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 음악사에서, 중세까지는 성악만이 음악이었고, 교회가 아닌 곳에서 음악 연주는 드문 일이었다. 그러다보니 악기와 기악이 일찍이 발달하지 못하였다. 르네상스와 바로크 시대를 거치면서 세상이 변함에 따라 합주협주곡 등의 기악곡이 출현하고, 축제에서 음악을 연주하는 기회가 많아지면서 기악 합주도 발달하게 되었다.

관현악단(orchestra)은 16 세기경에 들어서야 현재와 얼추 비슷한 형태를 갖추었다. 귀족한테 고용된 합주단이 기원이라고 본다. 또한, 왕실에서 주최하는 결혼식과 장례식 등의 행사를 위해 모인 기악 연주자들에서도 그 기원을 찾을 수 있겠다. 프랑스 루이 13 세는 바이올린 합주단을 창설하였다. 루이 14 세의 궁정 음악가였던 륄리 역시 자신의 악단을 결성하였고, 프랑스 음악 뿐만 아니라 관현악단 발전에 기여하였다.

16 세기 중엽 이탈리아에서, 고대 그리스 음악을 재건하려는 노력이 있었다. 문헌 연구를 통해 통주저음 악기 반주와 독창곡을 선호하였다. 특히 귀족들이 주최한 축제 행사에서 음악 공연이 빠지지 않았다. 초기 관현악단이 편성되는 계기가 되었다. 이들은 모두 오페라를 가능하게 만든 요소이기도 하다.

초기 바로크 시대의 대표적인 작곡가 중에 몬테베르디가 있다. 피렌체의 메디치가와 세력 다툼을 벌였던 만토바 영주는 몬테베르디를 고용하고 오페라 연주를 위한 관현악단을 편성하였다. 40 인으로 구성되었다고 전해지는데, 당시로는 엄청난 규모였다. 만토바 영주의 후원 하에서, 1607 년에, 몬테베르디는 자신이 작곡한 오페라 ˝오르페오˝를 공연하였다. 이 오페라의 특징으로, 기악이 연주하는 서주가 있고, 무곡이 있고, 심포니아라고 불린 기악곡이 막간에 포함되었다. 이는 근대 오페라의 효시로 인정받고 있다.

이후 오페라가 발전하면서 관현악단 역시 발전하게 되고, 17 세기에는 지역에 따라서 관현악단의 구성이 다양해지기도 하였다. 이탈리아에서 시작된 오페라를 당시 프랑스, 영국, 독일 등지에서 수입하면서 귀족들의 취향에 맞추면서 편성에 변화를 꾀한 것으로 보인다. 예를 들면, 이탈리아, 프랑스, 영국에서는 현악기 합주를, 독일 궁정에서는 금관 합주를 선호하였다. 이런 경향은 지금까지도 어느 정도 남아 있는 듯 싶다.

고전 시대 작곡가들은 관현악을 위한 악기를 다양하게 편성하였고, 관현악이 돋보이는 음악을 작곡하였다. 오페라 발전과 더불어 반주를 위한 기악 합주도 발달하였다. 고전 시대에서, 소나타 형식이 정립되면서 기악이 주체가 되는 교향곡이 발전하게 되었다.

헝가리 귀족이었던 에스테르하지 후작은 하이든을 고용하여 30 년 가까이 후원하였다. 하이든은 에스테르하지 집안 관현악단의 악장직에서 물러날 때까지 교향곡과 실내악곡을 꾸준히 작곡하였고 관현악법 역시 진보시켰다. 하이든, 모차르트, 베토벤을 거치면서 근대 관현악단의 기틀이 잡혔다. 18 세기 중엽에 독일 만하임의 궁정에서 만하임 관현악단을 창단하였다. 당시 최대 규모였고, 스타미츠가 지휘를 맡아 유럽 전역에 그 명성을 떨쳤다. 이처럼 왕이나 황제 등 귀족들의 직속 악단이었던 궁정악단(독일어로, Hofkapelle)이 음악 발전에 공헌하였다. 이런 역사적 배경으로 인해, 독일의 경우, 관현악단 명칭에 Kapelle를 쓰기도 한다. 드레스덴 국립 관현악단(Staatskapelle Dresden)이 대표적인 경우이다.

한편, 모차르트, 베토벤 등은 교회나 궁정에 귀속되지 않고 독립하여 생활하였다. 이들에 의해서, 음악사에서 중요한 사건 중 하나로 여길 만한, 대중 연주회가 열렸다. 연주회에서 자신의 작품을 발표하고 출판하여 생계를 위한 돈을 벌었다. 베토벤은 전성기 때 연주회를 한 번 열어 일 년치 생활비를 벌었다고 한다. 다시 생각해 보면, 베토벤은 교향곡 9 곡, 피아노 협주곡 5 곡, 바이올린 협주곡 등을 작곡하였다. 이 작품들을 연주회에서 발표 때마다 관현악단이 필요했을 텐데 어떻게 대처하였을까.

주로 귀족 계층이 대부분이기는 하였지만, 당시 지불 능력이 있는 청중한테 입장료를 받고 극장에서 연주회를 개최하였다. 유료 연주회에서 중심 곡목은 교향곡이었다.

낭만 시대에는 관현악법이 비약적인 발전을 이루었다. 베를리오즈 등 낭만 시대 작곡가들은 관현악을 중시하였다. 이 때문에 19 세기 후반에 관현악단의 규모는 커졌다. 베를리오즈는 관현악법을 발전시키면서 악기를 추가하기도 하였고, 바그너는 직접 악기를 발명하여 관현악 연주의 효과를 극대화하면서도 자신이 작곡한 악극을 위한 전용 공연장을 세우기도 하였다. 게다가 말러는 천 명에 가까운 연주자가 동원되는 ˝천인 교향곡˝을 작곡하였다. 관현악단의 규모가 커짐에 따라 유지 비용 역시 증가할 수 밖에 없었다. 국왕이나 부유한 음악 애호가의 지원이 없으면 관현악단의 존립이 어려운 상황에 직면하게 되었다. 재정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청중을 많이 수용할 수 있는 더 큰 연주장을 세웠고, 이를 계기로 정기 연주회 등으로 관객을 자주 끌어모을 수 있게 되면서 상설 연주장이 생겨났다.

교향곡이 연주회의 중심이 되었고, 연주회를 위해서 관현악단이 유지되면서 악단 명칭에 교향곡이 영향을 끼치게 되었다. 그래서 교향곡(symphony)과 관현악단(orchestra)의 합성어가 만들어졌다. 바로 교향악단(symphony orchestra)이다. 대표적인 경우로, 런던 교향악단, 빈 교향악단 등이 있다.

19 세기 무렵부터 음악 애호가들이 주축이 되어 음악 애호가 협회(philharmonic society)를 창립하게 되었다. 협회에 속하는 관현악단의 호칭이 필하모닉 관현악단(philharmonic orchestra)이다. 런던 필하모닉 관현악단, 로얄 필하모닉 관현악단, 베를린 필하모닉 관현악단, 뉴욕 필하모닉 관현악단, 체코 필하모닉 관현악단 등이 있다.

어감 때문인지 몰라도, 나중에 국립 또는 시립 관현악단에도 필하모닉을 붙인 호칭이 생겼다. 바르샤바 국립 필하모닉 관현악단(Warsaw Philharmonic Orchestra)이 이 경우에 해당한다. 그리고 서울 시립 교향악단(Seoul Philharmonic Orchestra)의 경우도 마찬가지로 영어 표기에 필하모닉을 넣었다. 이와 영어 표기는 동일하지만, 다른 연주 단체인 서울 필하모닉 관현악단이 한국에 있다.

교향악단이나 필하모닉 대신에 상설 공연장의 이름을 사용하는 경우도 있다. 왕립 콘세르트헤바우 관현악단(Royal Concertgebouw Orchestra), 라이프치히 게반트하우스 관현악단(Gewandhausorchester Leipzig) 등이 그러하다. 또한, 지역 명을 사용하는 명칭은 오히려 더 단순한 경향이 있다. 파리 관현악단, 필라델피아 관현악단, 클리블랜드 관현악단, 시카고 교향악단 등이 그렇다. 지역 자치 단체의 후원을 받는 경우에 지역 명을 사용하는 명칭을 가진다.

상설 공연장은 그 성격, 규모에 적합한 관현악단을 조직하였다. 이 말고도 축제가 열리면 목적에 맞는 관현악단이 편성되었다. 따라서 실내악, 오페라, 축제 공연 등을 위한 관현악단이 따로 창단되었다.

교향악단의 경우에서도 보았지만, 실내악(chamber music)과 관현악단(orchestra)의 합성어로 실내 관현악단(chamber orchestra)이 생겨났다. 작은 크기의 공연장에서 연주하기 위해 소규모로 편성된 관현악단을 지칭한다. 교향악단이나 필하모닉 정규 단원이 70~120 명 정도이지만, 실내 관현악단은 10~50명 정도 인원으로 구성된다. 지휘자를 두지 않는 경우도 있다. 아카데미 실내 관현악단, 이 무지치 등이 대표적이다. 교향악단이나 필하모닉 관현악단원들이 주축이 되어 실내 관현악단을 결성하는 경우도 있다. 베를린 필하모닉만 해도 30 개 정도의 실내악 조직이 있다고 한다.

오페라 또는 발레를 위한 무대 음악을 연주하는 관현악단이 오페라 관현악단이다. 대부분 오페라단이나 오페라 극장에 전속되어 있다. 빈 국립 오페라 관현악단, 프랑스 국립 바스티유 오페라 관현악단, 라 스칼라 극장 관현악단 등이 대표적이다. 특히 주목할 점은, 오페라단이 휴지기인 동안 관현악단이 따로 연주 활동을 펼치기도 한다. 빈 국립 오페라 관현악단에 소속된 단원들로 구성된 악단이 빈 필하모닉 관현악단이다. 그리고, 빈 필하모닉 관현악단은 상임 지휘자를 두지 않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음악 축제를 위해 창단되는 악단은 해당 축제 이름을 사용하기도 한다. 바이로이트 축제 관현악단은 매년 여름에 열리는 바이로이트 축제를 전담하는 관현악단이다. 바그너가 자신의 악극을 상시 공연하기 위해 바이로이트에 공연장을 만들면서 바이로이트 축제가 시작되었다. 그리고 루체른 축제를 위한 관현악단이 임시 편성되기도 한다. 잘츠부르크 축제에는 빈 필하모닉 관현악단이 초창기부터 줄곧 연주를 맡고 있다.

20 세기 들어, 레코딩을 목적으로 관현악단을 조직하기도 하였다. EMI에 의해 창설된 필하모니아 관현악단이 그렇다. 또한, 방송을 목적으로 조직된 관현악단들도 있다. BBC 교향악단, NBC 교향악단, 바이에른 방송 교향악단, 베를린 도이치 교향악단, 북독일 방송(NDR) 교향악단, 남서독일 방송(SWR) 교향악단 등이 그렇다.

현재는 교향곡으로 대표되는 관현악과 더불어 관현악단이 명실상부한 자리매김을 하였지만, 이렇게 되기까지는 험난한 과정을 거칠 수 밖에 없었다. 역사를 통해 선대의 노력과 후대에 남겨진 가치를 새삼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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雨香 2016-09-06 13: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부분부분 읽느라 알아채지 못한 내용입니다. 저는 책장에 꽂아두고 필요할때 부분부분 찾아 읽습니다. 사전처럼요..