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 그런지 모르겠지만, 아르헨티나 하면, 바늘 가는 데 실 간다는 말처럼 금방 떠오르는 노래가 있다. 뮤지컬 에비타의 삽입곡 Don‘t cry for me Argentina (아르헨티나여, 날 위해 울지 말아요)이다. 마돈나가 불러서, 그녀의 유명세 탓인지 모르겠다. 이 말고도, 라틴아메리카의 민주주의를 공부하던 시절의 기억을 뒤로 밀쳐 내면, 나의 기억에서 아르헨티나와 연결되어 또렷하게 남는 게 또 있다. 피아니스트 마르타 아르헤리치!

그러고보니 아르헨티나는 쇼팽 국제 피아노 콩쿠르에 입상한 여류 피아니스트를 둘이나 배출하였다. 마르타 아르헤리치(Martha Argerich)는 1965 년에 열린 쇼팽 국제 피아노 콩쿠르에서 우승하였고, 잉그리드 플리터(Ingrid Fliter)는 2000년에 준우승하였다. (입상한 피아니스트 둘이 모두 여성이다. 여성으로서 불리한 여건에서 성공한 삶을 살기 위해 노력했던 에비타가 이들과 오버랩 되기도 한다.)

쇼팽 국제 피아노 콩쿠르 입상은 피아니스트의 뛰어난 실력을 입증하는 보증서와 다름 없다. 1960 년에 마우리치오 폴리니가 우승하였는데 당시 심사위원장이었던 아르투르 루빈슈타인은 “(기술 면으로는) 우리 (심사위원) 누구보다도 뛰어나다.”라는 말을 하였다고 회자되고 있다. 최근의 예로, 2015 년에 조성진 역시 콩쿠르에서 우승함으로써 단번에 세계적인 피아니스트로 발돋움하였음을 우리는 안다. 쇼팽 국제 피아노 콩쿠르 입상자라고 해서 쇼팽 작품의 연주만 훌륭한 것이 아니다. 그들은 최고 경지에 도달한 피아노의 거장인데 쇼팽의 작품으로 경연한 것일 뿐이다. 마르타 아르헤리치만 봐도, 강렬하고 특유의 음색으로 쇼팽만 아니라 프로코피에프 등의 작품을 즐겨 연주하였다.

잉그리드 플리터는 연주 활동이 활발하지 않아서 그런지 정보가 그리 많지 않다. 음반도 몇 되지 않는다. 다섯 손가락으로 꼽을 만한 음반들을 소개하는 상품 페이지에서 언급된 내용을 모아볼 수 밖에 없다.

잉그리드 플리터는 2008 년에 EMI 클래식 데뷔 리사이틀에서 쇼팽의 작품들을 연주하였다. 2009 년에 쇼팽 왈츠 전곡을 연주하여 쇼팽 탄생 200주년 기념 음반으로 선보였다. 그녀의 연주에 찬사가 쏟아졌을 뿐만 아니라 음반상을 받았다. 그리고, 쇼팽 국제 피아노 콩쿠르 입상자답게 쇼팽 피아노 협주곡 제 1, 2 번을 녹음한 음반으로 그라모폰 매거진 에디터스 초이스(Gramophone Magazine Editor‘s Choice - March 2014) 상을 받기도 하였다. 다음은 음반 소개에서 인용하는 내용이다.

아르헨티나 태생의 쇼팽 스페셜리스트 잉그리드 플리터는 2000년 바르샤바 쇼팽 국제 대회에서 2위를 수상한 이후 쇼팽의 최고 해석자로서의 명성을 얻었다. 열렬한 기질로 고무된 황홀한 기술과 열정적인 지성의 소유자, 우아하게 잦아드는 프레이징과 눈부신 비르투오시티‘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녀는 앞서 2개의 쇼팽 음반을 레코딩했으며 그녀의 쇼팽 왈츠 전곡은 Classic FM 매거진 에디터스 초이스, Telegraph의 금주의 음반으로 최고의 호평을 받았다.

그리고, 쇼팽 스페셜리스트임을 입증하는 듯이 플리터는 2014 년에 쇼팽의 전주곡 음반도 내놓았는데 그 해 11 월에 그라모폰 매거진 이 달의 디스크(Gramophone Magazine Disc of the Month - November 2014) 상을 수상하였다. 이제까지 소개한 음반들이 현재 절판 또는 품절 상태라서 구입하지 못함이 정말 안타깝다. 감상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친 것 같은 상실감이 크다.

2016 년에 발매된 음반은 쇼팽이 아닌 슈만과 멘델스존의 피아노 협주곡을 연주한 것이다. 쇼팽 스페셜리스트의 일탈일까, 아니면 쇼팽 스페셜리스트를 탈피하려는 색다른 시도일까. 쇼팽 스페셜리스트로서 성취감과 자신감이 반영된 결과라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닐 것이다. 어느 쪽이 됐든 뛰어난 피아노 연주 실력이 어디 가겠는가. 신보에 대한 기대감이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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