념비적인 일을 시작했다. 바로 한대 이후로 존경과 숭모의 대상이었던 '공자'를 거침없이 비판한 것이다. 5.4운동 당시 중국의 개혁을 바라던 이들은 낡은 중국의 대명사로 공자를 지목하고 공자와 공자로 대변되는 낡은 시스템과 체제,문화에 대한 거침없는 비판을 하며 중국의 근대화를 이루어 내려 했다. 5.4운동에서 시작된 공자 비판은 1966년에 시작되어 1976년까지 진행된 '문화대혁명' 때 절정을 이룬다. 세상 사람들 모두가 입을 열어 악의 대명사가 된 공자를 비판하고 비난하고 욕을 했다. 공자는 언제 어디서나 욕을 먹었다. 언제 공자를 존경하고 숭모했냐는 듯이.


2.
1980년대까지 이어지던 공자 비판은, 등소평의 개혁개방 정책을 거치며 경제성장을 이루기 시작한 1990년대부터 달라지기 시작한다. 비판과 비난과 경멸의 대상이던 공자는, 어느 순간부터 경제 성장을 이룩한 중국의 문화를 대표하는 인물이 되어 숭모의 대상이 된다. 과거에 공자를 욕하던 이들이, 욕을 내뱉던 그 입으로 이제 공자에 대한 칭찬을 내뱉기 시작한다. 악의 대명사였던 공자는 공자를 악의 대명사로 욕하던 이들에 의해 다시 중국문화의 화신이자 성인이 된것이다. 공자와 제자들이 나눈 대화가 기록된  <논어>도 공자가 존숭의 대상이 된 것과 마찬가지로, 고귀한 진리의 말이 기록된 책이 된다. 고결하고 고귀한 말이 가득한 진리의 책으로 자리매김한 <논어>는, 공자와 더불어 더 이상 오를 것 없는 가장 높은 지위에 오른다. 2000년대까지 이어진 공자와 <논어>에 대한 복고 열풍은 2007년에 발표된 책으로 암초를 만난다.

3.
2007년 중국 출판계를 뒤흔든 베스트셀러이자 사상계와 사람들 사이에 엄청난 논쟁을 불러 일으킨 <집 잃은 개>는 종교화하고 이데올로기화한 성인 공자를 비판한다. 고고학,고문헌학,고언어학의 '삼고'의 권위자이자 30년 넘는 시간동안 묵묵히 자신이 서 있는 자리에서 학문적 연구에만 몰두하던 학자 '리링'은 철저한 실증적 자료와 언어분석을 바탕으로 맹신과 신격화의 그늘속에 박제된 '죽은 공자'가 아니라 '인간 공자'를 되살려낸다. 그는 철저하게 죽간과 백서,금석문에 토대를 두고 써내려간 <집 잃은 개>를 통해 신격화하고 이데올로기화한 공자가 아니라 생생히 살아 숨쉬는 인간 공자의 매력을 독자들에게 전하며, 고결하기 그지없는 <논어>가 아니라 인간 공자와 인간적인 공자 제자들의 삶과 사상이 살아 숨쉬는 책으로 <논어>도 되살려냈다. 엄청난 반향과 인기를 얻은 <집 잃은 개>는 이후 새로운 공자와 논어 해석의 방향성을 제시했다고도 할 수 있다. 신화적 공자가 아니라 인간적인 공자, 인간적인 매력이 살아 숨쉬는 <논어>의 해석방향으로.

4.
언론,방송,학계를 넘나들며 전방위적 활약을 펼치고 있는 대만의 지식인 양자오는 10년는 시간동안 동서양 인문고전 강의를 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2011년 이후로 중국 고전에 관련된 강의를 하는 와중에 <논어>를 자신만의 방식으로 읽어내고, 그 강의의 흔적을 책으로 펴낸 <논어를 읽다>를 읽다보면, 정확한 연관 관계는 알 수 없지만, 양자오의 <논어> 독법이 <집 잃은 개> 이후로 새롭게 불어닥친 공자와 논어 해석의 흐름과 일치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는 신성한 공자, 진리의 확성기로서의 공자, 진리를 담은 책으로서의 <논어>를 거부한다. 그에게, 공자는 우리처럼 울고 웃고 화내는 존재로서 제자들과 인간적 관계를 형성하고, 차별 없이 제자들을 대하고 가르쳤으며, 온갖 실패와 좌절에도 자신만의 복고적 이상을 죽을 때까지 추구한 매력적인 인간이다. 논어는 그 인간적인 매력을 잘 찾아낼 수 있는 텍스트일 뿐이다.

<논어>는 글자 수가 많은 책이 아닙니다. 그런데 그 많지 않은 내용 안에 뜻밖에도 완전히 똑같은 구절이 여러 번 나타납니다. 아마도 처음에 자료를 수집할 때 실수로 똑같은 내용을 중복해 기록하여 이런 현상이 빚어졌을 겁니다.
...
또한 <논어>는 오랜 세월에 걸친 연구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어떤 통일된 기준에 따라 장이 배열되었는지 믿을 만한 답이 나오지 않았습니다. 겉모양으로 보아 <논어>는 제자들이 각자 갖고 있던 기록을 모은 것으로서, 그중 누구도 편집의 권한을 독점하지 못하여 그렇게 무질서한 형태로 배열된 듯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오히려 더 안심할 수 있습니다. 만약 누군가 <논어>를 의도적으로 고치고 날조했다면 가장 혼란스러워 보이는 배열부터 손을 대어 더 명확하고 논리적으로 만들지 않았겠습니까.
...
<논어>는 한편으로는 안심하고 읽을 수 있는 경전입니다. 다른 상고 시대 경전을 읽을 때처럼 후대에 날조되고 삽입된 내용이 혹시 없는지 경계하며 볼 필요가 없습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불안해하며 읽을 수밖에 없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편찬자가 명확한 순서와 체계를 표시해 두지 않았으므로 그 혼란한 문구들이 서로 어떤 관계가 있는지 스스로 가늠해야 하기 때문입니다.(p.36~38)

전통적으로 <논어>를 숭배해온 탓에 이 책의 내용을 공자가 심사숙고하여 표현한 보편 진리로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습니다. 하지만 텍스트를 꼼꼼히 따져 보면 사실 그렇지 않습니다. 이 책은 긴 시간에 걸쳐 공자의 주변 사람들이 한 자 한 줄 빠르게 기록한 게 분명합니다. 공자가 그들에게 기록하도록 한 다음 말하거나 행동하고 제자들이 그때그때 기록한 것도 아닙니다. '후대의 법도'나 '천하의 법도'로 삼기 위해서도 아니었습니다. 따라서 그 말들을 완벽하게 정리된 진리로 받아들여 줄줄이 외우고 실행하기보다는 그 말들의 진면모를 복원함으로서 단편적이지만 진실하고, 또 단편적이어서 오히려 진실한 이 기록에서 2천 년 전에 살았던 한 훌륭한 인물을 관찰하는 편이 낫습니다. 그리고 어떤 삶이 훌륭한 삶인가에 대한 그의 의견은 우리 스스로 생각하기 힘든 것이어서 여전히 우리의 사상과 감성에 자극을 줍니다.
이런 방식으로 <논어>를 읽는 것은 전통적인 독법보다 힘들지만 재미있습니다. 힘든 이유는 독서 과정에서 공자를 한 인간으로서 복원하고 이해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단지 수동적으로 그의 말을 받아들이기만 해서는 안 됩니다. 관련 자료를 모아 공자의 말과 행동을 최대한 역사의 맥락 속에 돌려놓는 한편, 심리적, 감성적, 논리적 지식을 다 동원해 공자를 해석해야 합니다. 그럼으로서 우리는 이런저런 가르침을 주는 추상적 이론 따위가 아니라 마음속 깊은 고셍서 고뇌와 인격과 시련을 통해 만들어진 다층적이고 변화무쌍한 이야기를 얻을 수 있습니다.(p.100~101)

공자 또한 진실하고 다면적인 인물이었습니다. 진실한 인간은 다면적일 수밖에 없으며 오직 다면적 자료만이 우리 앞에 진실한 인간을 복원시켜 줄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논어>의 형식과 그 안에 기록된 내용을 소중히 여겨야 합니다.(p.102)

5.
롤랑 바르트의 '수용자 이론', 데리다의 '해체주의', '포스트모더니즘' 이후로 고전을 읽는다는 것은, 원전의 권위에 기대어서 책을 읽는 것이 아니다. 원전의 아우라가 사라진 시대의 독서법이란 주관에 크게 기댈 수밖에 없다. 보들리야르가 말한 시뮬라크르와 시뮬라시옹처럼, 더 이상 원전은 과거의 원전이 아니고, 복제품도 과거의 복제품이 아니다. 원전 같은 복제품들의 시대에 사는 우리는, 하나의 진리로서 존재하는 책, 하나의 완벽한 독서법을 기대하면 안된다. 우리는 자신의 주관속에 재해석된, 재창조된 고전 읽기의 길을 걸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렇다고 완벽하게 주관적인 고전독서가 가능한 것일까? 객관적인 것이 하나도 존재하지 않는, 완벽한 주관적인 독서란 있을 수 없는 허구의 개념일 뿐이다. 결국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자신의 주관성을 견지하면서도 '나'의 주관성을 넘어서서 존재하는 '고전'의 객관성을 받아들여 나아가는 '주관과 객관 사이에서 헤매이는 독서'이다. 그것이 우리에게 남겨진 길이고, 가야할 길일 수밖에 없다. <논어를 읽다>가 보여주는 양자오식 '논어 독법'도 거기에 위치하고 있다. 우리가 해야할 이 시대의 고전독서의 한 모습으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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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에 썼던 글과 이어지는 내용입니다만,
특정 영역의 책들을 몰아서 읽으니 
이상하게 책 읽는 욕망이 다시 불이 붙습니다.
어느 순간부터 책 읽는 욕망에 불타서 책을 읽는다기보다는,
책이 삶이니까, 할 수 밖에 없는 습관이니까,

관성적으로 읽는 느낌이었는데,
동양고전쪽만 몰아서 읽다보니까, 이 쪽 책을 더 읽고 싶고,
거기에 더해 다른쪽 영역의 책들도 마구 읽고 싶어지네요.
독서욕구가 다시 회춘했다고 해야할까(^^;;),
어찌되었든 제 독서인생에서 최근 시기는 아주 좋은 것 같습니다.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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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어 현암사 동양고전
시모무라 고진 지음, 고운기 옮김 / 현암사 / 200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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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책을 들여다봅니다. 제목은 <논어>. 그런데 저자가 '시모무라 고진'입니다. 엥? <논어>의 저자가 시모무라 고진이라는 일본 사람이라고. 이건 무슨 일이지? 궁금해서 펼쳐 읽어봅니다. 아... 책을 읽다가 이 책의 원제가 <논어>가 아니라 <논어 모노가타리>라는 것을 알고 이해가 됩니다. <논어>를 일본인인 시모무라 고진이라는 사람이 자신만의 방식으로 해석해서 자신만의 방식으로 편집한 책이 <논어 모노가타리>라는 것이죠. 그것도 단순한 해설서가 아니라, 일본의 고전 <겐지 모노가타리>를 연상시키는 방식의 이야기 형식으로 <논어>를 풀어 쓴 책입니다. 이야기 형식으로 풀어 써서 그런지 이 책은 술술 잘 읽힙니다. 짧은 문장 속에 잠시 숨을 쉬던 공자와 그의 제자들의 삶이, 이야기 형식 속에 자신의 입장과 생각을 선명하게 드러내며 생생히 살아 움직이게 됩니다. 생생히 살아 움직이는 공자와 그의 제자들의 삶을 들여다보고 있으니, 매력적이라는 말을 할 수밖에 없게 됩니다. 살아 움직이며 자신의 이상을 전파하기 위해 노력하다 실패하는 인간 공자.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상적인 인간의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노력하는 공자. 그를 사모하고 따르며 그를 좇아가지만 그에 미치지 못하는 제자들. 이상적인 인간상을 갈구하는 노력의 일환으로 전개되는 생생한 생명력을 가진 그들의 대화. 고정되지 않고 때에 따라서, 사람에 따라서 변화하는 공자의 가르침. 이 모든 것들이 이야기 형식이라는 한 줄에 꿰매어져 우리 앞에 드러나고 있으니, 매력을 느낄 수밖에 없는 것이죠. 물론 이 때의 공자는 시모무라 고진이라는 필터를 통과한 공자의 모습이기 때문에 현실의 공자와는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공자의 모습이 현실과 차이가 있다고 해도, 우리에게 무언가를 줄 수 있기 때문에 저는 그런 차이가 크게 문제가 된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다 읽고 나니, 현실에만 집착하는 제 모습이 부끄러워지네요. 현실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나 조금 더 이상을 추구하는 인간이 되는 것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것도 멋있어 보여서요. 현실에 집착하는 소인이 아니라 이상을 추구하는 군자가 되는 것도 좋은 일이기도 하구요. <논어>의 말을 따르면 그게 '도'에 맞는 생활일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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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고전 관련된 모임을 앞두고, 동양고전과 관련된 여러 책을 열심히 두루두루 읽는 중입니다.
얼마나 오랜만에 이렇게 집중해서 책을 읽는지...
오랜만에 한 분야의 책들을 집중해서 읽으니 여러모로 좋네요.
기분도 좋고, 내가 이 분야에 뭔가 더 알게 되었구 하는 느낌도 있고.
앞으로도 이런 식의 집중적인 독서를 해야겠습니다. 굉장히 장점이 많은 것 같습니다.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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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플란넬 속옷
레오노라 캐링턴 외 지음, 신해경 옮김 / 아작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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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하는 여자들> 한국어판에 미공개되었던 다섯 편의 SF 단편을 모아놓은 책. 젠더 구분에 의하면 '여성'으로 분류되는 작가들이 써놓은 SF단편을 모아놓은 <혁명하는 여자들>에 수록된 작품들답게, 작가들 모두가 여성이고, 자신들의 삶에 기반한 상상력을 발휘해서 작품들을 썼다. 작품들을 들여다보며 내가 느낀 건, 어떤 이념이나 관념,사고가 아니라 작가들 모두의 삶에 스며든 슬픔,아픔,고통,회한 같은 '감정' 들이었다. 자신들의 삶에서 느낀 슬픔이나 아픔,고통, 그리고 자신들의 삶을 규정한 어떤 한계나 구조 같은 것들을 SF라는 장르의 틀을 빌려 표현했다고 할까. 그렇게 본다면 이 작품들은 SF라는 장르에 국한되지 않는다. 오히려 나에게 이 작품들은, 자신들의 삶을 상징화한 '상징소설'처럼 생각된다. 일련의 상징소설들을 만들어놓고, 그 위에 SF라는 장르를 덧씌운 느낌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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