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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르기아스 / 프로타고라스 - 소피스트들과 나눈 대화
플라톤 지음, 천병희 옮김 / 도서출판 숲 / 201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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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나는 내가 틀린 말을 하면 기꺼이 논박당하고, 남이 틀린 말을 하면 기꺼이 논박하는 그런 부류의 사람이오. 하지만 나는 논박하는 것보다 논박당하는 것이 더 좋아요. 가장 나쁜 것에서 남을 구원하는 것보다도 자신을 구원하는 것이 자신에게 더 큰 좋음인 한, 나는 논박당하는 것이 더 큰 좋음이라고 여긴다오.(41)
정의는 사람들을 절제 있게 해주고 더 올바르게 해주는, 나쁨을 치료해주는 의술(91)
-우리가 좋은 것은 우리 안에 어떤 미덕이 있기 때문이고, 우리 말고도 좋은 것들은 모두 그 안에 어떤 미덕이 있기 때문인가요?
-나는 그럴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네, 칼리클레스.(154)
도구든 몸이든 혼이든 살아 있는 무엇이든 각각의 미덕이 가장 훌륭해지는 것은 우연에 의해서가 아니라, 각각에게 고유한 짜임새와 올바름과 기술에 의해서요.(155)
우리는 정의와 절제를 갖추어 행복해지는 일에 우리 자신과 우리 공동체의 모든 노력을 경주해야 하네. 우리는 그것을 행동지침으로 삼아야 하며, 우리의 욕구들이 무절제해지게 방치하거나 우리의 욕구들을 충족시키려고 해서는 안 되네.(157)
완전히 제정신이 아니거나 겁쟁이가 아니라면 누구도 죽는 것을 두려워하는 것이 아니라, 불의를 행하는 것을 두려워할 걸세.(189)
우리는 불의를 당하지 않기보다는 불의를 행하지 않도록 더 조심해야 하며, 특히 사적으로나 공적으로 훌륭해 보이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훌륭한 사람이 되도록 노력해야 하며, 누군가 어떤 점에서 나빠진다면 처벌받아야 하며, 처벌받고 응분의 대가를 치름으로써 올바르게 되는 것이 본래 올바른 것 다음으로 가장 좋은 것이며, 모든 아첨은 그 대상이 자기 자신이든 남들이든 소수이든 다수이든 피해야 하며, 수사학은 다른 활동과 마찬가지로 정의를 위해서만 사용해야 한다는 주장 말일세.(198)

저는 플라톤의 대화편을 좋아합니다. 플라톤 대화편 특유의 말을 주고받는 리듬도 그 독특함 때문에 좋고, 플라톤의 분신인 소크라테스가 상대방을 논파하는 특유의 논쟁도 흥미롭게 느껴집니다. 하지만 플라톤의 대화편에 익숙하지 않거나 계속 상대방의 말을 파고드는 것에 흥미를 느낄 수 없는 사람이라면 플라톤의 대화편에 흥미를 느끼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네, 저도 충분히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고르기아스>를 가지고 고전독서모임을 할 때 걱정이 되었습니다. <고르기아스>는 플라톤 대화편의 특징이 너무 잘 드러난 작품이어서요.

그런데, 제 생각과는 달리 이번에 한 고전독서모임은 너무 좋았습니다. 독서모임이 책의 장점을 극대화시키고, 책의 다양성을 드러내어 책을 생생히 살아있게 했거든요. 독서모임에서 나눈 대화를 통해 <고르기아스>는 제가 읽은 것보다 더 괜찮고 좋은 책이 되었습니다. 이제부터는 그때 나눈 대화를 통해서 제가 어떻게 <고르기아스>를 새롭게 읽게 되었는지 그 일부를 적어보겠습니다.

1.책 속의 인물들은 생생히 살아있습니다. 대화편에 나오는 인물들은 소크라테스와 소크라테스에게 논파당하는 인물들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어떻게 보면, 대화편 책 속에 나오는 인물들은 저자인 플라톤이 자신이 원하는 사상을 드러내기 위한 도구로서 평면적인 인물이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독서모임을 통해서 말을 주고받으며, 이들이 단순히 평면적인 인물이 아님을 깨달았습니다. 불변의 확고부동한 진리를 추구하며, 정치나 철학이 그런 진리로 사람들이 나아가게 해야한다는 사실을 주장하는 소크라테스도 그렇지만, 그에게 논파당하는 역할로 나오지만 현실적인 주장을 하는 등장인물들인 고르기아스,폴로스,칼리클레스도 자기들의 입장에서는 옳은 말을 하는 인물들로 충분히 설득력이 있는 인물들입니다. 현실에서의 삶이 그들에게 그런 현실적인 주장을 하게 만든 것이죠. 책을 읽은 우리들은 그들이 무조건 나쁘다거나 틀렸다고는 할 수 없었습니다. 다만 저마다 자신의 생각과 느낌으로 어떤 면은 옹호하고, 어떤 면은 비판하고, 또 어떤 인물에게는 호감을 느끼고, 다른 인물에게는 호감을 느낀 것입니다. 대화편을 쓴 플라톤에게는 미안하지만(^^;;), 우리는 책 속 소크라테스를 무조건 옹호할 수 없었습니다. 우리가 사는 시대가, 삶이, 절대적 진리를 추구하는 삶만을 무조건 옳다고 할 수는 없으니까요. 어쩌면 우리는 현실적인 사고방식을 강요당해서 더 이상 이상과 진리를 추구하는 삶을 동경만 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시대가 달라지면 책을 바라보는 시선과 받아들이는 방식이 달라지니까요. 우리의 관점에서 보자면 책 속 소크라테스와 더불어 다른 인물들이 생생히 살아 있는 겁니다. 플라톤은 그런 관점에서 다양한 인물들의 말을 가감없이 표현한 좋은 문학작품을 쓴 작가가 되고요.

2.정치와 수사는 서로를 필요로 합니다. <고르기아스>에서는 소크라테스는, 수사학으로 무엇이든 가능하기 때문에 수사학이 가장 중요한 학문이라고 외치는 소피트스 고르기아스를 논파합니다. 그는 논파하면서, 수사학이 사람들을 진리로 나아가게 하는 것이 아닌데다 사람들의 이익이나 욕심이라는 목적을 이루기 위한 도구에 불과하다고 평가절하합니다. 그러나 저는 독서모임에서의 대화를 통해 소크라테스의 말이 절대적으로 옳은 것이 아님을 다시금 확인했습니다. 정치가 정치에 참여하는 이들로 하여금 진리로 나아가게 한다면 좋은 일입니다. 그걸 부정하지는 않습니다. 정치가 진리로 반드시 나아가는 길이어야 한다는 '반드시 ~해야 한다'는 당위의 논리도 틀렸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오로지 정치가 진리로 나아가는 길이어야만 한다는 당위의 논리로만 채워진다면, 그건 절대적으로 옳은 일은 아닐 것입니다. 당위로만 채워진 정치가 얼마나 설득력을 가질 수 있을까요. 저는 오히려 이 부분에서 수사학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정치가 가진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수사학은 굉장히 유용한 도구입니다. 당위의 목적과 그것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으로서의 수사학의 결합이야말로 정치행위를 제대로 만들 것입니다. 저는 <고르기아스>에 나오는 소크라테스의 말에 얽매이지 말고, 정치를 위해서나, 수사를 위해서나 둘 다 서로를 필요로 한다는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3.정치에서 현실주의와 이상주의는 상황에 따라서 적용해야 합니다. <고르기아스>에 나오는 소크라테스와 그에게 논파당하는 사람들의 말은 정치학에서 말하는 이상주의와 현실주의에 상응합니다. 정치에서 진리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소크라테스는 현실보다 이상을 내세우는 이상주의자라고 할 수 있고, 진리 같은 이상보다는 현실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고르기아스,폴로스,칼리클레스는 현실주의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저는 어느 쪽이 옳고 그른지 따질 생각은 없습니다. 다만, 현실주의가 대세가 된 현대의 흐름 속에서 소크라테스가 주장하는 이상주의가 필요하다는 생각은 가지고 있습니다. 저는 '나는 현실주의자이니까 이상주의가 틀렸어'라거나 '나는 이상주의자니까 현실주의가 틀렸어'라고 말할 생각은 없습니다. 저는 상황과 맥락에 맞춰서 현실주의와 이상주의를 때에 맞춰 적용하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책에서 열변을 토하는 소크라테스나 책을 쓴 플라톤에게는 죄송하지만(^^;;).

다 써놓고 보니, 저는 플라톤이나 소크라테스가 주장하는 것과는 계속해서 멀어지는 느낌입니다. 책 속 소크라테스나, 책을 쓴 플라톤은 정치뿐만 아니라 철학도 인간을 진리로 나아가게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하는데, 저는 그것이 무조건 옳다고 생각하지는 않거든요. 저는 철학이 인간을 진리로 나아가게 하면 좋지만, 진리로 나아가지 않더라도 자기 자신의 삶이나 사상이나 생각을 조금 더 나은 방향으로, 조금 더 열린 방향으로 나아가게 만든다면 그것 자체로 좋은 철학이라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저는 <고르기아스>를 읽고 독서토론을 통해서 <고르기아스>를 곱씹은 것이 철학적인 행위를 했다고 생각합니다. 이 모든 것들이 저 자신을 이전의 저보다는 더 괜찮은 인간으로 만들 확률이 높아졌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철학이란, 철학함이란, 철학적인 행위란 바로 이런 것을 가리키는 것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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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나간 자와 머무른 자 나폴리 4부작 3
엘레나 페란테 지음, 김지우 옮김 / 한길사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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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은 길이가 길어질수록 고리가 커지는 사슬과 같다는 것을 깨달았다. 고향 동네는 나폴리와, 나폴리는 이탈리아와, 이탈리아는 유럽과, 유럽은 전 세계와 연결되어 있었다.(22)
모든 기원에는 기원이 있는 법이야. 살면서 일어난 많은 일은 한쪽 구석에 쌓여만 있는 듯싶다가도 때가 오면 의미를 가지게 되는 법이야.(57)
임신이란 말이야. 타인의 생명이 네 배에 달라붙는 거야. 고통 끝에 겨우 뱃속에서 떼어냈다 싶을 테지만 그것은 세상 밖으로 나오는 순간 너를 더 구속할 거야. 태어나자마자 널 밧줄처럼 옭아맬 거야. 아이를 낳으면 너는 더 이상 네 인생의 주인이 아닌 거야.(323)
나는 릴라와 분리된 내 모습을 받아들여야 했다. 해답은 거기에 있었던 것이다. 내가 평범한 사람이라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이다.(398)
우리는 결국 모두 똑같이 사랑과 증오와 욕망과 폭력이라는 짐을 지고 무대에 오르는 그림자 인형일 뿐이었다.(411)
너는 소설을 쓰고 싶다고 했지. 나는 살아 있는 사람들을 등장인물로 삼고 실제 피를 잉크삼아 현실을 소설로 만들어냈어.(445)
이제 나는 다시 무엇인가가 되어야 한다. 이번에는 오직 나를 위해서 그렇게 되어야 한다. 릴라에게서 벗어나 성숙한 인격체로서 말이다.(495)

엘레나 페란테의 나폴리 4부작은 정말 페이지가 술술 넘어갑니다. 생각보다 두꺼운 책 두께에 겁먹다가도 일단 읽기 시작하면 책두께는 내 머리속에서 사라지고 어느새 마지막 장을 넘기는 제 자신을 발견하게 됩니다. 페이지 터너라는 말이 딱 들어맞는다고 해야할요까. 그리고 1권을 읽게 되면 자기도 모르게 어느새 2권을 찾아서 읽게 됩니다. 2권 읽으면 당연하게도 3권으로 이어지고요. 마치 주술에 홀린 사람처럼 다음 책을 찾아서 읽게 되는 현상을 경험한 저로서는 확실히 나폴리 4부작의 힘을 인정할 수밖에 없습니다. 독자로 하여금 계속해서 읽게 만드는 그 힘을.

<떠나간 자와 머무른 자>는 나폴리 4부작의 3편입니다. 첫편에서 유년기를 지나 성장하는 두 여인 레누와 릴라의 이야기가 그려졌고, 2편에서는 어른이 된 두 여인의 전혀 다른 두 갈래의 삶이 펼쳐졌다면, 3편에서는 중년이 된 두 여인의 삶이 그려집니다. 특히 강한 카리스마와 매력을 지닌 릴라에게 강하게 엮여 있던 고향을 '떠나간 자' 레누가, 릴라와의 끈을 상당부분 끊어내고 타지에서 자신만의 삶을 사는 모습이 그려지는 것이 중심입니다. 하지만 레누의 삶도 그렇게 확실하지 않습니다. 그녀는 릴라라는 자신과 떼어낼 수 없는 존재이자 자신이 생각하는 이상적인 모습을 간직한 친구와 멀리 떨어진 채 자기 자신으로 살아가지만 나폴리의 가난한 계급에서 북부 이탈리아의 부유하고 지적인 가문 출신의 남편을 둔 삶이 언제 무너질지 모른다는 불안감과 자기 자신에 대한 불안, 68혁명이라는 거대한 혁명의 물길과 그 뒤를 이어 벌어진 반동적인 파시스트들의 테러가 벌어지는 1960,1970년대 이탈리아의 불안한 현실까지 더해져 불안한 중년의 나날들을 보냅니다. 지적이고 선하지만 자신을 이해하거나 인정하지 못하는 남편과 두 딸을 돌봐야 하는 삶들, 자기자신으로 살지못하는 여성의 서글픔도 더해지고요. 작가는 그 모든 것들을 매혹적인 이야기의 방식으로 우리 앞에 펼쳐내며 경험하지 못했던 이들에게는 새로운 경험의 장을 열어두고, 비슷한 걸 이미 경험한 이들에게는 공감의 장을 열어내죠. 저의 경우에는, 제가 겪은 일이 아님에도 마치 내가 레누나 릴라가 된 것처럼 공감하며 읽었습니다. 잘 읽히고 인간의 마음을 잘 파고드는 소설의 힘을 느끼며.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깊었던 것은 여성의 삶을 삶 그 자체로서 경험하게 했다는 점입니다. 소위 여성의 삶을 이론화했을 때 통계나 이론으로만 축소되어 삶의 진실을 느끼지 못하게 하는 경우가 많은데, <떠나간 자와 머무른 자>는 통계나 이론없이 여성의 삶을 가감없이 보여주며 삶을 그 자체로 받아들이게 합니다. 울고 있는 아이, 퉁퉁 부어오른 젖무덤, 남편의 무관심 같은. 이론이나 통계가 보여주지 못하는 삶의 디테일이 묘사될 때 우리는 여성의 삶을 체화하며 공감하게 됩니다. 저는 이게 소설의 강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알아들을 수 없는 이론이나 숫자로만 표시되는 통계와는 달리, 소설은 삶을 그 자체로서 독자에게 공감할 수 있게 그리며 삶 그 자체로서 받아들이게 하기 때문이죠.

나폴리의 가난하고 폭력적인 삶과는 멀리 떨어진 채 불안하게 흔들리면서 살아가는 레누와 나폴리의 힘겨운 삶의 조건속에서도 살아남기위해 최선을 다하는 릴라의 삶을 허겁지겁 들여다보니 소설이 끝나이었습니다. 어쩔 수 없이 저는 다음편을 다시 읽어야 할 것 같습니다. 이 책에 대한 갈망은 오직 책으로만 해결할 수 있기 때문이죠. 저는 이제 다음편인 <잃어버린 아이 이야기>로 넘어가야 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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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8-06-06 19: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국가가 내세우는 출산 장려 정책은 여성의 삶을 구속하고 통제하는 근시안적 발상입니다. 남성 중심 사회는 여성에게 자녀를 낳으라고 강요합니다. 요즘은 기혼 남성도 양육 및 가사노동을 하고 하지만, 여전히 집안일을 전담하고 건 여성입니다.

짜라투스트라 2018-06-06 22:59   좋아요 0 | URL
네 그렇죠
 
메이커스 앤드 테이커스 - 경제를 성장시키는 자, 경제를 망가뜨리는 자
라나 포루하 지음, 이유영 옮김 / 부키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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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은 지금 경제 성장을 돕는 것이 아니라 방해하는 지경에 을렀다. 금융이 성장하자 기업은 물론이고 경제와 사회 전체가 고통에 시달리고 있다. 2008년 금융 위기 이후 우리는 제2차 세계대전 이래 가장 가늘고 긴 경제 회복을 겪고 있다. 그 해결책은 고립주의도 아니고, 세계화의 시계를 거꾸로 돌리는 것(실제로 가능하지도 않다)도 아니다. 금융과 실물 경제, 즉 거저먹는 자와 만드는 자 사이의 힘의 차이를 극적으로 변화시켜야 한다.(19)
토마 피케티가 주장한 것처럼, 자본이란 "언제나 한편으로는 사회적, 정치적 구조물이다. 자본은 각 사회의 재산권에 대한 인식을 반영하며, 여러 사회 집단 간의 관계, 특히 자본을 소유한 자와 그러지 못한 자 간의 관계를 규율하는 여러 제도와 정책에 좌우된다."
오늘날 금융업계의 규모와 영향력, 그리고 금융업계가 우리 사회와 민주주의를 망가뜨리는 양태를 보건대, 우리는 위태로운 지경에 처해있다. 제럴드 데이비스의 표현을 빌리자면 미국은 '포트폴리오 사회', 다시 말해 "모든 부류의 사회적 삶이 증권화되어 일종의 자본으로 전환된 사회"가 되었다고도 볼 수 있다. 포트폴리오 사회에서는 거의 모든 것이 거래 가능한 상품으로 전락하여, 인간관계는 '사회적 자본'이, 인간 자체는 '인적 자본'이 된다. 그뿐 아니라 어떤 종류의 기회든 '화폐화'되기 마련이다. 나아가 데이비스는 이렇게 진단한다. "결국 금융이라는 '관행'이 모든 일을 관장합니다. 심지어 금융기관 자체보다도 우위에 있죠. 지금 문제는 '시장의 규칙'을 중심에 둔 사고입니다. 시장이 우리 사회 내의 모든 기관을 압도하는 지경에 이른 것입니다.(444)
우선 기업과 정부의 책임이 개인에게 전가되기 시작했다. 망가져 가는 퇴직연금 제도를 보라. 공공 서비스가 민영화되는 모습이라든가, 미국의 조세 제도가 만드는 자보다는 거저먹는 자를 우대하는 꼴은 또 어떤가. 콘잘과 애버내시가 서술한 것처럼, "민영화에 따라, 정부의 역할에 대한 논의 대신에 정부가 하는 일의 배분 문제가 대두됐다." 누가 무엇을 가져야 하는가를 둘러싼 무겁고 논쟁적인 질문을 피하려던 정부가 손쉽게 사용해 온 수단이 바로 금융화였다. ... 금융권으로 하여금 신용 공급을 늘려 저성장 문제를 빚으로 땜질하도록 만듦으로써 정치인들은 유권자에게 나쁜 소식을 전하는 일을 뒤로 미룰 수 있었다. 그러나 지난 수십 년에 걸쳐 불평등이 심화되고 경제 성장의 기반이 약해지면서, 금융화는 사실상 저 질문들을 더욱 시급한 것으로 만들었을 뿐이다.(445) 

제목부터 요상합니다. 메이커스 앤드 테이커스라. 정확하게 무슨 의미인지 궁금해서 책 앞부분을 읽어봅니다. 읽어보니 메이커스는 만드는 사람이고 테이커스는 거저먹는 사람이라고 합니다. 만드는 사람과 거저먹는 사람이라? 궁금해집니다. 책을 찬찬히 살펴봅니다. 조금 더 상세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만드는 사람인 메이커스는 실제로 상품을 만드는 노동자들로서 실물 경제에 종사하는 이들을 가리킨다고 할 수 있을 겁니다. 테이커스는 이 메이커스에 빌붙어 돈을 버는 존재들로서, 실물 경제와 거리가 먼 자산시장을 이용해 돈을 버는 소수의 거저먹는 이들을 가리킵니다.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하냐고요? 책에 따르면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 마법의 단어 금융화입니다.

책에 지속적으로 언급되고 있지만 금융화는 마법의 단어입니다. 금융화란 단어가 붙으면 무언가 멋있고 효율적이고 합리적이고 이성적이고 선진적이고 돈을 많이 벌 것만 같은 느낌이 듭니다. 그러나 이런 느낌은 월가가 만든 허상에 불과합니다. 실제로 통계나 상황을 보면 금융화는 생각보다 훨씬 비효율적이고 비이성적이며 합리적이지 못합니다. 주주에게 최대의 이익을 주어야한다며 단기적 이익에만 매달리고 장기적인 투자와 생산성 향상을 내팽개쳐 기업의 효율성과 생산성을 떨어뜨리는 주주가치 우선주의, 생산을 위한 대출보다 부채에 기댄 투기적 행동을 우선시하는 것, 경제에서 금융 및 금융 활동의 규모와 범위가 비대해지다 못해 대마불사를 신봉하는 지경에 이르게 된 것, 대공황 이후 최악의 경제 위기를 일으킨 주범임에도 여전히 '시장이 가장 합리적이고 잘 안다'는 이데올로기를 맹신하는 것, 인간의 이기심을 긍하다 못해 비도덕적이고 위험하기까지 한 투기와 사기에 가까운 수법을 옹호하고 장려하는 금융계의 행태와 그것을 동경하고 따라하려는 인간들의 모습 같은 것, 교육, 필수적 사회 인프라, 교도소 같은 것들을 민영화하고 증권화하는 모습들까지, 금융화가 초래한 악영향과 비합리성은 심각한 수준에까지 이르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금융화가 그렇게까지 위험한 줄 모르고 있을 확률이 높습니다. 월가와 월가의 사상을 추종하고 받아들인 이들, 금융화로 이득을 얻는 이들이 금융화가 초래하는 현실을 인식하지 못하게 필사적으로 가로막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금융화를 마법의 단어로 만들어버렸습니다. 뭔가 합리적이고 선진적이며 이성적인 느낌으로. 현실을 가려버리고 존재하지 않는 허상의 신화를 만들어냄으로써 그들은 금융화가 계속 진행되게 만듭니다. 사람들은 아무것도 모르고 그들의 이야기를 따라가다 극도로 불평등등한 현실을 마주하거나 비생산적인 금융업만 비대해지고 시장에 대한 규제가 제대로 되지 않아 공황을 맞고 나서야 뭔가 이상하다고 생각합니다. 뭔가 이상하지만 뭐가 문제인지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면서.

뭔가 이상하지만 뭐가 문제인지 제대로 파악이 되지 않는 이들이 있다면, <메이커스 앤 테이커스>를 읽으면 될 것 같습니다. 라나 포루하는, 금융화가 초래한 현실을 제대로 파악하여 보여줍니다. 위에서 적은 것처럼, '투자하고 생산하고 소비하여 다수의 사람들을 먹여살리는 실물경제 대신 금융업이 초점을 맞추는 자산시장에 투자하여 더 큰 이득을 얻고 다시 그 이득으로 자산시장에 투자하는 순환고리를 통해 자신시장에 엄청나게 투자한 가진자들의 배만 불리는 현실', 'GE나 애플같은 상품을 만들던 대기업들이 배당금만 노리는 주주들의 압력에 의해 금융업에 더 집중하면서 생산을 위한 투자와 거리가 멀어지는 현실','기업을 노리고 규제해야 하는 정부 관료들이 기업의 영향력과 압도적인 로비, 시장을 건드리면 안된다는 신자유주의적 시장 이데올로기에 포섭되어 무력하게 무릎을 꿇는 현실', '자산시장의 확대로 인해 사람들이 자산시장에 너도나도 뛰어들면서 엄청나게 부채가 늘어나고 그로 인해 시장에 언제 위기가 찾아올지 모르는 시장의 불확실성이 증대되는 현실', '안정적으로 연금을 지급해야 하는 퇴직연금이 금융화의 물결에 휩쓸려 손해를 보거나 낮은 이득을 얻어 노후마저 보장되지 못하고 있는 현실'을 생생하게 그리며 우리에게 말합니다. 금융화의 현실을 제대로 봐야 한다고.

물론 이 책에서 말하는 건 미국의 현실입니다. 하지만 미국의 현실이 얼마나 한국과 다를까요? 다른 부분이 있겠지만 우리도 미국처럼 되어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그렇다고 한다면 이 책을 읽고 우리는 현시을 제대로 바라보아야 할 것입니다. 바라보면서 라나 포루하처럼 고민해야 할 것입니다. 이 현실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 하고. 거기서 변화가 시작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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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고전읽기 7회 모임 후기
이번 모임은 조금 걱정이 됐습니다. 앞서 읽었던 <소크라테스의 변론>,<크리톤>,<파이돈>,<향연>은 대화편 중에서 그나마 어렵지 않게 읽을 수 있는데, <고르기아스>부터는 말을 주고받으며 논전을 벌이는 부분의 흐름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낯설거나 어려울 수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예상과 비슷하게 참석율은 평소보다 낮았습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사실은 대화가 너무 좋았다는 사실입니다. 앞서 썼던 '고전독서모임'이 필요한 이유에 썼던 대로, 저는 독서모임에서 대화를 나무며 <고르기아스>가 제가 생각한 것보다 좋은 책이라는 사실을 대화를 통해서 깨달았습니다. 제가 몰랐던 책의 장점과 다양성과 역동성이 대화를 통해서 깨닫게 되었다고 해야하나. 모임을 끝내고 저는 깨달았습니다. 이래서 고전독서에는 독서모임이 필요하다고. 밑의 글은 그 대화의 일부분을 기록한 것입니다.
000: 어렵지 않게 쫙 읽어나갔다.
00: 수사학 이야기가 나와서 재미없을 것 같았다. 무슨 말인지 알 수 없어 덮었는데 조금씩 읽다보니까 플라톤의 도덕적 인간에 대한 생각이 나와 비슷해서 읽을 수 있었다. 생각보다 어렵지는 않았다.
수사학에 대한 이야기.
000: 수사학에 빗대어 플라톤이 자신의 사상을 드러내는 것처럼 보인다. 논리적이고 합리적인데 말꼬리를 너무 잡고 늘어져 짜증이 나는 면은 있었다. 연설을 말장난처럼 하면 안 된다는 말을 하는 것 같았다. 몸과 영혼에 필요한 기술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 공감이 갔다. 결론적으로 봤을 때 정의로운 삶에 대한 주장을 하는 것 같았다. 작년의 촛불혁명과 이어지는 구절이 있는 것 같아 살펴봤다.
00: 말의 기교 보다는 알맹이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카페에 비유해보면, 인테리어나 데코가 좋은 카페보다는 커피의 맛이 중요한 것과 같다. 불의를 당하는 것보다는 불의를 행하는 것이 나쁘다는 말이나 불의를 당하면 벌을 받은 것이 옳다는 말에 동의한다.
000: 정치에 수사학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정치를 할 생각이라면 수사학이 필요하다. 수사학을 너무 비하한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정치가가 대중의 마음을 읽는 것에는 수사학이 필요하다. 기본적으로 플라톤의 말이 옳다는 생각은 한다.
00: 수사학이 중요하지만, 플라톤식 FM 스타일이 마음에 든다.
000: 현실에 뿌리를 두고 있는 상태에서 플라톤식 이상주의가 마음에 들지만, 현실에서의 실천은 어렵다. 실천을 위해서 수사학의 도움이 필요하다. 공감을 얻는 게 중요하다.
000: 칼리클레스의 반발하는 모습이 인간적이어서 마음에 들었다. 감정에 상해 소크라테스에게 따지는 부분에 공감했다. 맞는 말이지만 그 말에 마음이 안간다는 것을 이 책의 소크라테스를 보고 이해했다. 연극 한 편을 보는 기분으로 읽으면 된다.
00: 칼리클레스가 소크라테스에게 솔직하게 철학의 무용론을 부분을 주장하는 게 마음에 들었다. 그래놓고 소크라테스가 화내지 않고 자신의 주장을 말하는 걸 보고 소크라테스가 내 스타일이라고 생각한다. 소크라테스가 마음에 들고 정이 간다. 사람들에게 미움받는 고지식한 스타일이라서.
000: 소크라테스의 논리는 찬성하지만, 칼리클레스의 말이 현실적으로 와닿았다. 철학작의 이상이 실천적으로 적용하기에는 한계가 있다고 생각해서. 그러나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해서는 소크라테스의 말에 동의한다. 철학과 정치가 다른 것 같다.
00: 알맹이가 있고 수사학이 있어야 하는데 알맹이는 없고 수사학만 있는 것 같은 모습은 문제가 있다고 생각해서 소크라테스에게 더 끌린다.

잠시 보충해서 이야기를 해보자면, 소크라테스에게 논파당하는 칼리클레스 같은 인물이나 대화를 주도해가는 소크라테스도 우리의 대화를 통해 다양한 면모를 가진 살아 있는 인간으로 되살아났습니다. 책 속에서 자신만의 역할을 하던 인물들이 독서모임에서의 대화를 통해 생생히 살아 있는 인간이 된 것이죠.^^ 
정치와 수사에 관한 이야기도 중요했습니다. 저는 이 부분에서 책에 적혀 있는 생각을 확장해서 우리 삶의 문제로 전환시키는 걸 시도했습니다. 개인적으로 머릿속에 떠오른 걸 실행을 한 것인데, 해놓고 보니 정말 좋았습니다. 모임에 참여하신 분들은 열심히 자신의 생각, 자신이 마음속에 쌓아둔 걸 토해놓으며 집중했습니다. 대화를 나누다보니 모두가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우리 모두가 대화를 나눈 시간이 내실이 있는 시간이 되었다는 걸. 독서모임의 시간이 하나의 의미있는 삶의 시간이 되었다는 걸. 이런 시간을 경험한 분들은 어쩔 수 없이 다시 독서모임을 하러 나옵니다. 충만한 삶의 시간을 경험한 분들은 다시 그런 것을 경험하기를 원하기 때문이죠. 그래서 우리의 모임은 <프로타고라스>로 이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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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르기아스>라는 플라톤의 대화편을 두고 고전독서모임의 시간을 가졌습니다. 독서모임의 후기를 써야 하는데(^^;;) 일단 독서모임을 하면서 스쳐 지나간 생각이 있어 이에 대해 한번 적어보겠습니다.

제목은 '고전독서모임이 필요한 이유'. 뭔가 엄청나고 멋지고 논리적인 말을 해야할 것 같지만, 제 능력상 그렇게는 안됩니다.ㅎㅎㅎ 어쩔 수 없이 제가 생각하고 느낀 것들을 솔직하게 적을 수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부족하더라도 이해해주세요.

사실 <고르기아스>를 두고 고전독서모임을 하는데 걱정이 있었습니다. 앞에 읽은 <소크라테스의 변명>,<크리톤>,<파이돈>,<향연>에 비해 <고르기아스>는 플라톤의 중기작품답게 분량도 많고, 소크라테스 특유의 말을 주고받으며 상대방의 논리적 허점을 파고들어 무너뜨리고 자신의 논리를 상대방이 인정할 수밖에 없게 만드는 문답법이 핵심적인 작품이기 때문에 읽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말을 주고받으며 생겨나는 플라톤 대화편의 독특한 흐름을 수용할 수 있다면 문제가 없지만, 그것을 받아들이지 못한다면 힘들거라고 생각했거든요. 제 걱정때문인지 몰라도 오늘 모임은 참여인원이 생각보다 적었습니다.

하지만 막상 독서모임을 해보니 너무 좋았습니다. 독서모임을 하면서 '아~~ 이래서 고전 읽기에 독서모임이 필요하구나' 하는 생각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간단합니다. 독서모임을 하면서 제 혼자의 상상 속에 갇혀 있던 <고르기아스>가 우리의 말을 통해 생명력을 얻어 되살아났기 때문입니다. 혼자서는 상상하지 못했던 <고르기아스>의 의미가 독서 모임에 참여한 사람들이 주고받는 말을 통해 충분한 힘을 얻었다는 말입니다. 더 자세하게 말해볼께요. <고르기아스>는 우리의 말을 통해 더 재미있는 책이 되었습니다. <고르기아스>는 우리의 말을 통해 더 의미있는 책이 되었습니다. <고르기아스>는 우리의 말을 통해 어렵지 않은 책이 되었습니다. <고르기아스>는 우리의 말을 통해 과거에 갇힌 책이 아니라 현재에 살아 숨쉬는 '현재의 책'이 되었습니다. <고르기아스>는 우리의 말을 통해 우리의 삶에 영향을 미치며 삶과 소통하는 책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독서모임이라는 공통의 말을 주고받는 시간을 통해 혼자서 할 수 없는 <고르기아스>에 대한 '공동비평'의 시간을 가졌습니다. 그래서 우리 각자가 읽은 <고르기아스>는 우리가 가진 독서모임 때문에 우리 모두의 것이 되었습니다. 여기가 중요합니다. 고전독서모임은 혼자서는 할 수 없는 고전에 대한 공동비평의 장이자 우리 모두가 함께 만들어가는 고전의 공유를 이루어냅니다. 물론 혼자서도 고전에 대한 비평을 할 수 있습니다. 그건 어디까지나 혼자서 하는 원맨쇼에 가깝겠죠. 그것에도 가치가 있습니다. 하지만 혼자가 아닌, 여러명이서 하는 비평은 혼자서 할 수 없는 다수가 모여 만들어내는 힘이 있습니다. 우리 각자가 자신의 자리에서 말을 토해내고, 토해낸 말들이 모여 만들어내는 말과 언어의 울림이, 조화를 이루며 빚어내는 고전 공동비평을 한 번 겪고나면 깨닫게 됩니다. 고전 읽기가 얼마나 자신의 삶에 의미가 있는지. 고전독서모임에 얼마나 힘이 있고 유의미한지. 더불어 깨닫는 것이 있습니다. 함께 읽으면 어떤 책이라도 읽을 수 있다는.

이상 저만의 '고전독서모임'이 필요한 이유를 마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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